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잠깐 자리 좀 비울게요!
쫄깃쫄깃한 식감.
씹을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입안 가득 찼다.
동시에 매콤한 양념이 혀를 감쌌다.
‘간이 잘 배었네.’
이번에는 국물을 떠먹었다.
어묵을 넣은 것이 정답이었다.
따로 육수를 내지 않았음에도 감칠맛이 느껴졌다.
강현이 고개를 들어서 하만과 아우라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둘도 포크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밝게 인사하는 하만에 이어서 아우라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둘은 동시에 떡볶이 떡을 입에 넣었다.
“…!”
“…!”
커지는 눈.
맛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떡이 삼켜지기도 전에 포크가 움직였다.
피식 웃은 강현은 어묵과 양배추를 집었다.
삶아서 물러졌지만, 이것도 제법 매력적이었다.
강현이 시선이 냄비 옆에 있는 토리에게 향했다.
“토리야, 너도 먹어 봐.”
냄비 앞에 누워 있던 토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현과 냄비를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기어 왔다.
강현은 토리에게 건네주기 위해 떡 하나를 집다가 멈칫했다.
‘씻어서 줘야 하나?’
토리에겐 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으니 괜찮겠지.’
강현과 지낸 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강현이 주지 않아도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몇 번이나 집어 먹은 토리였다.
그중에는 매운 음식도 제법 있었다.
떡을 받아 든 토리가 떡의 머리 부분을 입에 넣었다.
부르르.
인상을 쓰며 몸을 떠는 토리.
‘역시 너무 매웠나.’
씻어서 주려고 젓가락을 뻗으려는 순간.
토리가 다시 한입 물었다.
그리고 부르르.
또 한 입.
‘조, 좋아하는 건가?’
만일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만 먹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몸을 떨면서도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맵긴 하지만 계속 당기는 건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앞부분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자 강현을 올려다보는 토리.
“…국물 찍어 달라고?”
끄덕끄덕.
강현이 떡볶이를 가져와 다시 양념을 찍은 후 건넸다.
그러자 두 손으로 떡을 꼭 쥐고 먹는 토리.
양념이 털에 다 묻었지만 개의치 않아 했다.
어차피 땅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깨끗해질 거다.
‘…설기와는 다르지.’
강현은 볼을 빵빵하게 하고 떡을 먹는 토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냄비를 보았다.
‘국물이 좀 많긴 하네.’
어쩔 수 없었다.
떡과 어묵이 국물을 흡수할 것까지 계산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더, 더 줘?”
“컹!”
하만이 놀란 눈으로 설기의 그릇에 떡볶이를 퍼 줬다.
그렇다. 설기가 먹는 속도를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
떡과 어묵이 불기도 전에 무서운 기세로 먹어 치우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강현의 눈에 김밥이 들어왔다.
동시에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잠시 망설이는 강현.
‘…해 본 적이 없는데.’
학창 시절, 동생이 먹었던 방식.
하지만, 김밥은 김밥 자체로 간이 충분하기에 불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애당초 김밥은 김밥 자체만으로 완전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강현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동생이 질색했다.
‘오빠는 낭만이 없어. 낭만이.’
김밥과 낭만이 무슨 상관인가.
고민하던 강현이 김밥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강현.
동생이 자주 먹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 시선을 느낀 강현이 고개를 들었다.
빤히 강현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하만과 아우라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뭐지?’
의아해하던 강현이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슬쩍 김밥을 집어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둘이 보였다.
“음!”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모습.
강현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끼잉.”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설기가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은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도 찍어 달라고?”
“컹!”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의 그릇으로 향했다.
이미 비워진 그릇.
하지만 방금까지 떡볶이와 김밥이 들어 있던 그릇이었다.
‘그럼 찍어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야?’
강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순히 김밥을 찍어서 건넸다.
순식간에 김밥을 삼키는 설기.
하지만 뭐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강현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씩 먹으니 감질나지?”
끄덕끄덕.
피식 웃은 강현은 김밥을 그릇에 옮기고 그 위에 떡볶이 국물을 부었다.
사실 그동안 설기가 먹는 방식을 반대로 한 것뿐이었다.
‘떡볶이를 먼저 주고 뒤에 김밥을 올린 것이지.’
그러나 설기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국물이 부어지자마자 바로 먹기 시작하는 설기.
“맛있어?”
“컹!”
“…그래, 많이 먹어라.”
본인이 좋다면 좋은 게 아닌가.
강현은 웃음을 흘리고는 식사를 이어 갔다.
* * *
“선생님, 오늘은 덕분에 잘 먹었어요!”
저녁이 되자 하만이 일어났다. 이미 그릇까지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
하만과 아우라가 설거지를 도와줬기에 빨리 끝났다.
순식간에 떠나는 하만과 달리 아우라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 아뇨. 잘 먹었어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숲을 향해 걸어가는 아우라.
하지만 걷다 말고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받아요.”
“예?”
얼떨결에 주는 걸 받았다.
굵은 실.
언뜻 보면 줄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우라가 손목에 차고 있던 줄이었다.
강현이 의아해하자 아우라가 입을 열었다.
“토리 거예요, 반지. 줘 버렸다면서요.”
“아.”
