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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61화 (61/214)

제61화. 붉은 눈 토벌전 (3)

군의관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루아가 숙소로 돌아왔다.

“유안 오빠!”

내가 깨어난 걸 본 실루아는 내게 달려오려다 멈칫하더니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봤다.

“…몸은 괜찮으세요?”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오라고 손짓했다.

“괜찮아, 내가 기절했던 것 때문이라면 눈치 볼 거 없어. 네 잘못도 아니고.”

잘못이 있다면 아플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한 줄 적지 않은 썩을 스승에게 있겠지.

“그치만….”

“뭐, 효과가 없었다면 당장 묘소로 가서 욕이라도 해줄 생각이었는데, 역시 현자는 현자인지 효과는 예상 이상으로 좋더라고.”

사실 아팠던 것도 내 마력 밀도 때문이지, 평범한 밀도였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거다.

“역시 그렇죠! 아버지는 대단하세요!”

힘차게 외친 실루아는 아차 하며 다시 내 눈치를 봤다.

“아니, 아버지 때문에 죄송해요….”

“아하하하! 됐다니까.”

내가 신경 쓰지 말고 오라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도련님! 깨어나셨군요! 걱정했습니다!”

길버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게 달려들어 안으려 했다.

“꾸엑!”

하지만 나비가 바람으로 투명한 벽을 만들었고, 달려오던 길버트는 벽에 강하게 부딪혀 쓰러졌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막 전투를 하고 온 탓인지 순간적으로 길버트의 기세가 위협적으로 느껴져서 그만 막아버렸다.

물론 그의 전신이 몬스터의 피로 샤워를 한 것처럼 피투성이라 안기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길버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누니가 날아올라 내 머리 위에 앉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기지개를 켰다.

“읏차차! 아이고, 오랫동안 안 움직였더니 온몸이 뻐근하네. 길버트는 고생했으니 씻고 쉬어.”

“아닙니다! 호위하겠습니다!”

길버트는 방금 싸우고도 힘이 남아도는지 의욕이 넘쳐 보였다.

처음 싸우고 난 다음에는 꽤나 기진맥진해 보였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듯했다.

보면 볼수록 역시 시조의 유산은 길버트가 가지는 게 나았다.

망할 몸뚱이.

“그래도 피 냄새 나니까 씻어. 완전히 피 냄새 빼고 인형 보관소로 와.”

내 지적에 길버트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그러네요. 알겠습니다.”

나는 이어서 프레시아에게 물었다.

“프레시아, 오늘 연계 훈련은 있어?”

“있긴 하지만 실시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내가 일어났고 데미웨이가 직접 확인한다고 했으니, 오늘은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래? 그럼 일단 훈련하러 가보고, 사령관에게 난 인형을 확인한 뒤에 가겠다고 전해줘.”

내 지시에 프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실루아는 나랑 함께 가자.”

“네! 유안 오빠!”

* * *

인형 보관소 안으로 들어온 나는 정렬된 거미형 전투 마법 인형의 모습에 감탄했다.

“오오, 완전 SF!”

망가져서 보관만 되던 때도 나름의 멋이 있었지만, 다 고쳐진 매끈한 강철 거미의 모습은 그야말로 디스토피아 배경의 전쟁 병기같이 생겼다.

게오르가 남자의 로망을 아는구만.

“실루아, 실전 테스트도 끝났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했어?”

내 물음에 실루아는 가볍게 손을 들어 인형을 가동시켰다.

“저희가 이곳을 떠났을 때를 고려해서 자동 전투 상태로 실시했어요. 사령관 아저씨는 망가지기 전 성능 그대로라고 만족해했어요.”

“그 아저씨 마음에 들었으면 된 거지. 실제 조종은 해봤어?”

“해봤어요. 제가 조종했을 때는 큰 문제 없었어요.”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형태의 마법 지팡이 ‘아퀼라의 마도서’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인형에 마력 신호를 보냈다.

게오르가 설정한 마력 신호를 알지 못하면 이 인형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내 마력 신호에 반응한 6천 대의 인형들은 눈에서 빛을 내며 일제히 일어났다.

인형의 동력원은 마석이었기에 내 마력이 소모되는 건 인형에 명령할 때와 정보를 수신할 때 정도뿐이었다.

