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38화 (38/214)

제38화. 소망을 담은 인형 (3)

내가 아무런 저항 없이 양손을 들며 항복하자 노인, 게오르는 미심쩍은 얼굴로 날 노려봤다.

그는 계속 마력을 발산하며 날 경계했다.

게오르의 지시에 실루아는 날 흘끔 보고는 게오르에게 쪼르르 향했다.

게오르는 그런 실루아를 보호하듯 뒤로 보내며 앞을 막아섰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게오르의 물음에 실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없어요. 아버지.”

역시 저 꼬마는 게오르의 딸이었나.

게오르는 <겨울나무의 숲>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점에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 심리나 행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다만 그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기에 그들이 하는 게오르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단편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프레시아를 일부러 게오르의 방위 결계 안에 밀어 넣고 온 거다.

내가 추측한 게오르는 경계심이 강하다.

병으로 약해졌으니 그러한 심리는 더더욱 강해졌을 거다.

반면 프레시아는 너무 강하다.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게오르의 경계심을 지나치게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프레시아는 내 지시가 아니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지만, 지금 내 곁에 있었다면 게오르의 마력에 최소한의 전투태세는 갖췄을 거다.

그랬다면 경험이 풍부한 게오르는 더더욱 경계하며 신경을 곤두세웠을 테고, 최악의 경우 프레시아와 게오르가 전투를 벌였을 수도 있었다.

물론 게오르의 경비 인형들로 길버트를 단련시킬 셈도 있었지만 말이다.

“네놈은 누구냐?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침입했지?”

게오르의 물음에 나는 물음으로 대답했다.

“영감님께서는 아바스엘을 아십니까?”

내 되물음에 그는 미간을 좁혔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게오르의 호통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묻는 말에 대답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감님께서는 제가 숲 외곽에서 마력의 흐름을 따라 들어오고 중심부에서는 열쇠의 인도를 따라 들어왔다는, 방법에 대한 답을 듣고 싶으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왜 여기 왔는지, 들어오는 방법은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듣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내 능청스러운 말에 게오르는 보다 미간을 좁혔다.

아마 분노보다는 내가 물은 아바스엘에 대해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바스엘이란 것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역시 기억하지 못하나.

하기야 게오르가 은둔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바로 기억해 내는 게 더 이상한 시간이다.

“그럼 위즐가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내 물음에 게오르는 기가 차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이 나라에 사는 마법사가 위즐가에 대해서 모를 거라… 잠깐.”

그는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미간을 좁혔다.

“설마 네놈이 말한 아바스엘이 위즐가의 천둥벌거숭이 소가주 녀석과 붙어 다니던 범생이 아바스엘을 말하는 거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아바스엘은 과거 현자 후보로 첫손가락에 꼽히던 만큼 전 현자인 게오르와도 인연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가 아는 아바스엘은 아직 어린 학생이었던 데다 직접적인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 물음에 바로 떠올리지 못한 거다.

“네가 내 아내의 제자와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아바스엘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게오르가 아니라 이미 사망한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 ‘제이올린 필립’은 현자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게오르나 현자가 될 거라 불린 아바스엘 못지않게 천재로 유명했던 마법사였다.

아마 그녀의 몸이 선천적으로 약하지만 않았다면 역사상 최초로 현자 부부가 되었을 거라 평가될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제가 그의 지팡이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바친다는 건 마법사에게 있어 충성을 맹세했다는 의미였다.

“…네가? 그 오만한 녀석에게?”

천재는 대부분 그렇듯 오만한 구석이 있다.

그건 아바스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오르가 보기에는 내가 아바스엘의 지팡이를 받을 만큼 특출 나 보이진 않을 터였다.

나도 인정한다. 아바스엘이 처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의 주인이 될 수 없었을 거다.

“운이 나빴죠.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바스엘의 불운을 이용하여 그의 주인이 되었다.

게오르는 선뜻 믿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손을 들어 옆에 서 있는 미녀 인형의 전투태세를 풀게 했다.

“그래, 아바스엘이라면 내가 있는… 정확히는 내 아내가 있는 곳에 대해 알고 있을 테지. 제이올린은 꾸준히 범생이와 천둥벌거숭이 녀석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했으니까.”

제이올린은 아바스엘과 위즐가 가주의 정식 스승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그녀는 말년에 몸을 혹사하는 연구에서 물러나 마법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썼다.

그들은 그녀의 수많은 학생들 중 두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이올린이 두 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그저 교사 수준이 아니었다.

“제이올린 님은 아바스엘이 은사(恩師)라 부르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게오르는 잘 모르지만 제이올린에 대해 많이 아는 이유도 그 두 사람이 결단의 순간에 끊임없이 그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게오르와 제이올린의 유산이 니벨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10년 전 아바스엘은 니벨과 어울리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에는 제이올린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바스엘과 니벨의 악연은 참 연이 깊었다.

“제이올린에게도 아바스엘은 그냥 학생이 아니었지. 그래서 가끔 나도 지나가며 작은 가르침을 주기도 했고.”

게오르는 추억에 잠긴 듯 미소를 지었다. 날 경계하는 태도도 약간 누그러지는 게 보였다.

“제이올린과 범생이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테니 일단 믿어보겠다. 그러면 궁금한 게 두 가지구나.”

“말씀하시죠.”

“하나는 네 정체, 다른 하나는 네가 이곳에 온 이유다.”

게오르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에게 내 정체를 알려도 괜찮은가?

그에게 알림으로서 적에게 내 위치가 노출될 가능성은 없는가?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지만 계산은 금방 끝났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제 소개를 드리자면, 이 나라의 1왕자 유안 델 아즈데미안 듀플리온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병의 현자시여.”

