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55화 (55/214)

제55화. 검귀의 요람 (7)

블란츠바그에 도착한 지 나흘 정도 지났다.

“허억! 허억! 허억!”

나는 지금 거친 숨을 토해내며 열심히 연무장을 뛰는 중이었다.

이 망할 몸뚱어리는 그렇게 고약한 약을 먹으며 운동을 해도 여전히 허약했다.

그래도 처음 이 몸뚱이에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체력도 많이 붙었다.

그래봤자 또래 평범한 소녀 수준이지만.

솔직히 약이 너무 하수 처리장 같은 냄새와 맛이라 자주 먹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먹었으면 건장한 청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하하하! 힘내쇼!”

“그런데 정말 길버트 형씨와 같은 왕실 기사 맞습니까?”

“이렇게 허약해서야 바스타유 산맥에선 하루도 못 살아남을 겁니다.”

블란츠바그의 병사들은 여유롭게 체력 단련을 하며 나를 추월했다.

벌써 몇 바퀴나 추월당했는지 모르겠다.

“와, 크흠! 도련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길버트는 여전히 내 호칭을 실수할 뻔하고 땀 흘리며 내 옆을 달렸다.

나와 길버트가 달리는 속도는 비슷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냥 달리고 있고, 길버트는 가중력(加重力) 마도구를 차고 세 배에 가까운 체중으로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허억! 허억! 말 걸지 마!”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길버트는 내가 화났다고 생각했는지 시무룩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내 목표치에 도달했을 때 나는 쓰러지듯 땅에 누웠다.

내가 숨을 헐떡이자 내 체력 단련에 맞춰 끝낸 프레시아가 수건을 건넸다.

“체력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내 원래 체력을 아는 프레시아는 칭찬해 줬다.

“하아! 하아!”

고맙다는 말 대신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건을 잡고 얼굴을 닦았다.

더럽게 힘드네.

그때 질리안 79호가 내 옆에 회복 마법진을 설치하고 날 번쩍 들어 옮겼다.

“바이스 마스터(Vice-Master:주인 대리)의 생체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위험도 준 3급 판정, 응급 처치를 실시합니다.”

사실 준 3급이면 딱히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게오르의 판정 체계로 봤을 때 1급이 사망에 이를 정도의 중상, 2급이 생명에 지장이 없는 중상, 3급이 간단한 경상이었다.

질리안 79호는 날 마법진 위에 놓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법이 가동하며 호흡이 편해지며 피로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후우~! 살겠다. 질리안 79호, 실루아는 어디 있지?”

“바이스 마스터의 질문 ‘실루아는 어디 있지?’에 대한 답변을 기록실에 검색합니다. …마스터는 현재 바이스 마스터 기준 남서향 198도, 541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칩니다.”

“남서향…. 아, 벌써 인형 보관소에 간 모양이군.”

인형 보관소는 게오르가 블란츠바그령을 위해 남겨둔 전투 인형 병대를 보관하는 장소였다.

내가 데미웨이에게 빚을 지우기 위해 인형을 정비해 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지난 20년간 제대로 정비를 받지 못해서 그런지 멀쩡한 인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형의 숫자는 총 6천여 기 정도로 많았지만, 게오르가 30년 전 만든 보급 기종이라 구조도 어렵지 않고 실루아의 저택에 정비 설비도 있어 충분히 수리가 가능했다.

내가 데미웨이에게 정비를 해주겠다고 말한 만큼, 설비와 날 보조해 줄 질리안 시리즈를 빌려주면 나 혼자 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루아는 게오르의 인형들이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게 기분 좋지 않았는지 직접 나서서 인형을 고치기 시작했다.

“읏차차! 나도 도우러 가야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저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땡땡땡땡-!

바스타유 산맥의 성벽 쪽에서 적습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스 백인대! 5분 준다! 무장 후 집결!”

“제임스 백인대! 무장 후 집결!”

“기른 백인대! 무장 후 집결!”

연무장에서 체력 단련을 하던 병사들은 익숙한지 빠르게 각자 생활관으로 달려갔다.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 보는 소란스러움이었다.

“프레시아, 길버트. 처리하고 와.”

