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검귀의 요람 (10)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내 대답에 이 자리에 있는 지휘관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내 말이 정말이냐며 기대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네까짓 게 가능하겠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대부분은 후자에 가까웠다.
갑자기 나타난 외지인이, 그것도 ‘기사’가 마법 인형을 다뤄 호레이즌 대신 데미웨이의 공백을 채워 주겠다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데미웨이는 내 대답을 듣고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불가능하지는 않다라…. 그 말이 어째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들리는 건 내 착각인가?”
그의 물음에 나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내 긍정에 데미웨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년의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허! 그럼 그렇지!”
내가 그를 흘겨보자 특무대장이 그의 신분을 알려줬다.
“제밀리앙 장군님입니다. 천인장 겸 사단장으로 전대 사령관님 시절부터 형벌 부대의 총책임자를 맡고 계십니다.”
블란츠바그의 형벌 부대는 총 4개의 천인대로 구성된 하나의 사단이었다.
사단장이면 이 자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세였다.
한눈에 봐도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장이구만.
나는 제밀리앙 사단장을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제가 아무리 인형을 다룬다고 해도 어떻게 사령관님이나 검호 호레이즌 경의 자리를 완벽하게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내 말에 제밀리앙은 무릎을 쳤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감히 사령관님을 무시하는 것이지!”
노익장의 외침에 이곳 앉은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있어 검귀 데미웨이는 살아 있는 전설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사실 사령관님을 ‘완벽히’ 대신하는 건 천하의 검호 호레이즌도 불가능한 일이죠.”
내 말에 지휘관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호레이즌이 아무리 강하고 지휘 능력이 뛰어나도 저들이 스스로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믿음을 살 수 없다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프레시아를 두고 오길 잘했다.
스승을 존경하는 그녀가 저들의 반응을 기꺼워할 리 없으니, 시비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는구만.
나는 한 걸음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날 무시하던 이들도 자연스레 날 바라봤다.
“다만 사령관님께서 의도하신 물음은 제가 사령관님의 자리를 완벽히 채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에 강약을 조절하며 이 자리의 청중과 눈을 마주쳤다.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그들이 내게 집중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사령관님께선 자신이 붉은 눈을 토벌하러 생긴 공백으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과 여러분이 이끄는 병사들, 그리고 이 영지의 영민들이 입을 피해를 제가 줄여줄 수 있느냐 물으신 겁니다. 사령관님께선 이 세상 누구보다 여러분들을, 병사들을, 영민들을 사랑하고 아끼시기에 저 같은 작은 가능성에도 기꺼이 의견을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데미웨이의 권위를 팔아 내 말에 신뢰를 더했다.
이 말은 단순히 이 자리에 있는 지휘관들의 믿음을 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데미웨이에게 주는 부담이기도 했다.
“사령관님께서는 제가 사령관님이 하시던 일의 그저 일부, 어쩌면 별것 아닌 일을 부탁하실 것이기 때문에 저는 사령관님의 ‘도움’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내 말에 데미웨이는 건방지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여기서 내가 부탁할 ‘도움’을 거절한다면 앞서 말했던 말들이 부정된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 터였다.
게다가 애초에 내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그는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부탁하는 입장은 내가 아니라 명백히 저쪽이었으니까.
데미웨이는 날 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웃었다.
“좋다. 자네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라지. 이렇게 기대하게 만들고 허언이라면 조금 화날 것 같으니.”
저 미소를 보아하니 내가 도움이 안 된다면 그걸 꼬투리 삼아 내가 청구한 금액을 깎을 생각인 듯 했다.
짧은 사이 거기까지 계산하다니, 역시 쉽지 않은 양반이다.
나는 당당히 그의 앞에 서며 따라 웃었다.
“화내실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저는 담력이 약해서 사령관 각하께서 화내시면 무서워 심장마비라도 걸릴 테니까요.”
나와 데미웨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 너머에는 살벌한 시선이 오고갔다.
“그럼 작전 회의를 시작하지. 우선 유안 경이 조종하는 전투 인형의 전력에 대한 확신은 없으니 기존 기록상의 인형 전력으로 계획을 짜도록 하겠다. 문제없겠지?”
데미웨이는 내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낙관은 비관만 못한 법이니 사령관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본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유안 경, 인형의 수리가 끝나는 시점은 언제쯤 될 듯한가?”
“특이 사항이 생기지 않는다면 닷새, 시험 운용과 추가 점검까지 생각한다면 일주일이면 됩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내 대답을 들은 데미웨이는 군사 회의를 이어갔다.
작전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가 끼어들 여지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 * *
꽤 길게 이어진 군사 회의가 끝나고 다른 지휘관들이 업무를 보러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수도에서 온 소식 때문에 긴급히 회의를 열긴 했지만 당장 크게 바뀌는 것은 없는 듯했다.
사령관실에는 회의 중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와 데미웨이만 남았다.
“혹시 왕도에서 온 답변을 봐도 괜찮겠습니까?”
“밀서도 아니니 괜찮겠지.”
내 부탁에 데미웨이는 왕실 문장이 찍힌 편지를 건넸다.
땡땡땡땡-!
바로 읽어 보려다 사령관실 밖에서 적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진짜 봄이 시작되려는 모양입니다.”
