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붉은 눈 토벌전 (2)
실패, 아프다, 인가? 아프다. 분명, 아프다, 통각 차단, 아프다, 마법이, 아프다, 발동 중, 아프다, 일 텐데.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어째서, 아프다, 아프다, 아픈 거지?
통증 때문에 생각이 잘되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철망을 벗어나려 했지만 철망에 새겨진 구속 마법이 날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았다.
아하, 구속 마법이 왜 들어가나 했더니 이건 계산된 거구나.
“씨바알!!! 게오르!! 안 아플 거라며! 으아아아아!”
내 가슴에서 시작하는 마력회로는 내가 그려놓은 온몸의 마법 술식을 따라 사지로 뻗어가며 뿌리를 내렸다.
내 의지라고는 전혀 담기지 않은 마력의 움직임이었다.
내 의지였으면 회로가 개발되지 않은 곳으로 고밀도의 마력을 이렇게 신속하고 과감하게 움직이지 못했을 거다.
왜냐, 미친 듯이 아팠으니까!
마치 혈관이 꿈틀거리듯 마력이 움직이며 전신에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철망의 각종 치료 마법과 회복 마법이, 내가 삼킨 실버블룸이 실시간으로 내 몸을 회복시켰다.
전신이 알록달록해졌다가 다시 원래의 창백한 피부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통증으로 정신없는 사이 철망 밖에서 프레시아가 검을 뽑아 들고 철망을 베어 버리려는 걸 실루아가 위험하다고 말리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 베서 나 좀 구해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실루아의 말대로 구동 중인 마법진을 함부로 부쉈다가는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다.
폭발의 위력은 마석에 담긴 마력의 양으로 정해지겠지.
얼마나 넣었더라? 영주성이 반파될 정도로는 넣었던가?
“지, 진정해. 으득! 프레시아. 이깟 통증 따위. 씨바알! 존나 아프네!”
이겨낼 수 있다. 아프다. 아프다. 아니, 이겨낼 수 있다. 아프다. 이겨낼 수 있다.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 칼 집어넣어!”
내 명령에 프레시아는 머뭇거리면서 검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맨 처음 아퀼라의 마력회로가 새겨질 때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아프지도 않다.
움직이는 마력의 양을 생각하면 그때 이상의 통증이어도 이상하지 않았음에도 제정신으로 버티고 있다.
미친 듯이 아팠지만 조금씩 통증에 익숙해졌다.
아니, 이건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통증을 못 느끼게 되는 건가?
믿기 힘들지만, 아니 믿고 싶지 않지만, 아드레날린이 제대로 효과를 보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통각 차단이 발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신을 달군 쇠꼬챙이로 쑤시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시간? 두 시간? 모르겠지만 철망에 새겨진 마법진이 점점 빛을 잃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사라지고 빠르게 내 몸을 회복시켰다.
“아….”
끝났다.
모든 빛이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왕자님!”
“왕자님!”
“유안 오빠!”
다들, 어디에 귀가 있을지 모르니 도련님이라고 부….
* * *
…르라고 했잖아!
“어? 여긴….”
눈을 뜨고 나니 나는 숙소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내가 의식을 잃었던 건가?
아주 잠깐 정신을 놓았던 것 같은데, 인형 보관소가 아니라 숙소에서 눈을 뜬 걸 보면 잠깐 의식을 잃었던 건 아닌 것 같다.
기절하기 전에 마법을 위해 옷을 벗었는데, 잠옷이 입혀져 있는 걸 보니 몇 시간은 기절했던 모양이다.
무슨 순간이동이라도 한 느낌이구만.
내가 눈을 뜨자 나비와 누니, 람이가 내 얼굴에 뺨을 문댔다.
매일 내 몸에 있는 듯 없는 듯 달라붙어 있으면서 왜 갑자기 이렇게 문대는 거야?
일단 걱정했다는 정령의 감정이 느껴지긴 했는데 고작 이 정도 일로 과하다.
