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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00화 (200/227)

200화 어서 오세요

매장 밖으로 나왔을 때 중년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년인의 걸음을 생각하면 멀리 못 갔을 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강현의 눈에 설기가 들어왔다.

여전히 나무 밑에서 뒹굴고 있는 설기.

“설기야!”

강현의 부름에 뒹굴던 설기가 고개를 돌렸다.

“방금 나간 사람 기억하지?”

귀가 쫑긋 올라가는 설기.

긍정이었다.

“찾아 줄 수 있어?”

“컹!”

벌떡 일어나는 설기. 하지만 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토리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재빨리 설기의 머리로 올라타는 토리.

토리가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현은 재빨리 설기를 따라갔다.

* * *

후다닥 달리는 설기.

강현의 다급함을 알았는지 평소보다 빨랐다.

당연히 뒤따라가는 강현이 역시 숨이 차올랐다.

‘이렇게나 많이 갔다고?’

그때, 저 멀리 익숙한 인형이 보였다.

바위에 앉아 있는 중년인.

중년인은 강현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강현이 식당의 주인이란 걸 알아챈 것이었다.

곧 한숨을 내쉬었다.

“잔돈은 되었는데.”

강현이 잔돈 때문에 쫓아 온 줄 안 것이었다.

“아뇨. 그 때문이 아니라….”

강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살하러 가는 것 같아서 말리러 왔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강현이 머뭇거리자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컹!”

강현이 입을 열려는 찰나 설기가 짖었다.

그러고는 강현을 주변을 빙그르르 도는 설기.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 잘했지? 빨리 찾았어!

칭찬해 달라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그리고 설기의 머리 위에 있던 토리는 어지러운지 내려와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상황과 맞지 않는 천진한 모습에 강현이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일단 이쪽에 앉으세요.”

설기를 보던 중년인이 옆에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예.”

강현이 바위에 앉자 중년인이 품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이런 따뜻한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

곧 보온병 뚜껑에 안엔 든 걸 쏟아 냈다.

고소한 향.

커피였다.

그러고는 강현을 향해 건넸다.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강현이 인사를 건네자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이런 곳에서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처럼 제대로 식사해 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중년인이 씁쓸히 웃었다.

강현은 힐끗 그런 중년인의 얼굴을 살폈다.

최근에 잠을 못 잤는지 눈 밑도 거멓게 변해 있었다.

그런 중년인의 시선이 다시 강현을 향했다.

“보아하니 잔돈을 돌려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중년인의 시선에 강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짧게 심호흡하고 입을 열었다.

“등산가시라고 들었습니다.”

“들었다? 아아.”

강현의 말에 중년인이 탄성을 뱉었다.

“얼굴이 익다 싶었는데, 작가님이셨구나.”

역시나 안면이 있었다. 강현은 그런 중년인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살하러 가는 사람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따뜻한 커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확인해야 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여기에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강현의 물음에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만난 이에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왜 물어보죠?”

역시나 중년인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강현의 진지한 눈빛을 보더니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혹시 내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던 겁니까?”

강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걸로 대답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강현을 본 중년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제 꼴을 보면 그리 오해할 수도 있겠군요.”

역시나 오해였다.

강현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그러나 중년인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그런 생각도 했었으니.”

“그럼?”

강현의 물음에 중년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반대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겁니다.”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런 강현을 향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마터호른을 아십니까?”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프스에 있는 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프스산맥에 3대 북벽 중 하나.

강현의 대답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젊었을 때, 부모님의 유산으로 사업하겠다고 스위스까지 갔다가 사기를 당했죠.”

강현은 숨을 삼켰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단 소리였다.

“당장 거리에 나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집까지 다 빼앗기고 나니 자괴감이 올라오더군요. 비행깃값도 없어서 집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때, 마터호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현이 물끄러미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강현의 시선을 받자 중년인이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예. 무작정 산에 올랐습니다. 멍청한 짓이었죠. 산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마터호른을 오르다니.”

중년인의 시선이 아련해졌다.

“사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 역시 그 같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는 조난당했습니다.”

당연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오른 산이었다.

멀쩡하게 돌아온 게 이상했다.

“무려 나흘이나…. 기절해 있는 걸 지나가던 등산객이 우연히 발견했죠.”

천운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어도 죽었을 거다.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압니까?”

중년인은 혼자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면서, 정작 조난당해서 죽을 위기가 오자 살고 싶다는 욕망이 떠오르더군요. 살아야 할 이유가 수만 가지나 떠올랐습니다.”