내 지시에 길버트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저희는….”

길버트가 하고 싶은 말은 알았다. 내 호위인 만큼 내게서 멀리 떨어지는 걸 꺼리는 거겠지.

“왜? 나도 갈까?”

내 장난기 섞인 물음에 길버트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길버트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인형들을 상대하던 훈련 가운데 내가 있는 상상을 한 모양이었다.

“난 지금부터 실루아가 있는 곳에 있을 테니까 내가 걱정이 되면 빨리 끝내고 와. 블란츠바그 사령관에게 밥값은 해야지 않겠어?”

내 말에 프레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거 명심하고.”

나는 성벽으로 달리는 프레시아와 길버트를 배웅하듯 손을 흔들었다.

“나비야, 애들이 실수하면 보호해 줘.”

프레시아는 실수해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길버트는 아니었다.

-미야옹~!

나비는 내 어깨 위에서 뛰어오르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계약으로 이어진 감각이 나비가 길버트의 어깨에 앉았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질리안 79호, 우린 인형이나 고치러 가자.”

“예, 바이스 마스터.”

나는 질리안 79호를 데리고 인형 보관소로 향했다.

* * *

성벽으로 달려간 프레시아와 길버트는 단숨에 성벽 위로 올라 상황을 확인했다.

“리저드맨, 숫자는 약 1200정도인가?”

길버트는 눈대중으로 몰려오는 몬스터의 숫자를 셌다.

중간중간 설치된 함정과 바리케이드에 막혀 한꺼번에 몰려오진 않았지만 워낙 많은 숫자라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역시 악명 높은 바스타유 산맥이네요.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길버트의 물음에 프레시아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프레시아의 나이는 아직 15살에 불과했다.

그녀도 처음 보는 숫자의 몬스터 군단에 긴장했다.

몬스터 하나하나는 보잘것없단 것쯤은 알 수 있었지만, 전쟁이란 개개인의 무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곳이라 배웠다.

프레시아가 망설이자 길버트의 어깨 위에 앉은 나비에게서 유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리 우물쭈물하는 거야? 격자로 배치된 바리케이드로 몬스터들이 자연스럽게 분산되도록 구성되어 있으니 딱 봐도 길목을 잡고 오는 놈들만 처리하면 되겠구만.

성벽의 구조는 각진 성형(星形)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성문 근처에 있으면 배후를 잡혀 기습을 당할 걱정이 적어졌다.

유안의 말을 들은 프레시아는 판단을 내리고 화살을 날리는 병사들을 통솔하는 지휘관에게 외쳤다.

“저희가 성문 근처로 오는 몬스터들을 쳐내겠습니다! 멀리서 오는 몬스터들을 먼저 공격해 주십시오!”

“…뭐라고?”

지휘관은 앳된 얼굴의 프레시아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프레시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따라와! 길버트!”

“어어?!”

길버트는 저 높은 성벽 아래에 무사히 착지한 프레시아를 보며 놀랐다.

-따라오라잖냐.

유안의 목소리가 길버트의 귓가에 울리더니 등 뒤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 길버트를 밀어트렸다.

“으아아아! …아아?”

-냐오옹!

아래에서 바람이 길버트의 몸을 밀어 올리며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길버트는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잡고 성벽 아래에 착지했다.

“으헉! 주, 죽는 줄 알았네!”

20미터에 달하는 높은 성벽에서 떨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비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놀라는 길버트를 보며 앞발로 길버트의 뺨을 때리듯 밀었다.

정신을 차린 길버트는 검을 뽑으며 프레시아의 뒤를 쫓았다.

프레시아는 벌써 성문 앞까지 도달한 리저드맨들을 처리하고 성문 바로 앞 중앙에 설치된 바리게이트 오른쪽에 섰다.

“내가 이곳을 맡을 테니 반대쪽을 맡아.”

성형 요새의 구조상 성문 쪽으로 올수록 길목이 좁아졌다.

아무리 길목이 좁아지고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고 해도 군대가 지나다니는 길목인 만큼 혼자서 막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길버트는 망설임 없이 길목을 막아섰다.

사방이 뻥 뚫린 공터에서 인형들이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상황에 비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갸르르르르!!”

