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40화 (40/214)

제40화. 소망을 담은 인형 (5)

“으으… 여긴…?”

기절했던 길버트가 정신을 차리며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읽고 있던 리즈벳의 정령서를 덮으며 길버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일어났나? 몸 상태는 좀 어때?”

“아…! 왕자님, 윽!”

날 보자마자 무리해서 일어나려던 길버트는 근육통과 타박상에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나는 그런 길버트에게 환약을 던져줬다.

“먹어둬. 디벳 영감이 만든 약이야.”

기본적으로 근육이 자리 잡기 좋게 도와주는 보충제이자 자연 회복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약이다.

특히 근육 회복 속도에 탁월하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왕자님.”

약을 삼킨 길버트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여긴 어디입니까?”

“여기? 네가 박 터지게 싸우던 인형들의 주인이 사는 집. 집 주인이 잠시 머물러도 된다고 하길래 며칠 머물기로 했어.”

지금 우리가 있는 방은 원래 위즐 백작과 아바스엘이 방문하면 내어주려던 손님방이었다.

실제로 사용된 건 딱 한 번, 제이올린의 장례식 때뿐이었지만 방은 먼지 한 톨 없이 청결했다.

프레시아는 안주인인 제이올린의 방에 묵기로 했다.

게오르는 자신의 아내라면 흔쾌히 손님들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줬을 거라며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피곤해 보이는데 더 자둬. 집 주인인 게오르 씨가 네 훈련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내일도 인형이랑 싸워야지.”

내 장난기 가득한 말에 길버트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앓는 소리를 냈다.

“왜, 싫냐?”

앓는 소리를 내던 길버트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아닙니다. 싫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주먹을 움켜쥐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말이지만, 인형들과 싸우면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실전이었다면 저는 분명 후회했을 겁니다. 호위 기사인 제가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이 닥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나는 미소 지었다.

“그래. 네가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은 곧 내 죽음과 이어진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됐다.”

내가 굳이 잔소리할 것 없이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창밖에는 이미 달이 떠 있었다.

“시간이 늦었다. 자라. 내일 아침에 게오르 씨께 감사 인사하고 훈련을 받으면 돼.”

“예! 안녕히 주무십시오!”

힘차게 대답한 길버트는 침대에 눕더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아, 일어나면 배고플 테니 먹으라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놨는데 줄 새도 없었다.

뭐, 그만큼 피곤했다는 거겠지.

“이건 내 야식으로 할까.”

나는 샌드위치가 든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올 필요 없다. 너도 내일을 위해 푹 쉬어.”

내 말에 제이올린의 명패가 적힌 방에서 프레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알겠습니다.”

역시 내 기척을 읽고 있었나.

호위 기사로서 빈틈이 없는 건 좋지만 조금 무섭다.

물론 나를 노린 암살자도 찾아오고, 습격도 있었으니 이해는 갔다.

나도 내 목숨은 소중하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 * *

앞마당에 나온 나는 허공에 아퀼라의 마도서를 펼치고는 마법을 사용했다.

이곳은 마력이 충만하고 여러 마법들이 깔려 있어 마법을 익히기 좋았다.

아직 입문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내 안위를 지킬 수단은 많을수록 좋았다.

특히 아퀼라의 마력회로를 발달시킬수록 정령을 다루는 데 수월해진다.

야식을 먹으며 간단한 마법을 연습하는데 창고 건물 뒤로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백발이면 실루아인가.

“몰래 숨어서 보지 말고 나오렴.”

내 말에 실루아는 슬며시 고개를 내밀며 특유의 보랏빛 눈으로 날 바라봤다.

“뭔가 할 말이 있니?”

내가 최대한 친절히 웃으며 묻자 실루아는 우물쭈물하며 내게 다가왔다.

“저기… 오빠는 마법사인가요?”

실루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법을 배우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마법사라고 하면 네 아버지께서 화낼걸?”

전성기에 비하면 한참 약해진 게오르였지만 그래도 현자의 경지까지 오른 마법사다.

고작 흉내 내는 수준의 날 인정 할 리 없었다.

