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64화 (64/214)

제64화. 붉은 눈 토벌전 (6)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지도정치(地圖正置:지도와 실제 지형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 시켰다.

아무래도 기계로 측정한 게 아니라 그런지 정확한 축척(縮尺)을 지킨 지도는 아닌 듯했다.

하기야, 여유롭게 지형지물을 관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지역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게 닭 머리 바위 같으니까… 대충 여기면 될 것 같네.”

산에 올라 작전 시작 지점에 도달했다.

이제 여기서 레인저들이 수색하며 파악한 몬스터 군락을 습격하며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된다.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듯 진군하는 이유는 몬스터를 아래로 최대한 보내지 않기 위해서이고, 서쪽으로 몬스터를 모는 건 동쪽에서 벌어질 붉은 눈 토벌에 몬스터로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지도는 필요 없네."

나는 하늘 높이 박쥐 형태의 정찰 인형 30개를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빠르게 근방에 산개한 박쥐 인형은 초음파를 내뿜어 주변 지형을 정찰했다.

정찰한 정보는 내 우측에 지도 형태의 인터페이스로 바로 떠올랐다.

정찰 인형은 적 마법사에 의해 쉽게 발각당해 국가 간의 전쟁에서는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이만한 게 없었다.

“어디 보자.”

나는 지도 인터페이스를 확대했다 축소했다를 반복하며 주변을 살폈다.

인형 하나당 직경 500미터가량을 커버했으니 이론상으로 30개면 수십 킬로미터는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이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실제로는 그보다는 훨씬 좁은 수 킬로미터밖에 지도에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대충 만든 지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수 킬로미터면 미니 맵치고는 넓은 거지.

“마력 반응에 따르면 이 근방 몬스터 군락만 다섯 개인가.”

마력을 다루는 몬스터는 대부분 마석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마석이 내뿜는 미약한 마력의 파장을 잡아내면 군락의 위치를 잡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이 근방에는 각각 소형 300, 중형 200, 소형 500, 대형 50, 소형 1400마리가 모여 있었다.

모두 각개격파를 해도 좋았지만 그래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적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점을 철저하게 이용해 줘야지.

“실루아, 일단 50대만 부탁할게.”

내 지시에 실루아는 손가락을 튕기며 50대를 소환하듯 꺼냈다.

그러자 인형들의 위치가 지도상에 표시되며 번호가 떠올랐다.

인터페이스 동기화 확인, 마력 잔량 확인, 위치 신호 확인, 움직임 동조 확인, 파손 여부 확인….

“움직여라!”

내 명령에 따라 강철 거미 인형들을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며 움직였다.

가장 가깝고 숫자가 적은 200마리의 오크 무리에 선행 타격조로 5대의 인형이 도달했다.

인형이 보내온 영상에 따르면 눈 아래 점박이 무늬가 있었다.

그냥 오크라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본 길버트가 말했다.

“포이즌 오크입니다. 독이 잘 안 통하고, 목에 독샘이 있어 독을 토할 수 있습니다. 희귀한 녀석들이라고 했는데 역시 바스타유네요.”

“그래? 잘됐네. 숫자가 적어도 위협적이야.”

나는 인형을 북쪽으로 우회시켜 마탄으로 오크를 공격하게 했다.

오크들은 독 때문에 동족 포식을 못 해서인지 상당히 굶주려 있다. 독이 잘 안 통하는 거지, 아예 안 통하는 게 아니었다.

잘만 조종한다면 지형을 이용해 5대의 인형으로도 충분히 전멸시킬 수 있었지만, 원거리 공격으로 열댓 마리만 죽이고 인형을 북동쪽으로 퇴각시켰다.

오크는 인형을 먹잇감으로 착각하고 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5대의 인형이 50마리의 대형 몬스터인….

“저건 뭔 몬스터야? 사자탈 괴물?”

내 물음에 길버트가 바로 대답했다.

“인면(人面)범이라는 몬스터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강하면서도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어서 상당히 까다롭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영역을 잘 벗어나지 않아 대책만 잘 마련하면 위험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몬스터의 특징을 줄줄 읊는 길버트를 보며 물었다.

“넌 어떻게 아는 거야?”

“게오르 씨의 인형들을 상대할 때 몬스터의 특징을 알면 상대하기 쉬워질 것 같아 서재에서 찾아 읽었습니다.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더라구요. 생각보다 흥미로웠어요!”

길버트의 활기찬 대답에 나는 순간 미안해졌다.

