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26화 (26/214)

제26화. 발 없는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힐 때 (1)

프레시아는 날 보며 소리쳤다.

“잘하시고 계십니다!”

“아니, 잘하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프레시아는 열심히 균형을 잡아가며 말을 타는 나를 격려했고, 옆에 선 그녀의 스승 호레이즌은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님, 너무 긴장하고 계십니다. 몸이 굳으면 기민하게 반응할 수 없게 됩니다. 긴장을 푸십쇼!”

호레이즌의 잔소리에 나는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대답했다.

“저, 저도 노, 어으! 노력하고 있습! 어으! 있습니다!”

나는 말이 장애물을 넘는 구간마다 신음소리를 내며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저 두 사람의 가르침은 미쳤다.

오늘 처음 말 타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장애물 코스를 돌게 하다니!

그나마 빠르지 않게 움직여서 다행이지 프레시아가 시범을 보인 대로 기마 기예를 선보이며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했다면 수십 번은 낙마했을 거다.

“저 정도 코스는 경이 다섯 살 때 여유롭게 돌던 코스지 않았나?”

호레이즌이 동의를 구하자 프레시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오히려 어렸을 때라 겁먹지 않아서 잘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음, 익히기 좋은 시기를 놓쳤다는 말인가? 일리가 있군. 그럼 더 혹독하게 해야지.”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날 바라봤다.

사, 살려줘!

* * *

한참을 말 위에서 초주검 상태로 버틴 나는 간신히 말에서 내려왔다.

“주, 죽는 줄 알았다.”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한 손으로 땅을 짚었다.

나중을 위해 시간이 있을 때 익혀 두겠다고 프레시아에게 부탁한 내가 바보였다.

“괜찮으세요? 왕자님께서 제게 무언가를 가르쳐 달라고 하신 게 오랜만이라 기뻐서 그만….”

프레시아는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부들거리는 날 보며 우물쭈물했다.

프레시아가 말하는 가르침이란 그녀가 막 왕자 유안의 기사가 되었을 무렵 검을 가르쳤을 때를 말하는 거였다.

소설 속의 프레시아는 몸이 허약한 유안이 하루 만에 근육통 때문에 며칠을 앓아눕느라 교육을 그만두었다고 회상했었다.

“아니, 괜찮아. 곧 좋아지겠지.”

굳이 말이 아니어도 나중을 위해 무언가를 타는 건 배워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프레시아의 부축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엉덩이야… 검은 절대 배우지 말아야겠다….”

전문 분야가 아닌 승마 하나 배우는데도 죽을 맛인데 검을 배우려 했다간 무슨 지옥을 경험하게 될지 무서웠다.

“그럴 수가, 왕자님 너무하십니다.”

나중에 날 구슬려 검을 가르칠 생각이었는지 프레시아는 정말로 풀이 죽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영혼 없이 웃었다.

“아. 하. 하. 하. 아니야, 하나도 안 너무해.”

단호하게 말한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슬슬 겨울도 끝자락이라 그런지 기온도 꽤 푸근해졌다. 야드와 함께 떠난 아바스엘은 잘 있는지 모르겠다.

아바스엘이 자유를 되찾고 떠난 지 벌써 사흘 정도 지났다.

그가 떠나기 전 비밀 통로로 그를 왕궁으로 데려와 제1 왕자가 줄 수 있는 기사 서임과 왕족 직속 기사 신분패를 건넸다.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하긴 했는데 애초에 그날 헤어질 계획은 없었던지라 같이 왕궁까지 오는데 상당히 뻘쭘했다.

어차피 따로 사용할 생활비와 호신용품 같은 것도 줘야 했으니 겸사겸사 부티크에서 받은 공간 확장 가방에 챙겨줬다.

“오늘 오후에는 밖으로.”

내가 프레시아의 귓가에 속삭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길버트랑 그 동생도 챙기고, 디벳 영감에게 손녀도 찾아줘야 했다.

