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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45화 (45/214)

제45화. 소망을 담은 인형 (10)

실루아는 힘차게 돌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은 세워둔 돌을 쓰러트렸다.

“와! 내가 이겼다!”

비석치기에서 이긴 실루아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나는 짐짓 분한 척을 하며 말했다.

“좋아!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내가 이긴다!”

“히히히! 다음에는 무슨 놀이인데요?”

실루아의 물음에 나는 조약돌과 천으로 만든 제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제기차기를 하자.”

“좋아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신이 난 실루아는 눈을 반짝이며 제기를 바라봤고 나는 간단히 설명을 했다.

내가 이 저택에 들어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실루아에게 놀자고 한 날이 저택에 머문 지 닷새째였으니 열흘은 내리 놀았다.

물론 놀기도 했지만 게오르의 수업을 빼먹거나 정령술과 마법을 연습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을 줄이고, 보다 집중해 수업을 일찍 끝내 실루아와 놀 시간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왕자님, 괜찮으세요? 조금 더 주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레시아는 실루아가 듣지 않도록 내게만 들리게 마력을 담아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비의 힘으로 프레시아 귀에 공기를 진동시켰다.

-괜찮아. 조금씩 쪽잠을 자고 있으니까.

실루아는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기능상으로 잘 수 없는 것도 아니건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잠들지 않았다.

그에 따라 나도 잠을 줄여가며 실루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내 체력적인 한계가 있어 낮처럼 활동적인 놀이는 하지 못해도 실루아가 알지 못하는 동화 같은 것은 들려줄 수 있었다.

“같이 하시죠, 영감님.”

내 권유에 게오르는 지팡이를 짚으며 실루아의 옆에 앉았다.

“지팡이 짚는 사람에게 그런 과격한 운동을 제안하는 게냐? 못된 제자 녀석 같으니라고. 난 지켜볼 테니 너희끼리 하거라. 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으니.”

게오르는 어느 순간부터 날 제자라고 불렀다.

아마 강의의 내용이 마법 학교의 범위를 벗어난 순간쯤부터였다.

하루에 한 학년씩 진도를 나갔고, 마법 학교는 총 6학년이었으니 내가 마법 학교를 졸업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지금은 게오르의 독자적인 마법 연구를 강의했다.

마법사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물론 머리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저부터 할게요!”

실루아는 제기를 높이 던졌다 힘껏 걷어찼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제기는 중력의 끌림에 땅으로 떨어졌고 실루아는 낙하지점까지 달려가 다시 제기를 높이 차올렸다.

열 살 남짓한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힘이었다.

그렇게 대여섯 번 제기를 찬 끝에 결국 지붕 위로 떨어지는 것으로 실루아의 기회가 끝났다.

“앗! 더 찰 수 있었는데!”

그런 실루아를 보며 게오르는 무심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차는 숫자가 중요한 놀이인 듯한데 너무 높게 차올렸구나. 다음에는 힘 조절을 하거라.”

“히잉….”

나는 우는 소리를 내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비를 불렀다.

“나비야. 가져다 줘.”

-니야옹!

나비가 일으킨 바람에 제기가 떠오르더니 내 손 위로 안착했다.

“고마워, 나비야. 자! 그럼 내 차례인가?”

나는 제기를 가볍게 던지고 요령 있게 차올렸다.

“하나, 둘, 셋, 넷….”

내가 막 이 몸뚱어리에 들어왔을 때라면 세 번 이상 제기를 찬 후 다리가 부들거렸을 거다.

하지만 이제 성인 남성은 몰라도 또래 평범한 여자아이 정도의 체력은 생겼다.

모두 디벳의 구역질 나는 영약 덕분이었다.

다른 몸이었으면 한 병이면 충분했을 걸 나는 몇 병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손목에 새겨진 시조의 유산 퍼센트가 1.005퍼센트가 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기는 개뿔이!

그 개고생을 하고도 이제 1퍼센트냐고!

이 쓰레기 같은 몸뚱이!

내 머리 높이 위로 올라오지 않는 제기를 계속해서 연달아 차올리자 실루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우와! 대단해요! 아버지 말대로 높게 차올리면 안 되는 거였네요!”

실루아는 다시 해보겠다고 손을 들고 폴짝거렸다.

그녀는 제기에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지만 게오르는 푸근한 눈길로 자신의 딸을 바라봤다.

* * *

길버트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리저드맨 형태의 인형, 도마뱀 시리즈에 둘러싸여 검을 휘둘렀다.

