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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93화 (193/227)

193화 또 언제 올라갔데?

눈이 녹고 그 자리에 새싹이 올라왔다.

마을 곳곳에 보이는 노란 개나리.

논에서는 성격이 급했는지, 개구리 몇 마리가 이른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봄이 온 것이었다.

‘이제 눈 치우는 것도 끝이네.’

눈이 녹아서 질척한 땅 위를 뛰어다니는 설기.

털이 진흙에 뒤엉켰다.

이제 저 모습도 얼마 안 남았다.

강현은 해탈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봤다.

그리고 꼼지락꼼지락 몸을 비비는 토리.

역시나 날이 따뜻해지니 점점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날씨만이 아니었다.

강현의 시선이 매장 앞마당으로 향했다.

가슴까지 올라온 작은 나무.

앤이 준 가지를 심은 것이었다.

혹시나 몰라서 겨울에 보관하고 있다가 날이 따뜻해진 후에 심은 것이었다.

강현도 심은 지 며칠 만에 저렇게 자라서 놀랐다.

저 속도로 더 자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이제는 성장을 멈춘 상태였다.

나뭇가지에도 녹색의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를 심은 후부터 설기와 토리가 자주 나무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그렇게 나무를 바라보던 강현의 눈에 매장으로 걸어오는 이가 보였다.

익숙한 녹색 모자.

강현은 웃으며 자리에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이장은 걸어오다가 마당의 나무를 보고는 눈을 껌뻑였다.

“못 보던 나문데? 얜 무슨 나무여?”

“선물 받아서 심어 봤어요. 저도 무슨 나무까지는 잘….”

“그려?”

킁킁, 나무의 냄새를 맡아 보는 이장.

‘설기도 아니고.’

강현이 쓴웃음을 흘렸다.

“혹시 벼락이라도 맞은 거여? 뭔가 요상한 냄샌데?”

“…설마요.”

벼락이라니. 무언가 느껴졌다는 건가? 강현에게는 상쾌한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강현은 뜨끔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대꾸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장. 그러나 곧 강현에게 걸어왔다.

“아직 안 열었지?”

이장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준비는 끝나서 괜찮아요.”

“아녀. 시간은 지켜야지.”

이장의 말을 들은 강현은 이장이 밥 먹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란 걸 알아챘다.

이장의 시선이 길에서 놀고 있는 설기를 향했다.

“하여튼, 저것도 말썽꾸러기여.”

“컹!”

제 말을 한다는 걸 알아챘는지 반갑게 짖는 설기.

이제는 하얀 털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 모습조차 이장에겐 귀여웠나 보다.

이장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곧 강현의 시선을 눈치채고 이장이 헛기침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봄이 왔으니 마을 청소를 한 번 하려고.”

봄맞이 대청소란 건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요?”

“다음 주나 다다음 주. 사람 많은 날로 정하려고.”

그제야 이장이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 일정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전 둘 다 상관없어요.”

이세계로 가는 걸 한 번 쉬면 되는 일이었다.

저쪽도 급한 일정은 없었다.

강현이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토리도 괜찮겠지.’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는 토리.

그 전까지라면 추운 탓에 기운이 없었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그려? 알겠어.”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번 주에 청소한다는 방송이 마을에 흘러나왔다.

* * *

토요일 아침부터 하나둘 마을에 모이는 사람들.

강현은 그중에 익숙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만기 형님?”

“오! 동생 왔어?”

반갑게 강현을 맞이하는 건 장만기였다. 옆을 보니 도현이도 있었다.

곽도현. 육성 선수를 꿈꾸는 아이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리고 도현이 너 학교 간 거 아니었어?”

“다음 주 입학이에요.”

도현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장만기가 도현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마을 청소를 한다는 소릴 들어서. 이런 일에 내가 빠지면 안 되잖아.”

씨익 웃는 장만기.

강현은 그런 장만기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장만기의 말은 대답이 되지 않았다.

“…형님네랑 도현이네 마을도 청소하지 않아요?”