몬스터에 해박해진 게 결국 나 때문이었다는 소리 아니야.

“…흥미로웠다니 다행이구나.”

“네!”

영역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즉,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의미였으니 아주 좋다.

이곳으로 끌어들이면 되겠군.

인면범은 공격하지 않고 주시만 하며 다른 몬스터 군락을 확인했다.

붉은 비늘의 육족(六足) 도마뱀 몬스터 군락과 가시털이 달린 곰 몬스터 군락, 그리고 커다란 홉고블린 군락이었다.

나는 인형들로 각 몬스터의 군락을 공격해 시간 차를 두고 인면범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처음은 포이즌 오크 무리가 인면범의 영역에 도달했다.

인면범은 후각이 뛰어난지 바로 침입을 알아냈고 바로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며 오크 떼를 공격했다.

포이즌 오크들은 독을 토해내며 항전했고 두 세력이 싸우는 사이 인형은 나무를 타고 재빠르게 물러났다.

“와오, 인면범 강한데?”

“그러게요.”

나와 길버트는 감탄하며 흥미진진하게 싸움을 바라봤다.

포이즌 오크는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하지만 목을 물어 죽이는 습관 탓인지 오크의 목에 있는 독샘에서 나온 독을 먹고 마흔 마리 정도가 중독되어 보였다.

독에 취해 비틀거리며 둥지로 돌아가려는 그때, 천 마리가 넘는 홉고블린 무리가 들이닥쳤다.

인면범은 노호성을 내지르며 하찮은 홉고블린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독이 없어서인지 죽이는 것과 동시에 포식을 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나는 미친 홉고블린의 행태에 경악했다.

홉고블린들은 강한 인면범이 아니라 땅에 쓰러진 포이즌 오크에 눈이 돌아가 스캐빈저 짓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고블린 떼의 반은 중독되어 죽었고, 반은 인면범에 의해 물려 죽었다. 너무 긴 굶주림 탓이었다.

“정말 인세의 지옥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네요.”

길버트는 혀를 내둘렀고. 나는 실루아가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렸다.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너무 고어했다.

“나도! 나도 보고 싶은데!”

“어허! 못써! 자, 실루아는 내가 만든 퍼즐이나 풀어보자.”

실루아에게 인형 수리하다가 심심할 때 만들어둔 특제 지혜의 고리를 쥐여줬다.

“히잉.”

실루아는 우는 소리를 내다 금세 지혜의 고리에 집중했다.

저 독은 써먹을 수 있어 보이니 나중에 회수해 두자.

나는 이어서 도마뱀과 곰도 인면범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중독된 인면범은 물량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고, 남은 곰과 도마뱀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싸웠다.

그렇게 살아남은 건 십여 마리의 상처 입은 곰뿐이었다.

나는 인형을 움직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몬스터와 군락에 남아 있던 새끼들을 완전히 소탕하고 마석을 회수했다.

“다른 전략도 몇 가지 생각해 뒀었는데, 결과를 보면 이 전술 그대로 사용해도 나쁘지 않겠네.”

50대씩 운용하는 건 전력의 낭비 같았으니 30대로 줄이고, 보다 자세하게 탐색하기 위해 정찰 인형을 늘리기로 했다.

“으음… 보면 역시 가장 나쁜 건 사람이 아닌가 싶네요.”

길버트는 내가 만든 광경을 보고는 당연한 감상을 중얼거리다 아차 싶었는지 당황했다.

“아! 왕자님께서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나는 당황한 그에게 딱밤을 먹였다.

딱!

손가락에 마력을 담아서 그런지 찰진 소리가 울렸다.

“알아. 그리고 도련님이라 부르도록 습관 들이라니까. 당황할 때마다 왕자라 부르지 말라고.”

“쓰읍! 죄송합니다.”

길버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내며 30대 120개조 편대로 인형을 산맥 서쪽으로 산개시켰다.

지금부터 집중의 시간이다.

* * *

붉은 눈은 서쪽으로 달렸다.

산맥 서쪽 전역에서 풍겨오는 진한 피비린내가 붉은 눈의 공복을 자극했다.

벌써 20년도 더 된 부상을 회복하고 깨어난 지 보름이 넘었다.

막 일어났을 때는 극심한 공복에 근처에 잠들어 있는 작은 몬스터를 잡아먹었지만, 활동을 정지한 지 20년이나 지난 소화 기관은 바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기껏 먹었던 것들을 다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붉은 눈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삼켰다.

