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붉은 눈 토벌전 (5)
나는 강철 거미 인형을 타고 행군에 따랐다.
6천 대의 인형이 모두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인형들은 내 품 안에 안기듯 같이 타고 있는 실루아의 저택에 보관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조종하는 건 내가 타고 있는 것과 프레시아, 길버트가 각각 타고 있는 세 대뿐이다.
“바람이 차군.”
산맥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몬스터들은 이런 기온에 잘도 동면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는구만.
“나비야.”
내 부름에 나비는 내게로 스며드는 바람을 막았다. 차디찬 칼바람이 사라지니 살 것 같다.
“람아.”
람은 달랑타의 마법 주전자에 물을 만들어 채웠다.
나는 인형에 달아놓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달랑타의 마법 주전자로 물을 끓여 홍차를 우렸다.
마음 같아선 독한 술로 병나발 불며 추위를 달래고 싶었지만, 전투하러 가는 중에 대놓고 마실 순 없지 않겠나.
몰래몰래 홍차에 브랜디를 타 마셔야지.
“캬~! 좋다! 실루아도 마실래?”
“좋아요!”
실루아에게는 브랜디 없이 홍차만 따라줬다.
나는 프레시아와 길버트에게 주전자를 들어 보이며 마실 거냐고 제스처로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도련님.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길버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봤다.
술을 마시는 게 괜찮으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아니, 술 마시는 것까지 포함해서 걱정하는 건가? 여하튼.
그동안 수많은 작전 회의를 한 끝에 내가 맡은 일은 마법 인형으로 바스타유 산맥 초입부터 허리까지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번 작전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았다고 봐도 좋았다.
나는 초조해 보이는 길버트를 보며 싱긋 웃었다.
“괜찮아. 무슨 일이 있으면 네가 지켜줄 거잖아?”
내 말에 길버트는 더욱 긴장했다.
프레시아가 내 호위가 아닌 붉은 눈 토벌대로 빠진 만큼 그의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인형 군단과 실루아가 움직이는 네임드 호위 부대를 뚫고 난 다음에야 길버트의 차례가 올 테니 괜한 걱정이 아닌가 싶었지만, 방심이 토끼를 죽이는 법이다.
나는 약하니 주의에 주의를 기해도 부족하다.
“길버트, 주의는 하되 과하게 긴장하지 마. 모든 일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이야. 나만 위험한 것도 아니잖아.”
내가 1차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한다고 하더라도 산맥은 과하게 넓다.
분명 놓치는 몬스터도 있을 테고, 토벌로 일어난 소란으로 전투를 벌이지 않고 도망치는 군락도 있을 거다.
그런 몬스터들은 필연적으로 산 아래로 내려갈 테니, 다섯 기사단이 산 아래 평지에서 그런 몬스터 무리를 요격하기로 했다.
작은 무리는 그대로 토벌하고, 너무 큰 무리는 허리를 잘라 거점에서 수성하기 쉽게 무리를 나누는 게 기사들의 역할이다.
그리고 나머지 13개 천인대는 각각의 방어 거점에서 수성하며 몬스터를 마무리한다.
위험하기는 전장에 서는 모두가 위험했다.
“그래도 역시 도련님께서 가장 위험한 작전을 맡으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길버트의 말에 나는 싱긋 웃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모험을 벌이기도 해야 하는 법이지.”
데미웨이의 신뢰와 마음의 빚을 얻는 것만으로도 값어치 있지만 저들, 기사와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출병했던 군사들이 저마다의 위치로 움직이기 위해 천인대 단위로 갈라져 움직였다.
산이 가까워지니 5백 명의 기사들과 30여 명의 토벌대만 행렬에 남았다.
이윽고 산에 도착하니 내 일행과 토벌대만 행군을 계속했다.
“이제 갈라져야겠군요.”
