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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24화 (24/214)

제24화. 어리석은 현자와 현명한 광대 (8)

아리사에게서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자 나는 잡고 있던 프레시아의 손을 놓았다.

내가 손을 놓자 프레시아는 앉은 자세 그대로 언제 뽑았는지 모를 검을 천천히 검집에 집어넣었고, 아리사의 목이 반 정도 잘리며 피가 뿜어졌다.

자세가 불편했던 탓인지 프레시아의 검은 아리사의 마법 장벽을 베어냈지만 목을 절반밖에 자르지 못했다.

프레시아는 허공으로 피를 내뿜는 아리사를 노려봤다.

“감히 도련님께 살기를 보이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군.”

아니,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내 착각과 달리 아리사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는 시간이 되돌려지듯 다시 목 안으로 들어갔다.

“냐하하하핫! 아프잖아! 망할 년아!”

이걸 안 죽었다고?! 무슨 괴물이냐?!

반쯤 잘린 목을 부여잡으며 빠르게 마력으로 실을 만들어 상처를 꿰맨 아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프레시아는 아리사가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의자에 앉은 채로 일어나는 아리사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무대 방향으로 걷어차인 아리사는 공중에서 회전하며 검붉은 마법 화살 수십 발을 날렸다.

“냐하하핫! 죽어!”

프레시아는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채 다시 검을 뽑아 휘둘러 모든 마법 화살을 베어냈다.

프레시아의 검격(劍擊)에 산산이 부서진 마법 화살은 마력 알갱이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조명에 비치는 마력 알갱이는 꽤나 아름다워 보였다.

“오오~!”

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이것도 하나의 쇼로 생각했는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눈앞의 미치광이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모르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너도 싸울 건가?”

프레시아가 니벨에게 검을 겨누자 니벨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관심 없으니 둘이 알아서 싸우세요. 한창 공연을 즐기고 있으니까 가리진 마시고요.”

니벨의 말에 아리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니벨에게 화를 냈다.

“야! 너도 싸우라고! 동료가 공격받았잖아!”

“별거 아닌 일로 당신이 먼저 그랬잖아요. 그리고 소란 피우지 말라는 지시를 또 잊은 모양이네요. 전 당신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겠어요.”

단호한 니벨의 선언에 아리사는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를 터트렸다

“냐하하하핫! 아직도 나한테 쥐어터진 걸로 삐진 거야?”

“아, 아니거든요! 당신! 빨리 죽여 버려요!”

니벨은 동료인 아리사가 아니라 프레시아를 응원했다.

아무리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지만 적을 응원해도 되는 건가?

프레시아가 니벨의 말에 어이가 없어 니벨을 바라보는 사이 아리사는 기습을 하듯 이번엔 수백 발의 마법 화살을 날렸다.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무수한 마법 화살은 마치 전쟁터 한복판에 앉아있는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프레시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러 마법 화살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리고는 이어서 검기를 날려 아리사를 공격했다.

“냐하하하! 아직도 앉아 있다니! 이런 모욕은 생전 처음 받아봐!”

수십 갈래의 검기를 방어막으로 막아낸 아리사는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명계에 잠든 허무의 왕이여….”

위력적인 마법 주문을 외우는 아리사를 보던 프레시아는 내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내가 지시하지 않았는데 먼저 움직인 게 걸리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냐, 잘했어. 여기 있으면 소란스러워질 테니까 튀자.”

몇 차례의 공방이 이어지자 이제 슬슬 관객들도 이상함을 느끼는지 웅성대고 있었다.

나는 아바스엘에게 잠잠해지면 객석에서 빠져나와 서커스단원 대기실로 몸을 피하라고 속삭이고는 프레시아에게 안겨 도망쳤다.

니벨은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언제든 가세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프레시아가 아바스엘까지 지키기에는 힘들지도 몰랐다.

마력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아바스엘이라면 오히려 홀로 움직이는 게 눈에 띄지 않고 안전했다.

“야! 싸우다 말고 어디 가!”

프레시아는 입구가 아니라 서커스 공연장 천막을 검으로 베어 그 틈으로 자리를 벗어났고, 아리사는 화를 내며 나와 프레시아를 쫓아왔다.

* * *

“자! 지금까지 저희가 준비한 마법을 이용한 실감나는 전투극이었습니다!”

야드는 활기찬 목소리로 방금 전의 급작스러운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오늘 실험적으로 특별히 한번 선보였는데 멋지지 않았습니까?”

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리사가 사용한 마법이 얼마나 살상력이 큰 마법들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마법들을 깨부순 검격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알아보고 기겁을 할 터였다.

하지만 공연장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마법에 대해 잘 아는 건 야드와 아바스엘, 그리고 니벨뿐이었다.

무대 위의 야드는 화려한 카드 마술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관심을 다시금 서커스 공연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을 본 아바스엘은 야드의 대처에 감탄하면서도 동료인 아리사가 떠났음에도 객석에 남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는 니벨을 힐끔 바라봤다.

그는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는지, 정말로 자신에게 저주를 건 게 그녀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동시에 이성적으로는 니벨이 자신의 원수이며, 성격상 이미 아바스엘을 머릿속에서 지웠을 거란 사실을 자각했다.