“아. 우리는 다음 주야, 다음 주.”

장만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옆에 있던 도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말이 없어요.”

“저쪽이야 사람을 부르겠지. 워낙 인원이 많으니.”

장만기가 대신 대답했다.

그렇구나. 강현의 시선이 도현이에게 향했다.

듣고 보니 당연했다.

‘…오히려 마을에서 대청소하는 게 흔한 건 아니지.’

여기 상황이 특별한 것이었다.

“시간 날 때 서로 돕고 돕는 거지. 이 좁은 곳에 너희 마을, 우리 마을을 나눠서 뭐 해.”

장만기가 멋들어지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곽도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까는 심심했는데 잘 됐다고 하셨잖아요. 일 끝나면 술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아하핫. 겸사지, 겸사.”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곽도현. 위의 이유보다는 아래의 이유가 더 큰 것이었다.

내심 장만기의 말에 감동했던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생각해서 와 준 건 맞았다.

“감사해요.”

마을을 대신해서 인사를 건넸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오, 그럼 이따 안주는 기대해도 되는 건가?”

“예.”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장만기가 희희낙락했다.

그러는 사이 마을 회관 앞으로 이장이 걸어 나왔다.

“자, 해 봐서 알지? 그짝들은 길 좀 쓸고, 이 짝들은 집마다 돌아다니며 청소 좀 도와줘.”

“예.”

이장의 말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따로 사람을 나누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제 할 일을 찾았다.

한 두 번 해 본 모습이 아니었다.

강현은 사람들을 따라 길을 청소하러 이동하려고 했으나 이장이 잡았다.

“그짝은 어디가?”

“저쪽을 도우려고요.”

딱 봐도 길 청소가 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이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녀. 그짝은 따로 할 일이 있지. 저 양반들이랑 같이 집 청소를 해 줘.”

그래도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아주머니들이 강현을 보고 웃고 있었다.

눈을 껌뻑이는 강현.

그러나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위에 거미줄이랑 먼지도 해야지. 그 큰 키를 이럴 때 써야지.”

“아.”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만기가 손을 들었다.

“이장님. 키라면 나도 큰데.”

“그짝이 크긴 뭘 커. 옆에 있는 중학생이랑 똑같구먼.”

갑작스러운 호명에 곽도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건 얘가 큰 거지. 이게 무슨 중학생의 킵니까?”

“…삼촌.”

곽도현이 상처받은 눈빛으로 장만기를 보았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만기도 결코 작은 편은 아니었다. 당연히 곽도현이 또래답지 않게 큰 것이었다.

“그짝들은 나랑 따로 할 일이 있으니 따라와.”

장만기와 곽도현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곧 이장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자 강현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우리도 가지. 오늘 내로 다 돌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

한 아주머니의 말씀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콜록, 콜록.

천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기침이 흘러나왔다.

의자 위에서 까치발을 올리고 있던 강현이 내려오자 한 아주머니가 어깨의 먼지를 털어 줬다.

“먼지 많지? 작년 가을부터 쌓였을 테니.”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먼지털이개에 엉킨 거미줄을 뗐다.

“다들 노인네들이라서 높은 데에 손이 안 가. 눈에 보이는 곳만 치우지.”

주방을 청소하던 다른 아주머니도 말을 보탰다.

“그게 다행이지. 억지로 하려다가 몸이라도 다쳐 봐.”

“맞아, 맞아.”

아주머니들은 먼지가 자욱한 방 안에서 수다 떨면서 청소하고 있었다.

이제는 강현도 익숙한 모습.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청소를 이어 갔다.

그때, 멀리서 강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현 총각 이쪽 좀 도와줘!”

옆집을 청소하고 있던 아주머니였다.

강현이 돌아보자 아주머니들이 얼른 가 보라며 손짓했다.

“높은 데는 다 했으니 가 봐.”

“그래,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옆집으로 건너갔다.

안에서 청소하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강현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무슨 일이세요?”

