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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25화 (225/227)

225화 괜찮으세요?

뜨끈한 수프와 빵.

거기다가 훈제로 구운 고기까지.

거기에 강현이 싸 온 도시락까지 더해지자 푸짐해졌다.

“우와.”

짧게 감탄을 토하는 헤나.

커다란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치 토끼를 보는 듯했다.

귀여운 그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란돌프 씨의 딸이란 게 믿기지 않네.’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전사의 모습인 란돌프에게 이렇게 귀여운 딸이 있다니.

그런 강현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헤나가 슬쩍 탁자 밑으로 얼굴을 숨겼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미안해.”

강현은 사과를 건네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라 하는 게 보였다.

얼굴까지 시뻘게진 헤나.

옆에 있던 제니퍼는 사랑스럽단 눈으로 헤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개지다 못해 울먹이기까지 하는 헤나를 본 후에나 둘은 시선을 뗐다.

고개를 돌리자 정신없이 먹던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어?

그런 눈빛.

헤나와는 다른 의미로 천진난만했다.

‘낮에 그렇게 먹었는데.’

벌써 배가 홀쭉해졌다.

경이로운 소화력.

쓴웃음을 흘린 강현이 머리를 쓰다듬자 간지러운지 몸을 흔든 설기가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리는 벌써 배가 부른지 강현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무릎 위에 쓰러진 토리가 힐끗 이동장을 보았다.

“같이 가 있을래?”

끄덕끄덕.

웃음을 흘린 강현이 토리를 이동장 안에 넣었다.

그러자 반갑게 맞이하는 루리.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건 루리만이 아니었다.

헤나가 뚫어져라 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제니퍼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아이네요?”

둘의 시선이 토리를 향해 있었다.

그 모습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토리가 보이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둘.

사람들이 루리를 볼 수 있었던 건 루리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강현은 놀란 눈으로 이동장을 보았다.

‘이런 기능도 있었구나.’

하지만 당연했다.

애당초 정령을 연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장치였다.

정령이 보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어느새 먹던 걸 멈추고 루리와 토리가 노는 걸 구경하는 헤나.

강현과 제니퍼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평화로운 식사 자리가 끝났다.

* * *

“그이가 많이 늦나 보네요. 빈방이 있으니 먼저 주무세요.”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제니퍼가 말했다.

둘의 앞에는 차갑게 식은 차가 놓여 있었다.

벌써 세잔 째.

강현은 슬그머니 옆을 보았다.

설기와 루리는 이미 자고 있었고, 토리와 헤나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길게 하품하는 토리.

“그럼, 하룻밤만 신세 지겠습니다.”

“신세라뇨. 편하게 지내다 가세요.”

싱긋 웃는 제니퍼.

그렇게 강현은 제니퍼의 안내에 따라서 방으로 향했다.

낡은 방.

강현이 머물렀던 여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설기도 어느새 일어나서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컹!”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그렇게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설기는.

집을 보면 사는 이들의 성향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여긴 손님을 위해 준비된 방처럼 보였다.

투박해 보이긴 했지만, 정이 느껴졌다.

강현은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설기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소란스러움에 강현은 눈을 떴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 창문 너머로 못 보던 천막이 보였다.

강현이 자는 동안 누군가가 쳐 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이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란돌프 씨?”

언제 온 건가.

자리에서 일어난 강현은 옆이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설기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자 천막 옆에 삐져나온 꼬리가 보였다.

헛웃음을 흘린 강현은 방을 나섰다.

밖과 달리 조용한 집.

‘다들 주무시나?’

아니면 밖에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빗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강현을 맞이했다.

“어? 이게 누구야. 주인공이 왔군!”

란돌프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란돌프 씨.”

인사를 받은 강현은 옆에 있는 이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로멘 님?”

로멘이 왜 여기에 있지?

답은 바로 나왔다.

“자네가 왔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이미 술을 마셨는지 코가 붉어진 로멘이 대꾸했다. 로멘뿐만 아니라 전에 봤던 기사들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심지어 영주성의 요리장도 있었다.

‘토마스였나?’

아까 보았던 마을 사람들까지 나와서 어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란돌프를 바라보니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들 모두가 자네를 보러 온 것이네.”

“….”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설기가 보였다.

꼬리를 흔들며 안주를 받아먹고 있는 설기.

빗방울이 새는 천막을 힐끗거린 강현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밖에서 드세요?”

다들 젖은 상태였다.

“안에서 먹으려고 했다가 쫓겨났네.”

란돌프는 그리 말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가 너무했어.”

“쫓겨나도 할 말이 없지!”

란돌프를 따라서 웃는 이들. 강현은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그러면 저를 깨우시지.”

“자는 이를 깨워서 되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예의가 없진 않네.”

란돌프의 말에 헛웃음을 흘린 강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빗소리 때문에 가려지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을 깨우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에서 먹으려다가 쫓겨난 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보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건가. 어서 오시게.”

란돌프의 두꺼운 팔이 강현을 붙잡았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술잔을 건넸다.

강현은 그중 하나를 받아서 홀짝였다.