내 소개에 게오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금세 경계의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왕자? 자밀 왕후의 소생인가?”

왕자 유안의 나이가 올해로 열일곱이다. 게오르가 은둔하고도 몇 년이나 지나 태어났으니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게오르의 반응이 꽤 날카롭다. 은퇴해 은둔하기 전 왕후와 정치적인 알력이라도 있었던 건가?

“아니요. 파라멜라 비(妃) 소생입니다.”

내 대답에 게오르는 다시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파라멜라 님의?”

‘님’? 천하의 무서울 것 없는 마도팔현(魔道八賢) 중 일인이었던 현자급 마법사가 남을 지칭할 때 ‘님’?

왕실 사람이라 존칭을 붙인다기에는 더 높은 위치인 왕후에게는 딱히 존칭을 붙이지 않았다.

왕자 유안의 모친에게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나?

순간 소설 속 내용을 빠르게 복기해 봤지만 딱히 짚이는 문단이나 구절은 없다.

나는 일단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소설 속 내용이 전부다.

그 외에는 써먹지 못할 유안의 파편화된 기억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가.”

게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경계심을 전부 지웠다.

“그래서 여기 온 목적은?”

“여기 온 목적은… 여러 가지 있긴 한데, 혹시 방위 결계 쪽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내 물음에 게오르는 숲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면 숲에 침입자가 있군.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긴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군. 저 침입자들과 자네가 무슨 상관이 있나?”

의아하게 날 바라보는 게오르를 보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제 기사들입니다. 훈련이 필요해서 영감님의 전투 인형이 있는 결계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기함을 토했다.

“뭐?!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결계를 지키는 인형들이 어떤 녀석들인데!”

“아, 괜찮습니다. 훈련이 필요한 녀석이 죽지 않도록 호레이즌 경의 제자를 보호자로 같이 넣었으니까요.”

내 대답에 게오르는 정신이 아득해졌는지 이마를 짚으며 휘청거렸다.

“이, 이런 미친놈을 봤나! 호레이즌, 그 어린놈의 제자라고 해봤자 핏덩이 아니냐! 누가 누굴 지켜!”

그가 아는 호레이즌은 그저 아직 재능 넘치는 젊은 기사였을 거다.

물론 그 괴물은 젊어서도 괴물이었겠지만 그가 기억하는 것은 천하십검의 검호가 아닌 슈퍼루키 호레이즌이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시면 난이도 조절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내 부탁에 게오르는 어이없어하며 마법지팡이를 휘둘렀다.

“이제 됐다. 여기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들어가지. 식사는 했나?”

“점심은 아직입니다.”

“그럼 이른 점심이라 생각하고 같이 먹지. 질리안 79호, 손님 몫까지 식사와 차를 준비해라.”

게오르의 명령에 미녀 인형, 질리안 79호는 허리를 숙였다.

“마스터의 명령 ‘손님 몫까지 식사와 차를 준비해라.’를 이행합니다.”

질리안 79호가 부엌으로 향하자 게오르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고갯짓했다.

“들어오거라. 듣고 싶은 이야기가 꽤 많으니.”

“그럼 감사히.”

나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 *

프레시아는 몰려드는 인형 군단을 검풍으로 밀어내며 길버트가 인형과 1대 1로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

무조건적으로 길버트를 지키며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임무였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건 유안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녀의 주군은 신입 기사가 빠르게 강해지길 바랐다.

그렇기에 이런 지옥 같은 환경으로 밀어 넣은 거다.

“아악!”

길버트는 비명을 지르며 땅을 굴렀다.

벌떼같이 몰려드는 인형들을 물리는데도 힘이 드는데, 심지어 인형 하나하나의 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프레시아는 길버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인형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빨리 일어나라! 여기서 죽고 싶은 거냐!”

“아닙니다!”

프레시아의 호통에 길버트는 빠릿하게 일어서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 훈련을 하지 말 걸 그랬다며 속으로 후회했다.

길버트도 길버트였지만 프레시아도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인형을 몰살시켜 길버트가 성장할 환경을 없애지 않도록 주의하면서도 그가 크게 다치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인형들이 보통 인형이면 모르겠는데, 중간중간 그녀도 무시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인형이 섞여 있었다.

“움직여!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프레시아의 호통에 길버트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말로 목숨을 걸고 움직이다 보니 길버트가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두 사람이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때 갑자기 인형들의 눈에 붉은 빛이 사라지더니 덤벼들지 않고 그들을 넓게 둘러쌌다.

“어?! 뭐, 뭐죠?”

길버트의 물음에 프레시아도 긴장하며 대답했다.

“나도 모른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두 사람이 한껏 긴장하고 있을 때 인형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여성 인형이 걸어 나왔다.

“침입자들이여, 마스터의 전언입니다. ‘자네들 주인의 부탁으로 훈련을 도와줄 테니 열심히들 해보게나.’ 이상입니다.”

게오르의 전언을 전한 인형은 다시 인형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인형 두 체가 무리 속에서 나왔다.

그 모습을 본 길버트는 프레시아를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훈련을 돕겠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은데요?”

프레시아는 인형의 수준을 가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적어도 이 숲의 주인이 왕자님께 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 같아.”

그렇다고 해도 호위인 자신이 여기서 놀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빨리 처리하고 왕자님의 곁으로 가자.”

“예!”

프레시아와 길버트는 인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이야, 잘 싸우네.”

나는 질리안 79호가 내온 쿠키를 베어 물며 작은 인형이 영사기처럼 보여주는 프레시아와 길버트의 싸움을 관전했다.

쿠키가 맛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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