“그런가요?”

내 대답에 실루아는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그건 왜 묻니?”

내 물음에 실루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웃으셔서….”

“뭐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되묻자 실루아는 소리 지르듯 외쳤다.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오빠를 보고 웃어서요!”

그리고는 스스로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게오르의 방을 바라봤다.

소리친 것 때문에 아버지가 깰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그런데 웃어? 게오르가?

언제… 아! 내일 프레시아가 이기나, 게오르의 네임드 인형이 이기나 내기하면서 보였던 표정을 말하는 건가?

표현하자면 웃었다고 할 순 있지만 그걸 정말 웃었다고 할 수 있나?

그게 웃는 거면 하품하다 나오는 눈물도 울음일 거다.

“…혹시 오빠가 마법사라 아버지께서 웃으신 게 아닐까 싶어서…. 아버지께서 웃는 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처음이라….”

마치 울 것 같은 실루아의 표정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내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온 거야?”

“…네.”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실루아를 보며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내가 배를 부여잡으며 웃자 실루아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왜, 왜 웃으세요!”

“아하하! 아니, 그냥. 마법사들의 정점까지 오른 사람이 곁에 있는데 나 같은 녀석에게 부탁하는 게 이상해서.”

내 대답에 실루아는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그치만! 아버지는 제게 마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걸요!”

실루아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아버지가 네게 마법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일 거다.”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요?”

“그래.”

실루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여하튼 나는 네게 마법을 가르칠 순 없겠구나. 혹시라도 가르쳤다가는 네 아버지가 나한테 화를 내실 테니까.”

“그런가요….”

실망한 실루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고자 귓가에 속삭였다.

“기억하렴. 네 아버지가 네게 마법을 가르치지 않는 건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야. 그걸 기억하는 한….”

내 위로의 말을 들은 실루아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갔다.

실루아가 들어간 지 1분쯤 지났을 무렵, 나는 마당 옆에 있는 작은 연못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시죠?”

내 말에 공기가 일렁이더니 허공에서 게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녀가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게 참 닮았다.

“어떻게 알았느냐?”

“어지간해서 제 눈을 피할 순 없습니다.”

전성기의 게오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의 게오르는 불가능했다.

그만큼 게오르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은 게오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네 마법 수준이나 기감으로는 알아차릴 순 없을 테고, 이 느낌은 정령인가?”

“정답입니다.”

내 긍정과 동시에 나비와 누니가 나를 보호하듯 게오르를 가로막았다.

“고양이 모습의 바람 정령과 새 모습의 번개 정령이라. 보통 정령은 아니군.”

“그렇습니까? 제가 정령이라고는 이 둘밖에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러고 보면 디벳도 소환된 누니를 보고 자신이 아는 정령과는 다르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특이한 건가?

“정령술사는 극히 희귀할 뿐더러 나도 정령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만, 정령은 모두 각자 고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 고양이 모습을 한 나비나 오목눈이 모습을 한 누니가 이상한 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령계에서의 모습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현현(顯現)할 때는 규격화 된 형태를 띠게 된다.”

“형태라면요?”

“모든 정령이 공통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것은 작은 구체 형태. 그 외라면 각 시대에 따라 보편적인 정령의 이미지를 따라가지.”

“보편적인 이미지 말씀이십니까?”

“예를 들면 물의 정령의 경우 시대에 따라 물고기의 형태, 인어의 형태, 해마의 형태 등을 따라가지.”

게오르의 설명에 나는 손뼉을 쳤다.

“아하! 그러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를 따라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 사회가 작은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지, 아니면 범세계적인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지는 차치하고 말이죠.”

가령 버섯의 정령을 소환한다고 가정해 보자.

버섯에는 목이버섯처럼 레이스 형태가 있는가 하면, 팽이버섯처럼 가느다란 다발 형태 등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하지만 소환된 버섯의 정령의 모습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형태인 삿갓모양의 머리에 두툼하고 길쭉한 대가 달린 모습이 된다.

