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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35화 (35/214)

제35화. 거래 (3)

나는 슬쩍 창문 밖을 흘겨보며 물었다.

“적들의 수준은?”

내 질문에 프레시아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적들 중에 제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이가 있는 게 아니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프레시아가 단언한다는 건 내 예상대로 날 죽이기 위해 온 녀석들 중에 내가 이름을 알 만한 녀석은 없다는 말이었다.

역시 왕후의 폐서인을 막기 위해 왕국에 있는 아르카나의 간부들도 정신없이 바빠진 모양이다.

내 노림수였지만 제대로 먹혀들어서 다행이다.

아르카나의 ‘숫자’를 부여받은 네임드 대간부가 와도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게 여러 대비를 해두기는 했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넘버즈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 나는 긴장한 듯 검을 뽑는 길버트를 보며 물었다.

“프레시아, 네가 보기에는 길버트의 무력은 어느 정도지?”

내 물음에 프레시아는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일반 병사보다 못합니다.”

가혹한 평가에 길버트는 울상을 지었다.

“정확하게.”

“근력, 체력, 민첩성 등 전반적인 신체 능력은 일반적인 종기사를 웃돌고, 검술도 생각보다 체계가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적들을 상대하기에는?”

이번에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잘하면 적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습니다.”

좋아, 길버트는 믿을 수 없겠군.

나는 사념파로 나비와 누니에게 날 보호할 것을 지시하고는 말했다.

“그래? 하나 정도는 길버트를 위해 남겨놔. 실전만큼 좋은 성장 요소가 없잖아?”

내 말에 프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길버트는 더욱 긴장했다.

“아, 적들을 처리할 때는 가급적 여럿이 난전을 벌이다 공멸한 것처럼 꾸밀 수 있겠어?”

기왕 다른 호위가 있으니 프레시아의 실력은 숨겨두고 싶었다.

“가능합니다.”

슬슬 병사들과 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날 지키는 병사들이 전멸한 듯 했다.

쯧쯧, 이래서 내부 정치질로 올라온 것들은 써먹을 데가 없다니까.

“좋아, 내 적들을 처리해.”

내 허락이 떨어지자 프레시아는 마차를 박차고 나갔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않는다!”

“고작 계집애다! 빨리 처리하고 왕자 유안을 확실히 포박해 데려간다!”

복면을 한 적들은 살기를 내뿜으며 프레시아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프레시아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지더니 갑자기 적 다섯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다시 나타난 프레시아가 검을 휘두르며 피를 털어내지 않았다면 그냥 저절로 목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아리사와 마주쳤을 때는 진심이 아니었구만.

아니, 저것도 진심은 아니겠군.

“보였냐?”

내 물음에 길버트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세 명째까지는 어떻게든 봤지만 그 후부터는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러냐? 난 그냥 순간이동 한 것처럼 보이던데.

나는 길버트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마차 문을 열었다.

“괜찮아. 시간만 있으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게 될 거야.”

정확히는 할 수 있게 만들 거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길버트는 내 말을 위로라고 생각했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겠습니다!”

마차에서 나오니 스무 명에 달하는 암살자들은 제압된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쓰러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꽤나 중요한 타겟인 만큼 나름 고르고 고른 놈들로 보냈을 텐데, 이렇게 쉽게 제압되다니.

새삼 프레시아가 대단해 보였다.

“명령을 완수하였습니다.”

프레시아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런가, 살인은 처음인 건가.

호레이즌에 의해 철저하게 단련되었다고는 하지만 프레시아는 아직 만 열다섯 살의 여자아이였다.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

나는 프레시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네가 없었다면 난 오늘 죽었겠지. 고맙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작은 위로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같이 싸울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되었지만 내가 전투에 참여해 봤자 방해만 될 뿐이었다.

역시 강해져야겠다. 적어도 발목을 잡지 않는 정도는 되어야지.

“…아닙니다. 기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프레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나자 진정되었는지 프레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아니야, 그런 추태라면 계속 보고 싶네.”

귀여웠으니까.

“와, 왕자님!”

내가 장난스럽게 놀리자 프레시아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나는 프레시아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고는 길버트에게 말했다.

“자, 실전이다. 각오는 되었나?”

“예!”

길버트는 싸구려 철검이 아니라 난쟁이제 검을 들었다.

준비가 된 듯하자 나는 멀찌감치 떨어지며 프레시아에게 눈짓했다.

“커억!”

프레시아가 마력이 담긴 주먹으로 기절한 암살자의 뒤통수를 때리자 암살자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히익!”

암살자는 프레시아를 보자 기겁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팔이 꺾이고 목에 칼이 대어지자 도망치는 걸 포기했다.

나는 마차 입구에 걸터앉으며 암살자에게 물었다.

“살고 싶나?”

내 물음에 암살자의 눈이 흔들렸다. 암살자가 대답이 없자 프레시아는 팔을 비틀었다.

“윽!”

“왕자님의 질문에 대답해라.”

“사, 살고 싶습니다!”

명백히 겁에 질려 있었다.

암살자 실격이구만. 암살자라면 모름지기 붙잡혔을 때는 입안에 숨겨둔 독단 같은 거라도 삼키고 자결해야지.

하기야, 현실에서 광신도나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짓을 하는 미치광이는 드물다.

누구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법이다.

나는 그런 암살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네가 살 수도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이 녀석과 싸워 이겨라.”

내가 길버트를 가리키자 암살자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럼 적어도 널 제압하고 있는 사람의 손에 죽진 않을 거야.”

내 말에 암살자는 갈등했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내 유흥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할 거냐, 말 거냐?”