“저 위에 있는 것 좀 꺼내 줘.”

아주머니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장롱 위로 향했다.

장롱 위에 쌓여 있는 상자들.

상자뿐만 아니라 상도 보였다.

“올라가는 건 할 수 있겠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고.”

한 아주머니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의자에 올라가서 꺼내려니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제가 할게요.”

강현이 의자를 밟고 올라갔다.

힘을 주자 턱, 걸리는 느낌이 났다. 상자 밑에 깔린 상의 다리가 장롱 뒤로 넘어간 것이었다.

강현은 위의 상자부터 차례대로 꺼냈다.

자세가 불편해서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지만, 이미 강현의 근력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섰다.

어렵지 않게 물건들을 꺼냈다.

그리고 장롱에 걸렸던 상까지 내려놓자 주변에서 감탄을 토했다.

“키가 크니 다르네. 물건도 아주 시원시원하게 꺼내.”

“참으로 힘도 좋아. 이제 참한 신부만 있으면 될 텐데.”

“그 노래 잘 부르는 아가씨 있잖아.”

쑥덕거리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명절 때도 안 듣던 소리를 이곳에서 듣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아주머니들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이 책상은 이제 못 쓰겠네. 다리가 아주 나갔어.”

“어떻게 해?”

“이럴 때 버려야지 뭘 어떻게 해. 노인네들은 잘 버리지도 않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쓰겠지, 하고 구석에 올려놓는다.

늘 부족하게 살아서 무언가를 버리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에휴, 키도 작은 양반들이 잘도 넣었네.”

“다 들린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주머니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아이구, 귀도 밝으셔라. 자기 욕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왔대.”

아주머니의 넉살에 할머니가 혀를 차더니 창고 안에서 괭이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바닥에 늘어진 상과 상자들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찾아도 없건만, 저게 저기 있었네.”

할머니의 시선이 향한 곳은 상자 안에 든 앨범이었다.

아니, 앨범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사진을 담아 놓는 꾸러미였다. 비닐이 찢어져서 사진 군데군데 먼지가 쌓였다.

할머니의 시선을 눈치챈 아주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얘는 먼지 털어서 선반 위에 놓을까요?”

“됐어. 어딨는지만 알면 돼. 그리고 멋대로 버리지 말고 제자리에 돌려놔. 놔두면 다 쓸데가 있어.”

신신당부한 할머니는 다시 대문을 나섰다.

그 모습에 아주머니들이 쓴웃음을 흘렸다.

어디 있는 줄도 모르면서 언제 쓴단 말인가.

그때, 무언가 떠올렸는지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기다려 봐.”

그러고는 급히 어디론가 떠나는 아주머니.

얼마 뒤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아주머니가 들고 온 건 작은 앨범이었다.

안을 열어 보니 옛날 연예인들 사진이 들어 있었다.

포토북이라고 불리던 것이었다.

강현도 오랜만에 봤다.

아주머니는 안에 든 걸 다 빼더니 할머니의 사진을 끼워 넣었다.

“이러면 더러워질 일도 없을 거 아니야.”

“그런데 얘들은 멋대로 빼도 돼?”

“영신이가 어릴 적에 모으던 거야. 기집애. 그렇게 사 달라고 떼를 쓰더니 나중에는 쳐다도 안 보더라.”

아주머니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주머니들을 보던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사다리 좀 가지고 오게요. 장롱이 깊어서 청소하려면 필요할 것 같아요.”

의자로는 구석의 먼지까지 닦기 힘들었다.

기왕 왔는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한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보고 실소를 흘렸다.

“그럴 필요는 없겠는데?”

아주머니를 따라 시선을 돌린 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에구머니나.”

“…끙.”

따라서 고개를 돌린 강현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장롱 위.

회색으로 변한 설기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털이 먼지와 거미줄로 뒤엉켜 있었다.

“아주 청소를 깨끗하게 했네.”

“또 언제 올라갔데? 어린 것이 영리해.”

아주머니들의 칭찬. 그러나 강현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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