도저히 삼키지 못할 때는 피만이라도 들이켰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나고 나서야 소화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먹을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붉은 눈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붉은 눈으로 인해 올해 봄 피해는 극단적으로 줄어들 게 분명할 정도로 잡아먹었다.

그렇게 보름이 넘도록 자신의 체중을 한참 넘어서는 몬스터를 잡아먹고 나서야 약간의 허기짐이 가시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잠들기 전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약했다.

“갸르르르!”

붉은 눈은 본능적으로 피 냄새를 따라 움직였고, 그곳에는 상잔한 몬스터의 시체 더미로 가득했다.

체력을 극단적으로 아껴야 하는 붉은 눈에게 있어선 밥상을 잘 차려놓은 것 같은 광경이었다.

으드득! 아드득!

붉은 눈은 허겁지겁 몬스터를 먹기 시작했고 빠르게 소화시켰다.

식사 전보다 덩치를 더 회복한 붉은 눈은 다른 곳에 차려진 밥상으로 향했다.

마치 빵 조각을 따라 움직이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 * *

나는 인형 위에 타서 이동하며 끊임없이 인터페이스를 조작했다.

“바이스 마스터. 544번부터 757번까지, 2325번부터 2413번까지의 평균 마석 잔량이 30퍼센트 미만으로 줄어들었음을 보고드립니다.”

“바이스 마스터. 244번, 246번, 250번의 장갑 파손율이 70퍼센트가 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내 양 옆에서 질리안 5호와 6호가 정보를 보고하면 나는 그 보고에 맞춰 인형들을 움직였다.

혼자 모든 정보를 처리하려 한 내가 바보였다.

이렇게 정보를 읊어주는 오퍼레이터를 두면 나는 인형들의 움직임만 조작하면 되는 것을 말이다.

써먹을 수 있는 조수는 써먹어야지.

“3405번은 마석을 들고 헤에르 산으로, 3406번은 디에르 산으로 보내고. 파손된 인형은 본진으로 불러들이고…. 질리안 7호, 여분의 외골격 장갑은 얼마나 남았지?”

“바이스 마스터의 질문, ‘여분의 외골격 장갑은 얼마나 남았지?’에 대한 정보를 기록실에 검색합니다. 검색 결과 총 137개가 남았습니다.”

“후우, 아직 괜찮지만 실수했군.”

3천 대가 넘는 인형을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조작 미스로 몬스터 군락과 정면으로 돌격시키기도 했다.

내가 한숨을 내쉬자 열심히 내가 조작하는 인터페이스를 보던 실루아는 격려의 말을 해줬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이 정도의 대규모 인형 조작은 최소 100대 단위로 움직이는 거라 하셨어요! 유안오빠는 5대 단위로 나눠 움직이고 계시니까 못하시는 게 아니에요! 솔직히 저도 이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엄살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으면서.”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 굳이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교전하여 적의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마석을 채취하여 보급하니 오랜만에 RTS 게임을 하는 것 같아 나름 재미있었다.

“아니에요!"

“아하하하! 그래, 그래. 그렇겠지.”

정찰 인형을 더 운용해야 지도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인형을 더 투입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범위로는 3천 대 이상 운용하는 건 동선이 겹치는 등의 이유 탓에 효율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보급은 별도다.

“그보다 내 마력으로는 정찰 인형을 더 운용하지 못하니 답답하네. 본진이 계속 이동하는 건 비효율적인데 말이야”

본진인 내가 계속 이동하는 이유도 지도상의 몬스터들을 대부분 처리해서 새로운 군락을 찾기 위해서였다.

역시 정찰 범위가 더 넓어야 해.

“오빠는 괴물이에요!”

실루아는 살짝 질린 얼굴로 날 바라봤다.

“아하하하, 오버하기는.”

이 정도 속도면 해가 지기 전까지 목표량의 70퍼센트 이상 토벌을 완료할 수 있을 듯 했다.

계획된 일정의 15배는 빠르군. 20일간 예정된 작전이 이틀도 안 돼서 끝나겠어.

“자, 그럼 조금 휴식을….”

갸오오오오오-!

기지개를 켜며 휴식을 취하려는데 멀리서 전신이 울리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죽음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이런 울음소리를 내는 괴물이 있다고?

“아차! 피 냄새!”

나비의 힘으로 막아둔 바람 장벽을 거두자 사방에서 진한 피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금세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붉은 눈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