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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41화 (41/214)

제41화. 소망을 담은 인형 (6)

게오르 필립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매일 아침 그랬던 것처럼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또 깨어났군. 밤사이 일어나지 못했으면 좋았을 것을.”

육신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마도의 정점에 올랐던 육신은 쉽사리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 그만 죽어서 쉬고 싶다.

아내가 그립다.

첫째 딸이 그립다….

“…둘째라.”

몸을 일으킨 게오르에게 평소처럼 질리안 79호가 쟁반에 물 잔과 약을 받쳐 가져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마스터. 지난밤은 평안하셨는지요?”

그리고는 12년 전 사별한 아내가 입력한 인사 문구를 출력한다.

평안하지 못한 밤이었다.

매일이 그리움에 사무쳐 괴로운 밤이었으나 지난밤에는 웬 잡것이 마음을 뒤흔들어 더더욱 평안하지 못한 밤이었다.

여느 날처럼 물을 들이켜고 약을 창밖으로 던지자 질리안 79호는 제이올린이 입력한 칭찬 문구를 읊는다.

“약을 잘 드시는 모습이 보기 좋으십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은 인형이 아닌 아내가 하던 말이었다.

매일 재생되는 말이 괴로웠으나 그는 그 말을 지우지 못했다.

유일하게 저장된 아내의 목소리를 잊을까 두려웠다.

“바보 같구나.”

제이올린은 게오르가 오래도록 살기 바래 자신이 챙겨주지 않아도 약을 잘 챙겨 먹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약을 먹으면 자신의 음성이 출력되도록 설정했다.

하지만 게오르는 아내와 사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처구니없는 허점을 발견하고 말았다.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약을 먹는 걸로 음성이 출력되도록 했어야지.”

약을 먹지 않은 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육신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쇠약해졌으나, 그의 고차원적인 마력은 그에게 쉬이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 소원이 그의 마법적 경지와 맞물려 기적을 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상에서 일어난 게오르는 질리안 79호에게 손을 내밀며 지시했다.

“지팡이.”

질리안 79호는 내장된 아공간에서 그의 마법 지팡이를 꺼내 건넨다.

지팡이를 짚는 게오르의 표정은 서글펐다.

“못난 제자를 가르칠 시간이군.”

청년에 가까운 소년이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저 소년이 그의 죽음이 되어주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 * *

나는 식탁에 앉아 질리안 77호가 만든 미트파이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겉면과 부드러운 속지의 식감 너머에 응축된 육즙과 토마토의 산미, 버터와 향신료의 향이 향긋하게 퍼져 나왔다.

“이거 맛있네! 레시피가 어떻게 되지?”

여행 중에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메모해 둘 생각으로 물었다.

미트파이를 만든 질리안 77호는 무기질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유안 님의 질문 ‘레시피가 어떻게 되지?’에 대한 답변을 기록실에 검색합니다. 레시피 ‘제이올린의 사랑받는 비법 레시피 132번 미트파이’를 출력합니다.”

질리안 77호는 종이 위에 미트파이 레시피를 적어 내게 건넸다.

실루아는 그런 나를 보며 자랑스러운지 으스댔다.

“질리안 77호가 만든 어머니의 미트파이 맛있죠?! 저도 좋아해요!”

신이 나서 미트파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실루아는 그대로 미트파이를 베어 물었다.

인형임에도 사람처럼 입안 가득 오물거렸다.

실루아는 시대를 초월한 마도 인형 기술의 집합체나 마찬가지였기에 사람과 같은 생체 활동이 가능했다.

훗날 주인공인 제이드가 평가하길 실루아는 마법과 신의 기적의 융합이라 칭했을 정도였다.

물론 최종 전투에서 최악의 병기로 각성한 실루아의 심장을 파괴하며 한 말이었지만 말이다.

“벌써 식사 중이었나.”

게오르는 지팡이를 짚으며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질리안 79호가 보필하듯 따라다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그래.”

실루아의 인사에 게오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프레시아, 길버트에게 말했다.

“숲으로 들어가면 싸워줄 인형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원할 때 들어가거라. 특히 호레이즌의 제자, 네게는 특별히 준비한 네임드를 붙여줄 테니 열심히 해봐라.”

그리고는 날 보며 덧붙였다.

“5분 뒤 교습을 시작하지. 뒷마당으로 나와라.”

냉정하게 말한 그는 식탁 위에 놓인 미트파이 하나를 들고 뒷마당으로 가버렸다.

“여기 머무는 동안 게오르 씨한테 마법을 배우기로 했어. 흔치 않은 기회잖아.”

내 말에 프레시아는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보다 검이 더 좋은데….”

“어이쿠! 빨리 가봐야겠네! 둘 다 열심히 해!”

나는 미트파이를 대충 입에 욱여넣고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프레시아에게 검을 배웠다가는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게 분명했다.

나도 일단 살고 봐야지.

* * *

질리안 56호의 안내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 프레시아와 길버트는 어제 싸웠던 공간과 다른 공터에 도착했다.

“어제랑은 다른 곳이네요. 더 싸우기 편하겠습니다.”

길버트의 말에 질리안 56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어제 손님들의 위치는 침입자 격퇴용 공간입니다. 이곳은 마스터께서 인형들의 성능을 시험하는 공간입니다.”

어제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곳은 나무들로 빽빽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사방에서 인형들이 덤벼드는 것을 넘어 나무를 타는 인형들이 머리 위에서도 마법 포격을 쏟아냈기에 더더욱 힘들었다.

반면 이곳은 지반이 단단하고 넓게 트여 있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유안 님의 요청에 따라 길버트 님의 상대는 바나나 134호입니다.”