내 말에 데미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붉은 눈의 위치로 추정되는 것은 북동쪽. 경은 우리가 붉은 눈을 추적하고 토벌할 때 방해가 들어오지 않게 주의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내 시선에 프레시아는 인형에서 내렸다.
토벌대 훈련에 열심히 참가했지만 위험 지대에서 나와 떨어져 작전을 수행하는 게 불안한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산맥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붉은 눈과 마주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 되면….”
“빨리 붉은 눈을 쓰러트리고 오라는 말씀이시죠?”
프레시아는 다 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프레시아를 보며 웃었다.
“잘 아네. 그럼 저희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나는 인형을 조종해 산을 탔다. 역시 등받이가 있으니 편하구만.
* * *
“갸아아아아아아-!”
산 전체에 울리는 포효에 붉은 눈의 흔적을 쫒던 특무대원들은 황급하게 몸을 숨기며 기척을 죽이고 숨을 멈췄다.
멀리서 들었을 때도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가까이 접근하기 전신을 두들겨 맞는 듯한 굉음이었다.
몇몇 특무대원들은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마력파에 고막이 터지고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
그들은 고통과 어지러움에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소리를 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오랜 시간 바스타유 산맥 인근 영지의 전설로 군림해 온 대마수 ‘붉은 눈’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대마수의 감각은 초인의 것과 다를 바 없어서 자칫 실수하면 붉은 눈의 행적을 추적하는 그들이 전멸할 위험이 있었다.
특무대원들을 이끄는 조장은 망원경을 꺼내 우렁차게 울부짖는 대마수를 확인했다.
나무 사이 보이는 새하얀 털로 뒤덮인 거대한 몸과 아름드리나무보다 두꺼운 네 개의 팔, 머리위로 쫑긋 솟은 길쭉한 귀. 그리고 하얀 털 때문에 유독 부각되는 붉은 눈동자.
멀리서 얼핏 보면 토끼 같으면서도 이족보행을 하며 네 개의 팔을 휘두르는 괴물이 세상에 둘이나 있지는 않을 테니 대마수 ‘붉은 눈’이 분명했다.
“퉷!”
붉은 눈은 오물거리던 입에서 큼지막한 뼛조각을 뱉어냈다.
바닥에는 깊은 웅덩이가 될 정도로 고인 몬스터의 피와 그 몬스터의 뼈 무더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특무대장은 그 광경에 마른침을 삼켰다.
붉은 눈이 자연스럽게 내뿜는 지독한 살기도 살기지만 방금 전까지 3천에 달하는 몬스터가 순식간에 붉은 눈의 뱃속에 들어갔다는 게 소름끼쳤다.
명백히 붉은 눈의 몸집보다도 많은 양의 몬스터를 짧은 시간 동안 포식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가 관찰하기로는 붉은 눈이 ‘식사’를 한 시간은 불과 10분이 넘지 않았다.
“몸집이 커졌어…?”
특무대원들을 이끄는 조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저 배가 부른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몸이 두꺼워지고, 덩치가 커졌고 털도 보다 윤기가 흘렀다.
마치 기아 상태에 벗어난 것처럼, 제 몸집을 찾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식사 전후로 풍기는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조장님!”
특무대원의 외침에 조장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틀었다.
“으윽!”
무언가가 날아와 조장의 귀를 날려버렸다.
피범벅이 된 귀를 부여잡은 그는 날아와 바위에 박힌 것을 확인했다.
“뼛조각?”
“갸아아아아아아-!”
붉은 눈이 포효했다.
“들켰다! 전원 산개하여 각자도생하라!”
조장은 하늘 위로 신호탄을 발사하고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이상 가장 먼저 노려질 것은 자명했지만 그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가 동료들과 멀리 떨어질수록 동료들이 살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사력을 다했다.
몇이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었지만 가능한 많이 살아남았으면 했다.
열심히 달리던 그때, 무언가가 자신을 포박했다.
“으아아악!”