사방에서 강인한 촉수와 같은 혀를 쏘아대는 통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는 침착하게 움직임을 최소화해 피하며 도마뱀 시리즈의 혓바닥을 잘라냈다.

바닥에는 그가 잘라낸 혓바닥이 꿈틀거렸는데 지금까지 잘라낸 길이만 수백 미터는 될 듯했다.

“저기요! 왜 혓바닥을 잘라내도 계속 사정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거죠?!”

길버트의 외침에 멀찌감치서 영상으로 전투를 기록하던 질리안 56호가 대답했다.

“길버트 님의 질문, ‘저기요! 왜 혓바닥을 잘라내도 계속 사정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거죠?!’의 답변을 기록실에 검색합니다. …검색 결과 도마뱀 시리즈의 뱃속에는 여분의 혀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칩니다.”

“아니! 이상하잖아! 실제 도마뱀은 안 그럴 거 아니야!”

길버트의 비명에 질리안 56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실제 리저드맨은 여분의 혀를 저장해 두지 않습니다. 단, 마스터께서 말씀하시길….”

“인형은 실제 몬스터보다 강해야 한다고요!?”

“긍정. 그렇습니다.”

질리안 시리즈의 긍정에 길버트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나 죽는다!”

길버트는 120개의 도마뱀 시리즈에 파묻혀서 몰매를 맞기 시작했다.

질리안 56호는 그 비명에 고개를 저었다.

“부정. 그동안의 전투 기록을 보면 길버트 님은 이제 이 정도로는 죽지 않습니다.”

“으아아아아!!”

길버트의 몸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방출되며 그에게 달라붙어 있던 인형들을 날려버렸다.

“다 죽여 버리겠어!”

그 모습에 질리안 56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 인형의 예측대로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질리안 56호는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위에서는 프레시아가 나무와 나무사이를 넘나들며 네임드 개체 ‘파랑새’, ‘보라매’, ‘질리안 오리지널’, ‘졸로키아’, ‘하라판’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팔에는 마력 측정기와 가중력(加重力) 마도구가 달려 있었다.

* * *

마당에 피어난 노란 개나리가 봄이 만연함을 알렸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감을 느꼈는데, 어느덧 이곳에 머문 지도 한 달가량이 되었다.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바스타유로 가는 건 정말로 자살행위라 게오르가 없었어도 여기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긴 했지만, 정말로 여기서 봄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집중해라.”

게오르의 꾸중에 마력을 끌어 올리며 마법 술식을 구성했다.

“예, 알겠습니다요.”

나는 저녁에는 게오르의 마법 강의를 듣고 밤에는 정령술과 마법을 연습했다.

내가 게오르에게 배울 때면 항상 멀리서 지켜보던 실루아는 어느 순간부터 나와 게오르 옆에 앉아서 강의하는 것을 구경했다.

“마지막 마력 이음새가 틀렸다, 다시.”

게오르의 단호한 지적에 나는 자리에 앉아 소모했던 마력을 모았다.

마력통이 작으니 소모해도 금방금방 차올랐다.

마력을 채운 다음 다시 일어나 마력을 끌어 올리며 허공에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도 마지막 이음새가 틀렸다. 다시.”

나는 이를 악물며 다시 한번 마력을 모으고 마법을 구성했다.

하지만 게오르는 성에 차지 않는지 혀를 찼다.

“이론은 스펀지처럼 잘만 흡수하더만 실용은 그렇지 못하군.”

“마법의 난이도는 둘째 치고 마력 총량이 딸리는 걸 어쩝니까.”

마법 학교의 내용은 내 쥐꼬리만 한 마력으로도 어떻게든 구현할 수 있었지만 게오르의 연구는 아니었다.

“쯧, 머리는 좋은데 몸이 영 아니야.”

나도 동감이다. 이 몸뚱이는 망했어.

“그래서야 갓 엔터(Enter)딱지 뗀 베네티(Vanit)다.”

게오르가 말한 엔터와 베네티는 마법사를 나누는 아홉 위계를 말했다.

엔터 메이지는 ‘Enter’, 말 그대로 입문자를 말했다.

“마법 학교 내용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그래도 리얼라이즈(Realize)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보통 마법 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면 7위계를 수여받는다.

7위계는 가장 많은 마법사가 속한 계급이었다.

내 말에 게오르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딱 ‘베네티’ 메이지다.”