내가 말에 데미웨이는 익숙한 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할 때는 10분 간격으로 몬스터들이 몰려오지. 그때가 되면 오히려 적들을 상대하기 쉬워진다. 산맥 아래로 내려오는 것들은 대부분 동족포식이 싫어 내려오는 거라 요새 앞에서 자기들끼리 상잔(相殘)하니까.”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짐승에 가까운 놈들이다.
딱히 인간에 대한 악의 때문이 아닌 굶주림 때문에 내려오는 거라, 다양한 종류가 몰려올수록 아이러니하게 요새는 안전해졌다.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볼일이나 마저 끝내지. 자네가 원하는 내 도움이 뭔가? 계속 쓸데없이 말을 돌리는 걸 보면 쉬운 도움은 아닌 듯한데.”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살짝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령관님 가문의 비전 영약 좀 주시죠. 실버블룸이라고 불리는 거 있지 않습니까.”
내 말이 의외였는지 데미웨이는 되물었다.
“실버블룸을 달라고? 그건 왜?”
“제가 마력이 조금 많이 달려서 말입니다. 제대로 인형을 굴리려면 마력통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내 계산대로라면 지금도 모든 인형을 제대로 다룰 수 있긴 했다.
다만 그 시간이 극히 짧을 뿐이다.
데미웨이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적어도 지금의 세 배 정도 되는 마력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 마력이 워낙 코딱지만 해서 세 배가 돼도 마법사 평균치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내가 사실대로 털어놓자 데미웨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 가문의 비전 영약을 먹어 마력통을 키우겠다?”
“그렇죠.”
“지금은 내가 원하는 수준은커녕 인형술사로서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다?”
“그렇죠. 아무래도 제가 마법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말입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소에 데미웨이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은 내게 사기를 쳤다는 말인가?”
“에이, 사기는 아니죠. 저는 모든 걸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사령관님의 도움이 있으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지, 사령관님의 도움이 없어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잖습니까.”
내 능글맞은 대답에 데미웨이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버럭 소리쳤다.
“그게 사기가 아니고 뭐란 말이야!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으로 뻔뻔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뭐가 달라!”
데미웨이의 몸에서 따끔따끔한 마력파가 쏟아져 나오며 내 전신을 찌르는 듯했다.
강렬한 투기에 정신이 아찔해지며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제 부족함을 말씀드렸고,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사령관님은 알겠다고,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건가! 영약을 먹어 마력통을 키운 다음에 인형을 다루겠다? 기사용 영약인 실버블룸을 먹으면 마법사로서의 마력이 얼마나 늘어날 줄 알고! 그게 허언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그의 가문의 비전 영약, 실버 블룸은 어디까지나 기사들의 연공을 돕는 약이지, 마법사의 마력회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약이 아니다.
기사용 영약은 마력회로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게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데미웨이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그를 기망했다고 생각해서였지, 그깟 영약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살벌한 투기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당연히 아니죠. 제 말이 허언이 되려면 사령관님께서 제게 실버블룸을 주시고도 제가 최소치에 도달하지 못해야 합니다. 그 경우에만 허언을 한 게 되는 거죠.”
내 말에 데미웨이는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러나 내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일단 진정하시죠. 사령관님께 손해는 없지 않으십니까.”
“손해가 없다?”
“예, 제가 허언증 환자가 된다 하더라도 사령관님께서는 영약 값으로 제가 드린 청구서의 금액을 깎으면 그만입니다. 오히려 사령관님께는 그게 더 달가운 일 아닙니까?”
내 말에 그는 순간 멈칫했다.
꽤나 계산이 빠른 그가 영약 값을 핑계로 얼마나 깎을 수 있을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의 투기가 주춤하더니 조금씩 줄어들었다.
“…날 기망한 죄까지 물어 아주 비싸게 매길 거다.”
그의 말에 나는 당당히 요구했다.
“그럼 기망한 게 아니게 된다면 큰 포상을 주십쇼. 아주아주 큰 포상을 말입니다.”
내 요구에 데미웨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터트렸다.
“허! 건방진 녀석. 오냐, 네가 기망한 게 아니라면 영지에 큰 도움이 될 테니 응당 포상을 내려야겠지. 하지만 기사용 영약으로 정말 원하는 수준까지 오를 거라 자신하는 거냐?”
그의 물음에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뭐, 자신하느냐 물으신다면 그렇진 않지만 일단 믿어야 한다고 대답해야겠죠.”
“일단?”
미심쩍어하는 데미웨이를 보며 나는 소매로 땀을 닦았다.
“스승이 된다는데 제자가 되어서 믿어 드려야죠. 뭐, 그 괴팍한 영감님이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에 절 골탕 먹이려 했을 수도 있긴 하지만요.”
나는 아직 실증되지 않은 스승의 마지막 연구 이론을 내 몸에 적용해 볼 생각이었다.
물론 실증하려면 몇 가지 재료가 더 필요하기는 했지만 이곳에는 마도병단도 있으니 거기서 구해볼 생각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실을 나섰다.
“아, 제 동료들이 없는 틈에 절 시험해 보겠다고 투기로 압박하신 건 좋았는데 화난 표정 연기가 영 아니더군요. 연기 연습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령실 문을 닫는데 데미웨이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건방진 녀석.”
그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다고 들린다면 내 착각인가?
나는 닫힌 문을 뒤로하고 나아갔다.
그런데 프레시아가 이걸 알면 또 잔소리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