물론 6천 개나 되는 인형이라 그것도 만만치 않은 마력이 들었다.

아퀼라의 마도서의 보조가 없었으면 지금의 마력량으로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다.

이래서 마법사들이 좋은 마법 지팡이에 환장하는 거겠지.

“와오, 인터페이스가 너무 난잡하네.”

인형과 내 마력이 연결되며 눈앞에 떠오른 인형들의 정보는 너무 과하게 자세했다.

인형 하나하나를 조종할 때는 문제없겠지만 대량의 인형을 조종할 때는 눈앞에 떠오른 6천 개의 인터페이스 때문에 앞이 안 보였다.

“실루아, 네 아버지는 이 정보들을 어떻게 관리하셨어?”

내 물음에 실루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아버지는 인형들을 많이 움직일 때 정말 필요한 정보가 아니면 굳이 보지 않으셨어요.”

“그럼?”

“대부분 감각과 암산으로 처리하셨어요.”

감각과 암산이라.

확실히 인형들과 연결된 상태인 만큼 기본적인 인형의 정보는 바로 머릿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때라면 모를까, 전투를 시킬 때는 굉장히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올 텐데, 그걸 그냥 보지 않고 처리했다고?

현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괴물인 거지?

“너도… 아니, 괜한 물음이겠네.”

실루아의 머릿속에는 기록실이 있으니 게오르보다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다.

“이거 안 되겠군.”

나는 머리로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고 양팔을 벌려 마법 술식을 자아냈다.

허공에 각종 마법 술식과 마법진이 떠오르며 공간을 가득 메웠다.

나는 마법들을 훑으며 즉석에서 게오르의 마법 술식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과밀한 정보를 통합하고 간소화시켰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마법을 정리하는 중에 밖에서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마력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라 인지 감각도 확장된 느낌이었다.

“왕실 기사 유안! 은인의 인형을 망가트리기 싫으니 어서 나와라!”

데미웨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허공에 띄운 마법을 알아볼 수 없도록 빠르게 암호화하며 말했다.

“거참, 성질도 급하기는. 질리안 13호, 문 열어줘.”

문이 열리자 데미웨이는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개조를 계속했다.

데미웨이는 허공에 날아다니는 마법진을 보더니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크흠! 바빠 보이는데 실례했군. 중요한 작업 중이면 양해를 구하지 그랬나?”

뻔뻔한 말에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럼 인형을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지 마셨어야죠.”

“…그거 미안하게 됐구나.”

데미웨이의 사과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령관님의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니 이해합니다.”

그가 조급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의 아버지는 붉은 눈에 의해서 이른 은퇴를 해야 했고, 붉은 눈은 잠들기 전까지 오랫동안 영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왔다.

잠에서 깨어난 붉은 눈이 배를 채우고 언제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할지 모르는 지금, 하루라도 빨리 선수를 치지 않으면 피해가 커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전 보조의 핵심이 될 수도 있는 내가 일주일이나 기절해 있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지금 마무리 중이니 조금만 기다리시죠.”

허공의 수많은 마법 술식이 내 손끝으로 모이며 하나의 작은 인터페이스로 축약되었다.

그 많던 정보덩어리들이 압축되며 인형들의 번호 숫자에 마석 잔량과 파손 여부만 보이도록 만들었다.

번호를 누르면 그 인형의 정보만 상세하게 뜨도록 만드니 20인치 정도의 작은 크기로 정리가 되었다.

내가 정리한 것을 본 실루아는 놀라며 감탄했다.

“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간소화됐네요! 이렇게 하는 건가요?”

실루아는 내가 재구성한 마법 술식을 금방 따라 했다.

근본은 게오르의 마법이라 그리 어렵진 않았겠지만 역시 게오르의 딸이다 싶었다.

“이걸로 1차 조정은 끝났고, 이제 2차 조정을 해야 하는데….”

아직 내가 편하게 인형을 다루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내가 데미웨이를 슬쩍 보자 데미웨이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 조정인가 뭔가는 꼭 필요한 건가?”

“아무래도 제가 스승님처럼 현자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보니까 비슷하게나마 다루려면 제게 맞게 조정을 해야죠.”

“으음….”

“그래도 당장 출정할 게 아니라면 지금 할 필요는 없습니다.”