한때의 풋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들불처럼 번지는 증오가 전신에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좋은 관계라고, 첫사랑은 아니어도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어리석음이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아려왔다.

“으득!”

이를 간 아바스엘은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다음에 마주할 때는 이렇게 얌전히 떠나지 않으리라 각오를 다졌다.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니벨은 여전히 주변에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마치 십 년 전처럼.

* * *

“냐하하핫! 거기 안 서?”

아리사는 허공을 날며 나와 프레시아의 뒤를 쫓았다.

간간이 마법 화살을 날렸지만 프레시아는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피했다.

“서커스단에 아바스엘 씨를 놓고 온 게 걸리네요.”

프레시아가 내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며 걱정하자 나는 피식 웃었다.

“괜찮을 거야. 저 분홍 머리의 동료는 타인에게 극단적으로 관심이 적은 데다가, 아바스엘이 세상 물정을 좀 몰라도 마법도 못 쓰면서 적에게 덤빌 정도로 얼간이는 아니니까.”

만약 그런 얼간이라면 마법을 되찾는다고 해도 필요 없다.

“그런 정보는… 낮에 말씀하신 것처럼 조사를 통해서 얻은 건가요?”

“뭐, 그렇지.”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고 프레시아는 감탄했다.

“뭘 그리 쑥덕거려! 당장 안 서?!”

프레시아는 수도 외곽 인적 드문 농경지에 도착하자 멈춰 서고 날 내려줬다.

여기라면 겨울이라 아직 휴경기(休耕期)니 두 사람이 싸워도 큰 피해는 없을 터였다.

물론 상대도 거리낌 없이 싸울 수 있단 점에서 그리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인명 피해가 생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 무뢰한을 처단해도 괜찮겠습니까?”

“가급적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혹시라도 병사들이 몰려오거나 피해자가 생기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프레시아는 검을 뽑아들었다.

뒤늦게 따라온 아리사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사납게 웃었다.

“냐하하하하핫! 죽여버릴 거야! 그리고 내 컬렉션 안에 넣어주겠어!”

흉흉한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아리사의 그림자에서 무장한 언데드가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란이 일어나더라도 성당에서 성녀의 유물을 먼저 챙길 걸 그랬다.

그 유물이 있으면 위계가 낮은 언데드 정도는 접근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다.

“걱정 마십쇼. 제가 목숨 걸고 지켜 드리겠습니다.”

프레시아의 선언에 나는 든든함을 느꼈다.

나보다 키도 작고 어린 여자애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 나도 한심했지만 내가 약골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내 몸은 어느 정도 지킬 순 있으니까 목숨은 걸지 마.”

-냐옹~!

내 말에 화답하듯 나비가 울었다. 나비의 울음소리를 들은 프레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리사가 먼저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며 언데드들을 조종했다.

검을 들고 달려드는 스켈레톤 사이를 휘젓는 프레시아는 간결한 검 놀림으로 언데드의 핵을 파괴했다.

마법 핵이 파괴된 스켈레톤은 그저 뼈다귀에 불과했다.

“냐하하핫! 이제 시작이야! 나와라! 처형인 비비오! 듀라한 오큘로!”

이번에는 아리사의 그림자에서 허수아비처럼 생긴 누더기 언데드와 목 없는 기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일어나라! 스켈레톤 메이지 중대! 나이트 2소대!”

이어서 새하얀 해골이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프레시아는 언데드가 전부 나오기 전에 검기를 날려 언데드를 파괴했다.

“이히힛! 비비오랑 오큘로를 지켜!”

아리사의 지시에 스켈레톤은 두 네임드 언데드가 소환되기 전에 파괴되지 않도록 몸으로 감싸 지켰다.

동시에 그녀는 여러 마법을 자아내며 프레시아를 공격했다.

프레시아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리사의 공격을 피하며 검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리사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흉흉한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마력이 부딪치자 허공에 요란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냐하하하핫! 네 시체는 내가 잘 사용해 주지!”

“너야말로 화장해서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게 만들어 주겠다!”

아, 안 돼! 예상보다 두 사람의 마력이 너무 강했다. 여기가 아무리 외곽이라고 해도 수도다.

두 사람이 전력을 사용해 이 일대가 뒤집어지면 당연히 방위사령군이 출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그 여파에 휘말리면 약골인 난 무사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이해할 수 없군! 그런 하찮은 규칙 따위를 언제부터 중요시 여겼지? 일리우 아리사! 사사광도(死社曠禱)의 네크로맨서!”

내 말에 아리사는 마력 모으기를 멈추고 얼굴에 웃음기를 없애며 물었다.

“넌 누구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말했잖나, 놀고 있는 게 어르신께 들키면 혼이 난다고. 내가 누구인지 말하면 어르신께 가서 일러바칠 것 아닌가?”

아리사는 내 말에 멈칫했다.

내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너도 어르신을 모시는 사람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너와는 소속이 다르지만 말이야.”

물론 거짓말이다.

날 죽이려드는 놈들 밑으로 내가 왜 들어가?

하지만 내 블러핑은 아리사를 멈추기엔 충분했다.

프레시아와 아리사의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자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난동을 부리면 왕후가 싫어할 텐데?”

혓바닥 싸움으로 가면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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