내가 세 정령을 얼굴에서 떼어내며 몸을 일으키자 내 기척을 느낀 프레시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도련님! 일어나셨군요!”
프레시아는 내가 일어나자 걱정하는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얼, 크흡…!”
얼마나 잠들어 있었냐고 물으려는데 목이 말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비명을 질러댔으니 목이 멀쩡한 게 더 이상한가.
프레시아는 눈치 좋게 물을 컵에 따라줬다.
“천천히 마시세요.”
나는 물로 목을 축이고는 물었다.
“고마워. 그런데 내가 몇 시간이나 기절했었지?”
물을 마시니 목 아픈 게 가셨다.
원래 그 정도로 악을 썼으면 이틀은 목이 아파야 정상인데 이상하네.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입니다.”
“…뭐?”
내가 벙 찐 얼굴로 묻자 프레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께선 일주일 만에 일어나셨습니다.”
“일주일? 어쩐지 목이 멀쩡하더라.”
일주일 정도 말 한마디 안 했으니 목이 멀쩡할 만도 했다.
“잠깐!?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인형 조립 상황은 어떻게 됐지? 군사 회의 중에 변경 사항도 확인해야 하는데!”
내가 침대에서 벗어나려 하자 프레시아는 억지로 날 눕혔다.
“곧 의원의 정기 검진을 하러 올 겁니다. 의원에게서 안정이 되었다는 판정을 듣기 전까지는 쉬어주세요.”
기백이 느껴지는 단호한 말에 나는 주춤하며 일단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알았어. …그런데 인형 조립은 어떻게 됐어? 상황은 알아둬야 일정 계산을 하지.”
내 물음에 프레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인형 조립은 실루아의 주도로 실전 테스트까지 끝났습니다. 실루아가 완벽하게 고쳐졌다고 확언했고, 블란츠바그 사령관도 흡족해했습니다.”
그럼 문제없겠군.
“토벌대는? 참가하기로 했어?”
“예. 제 전공을 확인한 사령관이 승낙했고, 연계 훈련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반색했다.
“잘했어. 훈련에 참석하고 있다는 건 저번처럼 미련하게 내 옆을 지키지 않았다는 거잖아.”
프레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그, 그때는 와, 아니 도련님께서 저보고 지키라 하셨잖아요!”
“아하하하! 그래, 잘했어. 미련하게 잠도 안 자고 내 곁을 지켰으면 화냈을 거야.”
내 말에 프레시아는 움찔했다.
“설마 그러려 한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잠은 자려 했습니다!”
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프레시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 시선을 피했다.
“뭐, 이번에는 잠도 자고 휴식도 취한 것 같으니 칭찬해 줄게. 잘했어.”
프레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프레시아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부끄러우면 피하면 될 것을, 기사라고 치하의 손길을 피하지 않는 게 그녀다웠다.
“실루아랑 길버트는?”
“실루아는 곧 저와 교대하러 올 거고, 길버트는 몇 분 전에 적습 경보를 듣고 달려갔으니 지금쯤 싸우고 있을 겁니다.”
실루아가 교대하러 온다는 건, 지금 인형 보관소에 있나?
게오르의 인형들로 가득하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아놓은 공간이라 인형 설계 장소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프레시아가 여기 있으니 길버트가 고생이겠군.
“누니, 길버트에게 가서 실수하면 도와줘.”
-뾰로롱~!
내 말에 누니는 앙증맞은 날개로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길버트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제 버릇을 어느 정도 고쳐서 낭비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 둘 다 고생했네.”
습관을 고친 길버트도 노력했겠지만, 그 습관을 지적하며 고치도록 지도한 건 프레시아일 터였다.
“아, 그리고 도련님께서 누워 계시는 동안 제가 대신해서 군사 회의에 출석했습니다. 이건 제 나름대로 회의를 정리한 노트입니다.”