2차 조정을 미뤄도 된다는 말에 데미웨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자네가 제대로 내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하지.”

“생각하신 방법이 있습니까?”

내 물음에 데미웨이는 잠시 고민했다.

직접 테스트를 해본다고 했으니 아마 내가 조종하는 인형 군단과 싸워보는 방향일 거다.

“내가 직접 자네가 조종하는 인형과 싸워볼 생각이다. 다만 6천 대 전부와 싸우느냐, 일부와 싸우느냐 고민이 되는군.”

두 가지 다 장단점이 확실하다.

6천 대 전부와 싸울 경우, 내가 조종하는 것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테스트를 할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 마석이 낭비된다는 점, 실수한다면 인형을 대량으로 파손시킬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다.

반대로 일부와 싸운다면 앞선 단점은 없지만, 내가 6천 대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자네는 어떤 방식이 낫다고 생각하나?”

데미웨이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후자가 좋지 않겠습니까? 전자는 몬스터 토벌로 테스트하죠. 그러면 공간의 제약도 없고, 마석 수급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간적, 물적 낭비가 아니지 않습니까.”

낭비라는 말에 데미웨이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당장 테스트는 인형 20대면 충분하겠지.”

“뭐, 그 정도면 되겠죠.”

내 손짓에 20대의 인형이 움직여 중앙 길목에 정렬했다.

나는 가장 앞의 인형 다리를 밟고 인형 위에 올라탔다.

음, 나중에 이 녀석한테는 등받이라도 달아 놔야겠다.

“실루아, 가자.”

“네! 유안 오빠!”

실루아는 마법으로 가볍게 날아 내 앞에 앉았다.

데미웨이는 앞장서서 영주성 서쪽에 위치한 기마 연습장으로 향했다.

기마 연습장에는 프레시아와 특무대장을 비롯해 약 30명의 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연계 연습을 하고 있었다.

대충 보아하니 프레시아는 블란츠바그의 기사들과 합을 맞춘다기보다는 그들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조하며 자율 행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내 시선이 프레시아에게로 향한 걸 알았는지 데미웨이는 말했다.

“자네와 달리 재능 있는 기사다. 이번 일이 끝나면 왕실 기사에서 이곳으로 이적을 권하고 싶을 정도야.”

“권해도 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 누가 왕실 기사라는 편하고 안전하면서 노후가 보장된 명예로운 직위를 위험천만하고 외지인에게 텃세도 심한 블란츠바그령의 기사직과 바꾸겠습니까.”

데미웨이의 눈썹이 움찔했다.

“상당히 자신만만하군. 내가 제자로 들인다고 해도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럴 겁니다.”

당연하다는 대답에 데미웨이는 심기가 불편한 듯 나를 노려봤다.

“나라면 저 아이를 차기 천하십검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그 말에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그렇게 권해 보시든가요.”

그때 실루아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차차! 데미웨이의 속을 긁지 않겠다고 프레시아와 약속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또 프레시아에게 혼나겠네. 그래도 감히 내 것을 넘보는데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모두 비켜라!”

데미웨이의 외침에 토벌대는 연습을 멈추고 좌우로 흩어졌다.

데미웨이는 그대로 그들 사이로 지나 기마 연습장 끝에서 나와 마주 보고 섰다.

기마 연습장이라 그런지 굉장히 넓어서 인형들을 움직이기 편해 보였다.

“어디 인형술도 네 녀석의 주둥이처럼 실력이 좋은지 확인해 주겠다.”

데미웨이의 전신에서 살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흉흉한 투기가 피어올랐다.

“실루아, 프레시아에게 가 있어.”

내 말에 실루아는 인형에서 내려와 프레시아 곁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인형 위에 앉아 마력을 끌어 올렸다.

내 마력에 반응한 인형들이 빠르게 포진했다.

“사령관님, 이건 어디까지나 성능 테스트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숨에 인형들을 박살내 봤자 사령관님의 명성은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고, 고치는 데 시간과 비용만 드니까요. 비용은 당연히 사령관님께 청구할 겁니다.”

내 말에 데미웨이의 투기가 주춤하더니 줄어들었다.

귀여운 구석도 있구만.

“시작하지!”

데미웨이가 먼저 나를 향해 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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