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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65화 (65/214)

제65화. 붉은 눈 토벌전 (7)

나는 붉은 눈이 내뿜는 포효에 덜덜 떨리는 주먹으로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치며 외쳤다.

“모든 질리안 시리즈! 가동 중지!”

내 외침에 눈에서 붉은 빛을 내며 자동적으로 전투 모드에 돌입하려던 질리안 시리즈의 움직임이 멈췄다.

“기준치 이상의 적대적 마력파 감지! 비상 프로… 바이스 마스터의 명령, 가동 중지를 실행합니다.”

질리안 시리즈가 전투 모드로 들어가서 강한 마력을 뿜어내면 역으로 붉은 눈을 자극할 위험이 있어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존재감인 거지?

그저 울음소리에 불과한데도 전신이 떨려 주체할 수 없었다. 이 반응은 공포인가? 아니면 생존 본능인가?

어느 쪽이든 이성을 잃는 것은 안 될 말이다.

“길버트랑 실루아도 기척 죽여.”

생존 본능에 마력을 끌어 올리려던 길버트와 실루아도 내 말을 듣고 자제했다.

아직 지근거리에 도착한 것도 아니니 굳이 놈의 살기에 대응하여 위치를 노출시킬 필요는 없었다.

“도련님, 이 살기는….”

“그래, 아무래도 붉은 눈이 피 냄새에 이끌려 이쪽으로 온 것 같다.”

내 말에 길버트와 실루아는 긴장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동쪽으로 간 데미웨이는 뭘 한 거지?

분명 작전상으로 붉은 눈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산을 탄 지 2시간 안에 붉은 눈과 교전을 시작했어야 했다.

산맥에 들어오고 2시간이면 내가 막 작전 시작 지점에 도달했을 시간대다.

“일이 틀어졌나 보군.”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붉은 눈을 추적하는 녀석들이 실수해서 토벌대가 붉은 눈과 교전하기 전에 종적을 잃었거나, 붉은 눈과 토벌대와 교전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부상을 입히지 못하고 놓쳤거나.

붉은 눈이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저 울음소리는 도저히 다쳤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데미웨이와 프레시아 두 사람이 있는데도 큰 부상 없이 놓치는 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그렇다면 역시 추적조가 실수한 모양이다.

“괜찮아. 아직 정찰 인형의 탐지 범위에 걸리지 않은 걸 보면 우리와 꽤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어. 괜히 마력을 끌어 올려서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몬스터도 기본적으로 짐승이다.

짐승은 후각, 청각, 시각 순으로 예민하기 마련이었으니 일대가 진한 피 냄새로 가득 찬 이상 큰 소리나 마력으로 자극하지 않는 한 쉽사리 우리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을 거다.

정확히는 우리의 존재를 모르겠지.

“그럼 당장 도망치죠. 아직 멀리 있을 때 움직여야 합니다.”

길버트의 권유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니. 나쁘지 않군.”

“네?”

어리둥절한 길버트의 표정을 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흔히들 기회는 위기를 수반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뒤집어 말하면 위기 또한 기회란 말이잖아.”

내 미소를 본 길버트는 불길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설마….”

“맞아, 붉은 눈을 사냥한다.”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길버트의 말에 나는 전서구 인형을 꺼냈다.

“누가 직접 사냥한다고 했어? 당연히 붉은 눈의 목을 베는 건 프레시아가 해야지. 우리는 붉은 눈이 움직일 수 없도록 발목을 붙잡아 둘 뿐이야.”

물론 사냥할 각이 나오면 그대로 죽일 거다.

붉은 눈은 무려 20년간 상처를 회복하느라 깊은 잠에 들었다.

그 정도면 전대 블란츠바그 후작에게 입은 상처가 아니라 영양실조와 기아로 약해졌을 거다.

깨어난 지 길어야 한 달도 되지 않았을 테니 지금 죽여둬야 나중이 편해진다.

“하지만….”

“길버트, 비록 의도한 건 아니지만 붉은 눈을 이끌어냈어. 그 말은 곧 붉은 눈의 움직임을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지금 산맥 남서부에는 내 손발이 되어줄 3천 대가 넘는 인형들이 산개해 있지.”

