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46화 (46/214)

제46화.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법 (1)

위대한 현자 게오르 필립이 사망했다.

이 소식이 외부로 전해진다면 국내외를 떠나 모든 마법계는 애도하며 49일간 위령제를 지낼 것이다.

왕실도 성문에 커다란 검은 깃발을 내걸며 슬퍼할 것이고, 그에게 목숨을 구함 받은 모든 기사들은 상복을 입을 터였다.

그만큼 만병의 현자 게오르는 세상에 큰 족적을 남겼고 존경받았다.

게오르의 딸 실루아 필립은 아직 따뜻한 자신의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실루아의 눈은 공허했다.

마법 인형인 그녀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침대 아래로 떨어진 손을 가지런히 침대 위에 놓았다.

“장갑. 장갑을 가져와야 해요.”

실루아는 혼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회복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마 며칠째 거실에 방치된 질리안 80호의 장갑에 다시 수를 놓으려는 거겠지.

기계적으로.

나는 나가려는 실루아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아주세요. 저는 장갑을….”

“그럴 필요 없어.”

내 말에 실루아는 강하게 내 손을 뿌리치며 버럭 소리를 쳤다.

“아니에요! 저는 장갑을…!”

그렇게 외치던 실루아는 자신의 행동에 놀랐다.

“죄, 죄송해요. 소리치려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장갑을 가져와야 해요.”

“왜?”

내 물음에 실루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아버지의 딸이 돼야 하니까요.”

“너는 이미 게오르 필립의 딸이야.”

“그렇지… 않아요.”

실루아는 불안한 듯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얼굴이 빨개지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는….”

“마법 인형이라고?”

내가 실루아가 할 말을 대신 말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알고 계셨어요?”

“그래.”

내 대답에 실루아는 체념한 듯 허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아시겠네요. 저는 아버지의… 딸의 대체품이란 것을.”

실루아의 눈은 공허했다.

어두웠다.

무기질적이었다.

나는 그 눈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내 물음에 실루아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는 마법 인형이에요.”

“그래서?”

“…예?”

내가 되묻자 실루아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을 깜박였다.

나는 실루아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네가 마법 인형인 것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슨 상관이지?”

내 물음에 눈을 깜빡이던 실루아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인상을 구긴 모습이 게오르와 똑 닮아 있었다.

“지금 저 놀리시는 건가요!”

실루아는 분노했다. 있을 수 없는 모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강렬하게 날 노려봤다.

“아니. 진심으로 묻는 거다. 네가 마법 인형인 게 어째서 네가 딸이 아니라는 거지?”

“그건…!”

주먹을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인정하기 싫은 것을 인정하듯 분노와 슬픔을 담아 입을 열었다.

“제가 진짜 딸이 아니니까요.”

“혈연이 아니면 딸이 될 수 없다는 거냐? 양자는 자식이 될 수 없다는 거야?”

내 물음에 실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째서냐?”

“인형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실루아의 대답에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사람이 아니면 딸이 될 수 없다는 거냐? 인간은 난쟁이와 가족이 될 수 없나? 요정은? 수인은? 같은 종족이 되어야만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냐?”

“…아니요. 하지만! 전 인형이에요!”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내가 소리치자 실루아는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마!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너와 네 아버지! 둘이 정하는 거지,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이 정하는 게 아니야!”

내 말에 실루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당연히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말해봐! 실루아 필립! 너는 게오르 필립의 딸이 되고 싶지 않은 거냐!”

“되고 싶어요! 누구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망설이는 실루아와 눈을 마주쳤다.

“실루아.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너는 이미 게오르 필립의 딸이야.”

“하지만… 아버지께서 정말로 절, 딸이라고… 생각하실까요?”

실루아의 눈에는 불안함으로 흔들렸다.

사람간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실루아는 충분히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 게오르 필립과 제이올린 필립이 아니면 누가 널 딸이라고 생각하겠어.”

“정…말…? 정말로?”

“그래, 정말로.”

나는 실루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실루아, 네 언니의 이름이 뭔지 알아?”

“언니의 이름…?”

실루아는 20여 년 전 사망한 게오르와 제이올린의 딸의 이름을 대답하지 못했다.

“네 언니의 이름은 ‘실비아’다.”

