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12화 (212/227)

212화 뭘 먹여야 하니

나무에 달린 열매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전에 봤을 때 메추리알 정도였다면, 지금은 달걀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반지 역시 열매 윗부분으로 올라가 있었다.

강현은 힐끗 토리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열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토리.

‘커진 것 때문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반응이 과했다.

다시 열매를 바라보는 강현.

그때.

“어?”

강현이 눈을 깜빡였다.

‘잘못 본 건가?’

방금 열매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움찔.

착각이 아니었다.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열매가 떨려 왔다.

하지만 이곳에 열매를 흔들 정도의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그 떨림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르르.

열매가 진동했다.

그리고.

토도독.

작은 소리와 함께 열매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은 순식간에 열매 전체로 번져 갔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 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곧 열매껍질이 깨져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열매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작은 생명체.

“…병아리?”

생김새만 병아리와 비슷했지만, 털의 색은 녹색 빛을 띠고 있었다.

앵무새와 섞인 느낌.

두 뺨에는 노란 반점이 찍혀 있었고, 머리에 쓴 반지가 인상적이었다.

병아리는 작은 머리를 몇 번이나 갸웃하더니 껍질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때, 흔들리는 나뭇가지.

이번에는 진짜 바람이었다.

당연히 나뭇가지 위에 있던 병아리도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위험…!”

강현이 황급히 병아리를 낚아챘다.

강현의 손에 올라간 병아리는 방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작은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곧 강현의 손바닥을 부리로 쿡쿡 찔러 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뺨을 비볐다.

귀여운 몸짓에 강현의 표정도 풀어졌다.

툭, 툭.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내리자 토리가 강현의 바지를 당기고 있었다.

“…알겠어.”

피식 웃은 강현은 조심스럽게 병아리를 땅에다 내려놨다.

토리와 눈이 마주친 병아리는 곧 강현에게 했던 것처럼 토리에게 뺨을 비볐다.

간지러운지 몸을 떠는 토리.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병아리.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강현은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봤다.

토리와 같이 뽈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병아리.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지만 머리의 반지는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한 몸처럼 보였다.

‘…정령, 이겠지?’

열매에서 태어난 새.

평범한 새는 아니었다.

게다가 보통의 병아리라면 태어났을 때부터 저렇게 뽀송뽀송한 털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다.

그때, 앞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토리가 불을 뿜은 것이었다.

힘껏 불을 뿜어낸 뒤 털썩 주저앉는 토리.

병아리가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몸을 움츠렸다.

“어?”

뽕.

목 주변에 거품이 올라왔다.

회색 거품.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듯했다. 병아리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회색 거품이 더 커졌다.

그리고 병아리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두둥실.

조금씩 허공에 떠오르는 병아리.

곧 자기가 한 일에 놀랐는지 작은 날개를 퍼덕거렸다.

그러자 목에 두르고 있던 거품들이 흩어졌다.

‘거품이 아니라 구름이구나.’

콩.

땅바닥에 떨어진 병아리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뽈뽈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한 모습.

토리가 호위처럼 병아리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에 강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달려가던 병아리가 벽에 부딪힌 것처럼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발을 헛디뎠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 뒤로도 비슷한 광경을 몇 번이나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무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건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강현은 턱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가지고 온 짐에 눈이 갔다.

병아리를 보느라 깜빡하고 있었다.

“…짐부터 정리해야겠네.”

관찰은 그 뒤에도 충분했다.

강현의 말을 들었는지, 토리가 올려다봤다.

말똥말똥한 눈빛.

“토리는 여기 있을래?”

끄덕끄덕.

강현은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새로운 가족.

강현은 일단 병아리를 삐약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정령답게 소리는 내지 않지만, 병아리를 보다 보면 그러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 주기 전까지 부를 생각이었으나 의외로 병아리도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삐약이의 특별함은 구름만이 아니었다.

“어? 못 보던 샌데?”

다음 날 아침.

이장이 매장을 방문했다.

“…보이시나요?”

“그럼, 봉사도 아니고. 저리 떡 하니 있는데 왜 못 봐. 그보다 새는 언제부터 키우는 거여?”

“그렇게 되었어요.”

강현이 쓴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인사를 나눈 이장이 매장 안을 힐끗거렸다.

무언가를 찾는 모습.

강현은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설기는 잠시 집에 맡겼어요.”

“집?”

“예. 당분간 설기네 부모와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려?”

실망한 모습.

매일 밥을 챙겨 주다가 안 챙겨 주니 적적해진 것이었다.

강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헛기침을 한 이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방송이란 건 언제 나오는 거여?”

“이주 뒤에 방영이에요.”

“무슨 놈의 방송이 그렇게나 걸려?”

이장이 툴툴거렸다.

그러나 오히려 빠른 것이었다. 편집을 보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럼 갈게.”

“벌써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됐어. 밭에 가야지. 그짝 잘 있나 보러 온 거여.”

강현이 아니라 설기를 본 것이었지만,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을 나서는 이장.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현의 눈이 커졌다.

“으억.”

“…응? 왜 그려?”

저도 모르게 내뱉은 비명에 이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강현은 이장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나무 옆.

삐약이가 두둥실 떠 있기 때문이었다.