전신이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아래로 내려 보니 붉은 눈의 손이었다.
“미안하다, 아들아. 못 돌아갈….”
콰직!
형벌 부대에서 차출되었던 그의 형기 만료를 반년 앞둔, 어느 피비린내 나는 봄날이었다.
* * *
데미웨이가 이끄는 토벌대가 산맥 곳곳에 설치해 둔 레인저 부대 전초기지 중 하나에 도달했다.
가장 최근 보고된 붉은 눈의 움직임과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전초기지 곳곳에는 남하하는 몬스터를 죽일 마법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고, 보잘것없지만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한 철책 또한 존재했다.
모두 근본적인 대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이상의 것을 하기에는 바스타유 산맥은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충성!”
전초기지장이자 레인저 부대 조장은 데미웨이를 보자 바짝 긴장하며 경례를 했다.
데미웨이는 그런 그의 경례를 받아주며 물었다.
“정보 갱신은 있었나?”
데미웨이의 물음에 전초기지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장 최근 갱신된 정보에 따르면 몇 시간 전, 북동부에서 서서히 남하하는 붉은 눈을 감시하는 임무 중이던 특무대조장과 휘하 특무대원들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전멸?”
“예, 붉은 눈에 발각되었다는 신호탄이 발사되었고, 지금까지 귀환자가 없다고 합니다."
특무대는 대부분 산맥을 타는 형벌 부대 레인저 중에서도 오래 살아남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그런 그들이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귀환하지 않았다면 이미 모두 죽었다고 봐야 했다.
“신호를 확인한 것은?”
특무대장의 물음에 전초기지장은 바로 대답했다.
“레인저 제 37 정기 순찰조가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해당 신호를 본 이들은 곧바로 퇴각하여 보고하였습니다.”
신호를 보고도 구원에 나서지 않았다는 말에도 아무도 타박하거나 하지 않았다.
바스타유 산맥에서의 긴급 신호는 구원 요청이 아닌 바로 도망치라는 의미였다.
데미웨이는 전초기지 벽에 걸려 있는 지도로 정기 순찰 루트를 확인하며 말했다.
“유가족들에게는 유품과 함께 보석금을 제외한 남은 퇴직금을 지급하라.”
“예, 성으로 돌아가는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유능한 특무대원들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사형 대신 복무를 선택한 죄수들었다.
굳이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산 아래도 아니고 산을 타는 죽음과 가까운 전선에 투입되는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자원한 이들이었다.
위험을 자처한 이들은 정규군보다 더 큰 수당을 받았고, 퇴역 및 전사할 경우 복무한 기간에 비례하여 막대한 퇴직금이 지급되었다.
“전사한 조장은 형기가 끝나면 정식 특무대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는데 아쉽군요.”
형벌 부대에서 형기가 끝나 사면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범죄자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봤자 백안시당하거나 새로운 범죄에 손을 대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유능한 이는 영지군에 받아들이고 가족들의 정착도 도왔다.
“애도는 모든 작전이 끝나고서다. 우리는 붉은 눈 토벌만 생각한다.”
데미웨이의 말에 토벌대원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그때 전초기지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 장님…! 쿨럭!”
병사의 몸에는 커다란 뼛조각이 박혀 있었다.
특무대장은 병사를 알아보고 몸을 부축했다.
“아루타! 무슨 일이 있던 거냐! 감시조에서 너만 살아남은 거냐?!”
부상을 입은 병사는 붉은 눈을 감시하던 특무대원이었다.
“커흑! 조, 조장이 미끼가 되었지만 그 괴물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특무대원은 어지러운지 머리를 짚으며 축 늘어졌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붉은 눈은… 먹을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서쪽으로 이동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특무대원은 의식을 잃었다.
특무대원의 말을 들은 프레시아는 사색이 되었다.
“안 돼! 도련님!”
그녀의 주군인 유안은 남서쪽에서 시작하여 몬스터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