원래 군사 회의 내용은 기밀이었기에 이렇게 사사로이 유출해서는 안 됐지만 딱히 국가 간의 전쟁도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듯 했다.
유출된다고 몬스터가 이해할 수도 없을 테니까.
노트의 내용을 보아하니 몇몇 부대의 위치가 변했을 뿐 크게 변한 점은 없었다.
애초에 군사 회의의 큰 줄기의 내용은 변할 수가 없었다.
토벌대가 산맥을 들쑤시는 동안 나와 다른 병력은 산맥의 몬스터를 정리하며 너무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도록 몬스터 무리를 끊어주고, 요새를 수호하는 게 전부였다.
“알았어, 변한 점은 숙지해 둘게. 그럼 그 고생을 하고 얼마나 마력이 늘었는지 볼까?”
그 개고생을 하고도 마력이 하나도 안 늘었으면 망할 영감탱이의 묘소에 침이라도 뱉어줄 거다.
나는 눈을 감고 마력회로를 활성화시켜 마력을 확인했다.
“핫, 하하하하하! 이런 미친.”
내가 욕을 하자 프레시아는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마력에 이상이 생긴 겁니까?”
당장이라도 게오르의 묘소를 파헤쳐 버릴 것만 같은 얼굴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력이 늘었어.”
그것도 내 예상치를 한참 넘어섰다.
“얼마나요?”
“이전에 다섯 배. 아니, 여섯 배 정도인가?”
이 정도면 최소한 평범한 마법사가 5년 정도 노력해야 얻을 마력량을 한 번에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
마력회로 개발은 평생 해야 하는 거라지만 육체 면적상 평균적으로 마력회로의 개발에 들이는 시간은 길어야 20년 남짓.
그 이후에는 마력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이라 했으니 나는 보통 마법사 평균의 반의반이 조금 넘는 마력량을 한 번에 얻은 셈이었다.
“돈지랄과 미친 짓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하네.”
게오르의 마지막 연구가 없었으면 이 정도로 마력통을 넓히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10년? 20년? 이 지랄 맞은 몸뚱이를 생각했을 때 어쩌면 노인이 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봐야 5년차 마법사 수준이지만.
내 말에 프레시아는 걱정하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도련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아하하하, 미안. 이번에는 예상 못 했을 뿐이니까 봐줘.”
사실 임상 실험도 없이 내 몸에 바로 적용해 본 거였다는 말은 하지 말도록 하자.
그래도 내 예상보다 마력이 많이 늘었으니 보다 수월하게 인형을 다룰 수 있겠다.
실패하면 실루아에게 부탁해서 내가 인형을 조종하는 척 사기를 칠 생각이었는데 다행이다.
굳이 속일 필요가 없어졌다.
나와 프레시아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중에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의 상태를 체크하러 온 의원이군요. 데려오겠습니다.”
프레시아가 문을 열어 주자 군의관 복장의 치료 마법사는 날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일어나셨군요! 치료를 위해서 정보가 필요한데 무슨 마법을 실험하다 기절하신 건가요? 다른 분들에게 물었는데도 허락 없이 대답할 수 없다고만 말하지 않습니까.”
어디서 개수작이지?
다짜고짜 물어오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비전이라 말씀드릴 게 없군요. 그리고 딱히 치료에도 필요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원인을 알아야….”
내 대답에 마법사인 군의관은 날 구슬려보려 했지만 나는 수작질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제가 느끼기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 이제 활동해도 괜찮습니까? 제 동료가 의원의 허락이 없으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해서요.”
내가 말을 돌리자 군의관은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뭐, 많이 허약해 보이지만… 그냥 체질인 듯하고요. 문제없어 보입니다.”
진단서에 뭐라 적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나려다 깜박했다며 말했다.
“아, 맞다. 사령관님께서 경이 깨어나면 바로 찾아오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인형과 당신의 인형술을 테스트하실 것 같으니 조심하세요.”
이런, 아무래도 데미웨이가 날 혼쭐내려고 마음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