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소망을 담은 인형 (7)
“오늘은 이쯤 하지.”
게오르의 선언과 동시에 나는 힘없이 쓰러지듯 누웠다.
“으아아! 죽겠다!”
게오르의 강의는 1학년 대상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내용은 마력의 정의와 기초적인 사용 방법, 이른바 마법학 개론(槪論)이라 할 수 있었다.
개론이란 말 그대로 학문의 전반적인 내용의 요점만 추스른 요약본으로, 입문자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설명이었다.
문제는 전체적인 학습 분량, 그리고 개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화적인 설명이었다.
“이게 어디가 개론입니까! 총론이지!”
“원래 1학년 때 배우는 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기초는 곧 학문의 근간이니 응용은 기초 위에 쌓는 탑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괜히 학년을 나눠서 가르치는 게 아니잖습니까. 기초와 동시에 응용을 가르치시면 어떡합니까!”
게오르는 정말 못 가르쳤다.
교재의 간단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마법 현상을 덧붙이며 심화적인 이론을 추가한다.
마치 막 호흡법과 물장구를 치는 법을 배운 수영 초심자에게 1000미터 수영 경기를 시키는 것과 같았다.
좋은 선수가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는 모습의 전형이었다.
“어차피 가르칠 내용을 한꺼번에 가르치면 편하고 좋지 않나. 그리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게오르의 몸 상태는 정말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물론 그런 몸이 된 이유는 스스로의 탓이 컸다.
“복습은 알아서 하도록. 내일 강의 전에 시험을 보겠다.”
게오르가 고갯짓하자 질리안 79호는 새롭게 아공간에서 두꺼운 책 여섯 권을 꺼냈다.
“이건 내일 치 분량이다.”
“이번에는 2학년 교재입니까?”
내 물음에 정곡이 찔렀는지 게오르는 헛기침을 했다.
“예습은 네 자유다.”
그렇게 말한 그는 피곤한 듯 쉬겠다고 말하며 지팡이를 짚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에휴, 그나마 교재라도 친절해서 다행이지.”
수백 년 전 이론을 담은 아퀼라의 마도서의 내용은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도 발전한다.
무수히 많은 지성들이 쌓아 올린 이론은 시대를 초월한 천재의 마법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퀼라의 마도서에 담긴 내용이 쓸모없다고 할 순 없다.
마법은 비전으로서 전승되기에 높은 수준의 마법은 잘 전파되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학문은 깊이를 더할수록 세밀하게 갈래가 나뉘는 탓에 제 아무리 현자라 불리는 마법사라도 아퀼라가 쌓아 올린 분야는 잘 모를 터였다.
다만 지금 내 수준으로는 그 높은 경지의 깨달음이 딱히 도움 되질 않았다.
“시험이라…. 그래,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고.”
나는 오기가 생겨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 몸에 들어오기 전, 나는 나름 천재라 불렸던 몸이다.
이깟 수업 따위 씹어 먹어주마.
* * *
집안으로 들어온 게오르는 소매로 입을 틀어막고 심하게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쿨럭! 크읍! 퉤!”
기침과 함께 각혈을 한 그는 쓰게 웃었다.
“이대로 자연적으로 리치가 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저 멀리 북쪽 변방에는 이성을 지닌 언데드들의 나라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언데드는 이성이 없다.
이성이 있다고 해도 오염되기 마련이었다.
과거 현자의 경지까지 오른 게오르가 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리치가 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을 넘어 범세계적인 마법 재앙이 될 터였다.
문헌에 기록된 사례만 봐도 리치가 된 현자가 얼마나 절망적인 재앙이 되는지 알 수 있다.
현 아고슬라브 제국 남서부에 위치한 광활한 사막은 불과 170여 년 전만 해도 풍요로운 곡창 지대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이 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170여 년 전 당시 마도팔현(魔道八賢) 중 한 사람, ‘태양(太陽)의 현자’가 강한 원념을 품고 사망해 리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현자가 어째서 원념을 품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상관없었다.
리치가 된 현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수많은 영웅들이 사막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토벌을 위한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토벌에 성공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뭐, 리치가 되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태양의 현자 리치화 사건 이후 마도팔현의 지위에 오른 마법사는 모두 필수적으로 자신의 죽음이 마법 재앙이 되지 않도록 준비했다.
그건 지금은 현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은둔한 게오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없는 세상 따위를 떠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사양하고 싶군.”
자신이 거대한 재앙이 되는 것보다도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길 바랐기에 리치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마스터, 생체 리듬이 불안정합니다.”
질리안 79호의 표정 변화 없는 걱정에 게오르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다, 피를 닦아라.”
몸이 쇠약해진 지금도 간단한 마법 사용 정도는 가능했지만, 아무리 간단하다고 해도 장시간 사용은 몸에 무리가 갔다.
“간만에 가르칠 맛 나는 애송이가 있다고 무리한 모양이군.”
아무리 독선적인 그라도 가르치는 대상이 이해하지도 못할 이론은 가르치지 않는다.
유안이 그의 가르침을 대부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몰아치듯 그에게 지식을 전해주었다.
“후후후…. 오랜만에 그 천둥벌거숭이랑 모범생이 있을 때가 생각나는군.”
게오르는 과거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그리운 과거였기에 스스로 미소를 짓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첫 제자인가.”
그는 과거, 많은 조수를 들였고 또한 가르쳤지만, 제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조수로 들어올 만한 이들은 이미 전부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고, 그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이 가는 길을 보조해 주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유안처럼 처음부터 가르친 적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약간 더 있었으면 좋겠군.”
게오르는 지팡이를 짚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 *
나는 넝마가 된 채 인형에 의해 실려 오는 길버트를 보며 걱정했다.
“괜찮냐?”