나는 종이를 꺼내 프레시아에게 지시 사항을 적어 전서구로 보냈다.

“실루아는 네임드 인형으로 싸울 준비 해줘.”

지금부터 붉은 눈 사냥이다.

* * *

“프레시아 경, 진정하십쇼. 붉은 눈이 서쪽으로 향한 것은 예상 밖이지만 바스타유 산맥은 넓습니다. 산맥을 돌아다니며 몬스터 군락을 하나하나 토벌하면서 계속 이동하는 유안 경 일행과 마주칠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특무대장은 앞장서서 토벌대를 인도하며 흥분한 프레시아를 다독였다.

다른 토벌대원들도 잔뼈가 굵었지만 산길을 가장 잘 아는 건 레인저들과 협업하는 특무대장인 그였다.

“아무리 넓더라도 도련님께서 사냥 중이라면 피 냄새를 풍길 텐데 더 위험하시잖습니까!”

프레시아의 초조한 외침에 데미웨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스타유 산맥에서의 몬스터 토벌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고 하는 말이냐? 지금 시간이면 기껏해야 군락지 다섯 곳 정도 토벌이나 했으면 다행이겠군.”

데미웨이의 차가운 평가에 프레시아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늘 토벌 목표치는 쉰 곳이지 않습니까? 지금 시간이면 못해도 서른 곳은 처리하셨을 텐데요.”

프레시아의 의문에 특무대장은 쓰게 웃었다.

“유안 경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령관님께서는 유안 경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과한 목표를 제시하셨습니다.”

“과하다고요?”

프레시아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6천 대에 달하는 마법 인형은 만만한 병력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수백 단위의 몬스터가 모여 있는 군락을 토벌하는 것쯤은 10분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보다도 몬스터 군락을 발견하는 게 힘듭니다. 몬스터들도 다른 몬스터들을 피해 소굴을 만들기 때문에 숙련된 레인저가 아니면 보통은 찾을 수 없습니다.”

특무대장은 몬스터 군락을 찾지 못해도 군락 근처에서 자극을 주면 알아서 튀어나오기에 아예 못 찾는 건 아니라서, 잘하면 하루에 열 곳은 토벌할 수 있을 거라 첨언했다.

특무대장의 설명에 프레시아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녀가 아는 유안은 '보통'이란 개념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었다.

효율을 중시 여기는 유안이라면 생각치도 못한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목표치의 몇 배를 토벌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무대장은 말을 이었다.

“사실상 산맥 정리 작전의 본격적인 시작은 저희가 붉은 눈을 토벌한 다음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유안 경에게는 몬스터 토벌도 좋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는 몬스터들을 주의하라 말해 놨습니다.”

산맥 전역에 영향을 끼칠 붉은 눈과 데미웨이의 사투로 인한 몬스터 웨이브만 막아도 충분히 데미웨이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할 수 있었다.

사실 데미웨이는 유안이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산맥 아래 5백 기의 기사단을 배치했다.

데미웨이가 유안에게 기대하는 부분은 튼튼한 장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 하늘에서 낙하하듯 비둘기 하나가 프레시아에게 날아들었다.

순간적으로 베어버릴 뻔했지만 비둘기가 유안이 보낸 인형임을 깨닫고 손을 뻗어 전서구를 잡았다.

프레시아가 전서구를 받자 전서구의 가슴에서 서신이 튀어나왔다.

“도련님의 연락입니다. 현재까지 대략 536개의 군락을 토벌하였다고 합니다.”

“…뭐?”

프레시아가 읽은 편지의 내용에 데미웨이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은 듯 그녀를 돌아봤다.

“그렇게 많은 군락을 토벌했다고? 아니, 몬스터 군락을 찾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 짧은 사이 고작 6천 대로 넓은 산맥을 돌아다니며 그 정도 숫자의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공적이었다. 프레시아는 데미웨이의 말을 무시하며 편지를 읽었다.

“그러나 피 냄새에 붉은 눈이 이끌려 편지를 보낸 시점에는 가헤르 산 인근으로 접근해 일시적으로 토벌을 멈췄다고 합니다. 왜 토벌대와 교전 중이어야 할 녀석이 왜 여기 있냐고 따지라고 하시는군요.”