또 시간이 된다면 5대 상단 중 하나인 네슬릭 상단의 수도 지부에도 방문을 하고 싶은데, 문제는 왕궁을 계속 돌아다니는 것도 멈출 수 없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왕궁 순회는 일종의 낚시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떡밥을 뿌리며 입질이 올 때까지는 계속해야 했다.

왕후의 인내심이 언제쯤 떨어질지 모르겠다.

“에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네.”

장난스럽게 웃으며 프레시아와 농담을 주고받는데 연무장 출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입니까! 호레이즌 경!”

“아니, 오해십니다.”

뭔 일인가 싶어서 입구 쪽을 보는데 금발의 싸가지 없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 호위 기사들을 대동한 채 호레이즌에게 뭐라고 따지고 있었다.

“그 반푼이는 가르치시면서 어째서 제 검술은 봐주시지 않는 겁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해입니다, 유바하 왕자님. 전 유안 왕자님의 검술을 봐준 적이 없습니다.”

제2 왕자 유바하는 호레이즌의 말을 믿지 않는지 얼굴을 붉혔다.

“거짓말하지 마십쇼! 그 얼간이가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이 황금 사자 기사단의 연무장에 발도장을 찍는 건 알고 있습니다!”

철없는 애새끼가 떼쓰는 모습은 영 꼴불견이었다.

왕후가 오냐오냐 기르니 애새끼 인성이 저 모양이지. 아니, 저 성격은 왕후의 유전자인가?

저 머저리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기사들과 어울리며 검술을 배우길 좋아했다.

훌륭한 왕으로 키우고 싶은 왕후로서는 골머리 좀 썩을 일이었다.

그래도 생일 선물로 난쟁이제 검을 선물할 정도로는 아끼는 모양이었지만 말이야.

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젓자 프레시아는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왕자님, 저쪽으로 가면 연무장 뒷문이 있습니다.”

확실히 마주치면 귀찮아질… 잠깐, 저놈은 이용해 먹을 수 있겠는데?

내가 미소를 짓자 프레시아는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또 무슨 꿍꿍이세요?”

“무슨 꿍꿍이냐니? 우리 사이에 너무 신용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네. 그냥 형제끼리 친목을 다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나는 웃으며 프레시아가 가리킨 방향과 정반대인 2왕자와 호레이즌 쪽으로 향했다.

“하아… 그럼 그렇지.”

프레시아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내 뒤를 따랐다.

“호레이즌 경이 고생이 많습니다.”

내가 가능한 유약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자 호레이즌은 하필이면 지금 이곳으로 오냐는 듯이 날 바라봤다.

연무장 안쪽에서 걸어오는 날 본 유바하는 얼굴을 붉히며 내게 삿대질을 했다.

“보십쇼! 저 얼간이가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해라고 하실 셈이십니까?!”

유바하의 멍청한 소리에 호레이즌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온화한 미소를 꾸며내며 타이르듯 말했다.

“유바하, 호레이즌 경은 바쁜 몸이다. 그렇게 떼를 써서 될 일이 아니란 것쯤은 알지 않니?”

유바하가 날 볼 때 나는 타이밍을 맞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얕잡아 보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바꿨다.

“너…!”

원래도 흥분해 있던 유바하는 순간 스쳐 지나간 내 표정에 완전히 뚜껑이 열린 듯했다.

“너 같은 얼간이가 감히 뭐라고 내게 훈계를 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찔찔 짜는 것밖에 못 하는 놈이!”

단순한 새끼, 고작 이 정도 도발로 이성을 잃다니.

정치적으로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라면 지금 가장 상대해선 안 되는 사람이 나란 사실을 잘 알 텐데 못 배워먹은 놈이군.

푸하하핫! 왕후가 완전히 자식 교육을 망쳤잖아?

나는 속내와 달리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아, 진정하렴. 왕자로서 품위를 지켜야지.”

그리고 또 유바하에게만 보이도록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내 말은 주변 기사와 근위병들에게는 고작해야 왕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이야기하는 것 정도로 들리겠지만 유바하에게는 이렇게 들릴 거다.

‘이 못 배워 처먹은 망종아! 제발 품위 좀 지켜라!’

물론 내 의도는 전자보다는 후자니 유바하가 들은 의미가 맞다.