강현이 탄성을 뱉자 아우라가 말을 이었다.
“천 년 넘은 고목의 줄기를 달빛에 말린 것이에요. 에밀리야 님께서 주신 반지만큼은 아니지만 정령들이 좋아할 겁니다.”
아우라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귀한 것 아니에요? 제게 주셔도 돼요?”
늘 차고 다녔으니 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자 아우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쪽 주는 게 아니라 토리한테 선물하는 거예요! 설기 이빨도 있으니….”
그리 말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강현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넬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아우라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그러고는 곧 밑에 있는 토리를 보았다.
토리는 강현의 손에 들린 줄기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피식, 웃은 강현이 매듭을 묶어서 토리의 목에 걸어 줬다.
“다행이네.”
반지를 줘 버려서 걱정했는데 새로운 물건이 생겼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토리를 보던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아우라가 사라진 방향.
‘나중에 고맙다고 해야겠어.’
강현에게 선물한 게 아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토리의 선물이 강현의 선물이기도 했다.
강현은 토리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동네를 한 바퀴 돈 강현은 밭에 물을 뿌렸다.
밭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였지만, 다른 호칭이 없었다.
새롭게 허브를 심은 곳.
밭 한쪽은 비워 놨다. 나중에 에밀리야에게 받은 씨앗을 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물을 주고 있자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그 정도로 안 돼. 더 듬뿍 줘야지.”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었다.
어르신은 곧 고개를 젓더니 성큼성큼 들어왔다.
“아니야. 이리 줘 봐. 내가 보여 줄게.”
그러고 나서 직접 물을 뿌리는 어르신.
“이 정도는 뿌려 줘야지.”
그리 말하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강현은 그런 어르신을 보며 웃음을 삼켰다.
생뚱맞은 상황이긴 했으나 이제는 익숙했다.
강현이 씨앗을 심을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밭을 보고 갔다.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농사가 처음이라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너무 과하긴 한데.’
자신들 밭보다 더 신경 쓰는 것이었다.
평소에 강현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기에 이번 기회에 갚으려는 것이었다.
강현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밭을 돌본 후에나 집으로 돌아가서 씻었다.
매장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청소하고 재료까지 손질하다 보니 어느새 오픈 시간이 되었다.
홀 한쪽에 서서 창밖을 본 강현은 웃음을 삼켰다.
마을 사람들 몇이 강현의 밭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라도 하고 가지.’
밭만 보고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
이제 봄이 된 만큼 일이 많아진 것이었다.
‘요즘은 상후도 잘 안 오고.’
상후 역시 개학하고 나서 바빠졌다.
나무 밑에서 데구루루 구르고 있는 설기와 토리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매장 문이 열렸다.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인사를 건넨 강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처음 보는 이였기 때문이었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인.
그는 매장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식당, 맞죠?”
“예. 양식당입니다.”
“양식당….”
그 말을 곱씹은 중년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안쪽으로 들어왔다.
절뚝거리며 테이블로 걸어가는 중년인.
강현의 그의 다리가 안 좋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니, 다리만이 아니었다.
얼굴색과 표정 역시 안 좋았다.
“아무거나, 이 집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으로 주십시오.”
“오일 파스타 괜찮으세요?”
강현의 물음에 중년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주문도 평범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면서 힐끗 중년인을 보았다.
어두운 눈으로 창문 너머를 응시하는 중년인.
하지만 강현의 눈길을 끄는 건 다른 이유였다.
‘어디에서 봤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곧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요리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강현의 손이 분주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완성된 알리오 올리오를 접시에 담아냈다.
냅킨으로 접시 주변을 닦아 내고 손님에게 다가갔다.
“알리오 올리오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강현은 접시를 내려놓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강현이 떠나자 조심스레 포크를 집어 든 중년인.
그리고 파스타 면을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중년인의 눈이 커졌다.
곧 포크가 바쁘게 움직였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을 뗐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지갑을 꺼내서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중년인.
만 원짜리가 세 장이나 있었다.
놀란 강현이 중년인을 돌아봤다.
“손님, 너무 많이 주셨어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매장을 나섰다.
눈을 껌뻑이던 강현은 테이블을 정리하러 갔다.
‘팁인 건가?’
외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딸랑딸랑.
생각이 바뀌어서 돌아온 건가 싶었지만, 다른 이들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네.”
안으로 들어온 건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은 손님인가?”
나가는 손님을 본 모양이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기훈 작가가 턱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에 강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아시는 분이세요?”
“안면만 있네. 등산하는 친구였지?”
정기훈 작가가 이정환에게 묻자 이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환도 아는 걸 보니 유명한 이가 분명했다.
“요즘 안 보이다 싶더니 다리를 다쳤나 보군.”
정기훈 작가가 씁쓸하게 말했다.
‘등산가.’
그 말에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리를 다쳤다면 이제 산을 오르기 힘들었다.
그래서 창문 너머로 산을 보았던 걸까?
매장에 있는 내내 어두웠던 표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과한 식대.
마치 지갑에 남은 돈을 다 낸 것 같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강현의 눈이 파르르 떨려 왔다.
“두 분 죄송해요! 잠깐 자리 좀 비울게요!”
강현은 바로 매장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