리저드맨 하나가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며 길버트에게 달려들었다.

길버트는 리저드맨이 휘두르는 손톱을 피하며 재빠르게 리저드맨의 목을 베었다.

리저드맨의 목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길버트는 연달아 목이 사라진 리저드맨의 심장을 쪼개고 양 팔, 다리를 베어냈다.

“길버트! 상대는 인형이 아니야! 목이나 심장만 베어도 죽는다!”

“앗! 그, 그렇죠?”

프레시아가 일검에 리저드맨 세 마리의 목을 베어내며 주의를 주자 길버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게오르의 인형들은 목을 친다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때문에 핵을 부숴야 했는데, 대부분 심장 위치에 있긴 했지만 간혹 가다 핵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도 있어 팔다리를 자르는 습관이 생겼다.

한 달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길버트에게 트라우마에 가까운 강박증을 심어 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주의하겠습니다!”

전장에서 쓸데없이 체력을 낭비하는 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길버트는 연달아 달려드는 리저드맨 두 마리의 목을 베어내고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을 찔렀다.

자연스럽게 팔다리를 베어내려는 행동을 멈추고 자신에게 달려드려는 리저드맨을 베어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또다시 심장과 양 팔을 베어버렸다.

마치 한 동작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앗! 실수!”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날린 화살을 몸 이곳저곳에 맞고 피를 흘리는 리저드맨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상처 입고 굶주린 몬스터들은 약해졌지만 동시에 더욱 흉폭해졌다.

살기 가득한 몬스터들의 공격은 경험이 부족한 길버트의 정신을 압박해 왔다.

강하기로는 게오르의 인형들이 더 강했지만, 인형들은 처절할 정도의 살기를 내뿜으며 덤비지 않았다.

압박을 받은 길버트는 몸에 배인 습관대로 목을 치고, 심장을 가르고, 팔다리를 베어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길버트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검을 휘두르던 그때 프레시아가 있는 방향에서 압도적인 투기가 내뿜어졌다.

굶주림에 본능밖에 남지 않은 몬스터들이 도망치듯 크게 물러났다.

이미 쇠약해진 리저드맨 중 일부는 프레시아의 투기에 짓눌려 기절해 버렸다.

“바닥에 있는 것들 빨리 치워!”

프레시아의 지시에 길버트는 어느새 발치에 리저드맨의 시체가 가득 쌓였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움직임이 불편했던 것은 단순히 몬스터의 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지형은 반대로 아군의 움직임 또한 제한한다는 뜻이었다.

프레시아는 몬스터를 베어낼 때 앞으로 밀어 진입을 막는 방해물로 사용했지만 길버트는 그러지 못했다.

길버트는 리저드맨들이 물러난 사이 급하게 시체를 걷어차며 움직일 공간을 만들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버텨!”

프레시아의 외침에 길버트는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로 세웠다.

성벽 위에서처럼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백 마리는 넘게 베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레시아는 길버트보다 움직임이 빠르고 낭비가 없어서 그런지 같은 시간 동안 두 배는 넘게 적을 죽였다.

다시 검을 몬스터에게 겨누고 자세를 취하는데 등 뒤에 있는 성문이 열렸다.

“한스 백인대! 위치로!”

“제임스 백인대! 위치로!”

“기른 백인대! 위치로!”

성문에서 삼백 명의 병사들이 달려 나오며 리저드맨들을 죽이고 바리케이드로 나눠진 길목을 점거해 갔다.

화살에 상처 입고 숫자가 많이 줄어들어 기세가 죽은 몬스터 떼는 병사들에 의해 학살을 당하기 시작했다.

종이 울린 지 15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백인장 한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길버트의 등을 치며 유쾌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역시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손님이시구만!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아… 아닙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체력이 아직 남아 있음에도 손발이 떨렸다.

길버트에게 있어서 두 번째 실전이었다.

“그런데 혹시 리저드맨한테 원한이라도 있었습니까?”

한스는 토막 난 리저드맨의 시체 무더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순진해 보이는 인상과 어울리지 않은 잔인한 손속에 질린 얼굴이었다.

“아, 아닙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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