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법 (3)
실루아는 게오르의 추억 속에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 자신과 닮은 하얀 머리의 소녀가 양 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왁! 이히히히! 놀랐지?”
실루아는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언니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만나서 반가워, 내 동생.”
실비아가 실루아를 끌어안자 실루아는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되고 싶었던 언니를 만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실루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비아는 실루아의 얼굴에 뺨을 부비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우히히히! 동생이다! 동생! 있지! 실루아! 나 동생이 가지고 싶어서 엄마한테 졸랐었다? 하지만 엄마는 말이야….”
“실비아, 갑자기 그러면 실루아가 놀라잖니.”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실루아는 흠칫 놀랐다.
잊고 싶어도 결코 잊지 못할 목소리였기에 차마 뒤돌아보지 못했다.
지금 뒤돌아보면 어쩌면 환상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오랜만이구나, 실루아. 우리 딸.”
옆으로 다가온 제이올린은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실루아와의 눈높이를 맞췄다.
“어, 어머니.”
“그래. 엄마란다.”
제이올린은 실비아가 끌어안고 있는 실루아를 안아줬다.
전신에 느껴지는 온기에 실루아는 어쩔 줄 몰랐다.
“어머니, 이게… 꿈은 아니겠죠?”
실루아의 물음에 제이올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애매하네.”
“예?”
“이곳은 꿈이자 꿈이 아닌 곳, 현실이자 현실이 아닌 곳이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제이올린이 난감해할 때 게오르가 다가오며 실루아와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굳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다. 접속하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아버지?”
실루아가 게오르를 올려다보자 게오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실루아가 지난 10여 년간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미소였다.
“실루아, 저 나무가 보이느냐?”
게오르가 가리킨 곳을 본 실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에 이마를 가져다 대어 보거라. 그럼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될 거다.”
게오르의 지시에 제이올린과 실비아는 실루아를 놓아줬다.
세 사람을 번갈아 본 실루아는 조심스럽게 나무로 다가가 이마를 대었다.
그러자 실루아의 몸에 새겨진 게오르의 마력회로가 보랏빛 마력을 반짝이며 이마를 통해 나무로 이어졌다.
거대한 나무에 마력회로가 퍼지자 나무가 빛나기 시작했다.
“아…!”
기록실의 핵인 나무가 기록하고 있는 모든 정보가 실루아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방대한 정보량에 뇌가 녹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실루아는 그런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인형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이… 기록실이었군요.”
이곳, 기록실은 실루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마법 공간이었기에 지금의 작업은 기억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잊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가까웠다.
“유안 오빠가 말씀하신 아버지가 마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이 말이었네요.”
이미 그녀는 게오르의 모든 마법을 터득한 상태였기에 게오르는 더 이상 마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이상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유안의 속삭임을 떠올린 실루아는 뒤돌아 자신의 가족을 바라봤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안에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는… 실제이되 실제가 아니군요.”
비록 그들이 실제가 아닌 영혼의 파편이라도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였다.
실루아는 그저 가족이 되고 싶었다.
실비아의 대신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의 생전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실비아를 따라 엉망인 자수를 놓고, 장작을 날랐으며, 음식을 식탁으로 날랐다.
“하, 하하…. 전 바보네요.”
실루아는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은 가족의 일원이었건만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니.
그로 인해 아버지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했을지 상상이 가서 스스로가 너무나 바보 같았다.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바보라서, 어리석어서….”
사과하는 실루아의 곁으로 다가온 게오르는 실루아를 안아줬다.
“아니, 나야말로 미안하다. 내가 부족해서 네게 믿음을 주지 못했구나.”
실루아는 게오르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게오르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 가보렴. 못난 제자 녀석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지 않느냐.”
게오르의 말에 실루아는 잠시 망설였다.
아버지의 품이 너무나 따스해서, 어머니의 곁이 너무나 그리워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실루아를 보며 제이올린은 미소 지었다.
“괜찮아, 우리는 사라지지 않아. 네가 원할 때면 언제든 올 수 있어. 이제 기나긴 밤을 홀로 보내지 않아도 돼.”
제이올린의 말에 실루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형은 잠들 수 없다.
마법 인형에게 잠은 죽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게오르가 잠들고 나면 실루아는 기나긴 밤을 홀로 지새워야 했다.
하지만 이제 잠든 게오르의 방에 몰래 들어가 그의 품 안에 있다가 깨어나기 전 나서며 홀로 외로움을 삭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실비아는 실루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와! 내 동생!”
이제부터 기나긴 밤에는 가족과 함께일 테니까.
실루아는 가족의 품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유안이 실루아를 반겼다.
“어서 와, 실루아.”
유안의 인사에 실루아는 눈물을 흘렸다.
흐를 리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 * *
실루아의 눈물은 땅에 떨어지며 마력이 깃들어 단단한 결정이 되었다.
원래 인어나 흡혈귀 같은 마법적 생물은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건 실루아같이 사람에 한없이 가까운 마법 인형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기적’이라 부른다.
기적에는 온갖 이해가 불가능한 마법적 요소가 깃들며 동시에 마력을 머금는데, 그런 것들을 마법계에서는 ‘기적의 결정’이라 통칭했다.