내 물음에 길버트는 힘겹게 손을 들더니 엄지를 추켜세웠다.
“제, 제가 이겼습니다, 왕자님…!”
복습이 끝나고 인형들이 녹화한 영상을 봤기 때문에 길버트가 이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날개 달린 고릴라 인형을 상대로 꽤 고전했지만 이내 요령을 터득했는지 고릴라의 사각으로 이동하며 어렵지 않게 이겨냈다.
고릴라를 처음 이겼을 때만 해도 지쳤을 뿐 이렇게 너덜너덜해지진 않았지만 다음 단계로 고릴라 인형 두 개가 나와 버렸다.
각각의 인형이 서로의 사각을 보완해 주니 길버트의 현재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끝끝내 길버트는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쟁취해 냈다.
“그래, 고생했다.”
내 말을 들은 길버트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기절해 버렸다.
내가 부탁한 기본 값이 다섯 마리 동시 상대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겠군.
바스타유의 악명을 생각하면 다섯 마리도 적지만 프레시아도 있으니 괜찮겠지, 뭐.
뒤따라 오는 프레시아의 상태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산발이 된 머리에는 나뭇잎과 파란 깃털이 꽂혀 있었다.
상당한 격전이었던 모양인데, 다행히 다치거나 길버트처럼 탈진하진 않은 듯했다.
나는 프레시아의 머리에서 나뭇잎과 깃털을 떼어주며 물었다.
“어때? 연습이 됐어?”
프레시아는 정돈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예, 꽤 고전했습니다.”
“고전? 네가?”
아직 프레시아의 훈련 영상은 보지 못해 알 수 없었지만 고전했다는 말은 굉장히 의외였다.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프레시아는 미소 지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렵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하면 훈련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조절했습니다. 그리고 네임드라 불리는 것처럼 예사 인형이 아닌 것 같아 망가트리기 꺼려져서요.”
그럼 그렇지. 아무리 게오르가 만든 네임드 인형이라고 해도 프레시아가 고전할 리가 없었다.
“잘했어. 마법 인형은 인형술사의 보조가 없으면 제대로 된 출력을 낼 수 없으니까.”
내 말에 프레시아는 깜짝 놀랐다.
“그게 제대로 된 출력이 아니라고요?”
게오르는 제대로 인형을 다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정확히는 인형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의 몸 상태였다.
지금 이 숲에 있는 모든 인형들은 게오르가 만든 ‘기록실’이란 곳의 마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하지. 무려 현자가 만든 인형이 그 정도일 리는 없잖아. 원래라면 네임드 인형 하나가 숙련된 기사 천 명을 상대할 수 있을걸?”
그런 인형으로 군단을 만든 게 게오르였다.
괜히 만병(萬兵)의 현자라 불리는 게 아니다.
내 설명에 프레시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뭘 그리 놀라? 넌 혼자서 숙련된 기사 만 명을 상대할 수 있으면서.”
“아, 아니요. 전 그 정도까지는….”
프레시아는 정말로 무리라고 생각하는지 난색을 표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스스로의 실력을 잘 알지 못할 때인가?
무릇 실력이란 타인과 비교해 봐야 측정할 수 있는 법이다.
프레시아가 기사 서임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온 이후 제대로 대련을 할 기회 자체가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녀의 훈련 상대는 오롯이 자신을 가르쳤던 기억 속의 호레이즌뿐이었다.
기억은 왜곡되기 쉽다.
그녀의 기억 속의 호레이즌은 어린 시절의 감각으로 만들어져 실제 호레이즌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게 구현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천하십검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것이다.
물론 프레시아가 천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수고했고 어서 들어가서 씻어. 조금 있으면 질리안 77호가 저녁 식사를 차린다고 했으니까.”
그런 믿음이 프레시아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면 믿음을 깨는 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했다.
물론 내가 말한다고 깨질 믿음이었으면 애초에 지금처럼 강해지지도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프레시아는 소매로 땀을 닦으며 욕실로 향했다.
욕실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어떻습니까? 내기는 제가 이겼죠?”
내 물음에 자신의 방에서 나온 게오르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파랑새는 전력의 반의 반도 내지 못했다.”
“프레시아는 전력의 반의 반의 반도 내지 않았을 테죠.”
나와 게오르의 시선이 부딪쳤다.
게오르의 눈에는 절대 호레이즌의 제자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네가 호레이즌의 제자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느냐?”
승부에 승복하지 못하는 건 마법사로서의 자존심도 있겠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날뛰는 망나니 호레이즌에 대한 반감이 더 커 보였다.
“그럼 내일은 프레시아에게 측정기라도 달게 하죠. 프레시아가 방출하는 마력이 영감님의 인형이 낼 수 있는 출력 값 이상이 되면 소리가 나도록 하면 될 일 아닙니까.”
아무래도 감으로 이쯤이겠거니 하는 것보다 지표를 보고 힘 조절을 하는 편이 훈련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흥! 그런 측정기는 이미 있으니 그 아이의 손목 크기에 맞게 조정해 두마.”
“그럼 이제 내기에 대한 보상을 주시죠.”
내가 손을 뻗자 게오르는 날 노려봤다.
“마법을 가르쳐주고 있잖나.”
“그건 내기랑 상관없는 약속이고요.”
“쳇, 원하는 게 뭐냐?”
“새벽에 새로운 정령을 소환할 건데 가지고 있는 정령석 좀 주십쇼.”
내 요구에 게오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대신 관찰해도 되느냐?”
“마음대로 하세요.”
내가 승낙하자 게오르는 마음에 든 듯 지팡이를 짚으며 식당으로 가버렸다.
나도 뒤따라 식당 쪽으로 가려는데 실루아가 뾰로통한 얼굴로 내 소매를 붙잡으며 말을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