그 말에 데미웨이와 특무대장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붉은 눈의 위치를 파악하는 추격조의 실수로 교전조차 못 하고 붉은 눈의 흔적을 더듬으며 뒤를 좇는 처지였으니 말이다.

“이번 일로 도련님께서 다치시기라도 한다면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인내심을 뚫고 옅은 살기가 목소리에 배어나왔다.

프레시아의 분노 어린 목소리에 토벌대의 기사들은 미간을 좁혔다.

“프레시아 경! 말이 지나치…!”

프레시아에게 따지려는 기사의 말을 데미웨이가 손을 들어 막았다.

“미안하다, 이건 우리의 실수가 맞다.”

“사령관님!”

데미웨이가 사과하며 실수를 인정하자 토벌대원들은 눈을 크게 떴다.

토벌대원들은 자존심에 프레시아를 노려봤지만 데미웨이는 전혀 다른 이유로 프레시아를 바라봤다.

프레시아의 전신에서 은은히 흐르는 기파(氣波)는 검귀라 불리는 그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재능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분노로 드러난 힘의 편린은 ‘초인’에 근접해 있었다.

“그래서였나….”

데미웨이는 프레시아를 제자로 들이겠다고 유안에게 말했을 때 유안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시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경지를 한참 넘어섰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의 초인이라니, 나라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지만 이미 충성의 대상을 정한 것 같아 씁쓸했다.

프레시아는 편지를 데미웨이에게 건넸다.

“도련님께서 붉은 눈을 도망칠 수 없는 지형으로 몰아넣을 테니 오후 5시 이전까지 지도상의 위치로 토벌대를 끌고 오시랍니다.”

프레시아의 말에 데미웨이는 흥미로운 듯 편지와 지도를 살폈다.

유안이 표시한 지형은 가파른 협곡이었다.

“이대로 몰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 하지만….”

어떻게 붉은 눈에게는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인 인형으로 붉은 눈을 사냥감을 몰듯 할 것인가.

유안이 조종하는 인형은 기껏해야 병사들을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데미웨이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안 경의 작전대로 움직이면 붉은 눈의 흔적을 잃을 수 있습니다. 완전히 동면에서 깨어난 지금 시기에 추적을 위해 다시 레인저들을 동원한다면 피해도 피해지만, 붉은 눈에게 회복할 시간을 더 주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계속해서 붉은 눈의 흔적을 쫓아 위치를 추적하는 게 옳았다.

지금처럼 붉은 눈의 흔적을 쫓느냐, 아니면 유안의 작전을 믿고 흔적을 포기하고 빠르게 움직이느냐.

특무대장의 말에 두 가지 갈림길에서 데미웨이는 결단을 내렸다.

* * *

“갸아아아아아!!”

붉은 눈은 분노에 가득 찬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사방이 피 냄새로 가득 차 공복을 자극했건만 냄새를 따라 움직인 곳에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보이는 땅에 남은 것은 바닥을 흥건히 적신 피 웅덩이와 아주 작은 살점 조각, 털과 비늘 조각뿐이었다.

“갸아아아아아!!”

살기를 투영한 울음소리에도 주변에 사냥감이 움직이는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 근방의 모든 몬스터가 사라진 상태 같았다.

붉은 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온갖 '먹을 것'들로 가득한 삶의 터전의 사냥감이 증발하다니.

수백 년을 살아온 대마수는 처음 마주하는 사태가 당혹스러웠다.

아니, 그보다 미칠 듯한 공복이 괴로웠다.

스르륵!

그때 들려오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에 붉은 눈은 귀를 쫑긋 세웠다. 사냥감인가?

사방에서 풍겨오는 피 냄새 탓에 후각이 반쯤 마비되어 붉은 눈은 청각을 곤두세우며 움직였다.

움직인 곳에는 죽어 있는 오크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째서 한 마리만 덩그러니 있는지는 붉은 눈이 알 바 아니었다.

콰직! 으드득!

붉은 눈은 허기만 채우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스르륵!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붉은 눈은 움직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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