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62화 (62/214)

제62화. 붉은 눈 토벌전 (4)

나는 1번과 2번을 움직여 데미웨이의 좌우에서 공격했다. 동시에 17, 18, 19번을 내 뒤로 배치했다.

데미웨이는 가볍게 인형이 내지르는 날카로운 다리를 검으로 쳐내고 달렸다.

손상 정도는… 없군.

다행히 날 살벌하게 노려보는 것에 비해 테스트라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는 듯했다.

역시 목표는 나인가.

몬스터의 행동 패턴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내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야 더 편하지.”

나는 데미웨이의 검에 밀려난 1, 2번으로 데미웨이의 뒤를 쫓아 압박하며 3, 4, 5번으로 정면을 막았다.

동시에 조금 더 뒤로 6, 7번을 배치했다.

데미웨이는 정면의 3, 4, 5번이 아니라 6, 7번을 확인하고는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빈 곳으로 몸을 날렸다.

나는 그에 맞춰 5번의 다리를 휘둘렀다.

“음, 조금 더 빨라야 했나.”

5번 다리에 데미웨이의 옷자락이 살짝 걸려 찢어졌다.

일부러 움직임을 유도해서 미리 공격 신호를 보내놨는데, 5번이 신호대로 행동하는 것보다 데미웨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래도 계산 범위 내다.

데미웨이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의외라며 놀라는 틈을 노리고 6, 7번이 데미웨이에게 마탄을 난사했다.

피하려는 데미웨이에게 3, 4, 5번이 엉덩이에서 거미줄을 발사했다.

거미줄이든, 마탄이든 데미웨이를 맞히는 건 불가능했지만 움직임을 방해하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어림도 없다!”

데미웨이는 검으로 마탄을 베어내며 뛰어올랐다.

당연히 착지 지점은 끈적이는 거미줄이 없는 위치. 내가 유도한 곳이다.

나는 9, 10, 11, 12, 13번으로 포위하듯 포진해 킬존(Kill Zone:살상 지대)을 만들었다.

9번이 거미줄을 뿜는 사이 10, 11, 12, 13번은 사정없이 마탄을 난사했다.

“오호!”

데미웨이도 이렇게까지 전술적으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이번 일격으로 끝이다. 하지만 데미웨이는 어지간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데미웨이는 허공에 체류 중 검을 휘둘러 검풍으로 마탄의 궤도를 휘어버렸다.

그리고는 땅에 검기를 날려 흙바닥을 갈아엎어 바닥에 깔린 거미줄의 접착성을 죽였다.

“음, 나중에 청소로 고생하겠군.”

데미웨이는 짧게 감평하며 마력을 담은 검을 땅에 꽂았다.

검에 실린 마력은 땅을 통해 사방으로 뻗어 나가더니 9번부터 13번 인형 아래에서 폭발했다.

그 여파로 인형들은 지면에서 튕기듯 솟아오르며 뒤집어졌다.

데미웨이는 뒤집힌 인형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와 다시 나를 노리고 달렸다.

“정말 괴물이구만.”

나는 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기마 연습장 끝에서 내가 있는 다른 끝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25초 남짓.

인형들의 공격을 뚫고 약 2천 미터를 주파한 시간이다.

그마저도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참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나는 뒤집힌 인형을 바로 세우며 14, 15번으로 바로 코앞까지 도달한 데미웨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나는 즉시 내가 타고 있는 20번을 높이 뛰어오르게 시켰고 14, 15번을 제친 데미웨이는 나와 함께 20번 인형을 베어내려 했다.

아슬아슬하게 뛰어오른 20번은 데미웨이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서 아래 장갑에 큰 흠집이 났다.

좋아, 비용 청구해야지.

“오호, 이렇게 높이 뛰는 건 처음 보는데 새로 추가한 기능인가?”

“아니요. 원래 있던 기능인데 자동 전투에 써먹긴 애매한 기능이라 처음 보시는 걸 겁니다.”

데미웨이는 바로 나를 따라 수십 미터를 뛰어올랐다.

“이거 참, 집요하시네.”

내가 속을 긁은 것 때문인가?

덕분에 행동을 읽기 쉬워서 좋지만.

내 뒤에 포진시켰던 17, 18, 19번이 데미웨이를 노리고 마력포를 발사했다.