난다는 느낌보다 풍선에 매달려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애당초 작은 날개는 미동조차 없었다.

놀란 강현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자 이장이 고개를 갸웃하고 강현이 보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새가 보이지 않네?”

그때, 이장의 말을 들었는지 삐약이가 목에 두르고 있던 구름이 사라졌다.

콩.

땅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발라당 나자빠지는 삐약이.

곧 데구루루 굴러서 일어났다.

“아, 거기 있었구먼.”

다시 뽈뽈거리는 삐약이를 본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여?”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싱겁기는.”

이장은 피식 웃고는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렇게 이장이 떠난 뒤에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토리와 삐약이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귀여운 모습.

그러나 강현은 웃지 못했다.

‘…보이지 않았어?’

구름을 두르고 있을 때.

만일 보였다면 못 찾았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자 강현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웬 새예요? 어머나 귀여워라.”

오랜만에 찾은 민호와 수진.

그리고 이제는 제법 통통해진 하은이도 함께였다.

아이는 금세 자란다고 하더니.

잠깐 못 봤는데 또 자라 있었다.

“아, 우우우.”

“하은이도 보고 싶어?”

“우우!”

유모차에 있던 하은이가 칭얼거리자 수진이 어쩔 수 없다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삐약이 앞쪽까지 하은이를 들어 올렸다.

“꺄하!”

웃음을 터트리는 하은이.

삐약이 역시 하은이에게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은이 주변을 오가는 삐약이.

덩달아 민호와 수진의 입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강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삐약이가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은이가 흙 위를 기어가려고 하자 민호가 들어 올렸다.

“여보.”

민호의 짧은 부름에 수진이가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주인을 너무 세워 놨네요. 들어가요.”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삐약이 쪽을 힐끗거렸다.

허공에 떠오르고 있는 삐약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삐약이의 다리에 토리가 매달려 있었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살겠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식사를 마친 민호와 수진.

둘과의 대화는 강현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이나 이세계 주민들과도 잘 어울리는 강현이었지만, 그중 강현 또래는 드물었다.

‘이 둘하고 마슈 정도인가?’

여행 때 만났던 로멘의 딸도 비슷한 또래였지만, 친하지 않았다.

당연히 민호와 수진에게도 강현이란 존재는 특별했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하은이가 졸리다고 칭얼거린 후에나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가 너무 오래 있었죠?”

“아뇨. 저도 즐거웠어요.”

진심이 담긴 강현의 말에 민호와 수진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들이 매장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장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삐약이.

밤에 저러고 있으니 더 기괴했다.

강현은 될 대로 되라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민호와 수진은 삐약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새가 없어졌어요!”

“…알아서 돌아올 거예요.”

놀란 수진을 다독거렸다.

사실 눈앞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만,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아.”

아쉬운 듯 탄성을 뱉는 수진.

그러나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런 시골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

야생동물과 애완동물, 그 사이의 느낌.

그래서 삐약이가 알아서 왔다고 했을 때도 다들 그러려니 한 것이었다.

그렇게 민호와 수진이 떠나가고 강현은 삐약이에게 다가갔다.

허공에 떠다니는 걸 낚아채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목을 감싼 구름에 손가락을 넣어 봤다.

구름을 지나치고 복슬복슬한 털이 만져졌다.

역시나 차가운 공기만 느껴질 뿐, 직접 구름을 만질 순 없었다.

간지러운지 몸을 떠는 삐약이.

강현은 삐약이를 토리 옆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바닥에 놓은 통을 봤다.

견과류와 곡류가 담긴 통.

어제보다 양이 줄긴 했으나 삐약이가 먹은 게 아니었다.

일부는 토리가 먹었고, 또 일부는 지나가던 새들이 쪼아 먹었다.

삐약이는 호기심에 장난을 쳤을 뿐, 입에도 대지 않았다.

“…넌 뭘 먹여야 하니.”

이유식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연히 새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정령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필요했다.

* * *

“…구름이라. 확실히 일반 정령은 아니네요.”

“아, 그런가요?”

“예. 정령이라고 해도 가질 수 있는 속성은 한정적이에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웃으며 답했다. 그녀의 손에는 잘 익은 옥수수 하나가 들려 있었다.

옆에 있던 아우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땅과 불, 바람과 물, 그리고 풀 정도가 일반적이고 간혹 번개나 얼음 속성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요.”

이야기를 듣던 강현은 무심코 어릴 때 했던 게임을 떠올렸다.

주머니 괴물.

“능력을 쓸 때만 보이지 않는 다라. 흥미롭구먼.”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멘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수염에는 옥수수의 씨가 붙어 있었다.

다시 찾은 이세계.

작은 모닥불. 그 위에 올려진 냄비 사이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에밀리야와 아우라뿐만 아니라 노아와 모나, 로멘과 란돌프까지.

오랜만에 많은 인원이 모였다.

강현은 옥수수 심까지 먹어 치우는 모나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강현, 자네가 있는 곳에는 정령이 없는가?”

“예. 제가 알기로는요.”

란돌프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이나 소설 속에는 많이 나오긴 하지만, 적어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턱을 긁적였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그의 손에 들린 옥수수가 장난감처럼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