시큼한 향과 함께 올라오는 단맛.

벌꿀주였다.

‘일어나자마자 벌꿀주라니.’

생소한 경험이었다.

“이런 빈속에 먹으면 안 되지.”

그런 건 주기 전에 말하는 게 아닌가.

이미 마신 후였다.

술잔을 건넸을 때처럼 사방에서 안주가 쏟아졌다.

집게나 꼬치로 집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 맨손이었다.

기름에 번들거리는 손들을 본 강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제가 먹을게요.”

그리고 산적처럼 생긴 고기 하나를 가져다가 입에 넣었다.

“음?”

눈을 껌뻑이는 강현.

“…이거 누가 만든 거예요?”

단순히 굽기만 한 게 아니었다. 안에 양념이 적절하게 베여 있었다.

강현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영주성의 요리사 토마스.

그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불만 있소?”

그러나 두 눈은 긴장으로 떨려 오는 게 보였다.

토마스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맛있어서요.”

설기가 붙어 있는 이유가 있었다.

눈이 커지는 토마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팔과 등을 툭툭 쳤다.

곧 토마스가 콧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많이 드쇼.”

“잠깐 너 우는 거야?”

“정말인가?”

“무, 무슨 소리를!”

토마스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더욱 몰려왔다.

“진짜네.”

“하긴. 우리로 보면 단장님이 칭찬한 것이나 다름이 없잖아.”

“노력을 인정받은 거니.”

능글맞게 웃는 이들을 본 토마스가 발끈했다.

“내, 내가 저자를 신경이나 쓸 것 같나!”

“그런 것치고는 강현 씨가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던 것 같은데.”

“나한테도 물어봤지.”

“난 연인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이익!”

결국, 주변의 놀림을 견디지 못한 토마스가 뛰쳐나갔다.

그 모습에 란돌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 놀리고 데려와라. 요리장은 너희와 다르게 몸이 약해.”

이 빗속에 돌아다녔다가는 병이 날 수도 있었다.

“예. 죄송합니다.”

“예.”

란돌프의 말에 사람들이 토마스를 찾으러 떠나갔다.

비 때문에 시끄럽다고 해도, 기사들의 기감을 피할 순 없었다.

곧 어둠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다고! …거야!”

“…!”

괜찮은 걸까. 강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기사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너머가 조용해졌다.

이야기 소리는 사라지고 빗소리만 들려왔다.

기분 나쁜 고요함.

언제가 봤던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처벅, 처벅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타난 건 기사들.

그중 한 명의 어깨에 토마스가 실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란돌프가 묻자 기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었다고?

이 날씨에? 비가 저리 쏟아지는데? 그리고 방금까지 싸우고 있던 것 아니었나?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란돌프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길래 훈련 좀 하라니까. 로멘 님도 조심하십시오.”

“자네가 시킨 건 매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다시 웃고 떠들기 시작하는 사람들.

강현은 구석에 짐짝처럼 놓인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진짜 잠이 들었다고? 기절이 아니라?’

혀까지 빼놓고 있는데?

하지만 사람들 누구도 토마스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감기 걸리지 않게 모포는 덮어 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은 벌꿀주를 홀짝였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웃고 떠들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내려놓는 술잔.

신나게 고기를 먹던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강현도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를.

처음에는 맹수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흠칫.

빗속을 가르고 나타난 건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인이었다.

귀신이라고 생각해서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어딘가 여인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인뿐만이 아니었다.

여인을 뒤따라 다른 이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여인부터 노파까지.

하나같이 싸늘한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허, 험. 날이 늦었으니 슬슬 들어가 봐야겠어.”

“아, 같이 가도 되겠는가? 오늘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러세. 가서 우리끼리 벌꿀주나 한 잔 더 하세.”

결혼 안 한 총각들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타난 이들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건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의 남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더 마시지?”

“…아니야. 가려고 했어.”

“아니야. 난 괜찮으니 더 마셔.”

“…진짜 들어가려고 했어.”

슬그머니 술잔을 내려놓는 이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하나둘씩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란돌프와 강현만이 남게 되었다.

“…우리도 그만 들어가야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란돌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서 한 잔 더 하세!”

강현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란돌프 씨는 괜찮으세요?”

“당연하지! 모처럼 자네가 오지 않았….”

란돌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제니퍼를 봤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내들처럼 차가운 눈빛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강현은 이쪽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강현은 힐끗 옆을 확인했다.

로멘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결혼을 안 한 사내들이 떠날 때, 따라간 것이었다.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건가.’

배신감과 감탄이 뒤섞인 오묘한 감정.

침묵을 깬 건 제니퍼 뒤에 있던 헤나였다.

“엄마, 나 졸려.”

“응, 미안해. 헤나는 들어가서 자. 이제 안 시끄러울 거야.”

“응.”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헤나.

곧 제니퍼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강현 씨도 고생하셨어요. 어서 쉬세요.”

“옙.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갓 입대한 신병처럼 빠릿빠릿하게 대답을 건넨 강현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당신은 이야기 좀 해요.”

“…예.”

강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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