실비아, <겨울나무의 현자> 최종 장에서 실루아를 최악의 병기로 각성시키는 키워드기도 한 이름이었다.

“실비아?”

“그래, 실루아가 아니야. 네가 정말로 실비아의 대신이었다면 네 이름은 실루아가 아닌 실비아였겠지.”

“실비아….”

“넌 실비아 ‘2호’가 아니라 오롯이 ‘실루아’다. 게오르 필립과 제이올린 필립의 딸, 실루아 필립. 그 증거를 지금부터 보여주마.”

나는 실루아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게오르가 알려준 주문을 읊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실루아.”

내 주문과 동시에 실루아의 전신에서 마력회로가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만병의 현자 게오르 필립의 마력회로야.”

아무리 죽어간다고 해도 마법사의 정점까지 올라간 사람이 간단한 마법 하나 사용하며 피를 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평생을 개발하고 단련한 모든 마력회로를 그녀에게 이식했기 때문이다.

마력회로를 뽑아내는 건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전신의 마력회로를 절제하고 이식하는 수술은 잠깐의 실수로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어서 굉장한 집중력을 요한다.

현자의 마력회로는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보물이었으니 다른 이에게 맡길 수도 없다.

그 말인 즉, 게오르는 마취도 없이 자신의 몸을 도려냈다는 의미였다.

홀로 남을 딸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못할 짓이었다.

“아버지….”

“여기서 끝이 아니야.”

게오르의 마지막 미련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거였다.

소원은 ‘자식의 자립’.

부모는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홀로 서기를 바란다.

위대한 현자 게오르도 실루아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설 속의 게오르가 끝끝내 실루아를 위해 구동시키지 않은 주문을 외웠다.

“열려라, 추억이여.”

내 주문에 실루아의 몸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반응한다.

그리고 게오르가 마지막으로 새긴 마법이 실루아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 * *

실루아의 의식이 침잠했다.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듯 무의식의 영역에 도달한 실루아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안착했다.

-여기는?

주변을 둘러보아도 자신은 알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여기가 어딘가 잠시 걷던 실루아는 들판 위에서 놀고 있는 작은 소년, 소녀를 발견했다.

소년은 부끄러워하며 소녀가 만든 엉성한 화관을 썼고, 소녀는 토끼풀로 만든 반지를 끼워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소년과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언덕 위로 뛰어갔다.

실루아는 그 소년,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게오르와 제이올린이란 것을 깨달았다.

계속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변 풍경이 흐릿해지며 새로운 곳으로 바뀌었다.

-학교?

방금 전 들판을 뛰놀던 두 사람은 조금 성장해 있었다.

두꺼운 책을 들고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오르와 제이올린에게 짓궂은 또래 소년들이 휘파람을 불며 놀려댔다.

게오르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고, 제이올린은 뚱한 표정으로 그런 게오르를 노려봤다.

부끄러워한 게오르는 나중에 후회 할 말을 뱉었다. 제이올린은 그런 게오르의 발등을 세게 밟았다.

서로 투닥거리는 풋내 나는 싸움 끝에 게오르는 토끼풀 꽃다발을 내밀며 사과했다.

그 사과에 제이올린은 즉석에서 토끼풀 꽃으로 반지를 만들고는 끼워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한 게오르는 도망쳤지만 이내 밤에 제이올린 기숙사로 숨어들어 반지를 건넨다.

결국 기숙사 사감에게 걸려 혼이 나지만 게오르와 제이올린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낡은 필름처럼 공간이 옆으로 이동하며 바뀌었다.

-여긴, 공방이에요.

이번에는 실루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폭발의 흔적도 있고, 못 보던 ‘그레인 출입 금지’라고도 적혀 있긴 했지만 여긴 익숙한 게오르의 공방이었다.

어느새 청년으로 성장한 게오르는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하며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공방 안에는 여러 마법 인형 부품과 여러 몬스터의 생태 보고서가 널브러져 있었다.

연구에 몰두하던 게오르는 뒤늦게 출근한 제이올린의 잔소리를 듣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은 제대로 먹어라, 잠은 충분히 자둬라, 당신이 오노러블 메이지가 됐는데도 내가 애를 키우는 것 같다, 이제 그만 그레인 백작의 사과를 받아줘라,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어지는 잔소리에 게오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제이올린을 안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는 토끼풀 꽃이 아닌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에는 토끼풀 꽃이 새겨져 있었다.

