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법 (2)
내 손이 실루아의 이마에 닿았다.
격류와 같은 게오르의 마법에 빠진 실루아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딱 좋군.”
나는 마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 실루아의 이마에 주입했다.
“크윽!”
급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자 현기증에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를 해야 할 때였다.
“열려라, 추억이여!”
나는 다시금 게오르의 추억을 열었다.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두워진 세상이 다시 밝아지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들판과 뛰어놀기 좋은 작은 언덕, 그리고 언덕 위에 놓인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보기 좋은 시골 풍경이었다.
“삭막하군.”
그러나 나는 이 풍경에 어딘가 메마른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일까?
“사람, 사람이 없네.”
적막하고 고요한 시골 마을이라도 사람이 사는 곳은 소리도, 냄새도 다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까진 아니더라도 사람이 키우는 개의 울음소리나 소가 밭을 매는 소리가 없다.
빵을 굽는 냄새나 농사에 필요한 퇴비 냄새가 없다.
그것들만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삭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벌레 울음소리도 없나.”
벌레 울음소리뿐만 아니다.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마저 없었다. 마치 그림처럼 박제된 공간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제대로 찾아왔군.”
이곳은 게오르가 자신의 딸인 실루아를 위해 마련해 둔 공간, ‘기록실’이었다.
나는 언덕 위에 있는 거대한 나무로 향했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목적은 확실히 해야 했다.
내가 나무에 접근하자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곳에서 갈대가 움직였다.
내가 언덕 옆에서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갈대숲을 바라보자 그 사이에서 하얀 머리카락의 소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는 누구예요?”
보랏빛 눈의 소녀는 신기한 듯 날 바라봤다.
소녀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었다.
“난, 네 동생의 친구란다. 실비아.”
내 대답에 실루아와 닮은, 하지만 동시에 다르게 생긴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루아의?”
“그래.”
내 긍정에 이번에는 아름드리나무에 걸린 그네 위로 백발에 녹색 눈을 한 중년의 여자가 나타났다.
“실루아의 친구라고?”
그녀의 등장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이 기록실의 관리인이기 때문이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부군 되시는 분의 마지막 제자쯤 되는 사람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슈프림 제이올린.”
내 인사에 제이올린은 가볍게 웃었다.
“그이의 제자라. 그럼 알 테지? 난 제이올린이 아니라는 걸.”
“예, 하지만 동시에 제이올린이지요. 당신은 슈프림 제이올린의 영혼의 파편이니까요.”
제이올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게오르에게 정확히 배운 것 같네. 하지만 신기하네, 그이라면 아무리 제자라도 이곳에 오도록 하진 않았을 텐데.”
“맞다.”
그녀의 의문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었다.
“또 뵙습니다. 스승님.”
게오르, 정확히는 사망하는 동시에 분리된 게오르의 영혼의 파편이었다.
내 인사에 노인이 된 게오르는 인상을 썼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냐?”
“당신의 마법을 배웠는데 못 올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대답을 들은 게오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그새 내 마법의 정수를 익힌 게냐?”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약간의 편법을 썼습니다. 그동안 실루아와 놀아주면서 몰래 영감님이 실루아에게 새겨놓은 마력회로를 분석했습니다.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니까요.”
내가 한 건 그저 마법의 틈을 비집고 침입한 것뿐이다.
그마저도 실루아가 ‘게오르의 추억’을 막 발동해서였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내 대답에 게오르와 제이올린은 놀랐다.
“허! 머리가 비상한 줄은 알았지만 대단하구나.”
“어머, 대단한 정도가 아닌걸? 두 제자 외에 더 키워보고 싶은 녀석은 처음이네.”
제이올린의 말에 게오르는 고개를 저었다.
“저놈 몸뚱이를 봤으면 그런 말은 안 나올걸?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몸뚱이가 그래서야.”
게오르의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망한 몸뚱이 같으니라고.
