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11화 (211/227)

허전하네.

“컹! 컹!”

집에 가까워지자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짖는 소리만 들려올 뿐, 정작 설기가 보이지 않았다.

강현이 두리번거리자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쿡, 쿡.

그러고는 무언가를 손짓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설기는 나와 있었다.

단지 강현이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맙소사.”

매장 옆에 못 보던 돌멩이 하나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털이란 걸 깨달았다.

밤이라서 알아보는 게 늦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흔들리는 꼬리가 보였다.

덩치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동글동글한 털 뭉치를 본 강현이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너.”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해맑게 웃는 설기.

하지만 살 때문에 눈도 작아졌다.

고작 일주일 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아니, 일주일도 아니잖아.’

그러는 사이 토리는 설기의 위로 올라가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컹! 컹!”

토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설기.

그 모습에 강현도 정신을 차렸다.

‘...일단 짐부터, 짐부터 정리하고 생각하자.’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문뜩 이사한 걸 떠올렸다.

열려있는 문.

설기는 어떻게 문을 열고 나왔을까?

다리도 살에 파묻혀서 발바닥만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바로 해결되었다.

설기가 꼬리로 바닥을 내려치자 반동으로 몸이 굴러갔다.

데구루루.

그렇게 굴러가던 설기가 멈춰서서 낑낑거렸다.

그러더니 고개만 이쪽으로 돌렸다.

“컹! 컹!”

왜 안 오냐는 물음.

“...그래, 대단하다.”

저러고 움직이는 것에 놀라워야 하나. 짧은 사이에 저렇게 변한 것에 놀라워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결국, 턱이 있는 부분에서는 오로지 못하고 있었다.

나올 때는 내려오는 길이라서 혼자 나올 수 있던 것이었다.

토리가 도와주려고 등을 떠밀었지만, 오히려 살에 파묻혀버렸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설기를 뒷덜미를 들어 올렸다.

묵직한 무게.

그러자 겨우 살아난 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리를 도리도리 흔드는 토리.

강현은 토리도 들어서 어깨에 올린 후 집으로 향했다.

* * *

다음날.

아침이 되자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설기야아!”

익숙한 목소리에 강현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창문 너머를 보자 쟁반을 들고 있는 이장이 보였다.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설기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통, 통, 통.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린 강현은 겉옷을 걸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이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 왔어?”

“예. 잘 지내셨어요? 그런데 그건?”

이장이 들고 있는 건 산적이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산적.

그 앞에 선 설기가 혀를 빼고 있었다.

헥헥.

입에서 흘러나온 침이 그대로 가슴 털 위로 떨어졌다.

‘...저게 가능한 거구나.’

개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강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이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긴 뭐야. 설기 밥 주러 왔지.”

이장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이장이 들고 온 산적으로 향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양.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감사하지만 당분간은 식단 조절이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살이 쪄서.”

강현의 말에 이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굶기겠다고? 아니, 살이 얼마나 쪘….”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를 본 이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헛, 험. 보기 좋은데. 왜?”

자신이 봐도 너무했는지, 차마 살이 찌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하지만 이장만이 아니었다.

“어? 이게 누구야.”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마을 어르신. 그러나 어르신의 손에도 반찬통이 들려 있었다.

안에 든 건 전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향하자 어르신이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고놈이 참 복스럽게 잘 먹더라고.”

강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새로 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

“...아니,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서.”

박씨 할머니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박씨 할머니마저도 손에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강현은 박씨 할머니를 향해 굴러가고 있는 설기를 붙잡았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기는 당분간 고기 금지입니다. 식사는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 적어도 애가 걷기라도 해야죠.”

굴러다니는 게 말이 되는가.

“이, 이건 고기 아니라 파전….”

“마찬가지입니다.”

어르신의 말에 강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무룩해지는 어르신.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르르릉.”

“씁, 너도.”

강현이 먹지 못하게 막자 이를 보이는 설기.

그러나 날카로운 눈초리에 금세 꼬리를 말았다.

“끼잉. 끼잉.”

애처로운 눈빛을 던지는 설기. 강현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자 대상을 달리했다.

이장과 박씨 할머니에게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보기 안쓰러웠는지 이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가져온 건 먹어야….”

“아뇨.”

예외를 둘 순 없었다.

그렇게 어르신들은 아쉬워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들을 배웅한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움찔, 하고 몸을 떠는 설기.

그러나 곧 순진한 눈망울을 던졌다.

하지만 눈보다는 빵빵해진 볼에 더 시선이 갔다.

강현은 설기를 챙겨서 매장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을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설기 밥을 주지 말라는 방송이었다.

‘...셋만이 아니었구나.’

방송할 정도면 마을 전부가 나선 일이었다.

‘하긴.’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씨 할머니마저 나설 정도면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강현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한 번씩 와서 설기를 힐끗거리고 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때마다 설기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다들 친손주처럼 설기를 챙긴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이대로는 안 되었다.

‘...식비가 한두 푼도 아닐 테니.’

설기 때문에 무리한 게 분명했다.

설기와 함께 지내는 강현이기에 더 잘 알았다.