마법사의 위계는 입문 단계인 엔터(Enter:입문한)부터 베네티(Vanit:자만한), 리얼라이즈(Realize:깨달은), 스킬드(Skilled:숙련된), 세이지(Sage:현명한), 마스터(Master:통달한), 오노러블(Honorable:명예로운), 슈프림(Supreme:최고의)의 순서로 나뉜다.

총 여덟 위계면서 아홉 위계라고 말한 이유는 모든 마법사 위에 여덟 명의 ‘현자’가 군림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른 위계는 몇 명이든 정원이 없지만 현자의 자리는 아니었다.

마도팔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앞서 현자가 된 마법사가 은퇴하거나 마법의 경지로 이겨야만 했다.

그렇기에 현자는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인 것이다.

“거 참, 사람 무안하게 할 말 없게 만드시네.”

마법을 익힌 지 반년도 안 된 주제에 스스로 7위계쯤 된다고 자만(Vanit)하다니, 정말로 그의 말대로였다.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게오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 쥐꼬리만 한 마력을 어떻게든 해야 다음 스텝을 밟겠군. 네 마력회로를 늘릴….”

게오르는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영감님?”

“…생각보다 이르군. 조금, 조금만 더 시간이…!”

그렇게 말한 게오르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영감님!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 질리안 79호! 아버지를 회복실로 옮겨! 긴급 프로토콜 발령! 발령자, 실루아 필립!”

실루아의 외침에 질리안 79호는 게오르를 안아들고 저택 안으로 뛰었다.

회복실은 게오르가 병약한 제이올린을 위해 만들어둔 온갖 치유마법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발령자, 실루아 필립의 발령으로 긴급 프로토콜 발동합니다. 긴급 프로토콜 절차에 따라 질리안 오리지널을 제외한 전 인형의 마력을 단절, 그 후 모든 마력을 회복실에 동원합니다.”

질리안 79호가 회복실의 게오르를 침대 위에 눕히고 침대 아래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바닥부터 벽, 천장 할 것 없이 가득 메운 마법진이 빛나는 동시에 질리안 79호의 움직임이 멈추며 쓰러졌다.

회복실에 마력이 가득 차자 게오르의 안색이 빠르게 좋아졌다.

“아아, 다행이다.”

실루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게오르의 몸은 한계를 넘은 지 오래였다.

아무리 현자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런 회복실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으음… 여긴 회복실인가?”

기절했던 게오르가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움직이지 않는 질리안 79호를 본 게오르는 미간을 좁혔다.

“긴급 프로토콜을 발령했나. 내가 얼마나 의식이 없었지?”

게오르의 숨결이 거칠었다.

“1분 남짓이었습니다.”

“그런가. 쿨럭! 쿨럭!”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기침을 한 게오르는 피를 토했다.

“아버지!”

실루아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게오르는 딸의 뺨을 어루만졌다.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아버지. 제가, 제가 딸이 될게요. 보다 더 딸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실루아의 말에 게오르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그런 말 하지 말거라, 실루아.”

그 일그러진 표정은 슬픔, 미련, 그리고 걱정이었다.

그러나 실루아는 그 표정을 읽지 못한 듯 고개를 숙였다.

“유안, 내 못난 제자야.”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하는 그의 말은 유언이 될 터였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더구나. 내 일생을 담은 연구의 뼈대가 되는 이론은 전부 알려줬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네 마력을 늘리는 것 까지 도와줬을 텐데 아쉽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미처 못 다 알려준 것들은 내 방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뼈대는 이해한 상태니 알아서 익히거라.”

무리한 요구였다.

아무리 이론의 뼈대를 이해했다지만 현자의 일생을 담은 연구를 혼자 익힐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 죽음이 생각보다 일렀던 것은 내가 널 믿게 되어서 그럴 것이다. 덕분에 미련으로 언데드가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게오르는 답지 않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현자가 언데드라니, 웃지 못할 농담이다.

“실루아를 잘 부탁한다.”

“…….”

내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게오르는 미소 지었다.

“실루아, 네게 미안하구나.”

“아버지….”

“네가 있어 그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네가 있어서… 불행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게오르의 눈이 초점을 잃으며 실루아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이 떨어졌다.

“내 딸… 실루아….”

게오르는 자신의 딸의 이름을 부르며 인생이란 이름의 위대한 마도서에 방점을 찍었다.

그의 미소에는 한 점의 후회도,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매서운 겨울을 견딘 봄의 어느 날, 향년 79세의 나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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