콰아아아아-!

“어엇!?”

주입한 마석의 절반가량을 소비한 공격에 데미웨이도 살짝 위협을 느꼈는지 대응하려 했다.

“인형 부수면 수리비 청구할 겁니다!”

내 마법의 외침에 데미웨이는 순간 움찔했고 마력포에 대응하는 것이 늦어졌다.

강기를 두른 검으로 세 줄기의 마력포 중 두 줄기는 베어 소멸시켰지만, 등 뒤에서 날아오는 마력포는 미처 베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초인은 초인인지 직격당하지 않고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피했다.

하지만 지지대도 없는 허공이라 완전히 피하지 못한 데이웨이는 그 여파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록 온! 발사!”

지상에 산개한 모든 인형들이 데미웨이를 노리고 일제히 마력포를 발사했다.

인터페이스에 떠오른 마석 충전량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사령관님!”

구경하던 기사들은 자신들의 사령관이 살벌하게 공격당하자 놀라며 외쳤다.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저 괴물이 누구인데 걱정을 하는 거야?

오히려 인형에 고정되지 않은 상태라 홀로 추락하는 날 걱정해 줘야지.

“나비야.”

-야옹!

내 몸에 바람이 휘감아지며 중력을 거스르고 천천히 낙하했다.

마력포가 일제히 직격한 곳에서 무수한 강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모든 마력포 줄기를 소멸시킨 데미웨이가 가뿐하게 착지했다.

“아, 거미줄.”

데미웨이는 내가 미리 뿌려둔 거미줄 위에 안착했고 순간적으로 발이 묶였다.

“2차 발사!”

마석 잔량에 여유가 있는 인형은 마력포를 발사했고, 부족한 인형은 마탄을 난사했다.

데미웨이의 검과 마력포가 맞부딪치며 그의 주변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인형들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기 직전, 인형들은 공격을 멈췄다.

데미웨이가 검풍을 만들어 흙먼지를 날려 보내며 자세를 취하자 나는 당당하게 외쳤다.

“항복!”

이미 인형은 전투 속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력이 고갈되었다.

내 외침을 들은 데미웨이는 날 쥐어박지 못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는 5번에 의해 옷자락이 조금 찢어진 것과 17번의 마력포에 당한 미약한 찰과상이 전부일 뿐 멀쩡했다.

“총 전투시간은 38초. 어떻습니까? 인형 성능 테스트는 만족하셨습니까?”

그가 전력으로 움직였으면 전투가 시작하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산개한 모든 인형을 반토막 내고 내 목을 딴 다음 여유롭게 검 손질을 하고 있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능 테스트.

테스트치고 너무한 움직임이 많았지만. 데미웨이는 나름대로 봐준 걸 테지.

내 물음에 데미웨이는 흥미롭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일단 테스트는 합격이다. 그런데 그 마력포는 뭐였지? 처음 보는데.”

“그야 자동 전투에서 사용할 기술은 아니죠. 단숨에 마석이 소모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데다 아군이 휘말리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자동 전투 시스템상으로는 아군 피격을 우려하여 마탄도 잘 사용하지 않는데 마력포를 사용할 리 없었다.

“그 외에도 위험한 기술이나 장비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성내에서 사용할 만한 게 아니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기술이나 장비라면?”

“독 연막이나 독침 같은 겁니다.”

내 대답에 데미웨이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꾼이 없었어도 사용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으니 사용하지 않았다고 타박하거나 하진 않았다.

데미웨이는 내 인형술이 예상 이상이었는지 흡족해 보였다.

“테스트에 합격했으니 실버블룸은 붉은 눈 토벌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로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영약 값 핑계는 댈 수 없다.

인형 정비 청구서에서 한 푼도 깎아주지 않을 거다.

내 말에 기분이 좋아 보였던 데미웨이는 인상을 구겼다.

“크흠! 그건 몬스터 토벌 테스트를 보고 정하겠다.”

그의 말에 나는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뭐, 그러시든지요.”

나 같았으면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하기 전에 바로 협상을 시도했을 텐데.

미련하다. 아마 자존심 때문이겠지.

그때 데미웨이는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그런데 깎아줄 생각은 없나? 솔직히 너무 비싸다.”