“고마워요. 유안 오빠.”
실루아의 인사에 나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루아의 아버지, 게오르 필립은 <겨울나무의 현자> 속에서 끝끝내 마지막 유산인 ‘게오르의 추억’을 발동시키지 않는다.
실루아가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가족임을 이해시키는 데는 백 마디 말보다 있던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확실함에도 말이다.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건, 게오르가 추억을 발동시키지 않은 이유는 오롯이 홀로 남은 실루아를 위해서였다.
실루아가 추억을 보고 자신이 가족임을 깨달은 후에 실루아에게는 무엇이 기다릴까?
아무도 남지 않은 집, 단지 그것뿐이다.
이곳에는 게오르와 제이올린의 추억만이 남았을 뿐 실루아를 반겨줄 이도, 안아줄 이도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실루아가 텅 빈 집과 가족이 있는 기록실 중 어느 곳을 선택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히 예상할 수 있다.
기록실에 있는 가족은 진짜가 아니되 진짜였으니까.
게오르는 끝끝내 실루아가 스스로 자존(自存)하고 자립(自立)하길 바랐다.
부모란 언제나 자식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없는 세상에서도 행복하길 바라는 존재였기에.
그렇기에 나는 현실로 돌아온 실루아에게 미소 지었다.
“나야말로 돌아와 줘서 고맙구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실루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요히 누워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거죠?”
그 물음은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 기록실에서 네 아버지를 만났다면, …돌아가신 거다.”
내 조심스러운 대답에 실루아는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저는 언제든 아버지를 만나 뵐 수 있어요. 어머니도, 언니도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거죠?”
“그건 네가 네 아버지의 딸이기 때문이겠지.”
내 말을 들은 실루아는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기적의 결정이 되어 떨어진 눈물이 바닥을 굴렀고, 그녀는 이내 소리쳐 울었다.
“아파…! 가슴이 너무 아파! 아버지, 나 너무 아파요!”
실루아는 서서히 식어가는 게오르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울부짖었다.
그것은 새가 알을 깨는 것처럼,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필연적이며 고통스럽고 고된 울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은 게오르가 너무나 바라던 실루아가 스스로 일어나는 과정이었다.
하나의 인형은 그렇게 한 명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게오르의 방에서 책상 서랍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후후, 마지막 시험이란 건가? 스승님.”
손잡이를 잡자 굳건한 봉인 마법이 발동했다.
한눈에 봐도 복잡해 보이는 봉인은 그동안 게오르가 내게 가르친 마법들의 정수를 담은 듯 보였다.
“괴팍한 영감 같으니라고.”
봉인을 풀기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봉인을 푸는 데 성공했다.
서랍 안에는 얇지만 마법으로 만들어져 무한히 쓸 수 있는 노트 한 권이 담겨 있었다.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연구 일지.’
게오르의 정수가 담긴 마도서는 아니었다.
그저 연구를 기록해 놓은 일지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게오르의 마도서보다 더 가치 있을 지도 모를 노트였다.
이 연구 일지에는 마도서에는 담기지 못한 시행착오들로 가득할 테니 말이다.
나는 대충 훑듯이 연구 일지를 넘겨보는데 마지막 기록에 도달하자 손을 멈췄다.
마지막 연구의 제목은 ‘고밀도 마력회로 개발을 위한 원론적 담론과 실질적 구상’.
내 스승의 마지막 연구는 날 위한 연구였다.
* * *
다음날, 마당에서 조촐하게 게오르의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나와 프레시아, 길버트 그리고 상주인 실루아가 전부였다.
그가 이렇게 은둔하지 않았다면 그의 장례식은 더할 나위 없이 성대하게 치러졌을 터다.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정계, 재계의 주요 인사들.
심지어 왕까지도 직접 조문을 하러 왔을 정도로 성대하게 말이다.
지금 장례식은 마법사의 정점이라는 현자의 장례식이라기에는 너무나 소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관 안에 고이 누운 노인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영감님, 마지막 부탁은 들어드렸으니 걱정 마시고 편히 쉬십쇼.”
나는 새하얀 국화를 헌화하고 잠시 묵념했다.
프레시아는 아버지를 잃은 실루아를 위로하며 안아줬고, 길버트는 눈물을 참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게오르가 담긴 관은 질리안 시리즈가 마당 한 켠에 자리한 제이올린과 실비아의 옆에 정성스레 묻어주었다.
실루아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편안히 주무세요, 사랑하는 아버지.”
나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들어가자. 내가 맛있는 마들렌을 구워줄 테니.”
“와! 정말요? 아, 하지만 항상 어머니께선 기쁜 일이 있으면 마들렌을 구워 주셨어요. 오늘 같은 날엔….”
“그래도 구워줄게.”
게오르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축하해야지.
이제 그 누구도 제이올린의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나를 제외하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며 답지 않게 기도를 했다.
이 세계에 신이 있다면 부디 그의 영혼이 부족하다 탓하지 말기를.
그저 홀로 남은 딸을 위한 작은 미련을 용서하기를.
“…신이란 게 있다면 말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