질리안 56호의 말과 동시에 숲속에서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고릴라가 걸어 나왔다.

“바나나 시리즈는 몬스터 에이프로텐스를 모티브로 만든 괴수형 인형입니다. 거구에 걸맞은 힘과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튀어나와 단시간 허공을 체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바스타유에도 종종 관측되는 몬스터기도 합니다.”

질리안 56호의 설명에 길버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바나나 134호를 본 프레시아는 길버트에게 주의를 줬다.

“실제 에이프로텐스보다 강한 것 같으니 조심해.”

프레시아의 경고에 질리안 56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마스터께서 말씀하시길 실제 몬스터보다 약하면 인형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하였습니다. 바나나 시리즈 외에도 바스타유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모티브로 한 괴수형 인형은 많으니 기대하시길.”

길버트는 각오를 다지며 철검을 뽑았다.

길버트와 바나나 134호가 전투를 시작하자 질리안 56호는 프레시아에게 말했다.

“프레시아 님의 상대는 네임드 개체, ‘파랑새’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하늘에서 푸른 깃털의 조류 수인형 인형이 착지했다.

“파랑새의 특징은.”

“아니, 특징은 듣지 않겠습니다.”

프레시아는 질리안 56호의 말을 자르며 칠성검이 아니라 철검을 뽑았다.

“특성을 들으면 훈련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질리안 56호가 물러나자 네임드 개체 파랑새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나는 그루터기 위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내 안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마력을 본 게오르는 이상한 것을 본 듯 말했다.

“어처구니없군. 어떻게 이런 쥐꼬리만 한 마력에 마력회로도 발달시키지 못했으면서 마력의 밀도가 높을 수가 있지?”

나는 그의 평가에 슬쩍 한쪽 눈을 떠 그를 바라봤다.

“좋은 겁니까?”

“나쁜 일은 아니다. 마력은 짙으면 짙을수록 좋으니까. 다만 어디 고절한 마법사에게 마력회로라도 이식 받지 않는 한 이렇게 밀도가 높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군.”

역시 썩어도 준치라고 해야 할까, 죽어가는 몸으로도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내 몸의 마력회로는 아퀼라의 회로를 근간으로 아퀼라의 마도서에 적힌 방법대로 개발했다.

“원래라면 옅은 밀도의 마력으로 마력회로를 개발하고 차차 밀도를 높여가야 하지만 그 과정은 오래 걸릴 뿐더러 재능이 없는 녀석들이 높일 수 있는 밀도는 한계가 있다. 딱 봐도 네 재능은 전무하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구나.”

그 내용은 아퀼라의 마도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마력회로를 개발할 때마다 죽을 맛인데 어떻게 할 방법은 없습니까?”

내가 마력회로를 개발할 때 아픈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을 물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보통 마법에 입문한 마법사가 마력회로를 개발할 때의 밀도는 수증기다.

반면 아퀼라의 마력회로는 얼음이라 할 수 있었다.

마력 회로가 풍선이라 치면 보통의 마법사는 풍선 안에 수증기를 넣어 확장하는 것이고, 나는 얼음 막대를 밀어 넣어 확장하는 거다.

그러니 아프지 않을 리가 있나. 사람의 몸은 풍선이 아니다.

내 질문에 게오르는 단언했다.

“없다.”

내가 이마를 짚으며 절망하자 게오르는 딱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완전히 개통하면 내 전성기보다 높은 마력을 가질 테니 미래를 생각해라.”

“예에… 참 위로가 되는군요.”

완전히 개통하기 전에 내가 쇼크사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직 대맥(大脈)도 제대로 뚫지 못했는데 세맥(細脈)은 언제 뚫는담.

“네 마법 수준은 어제 봤으니 시현은 됐다. 고전적인 술식 구성을 사용하던데 나쁘진 않더구나. 누구에게 배웠나?”

“서재에 있는 마도서를 보고 홀로 독학했습니다.”

“독학? 처음 마력을 느끼는 것부터 가르쳐준 선생은 있었을 것 아니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처지가 그런 개인 교사를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죠.”

게오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예 처음부터 마법을 독학했다고? 내가 무수히 많은 천재들을 봐왔다만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처음 듣는다.”

“마도서가 친절하긴 했죠.”

아퀼라는 최악의 경우 자신의 자식이 리즈벳이나 다른 후궁들에게 핍박받아 아무것도 익히지 못했을 상황도 고려해 마도서를 작성했다.

물론 아퀼라는 자식 없이 죽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 마도서의 저술자가 현자라 불려도 이상하지 마법사란 말이군.”

정확히는 마녀라 불렸다.

그것도 주인공 제이드가 계승하는 사계(四季)의 현자와 대응하는 사재(四災)의 마녀 중 하나였다.

“아니면 제가 천재거나요?”

내 농담에 게오르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어차피 네 수준으로는 마법 학교 수준을 따라오는 것도 벅찰 테니 익힌 마도의 학파(學派)나 사조(思潮)는 상관없겠지.”

그가 고갯짓하자 질리안 79호는 아공간에서 두꺼운 책 다섯 권을 꺼냈다.

책의 저자는 다섯 권 모두 제이올린이었다.

마법 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교재로 집필한 건가.

“오늘 치 공부량이다. 따라오지 못해도 진도는 나갈 테니 각오해라.”

게오르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골탕을 먹이려는 듯 했다.

내 시선에 게오르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1학년 대상 교재다.”

“누가 뭐라 했습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펼쳤고 게오르는 허공을 칠판 삼아 마법으로 판서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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