중년인은 보온병을 들이켰다. 뚜껑이 강현에게 있기에 입을 대고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을 시작했죠.”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밤낮 상관없이.

“그리고 오 년이 지났을 때, 사기꾼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있었기에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돈을 돌려받진 못했죠. 하지만 부모님의 집을 다시 살 정도는 되었습니다.”

강현의 눈이 커졌다.

“제가 죽었다면 그것조차 불가능했겠죠.”

곧 중년인이 강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 마신 뚜껑을 달라는 것이었다.

강현이 뚜껑을 건네자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살 이유를 찾기 위해 가는 겁니다. 이유를 찾을 때까지 나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서울 근처에 있는 산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다시 마터호른까지 갈 수는 없었다.

다친 상태로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었다.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산이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보온병을 집어넣은 중년인이 강현을 보았다.

“신경 써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군요.”

중년인의 말에 강현이 멋쩍게 웃었다.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잘 수 있는 곳을 찾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서요.”

중년인은 자신의 발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산으로 향했다.

강현은 그런 중년인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일, 이유가 안 떠오른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의문.

중년인은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강현의 물음에 중년인의 발걸음이 멈췄다.

중년인이 천천히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요?”

무거운 시선. 눈빛이 공허했다.

이건 강현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중년인.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미련도 없다는 소리였다.

그 말을 남긴 중년인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의 모습이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붙잡는단 말인가.

그때, 강현의 생각보다 먼저 입이 열렸다.

“음식.”

“….”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까?”

멈칫.

뜬금없는 강현의 말에 중년인의 발이 멈췄다.

“돌아왔을 때, 먹고 싶은 음식 말입니다.”

뒤늦게 중년인이 강현을 돌아보았다.

말릴 수 없다면 적어도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 주면 되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년인의 입이 열렸다.

“…뢰스티.”

뢰스티. 강현이 아는 요리였다.

스위스의 대표 요리 중 하나.

“구출되고 처음으로 먹었던 음식입니다. 아직도 그 맛은 잊혀지지 않더군요.”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아련함과 그리움.

슬픔과 기쁨.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중년인은 떠나갔다.

강현은 중년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말렸어야 했나.”

“아니네. 충분하네.”

“왓!”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강현이 뒷걸음쳤다.

고개를 돌리자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이 서 있었다.

그들 역시 심각한 눈빛으로 중년인이 사라진 산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분 언제 오셨어요? 아니, 어째서….”

“그렇게 뛰쳐나가는데 가만히 기다릴 수야 없지.”

정기훈 작가의 말에 이정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답에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당연했다. 강현이었어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따라올 거다.

“매장이라면 걱정하지 말게. 오다가 이장에게 부탁했으니.”

강현이 쓴웃음을 흘렸다.

딱히 걱정하진 않았다. 문을 열어 놨다고 해서 훔쳐 갈 사람도 없었다.

곧 정기훈 작가가 강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할 일을 다 한 거야. 만일 억지로 말렸어도 다른 곳으로 갔을 걸세.”

이정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리 나약한 친구는 아니야.”

그렇다면 등산가로 이름을 알리지도 못했을 거다.

강현은 모르고 있지만 중년인은 에베레스트도 오른 이였다.

그런 이가 나약할 리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우린 돌아왔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반겨 주면 되는 것이야.”

정기훈 작가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이정환 역시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견스럽다는 눈빛.

강현은 부끄러워져서 코끝을 긁었다.

“저 친구에 대해서는 이장에게 말해 놓겠네.”

중년인에게는 외지의 산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동네 뒷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도 나물을 캐러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한 번씩 돌아보면 되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그래, 설기도 있으니.’

설기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부탁해, 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자신만 믿으라는 듯 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한 번씩 설기를 통해서 상황을 보면 문제가 없을 거다.

“자, 그만 돌아가세.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뱃가죽이 등에 붙겠어.”

정기훈 작가의 너스레에 강현과 이정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예. 어서 가시죠. 점심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오, 기대하겠네.”

강현의 말에 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정확히 닷새가 지난날.

중년인이 다시 돌아왔다.

“그때 말한 뢰스티가 아른거려서 떠날 수가 없더군요. 지금 먹을 수 있습니까?”

멋쩍게 들어오는 중년인.

그동안 고생했는지 얼굴색이 더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 눈빛은 전보다 빛나고 있었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서 오세요.”

강현은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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