사회 통념적인 버섯의 형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는 정령 같은 외계(外界)의 존재가, 특히 형태가 아니라 본질이 중요한 존재의 경우 세계의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힘을 담을 만한 그릇이 필요하다. 그 그릇을 형성하는 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잉여 사념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는….”

게오르는 오랜만에 신선한 마법적인 것을 봐서인지 듣기만 해도 어려운 마법 용어와 정의를 늘어놓으며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알지 못하는 용어는 대충 넘기더라도 정령을 다루는 내게 있어서는 꽤나 유용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리즈벳의 정령서의 내용은 보편적인 내용이 아닌 듯했다.

“…따라서 보편적인 형태의 모습을 하지 않은 정령을 본다면 두 가지 경우라 할 수 있다. 정령을 소환한 술사가 규격 외의 존재거나, 정령 자체가 자연재해나 다름없을 정도의 존재거나.”

게오르가 날 보는 시선을 해석하자면 내가 그런 대단한 정령술사로는 안 보이니 나비와 누니가 대단한 정령이란 의미였다.

물론 나도 그의 시선에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네 보잘것없는 마력에도 그런 정령이 둘이나 계약해 준 걸 보면 네 정령친화력은 가히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할 수 있겠구나. 애초에 정령술사가 적은 이유도 그 정령친화력이란 게 극히 드물게 타고나는 재능이라 그런 거지만 말이다.”

게오르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에도 재능이란 것이 있었다니!

“물론 그런 마력으로는 제 능력을 낼 순 없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망한 몸뚱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재능을 좀먹고 있다니.

한참을 떠들던 게오르는 정령에 대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떠올렸는지 인상을 썼다.

“중요한 건 이런 이야기가 아니지.”

“제게는 꽤나 중요하고 유익했습니다만.”

“내게는 아니다.”

단호하게 말한 게오르는 날 노려봤다.

“네가 실루아에게 한 말의 의미는 뭐더냐?”

“실루아에게 한 말이라…. 영감님이 실루아에게 마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 말입니까?”

“그렇다.”

게오르의 긍정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지요. 실제로 가르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내 대답에 게오르는 심기가 더 불편해졌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넌 뭘 알고 있는 거지?”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간단한 추론이었을 뿐이죠.”

“추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루아는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웃은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이다. 그런데 아내분께서 돌아가신 건 못해도 10년은 넘지 않았습니까?”

아바스엘이 마법을 잃은 것은 10년 전이다.

아바스엘이 장례식에 방문했다고 했으니 제이올린의 사망은 보다 전이 된다.

“….”

게오르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실루아의 외견은 아무리 봐도 10살을 넘지 않습니다. 태어난 직후의 기억은 보통 없죠. 그런데도 실루아는 제이올린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듯이 특정하여 말했습니다. 정확히는 영감님의 웃음을 기억한다고 표현해야 옳겠지요.”

“….”

“그렇다면 추론할 수 있는 건 하나뿐. 실루아는 당신의, 어쩌면 아내분의 ‘인형’이란 말이 되겠죠.”

인형이란 말에 게오르의 평정이 깨졌다.

“실루아는…!”

“예, 보통 인형이 아니지요. 당신과 아내분의 모든 정수가 담겨 있는… 그야말로 자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실루아는 게오르와 제이올린의 유산이다.

그리고 적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내가 반드시 파괴해야 할 사상 최악의 병기였다.

“정확히는 ‘둘째 딸’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 말이 게오르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분노했다.

“네 이놈!”

그의 분노에 이 일대의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과연 현자는 현자라는 건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세상을 요동치게 만들다니 대단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만병(萬兵)의 현자, 게오르 필립. 당신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일순 요동치는 세상이 정지했다.

“내 마지막 소원? 그게 뭔지 알고 하는 소리더냐?”

그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추론하는 건 어렵지 않지요. 영감님의 마지막 소원은….”

내 속삭이듯 하는 말에 그의 눈이 커진다.

“…원하는 게 뭐냐?”

게오르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었다.

“제가 머무는 동안 스승 노릇 좀 해주시지요.”

내 요구에 게오르는 혀를 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현자였던 마법사가 스승이라니, 호화롭기 짝이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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