“마력은 회복실의 마력을 썼더냐?”
“예, 저 같은 베네티 메이지에겐 현자의 정수가 담긴 마법에 간섭할 마력이 없으니까요.”
마법이란 자신의 마력으로 세상과 공명하여 이적을 행사하는 일이다.
세상과 공명이 가능하다면 주변의 마력과도 공명이 가능할 터, 내 모든 마력으로 간신히 회복실의 잉여 마력을 지배해 사용했다.
잉여 마력이라고 해도 게오르의 마력인 만큼 내 마력의 밀도가 높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렇군. 그래서 기록실에는 왜 왔느냐?”
게오르의 물음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영감님께서 실루아를 부탁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하나뿐인 스승인데 유언 정도는 지켜 드려야죠.”
내 말에 게오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영감님이 만든 기록실에는 실루아의 인격을 지우고 사상 최악의 병기로 만들 마법이 잠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 마법을 폐기하러 왔습니다.”
내 말에 제이올린과 게오르는 놀라는 동시에 분노했다.
“우리가 실루아를 병기로 만들 마법을 새겨 놓았다고? 이 기록실에!”
“모르는 것도 당연하죠. 그 마법은 정말로 우연히 구성된 마법이거든요.”
내 말에도 적대적인 시선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딸을 위해 만들었을 이 공간이 딸을 죽일 공간이 된다는 것은 모욕적일 테니까.
당장이라도 여기 있는 내 의식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 제자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틀렸음을 검증하면 될 일입니다. 기록실의 핵인 ‘이빌리비스크의 석판’을 꺼내시죠. 저는 제 말을 증명할 테니까요.'”
내 말에 게오르는 말없이 날 노려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무를 중심으로 21개의 석판이 솟아올랐다.
“게오르!”
제이올린의 외침에 게오르는 말했다.
“못난 제자야. 내 생전의 너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지 마라. 증명하지 못한다면 넌 살아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경고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어떻게 스승의 유지(遺志)를 잇겠습니까.”
“입은 여전히 번지르르하구나, 못난 제자야.”
“당신께서 사망한 지 10분도 안 됐는지라 여전할 수밖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비석의 앞에 섰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제이올린의 사랑받는 비법 레시피’. 슈프림 제이올린의 정수가 담긴 최후의 마도서입니다.”
일견 요리 레시피로 보이는 ‘제이올린의 사랑받는 비법 레시피’는 고도로 암호화된 마도서였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자신의 마도서가 타인에게 읽혀도 비전이 유출되지 않도록 암호화한다.
그 형태는 일기장의 형태일 수도, 편지의 형태일 수도, 레시피의 형태일 수도 있다.
나는 실루아를 최악의 병기로 개조한 ‘아르카나 20, 심판’이 한 해독 방법을 떠올리며 말했다.
“암호는 글자의 위치, 배열, 문장의 행과 열이 중요하죠. 제이올린의 마도서는 특정 키워드대로 아브라 문자를 배열해야 합니다. 맞습니까?”
아브라 문자는 룬 문자처럼 특수한 마법 문자였다.
내 물음에 제이올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암호화하기에는 아브라 문자만 한 게 없지.”
기본적으로 문자는 그 순서가 정해져 있다.
영어 알파벳은 A로 시작해 Z로 끝나고, 한글 자음은 ㄱ으로 시작해서 ㅎ으로 끝나듯 말이다.
하지만 아브라 문자는 표음문자이자 표의문자이기도 해, 알파벳 하나하나에 담긴 고유한 뜻과 발음이 너무나 많았다.
때문에 마법에 사용하는 의미를 묶어 따로 배열순서가 정립되어 있다.
영어 알파벳의 시작이 반드시 A가 아니라 B가 될 수도, C가 될 수도 있다.
영어로 치면 ‘24!(팩토리얼)’개의 배열순서가 있는 셈이다.