불이 꺼졌다 다시 켜지자 공간이 바뀌어 있었다.

-다시 학교인가요.

소년 시절 두 사람이 다닌 학교였다.

학생이었던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선생이 된 제이올린이 교정을 거닐었다.

눈가에 주름이 접힌 제이올린은 잔기침을 하며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고, 게오르는 그녀를 위해 모교에 최신 논문을 들고 방문했다.

제이올린은 자신의 남편을 보고 학교까지 찾아오는 걸 타박했지만, 이내 웃으며 남편이 현자의 권위로 빼낸 공표 전 논문을 읽었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마법사였다.

그때 어린 두 학생이 슬금슬금 다가와 제이올린이 보는 논문을 훔쳐보려 하지만 게오르에 의해 막혔다.

이런 악동들! 위즐! 또 너냐!

게오르의 호통에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소년이 변명을 해봤지만 게오르에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고 교수 연구실 밖으로 쫓아냈다.

제이올린은 그 모습을 키득거리며 지켜보다가 남편에게 두 사람을 가르쳐줄 것을 부탁했다.

게오르는 시간이 없다며 투덜거리다 마지못해 두 학생에게 작은 가르침을 내렸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병원.

새하얀 병원 침대에는 제이올린이 누워 있었다.

꽤나 지치고 힘든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품 안에는 작은 생명이 들려 있었다.

-실비아.

실루아의 언니이자 게오르와 제이올린의 첫째 딸.

늦은 나이에 낳은 늦둥이였다.

게오르가 병실에 방문했다.

뒤로 네임드 인형 ‘질리안’이 두 소년을 포박한 채 양손에 그들을 짐짝처럼 들고 따라 들어왔다.

게오르가 제이올린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두 소년들은 호들갑을 떨며 아기를 보여달라 떼를 썼고, 게오르는 두 소년에게 꿀밤을 먹이며 조용히 시켰다.

제이올린은 그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게오르와 두 제자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공간이 가속한다.

-집이다.

집 주변은 숲이 아니라 도시 외곽 지역의 마을이었지만, 너무나 익숙한 공간에 실루아는 미소를 지었다.

집 뒷마당에서는 성장한 실비아가 아이언 골렘 ‘골동품 2호’가 쪼개놓은 장작을 들고 아장아장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게오르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자, 제이올린은 애 손에 나무 가시라도 박히면 어쩌느냐고 남편을 타박했다.

그녀의 호통소리에 놀란 실비아가 울음을 터트리자 두 사람은 당황하며 자신의 딸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실루아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분명 자신은 고통을 모르는 인형인데 어째서일까.

저 안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시간이 녹아내린다.

-…….

같은 공간이다.

그러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두 사람은 상복을 입고 있었고, 청년이 된 두 제자도 찾아와 두 사람을 위로했다.

제이올린은 자신의 딸이 담긴 관을 부여잡고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다 혼절하고, 깨어나서 울다 기절했다.

행복한 색으로 가득하던 집이 무채색으로 물들어 갔다.

너무나 부러웠던 공간이 깨졌음에도 실루아는 여전히 아팠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아… 나다.

다시 조립된 세상의 가운데에는 유리관 속에 잠들어 있는 실루아가 담겨 있었다.

게오르는 웃음을 잃은 표정으로 실루아를 바라봤다.

실루아에게 너무나 익숙한 표정이었다.

제이올린은 실루아를 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실비아가 보고 싶어서 만들기로 했잖아.”

그 말이 실루아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역시 그런 건가.

자조하고 있을 때 제이올린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아이를 완성해 갈 때마다 점점 실비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게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아이는 실비아가 아니야.”

“비록 내 배가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만든 아이지만, 이 아이는… 오롯이 이 아이로 하자. 실비아는 가슴속에 묻고, 이 아이는 실비아의 대신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딸로.”

“그러자.”

유리관 안의 실루아가 눈을 뜨자 게오르와 제이올린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곁에 와줘서 고맙다.”

“사랑하는 우리 딸, 실루아.”

세상은 차오르기 시작한다. 흐를 리 없는 눈물로.

* * *

실루아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이 작고 귀여운 아이가 사상 최악의 병기가 되다니,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나는 실루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