“뭐…!? 뭘 지켜? 이 얼간이 새끼가!”

그래! 그렇게 화를 내! 이참에 손찌검까지 해주면 좋고! 날 때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유바하의 시종은 주먹을 치켜 드려는 유바하를 막았다.

“왕자님! 진정하세요! 호레이즌 경도 보고 있습니다.”

시종의 만류에 유바하는 주먹을 내리며 호레이즌의 눈치를 봤다.

계속해서 호레이즌의 가르침을 부탁하는 처지에 언성을 높이는 정도라면 몰라도 싸움을 벌이는 건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이었다.

저 다혈질을 간단하게 막다니, 시종은 조금 유능한 듯했다.

“왕자님 지금은….”

“그래! 진정한 듯하니 다행이구나!”

나는 유바하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려는 시종의 말을 자르며 유바하의 속을 살살 긁었다.

그저 말싸움 정도로만 끝나는 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유바하, 아무리 네가 왕자 중 하나라고 하지만 이곳은 군사 시설이란다. 시설 책임자의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이는 건 좋지 않아.”

나는 마치 윗사람이 타이르는 것처럼 훈계를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연무장은 왕궁 내에 위치한 근위대의 병영(兵營) 내부였다.

내가 하는 말은 일견 정론이었지만 뜻한 바는 이랬다.

‘나는 책임자인 호레이즌에게 허락을 받았지만 넌 아니다. 즉, 나는 호레이즌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너는 아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머리는 돌아가는지 내 말의 의미는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나와 호레이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는 호레이즌에게 외쳤다.

“제가 저 녀석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저 얼간이는 되고 저는 안 되는 겁니까!”

흥분한 유바하는 이성을 잃고 그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저 녀석은 기사랍시고 계집애나 끼고 다니는 한심한 녀석이 아닙니까!”

아이고, 하필이면 호레이즌이 딸처럼 여기는 프레시아를 건드려 버렸다.

멍청한 녀석,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도 몰라도 상대를 봐가며 말해야지.

두 사람의 관계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라 주변 기사들은 사색이 되었다.

호레이즌의 표정이 순간 굳는 게 눈에 보였지만 2왕자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말을 이었다.

“저런 녀석은 호레이즌 경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 없습니다! 저런 놈이나 가르칠 바에는 제게 가르침을 주십쇼!”

유바하의 부탁에 호레이즌은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송구하지만. 저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들어보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건만 저 머리에 근육만 가득 찬 놈은 모르겠는지 다시 한번 호레이즌에게 부탁하고자 다가왔다.

나는 손으로 살짝 입가를 가리며 2왕자에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만 소리를 냈다.

“풋!”

내가 작게 웃는 소리에 유바하는 날 바라봤고 나는 살짝 손을 치워 비웃는 입가를 보여줬다.

더 이상 도발은 필요 없었다.

내 비웃음을 본 2왕자는 시종이 말릴 새도 없이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에 프레시아와 호레이즌이 반응해 막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프레시아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하는 동시에 눈썰미 좋은 호레이즌이 알 수 있도록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신호에 멈춰 선 둘 사이에 유바하의 주먹이 휘둘러졌고 나는 고개를 뒤로 빼 충격을 완화시키며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지는 찰나의 순간 주변을 확인해 봤다.

목격자는 기사 열둘에 병사 스물 가량, 거기에 저 멀리 지나가는 시종 여섯까지.

좋아, 목격자는 충분하군.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프레시아와 호레이즌은 넘어지는 날 부축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나는 호레이즌의 팔을 잡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아바마마의 뜻이니 함구령은 내리지 마십쇼.”

호레이즌의 놀라는 얼굴을 뒤로하며 나는 눈물과 함께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동생아! 오늘은 밖이잖니!”

내 말에 주변 사람 모두가 놀라서 2왕자를 바라봤다.

유바하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날 바라봤다.

애초에 2왕자는 1왕자를 하찮게 보긴 했지만 딱히 찾아가서 폭력을 휘두를 만큼의 관심은 없었으니 머리가 달리는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반면 2왕자의 시종은 사색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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