물론 아브라 문자의 알파벳은 15개이니 정확히는 ‘15!’개의 알파벳 배열순서가 있는 셈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레시피 번호. 미트파이 레시피를 예시로 들면 미트파이의 레시피 번호인 132번 배열식으로 바꾸라는 말이죠.”
문제는 레시피가 현대 글자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이 암호에 아브라 문자를 대입하려면 당연히 레시피를 아브라 문자로 번역을 해야 하는데, 레시피를 몇 번 배열식으로 번역하느냐로 해석 결과물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당연히 하나하나 대입해서 해석해야 했지만 나는 이미 ‘아르카나 20’이 고생해서 얻은 결과를 알고 있다.
“해석하자면 마도서는 이렇게 되겠군요.”
나는 간단한 빛 마법으로 허공에 해석본을 써 내려갔다.
내 앞에 제이올린의 정수가 담긴 마도서가 실체를 드러냈다.
자신의 마도서를 본 제이올린은 식은땀을 흘렸다.
“당신, 저 녀석 육신의 재능이 엉망이라고 했지?”
“그래.”
“그렇다면 신은 공평한 것 같아. 저 머리로 범재의 몸이었으면 역사상 최연소 현자는 당신의 마지막 제자였을 테니까.”
나도 내 머리가 똑똑한 편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지나친 과찬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다른 녀석이 개고생한 결과물을 날름 써먹었을 뿐이다.
하지만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자, 그럼 이 마도서의 순서를 바꿔 보겠습니다.”
내 손짓에 따라 제이올린의 마도서가 재조립되었다.
내 손에 재조립된 마도서를 본 게오르와 제이올린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솔직히 이 마도서의 내용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난 게오르에게 마법을 배웠지, 제이올린에게 배우지 않았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저 소설 속 삽화대로 재배치했을 뿐이다.
“맙소사. 내 마법식을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니!”
“이건 마력 역전이와 방출 방식을 비틀었나?”
게오르와 제이올린은 열을 올리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의미는 없었다.
결국 둘은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본인이되 본인이 아니었으니까.
“인정한다. 이건 충분히 악용의 여지가 있다. 특히 내 연구와 맞물리면 네 말대로 최악의 병기가 되겠어.”
정확히는 여기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내 적은 그 부족한 것을 채울 만한 능력이 있었다.
게오르와 제이올린은 참담한 듯 보였다. 그도 당연했다.
딸을 위해 남긴 것이 딸에게 해가 될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석판의 내용을 바꿀 수 있겠죠?”
내 물음에 게오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마법이 완성되는 건 실루아가 모든 추억을 봤을 때. 그 말은 아직 석판에 마법을 새기는 도중이라는 말이다.”
나는 제이올린을 보며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내 물음에 제이올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내가 아닌 실재하는 제이올린이라도 허락할 거야. 내게, 제이올린에게 두 딸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제이올린은 어느새 다가온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게오르는 제이올린의 어깨를 팔로 감싸며 말했다.
“확실히 해야지. 네가 여기서 나가면 우리의 기억도 삭제하겠다. 우리의 기억은 석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니 가능하다.”
나는 싱긋 웃으며 모든 레시피를 수정했다.
내가 할 수정은 간단했다. 레시피 번호를 바꾸는 것, 그리고 마도서의 핵심 부분인 ‘마들렌 레시피’를 완전히 뭉개 지워버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시는 제이올린의 유산을 복구할 수 없게 된다.
“실루아는 행복하겠군요. 당신들 같은 가족이 있으니까요.”
질투가 날 것 같았다.
“실루아가 모든 추억을 본 모양이군. 어서 가라.”
“실루아를 잘 부탁해.”
“안녕! 오빠! 내 동생을 잘 부탁해!”
세 영혼의 작별 인사를 받는 순간 다시 눈앞이 어두워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실루아는 날 보며 웃고 있었다.
흘릴 수 있을 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