목에 대어진 칼에 살갗이 베이자 암살자는 다급하게 외쳤다.

“하, 하겠습니다!”

프레시아만 아니면 충분히 도망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좋아.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 물론 도망칠 자신이 있으면 말이야.”

내가 고갯짓을 하자 프레시아는 비틀었던 팔을 풀어주었다.

손이 자유로워진 암살자는 검을 들었다.

그는 잠시 흘끔거리며 날 보았지만 이내 길버트에게 집중했다.

아마 내 암살각을 잰 것 같은데, 거리가 거리다 보니 암살을 시도했다가는 내게 도착하기도 전에 프레시아에게 죽을 거란 계산이 나온 듯했다.

암살자와 길버트는 서로 노려보다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챙!

암살자가 길버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고, 길버트는 암살자의 검을 쳐내며 그대로 힘으로 휘둘렀다.

길버트에게 힘으로 밀린 암살자는 크게 물러나며 단검을 꺼내 던졌다.

갑자기 단검이 날아오자 길버트는 당황하며 검으로 쳐내는 실수를 했다.

암살자는 단검에 신경이 몰린 길버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읏!”

길버트는 당황하면서도 검집을 소환해 검을 쳐냈다.

난쟁이가 만든 검집이라 그런지 어지간한 검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판단 실수가 있었지만 임기응변이 좋네요. 하지만 역시 움직임이 굳어 있어요.”

프레시아는 길버트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보며 개선할 점을 파악했다.

프레시아의 지옥 훈련에 죽어나갈 길버트를 위해 미리 묵념해 두자.

“이제 둘 다 전력을 내려는 모양입니다.”

프레시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암살자와 길버트는 마력을 끌어 올리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각자의 검에 푸르스름하고 갈색의 마력이 서리며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전투를 지켜보던 프레시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저렇게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프레시아의 말에 나도 길버트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는 여유롭게 상대하던 암살자가 길버트의 검을 피하며 점차 힘겨워하는 게 보였다.

“역시 왕자님이세요. 처음 길버트를 들일 때는 동정심 때문이 아닌가 했는데 저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신 거군요.”

“어… 그렇지! 그렇고말고.”

프레시아의 감탄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잘 싸우는 건 알겠는데 프레시아가 인정할 정도의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암살자와 길버트의 전투는 팽팽한 것을 넘어 이제 내가 봐도 길버트가 몰아붙이기 시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길버트가 암살자의 허점을 노리고 검을 찌르려는 그때, 암살자는 몸을 비틀어 길버트의 눈에 흙을 뿌렸다.

“윽!”

갑자기 흙을 뿌릴 줄은 몰랐는지 눈에 흙이 들어간 길버트가 주춤하자 암살자가 목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그만!”

내 외침에 프레시아가 끼어들어 암살자의 검을 막고 다시 암살자를 제압했다.

다시 제압되자 당황한 암살자는 나를 바라봤다.

“야,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쯧, 암살자 주제에 약속을 찾기는. 양심이란 게 없구만.

“내가 말한 조건은 이기라는 거였지 죽이라는 게 아니었다.”

내 말에 암살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프레시아의 눈치를 봤다.

그래, 무서운 건 내가 아니라 프레시아란 말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프레시아에게 말했다.

“풀어줘.”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내 지시에 프레시아는 별수 없다는 듯이 검을 치웠다.

“꺼져라.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다.”

내 말에 눈치를 보던 암살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떠냐, 경험 부족은 실감했나?”

내 물음에 길버트는 눈에 들어간 흙먼지를 빼내며 시무룩해졌다.

“…예.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알면 됐다. 날 지키려면 더 강해지면 된다.”

나는 식자재 창고에서 특수 주문 제작한 석궁과 화살촉을 꺼냈다.

그리고는 시위를 당겨 돌멩이 대신 화살촉을 고정시키고는 도망치는 암살자를 겨누었다.

“나비, 풍량 풍속 조절, 궤도 조정. 누니, 마력 50 충전.”

내 지시에 나비와 누니가 내 마력을 끌어내며 힘을 사용했다.

“셋, 둘, 하나, 격발!”

내가 방아쇠를 당기자 화살촉이 발사되며 고무로 이루어진 검은 관을 통과했다.

동시에 번개의 정령인 누니가 관 속에 내장된 구리선에 전류를 가하며 관을 통과하는 화살촉을 급격히 가속시켰다.

슉-!

음속이 넘는 속도로 가속된 화살촉은 나비가 준비한 바람길을 따라 암살자의 머리에 깊이 박혔다.

“음, 이 정도 마력으로는 음속을 간신히 넘기나.”

내가 특수 제작한 석궁은 말하자면 코일건이다.

그나저나 탄속이 음속을 조금 넘는 수준이면 고작해야 권총 탄 정도인가.

덕분에 반동도 거의 없어서 좋지만 위력이 아쉽다.

적어도 화살촉이 박히는 게 아니라 관통할 줄 알았는데.

뭐, 부족한 위력은 누니에게 사용하는 마력이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니 적정량은 차차 조정하면 된다.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 둘까.

그런데 두 사람이 날 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지 살려 준다고는 안 했잖아. 기회를 못 잡은 저놈이 잘못이지.”

내 능청스러운 말에 길버트가 프레시아를 바라보자 프레시아는 격려하듯 말했다.

“익숙해지면 편하다.”

익숙해지다니 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현장을 조작하고 빨리 자리를 떠나야 했으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나는 식자재 창고에서 미리 준비해 둔 디벳이 제조한 특수 약물이 든 주사기와 왕후와 연결된 것으로 보일 증거품들을 꺼냈다.

왕과의 거래대로 증거 조작 시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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