고기 아니면 입도 대지 않는 설기였다.

강현은 슬그머니 설기를 보았다.

의외로 얌전한 설기.

그러나 강현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꼬리.

아침에 만들어준 나물도 대충 먹다 말았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찾아갈 생각이 분명했다.

‘...조치가 필요해.’

강현은 아직 영업시간이었으나 과감하게 매장 문을 닫았다.

* * *

점심마저 풀떼기를 먹자 설기가 시무룩해졌다.

그러다가 강현이 배낭을 싸자 꼬리가 분주해졌다.

“컹! 컹!”

들뜬 목소리.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그 모습을 보면 전처럼 흐뭇하게 웃을 순 없었다.

강현은 설기를 챙겨서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상쾌한 공기와 맑은 하늘.

언제나처럼 강현을 반겨오는 이세계였다.

꼼지락꼼지락.

토리 역시 오랜만에 찾은 고향이 마음에 드는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설기는….

“...컹.”

반가움에 뛰쳐나가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저 몸으로 뛰는 것도 힘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은 각오를 다잡았다.

“...토리야. 부탁할게.”

고개를 끄덕인 토리가 땅속으로 들어갔다.

“끼잉?”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그러나 강현은 애써 설기의 시선을 외면했다.

하지만 곧 무언가를 깨달은 설기가 고개를 휙 돌렸다.

산이 있는 방향.

설기가 꼬리를 내려쳤다.

뒤로 굴러가는 몸. 그러나 나무에 걸려서 멈췄다. 나무 사이에 낀 설기.

애써 발버둥을 쳤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때, 땅속에서 토리가 기어 나왔다.

제 할 일을 끝낸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풀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설기와 똑같은 생김새.

‘...아니, 그리 말하면 실례지.’

과거의 설기와 닮은 모습.

바로 설탕이었다.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설탕은 다가오다가 움찔 앞발을 떨었다.

눈을 껌뻑이는 설탕.

강현은 짧게 감탄했다.

설탕에게서 저런 표정을 볼 줄은 몰랐다.

앞발로 눈을 빗는 설탕.

마치 제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강현도 저 심정을 잘 알았다. 어제 강현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설기는.

“...”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돌이란 걸 주장하려는 듯이 꼬리까지 말고 있었다.

하지만 설탕의 후각을 속일 순 없었다.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간 설탕은 설기의 등짝을 후려쳤다.

퍽!

“깨개갱.”

나무 사이에서 빠져나온 설기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설탕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설기의 뒷덜미를 물었다.

‘...잠깐만, 뒷덜미가 맞나?’

등인 것 같은데.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질질 끌리는 설기.

“컹! 컹! 컹!”

강현을 향해 애처롭게 짖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끼잉, 끼이잉.”

엄마를 찾는 새끼 새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설기.

하지만 설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설기를 문 채로 걸음을 옮기는 설탕.

하지만 새끼인 건 설탕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기의 몸이 바닥에 다 끌렸다.

돌부리를 지나갈 때마다 몸이 덜컹 흔들렸다.

죄인처럼 끌려가는 설기.

이대로 끌려가면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이었다.

‘...자업자득이지.’

알면서도 저질렀다면 책임도 져야 했다.

이미 강현이 손 쓸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났다.

강현은 설기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한 것일까.

강현이라고 왜 설기가 반갑지 않겠는가.

태국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났다.

그렇다고 무르게 행동할 순 없었다.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라.’

단호하게 나가야 했다.

‘건강해져서 보자.’

강현은 설기의 앞날을 기도했다.

그렇게 설탕과 설기가 사라진 후에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앉아있던 토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좀 쉴까?”

모처럼 온 이세계였다.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강현의 말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배낭을 풀어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설기가 없는 이상 안쪽까지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여기서 머무는 게 나았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갔다.

* * *

다음날.

짐을 정리하던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뭔가 허전하네.”

강현의 혼잣말에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강현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늘 설기와 있던 탓인지, 설기가 없으니 적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당분간 참아야 했다.

강현은 설기가 있는 산을 힐끗거리고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빨리 가자고 닦달하는 설기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행동도 늦어졌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강현은 배낭을 멨다.

돌아가는 길에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옆에 빈자리를 보고 다시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쓴웃음을 흘린 강현은 토리의 볼을 간지럽혔다.

“조금만 참아.”

고개를 끄덕이는 토리.

역시나 토리도 설기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집에 가까워지자 토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토리.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닦달하듯 강현을 쳐다보는 토리.

강현은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세웠다.

“아저씨. 여기서 내릴게요.”

“여기서? 다 왔는데?”

몇 번이나 탄 택시였기에 아저씨도 강현의 집을 알았다.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의아해하면서 택시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강현이 택시 문을 열자마자 토리가 다이빙이라도 하듯 땅속으로 사라졌다.

‘뭐지?’

설마 설기가 도망쳐 오기라도 했나?

강현은 의아해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토리가 갈 곳은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때, 마당에 우둥커니 서 있는 토리를 볼 수 있었다.

정령 나무.

그리고 나무를 확인한 강현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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