그 물음에 나는 낄낄 웃었다.

“하시는 거 봐서요.”

* * *

데미웨이가 업무를 보러 떠나자 특무대장을 비롯한 기사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몰려왔다.

“대단했소, 유안 경! 아무리 게오르 님의 인형이라지만 사령관님께 생채기를 내다니!”

“인형 다루는 솜씨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몇 수를 앞선 전술은 사령관님이 아니었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무리 사령관님께서 느긋하게 움직이셨다지만 근 10년 사이 사령관님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한 사람은 경뿐입니다!”

날 지나가는 개 보듯 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드니 부담스러웠다.

“아닙니다. 그냥 20년 된 인형 좀 다룬 것뿐인데요.”

설계는 30년도 더 된 인형이었다. 물론 현자가 만든 인형이니 앞으로 정비만 잘한다면 서너 세대는 현역으로 써먹을 수 있을 거다.

내가 별것 아니라며 빠져나가려 하는데, 특무대장이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지금껏 그 인형 좀 다루는 걸 제대로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안 경! 부디 블란츠바그에 남아주세요!”

“예? 아, 아니…!”

이 사람은 왜 프레시아에게도 하지 않던 말을 내게 하는 건데?!

재능이나 실력으로 치면 프레시아에게 먼저 권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경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닐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경의 신체 능력은 병사로도 못 써먹습니다.”

그건 그렇지.

“수도로 돌아가 봤자 기사로서의 성장은 물론, 출세도 제한이 있겠죠. 하지만 여기선 아닙니다! 사령관님께선 합리적인 분이십니다! 말로는 툴툴거리시지만 분명 유안 경을 중히 대우할 겁니다!”

아니, 그건 못 믿겠는데.

“사실 인형을 정비해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유안 경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제대로 된 활용을 할 수 있으시다면 단순히 가치가 있다는 말로 끝낼 수 없습니다!”

확실히 인형을 제대로 다루면 인형의 손상을 최소화한 채로 병사들의 생존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특무대장의 실력으로는 프레시아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진 못했을 테니 내게 매달리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나였어도 어떻게든 날 포섭하려 들었을 거다.

“그러니 부디!”

우락부락한 특무대장이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프레시아! 나 좀 살려줘!

내 구조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프레시아가 기사들 사이를 비집고 특무대장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십시오. 아파하시지 않습니까.”

살기 어린 프레시아의 말에 특무대장은 깜짝 놀라서 내 손을 놨다.

“아!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힘을 준 모양이군요.”

사실 조금 저리긴 했지만 아프진 않았다.

프레시아는 날 호위하듯 감싸 안으며 기세를 올려 기사들을 물렸다.

“에고고, 고마워.”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했을 일입니다.”

내가 기사들 사이를 빠져나오자 인파 뒤에서 길버트가 억울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도련님! 너무하십니다! 인형 보관소에 계시겠다면서요! 어딜 가시면 쪽지라도 남겨 주셨어야죠! 걱정했잖습니까!”

뒤늦게 샤워를 하고 피 냄새를 빼낸 길버트는 날 찾아 오래도록 헤맸는지 울상을 지었다.

“아하하, 미안. 깜박했다.”

“도련님!”

나는 길버트의 등짝을 때리듯 다독이며 말했다.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그만해. 자자, 고기 먹으러 가자!”

이제 며칠 뒤면 격전을 치러야 할 테니 든든히 먹여둬야지.

* * *

사방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군~! 차렷!”

블란츠바그 사령관의 부장을 겸하고 있는 특무대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사령관님께! 경례!”

“충성!”

경례 구호에 13개 천인대와 3개 마도병대, 그리고 5개 기사단의 장병들이 우렁차게 경례를 했다.

나도 6천 대의 마법 인형을 도열시키고 연무장 한 켠에 서서 경례를 했다.

사령관 데미웨이가 단상 위에서 경례로 받자 특무대장은 뒤돌아 외쳤다.

“바로~! 열중쉬어!”

군기가 바짝 든 군단 앞에 선 데미웨이는 말했다.

“긴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지금부터 붉은 눈의 전설을 끝내러 간다! 출병이다!”

“와아아아-!!”

그의 말에 병사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한 잡다한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사령관은 이미 승리의 상징이자 믿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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