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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90화 (190/227)

190화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바닥을 다시 쓸게 되었음에도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설기를 귀여워하는 게 멀리서부터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니 버릇이 나빠지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이었지만, 곧 바닥을 구르는 설기를 보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닥에 등을 문질러서 눈을 털어 낸 설기가 강현에게 다가왔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설기의 모습이 전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설기야, 너 이빨 또 어쨌어?”

저번에 빠진 자리는 새롭게 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운데가 비었다.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놀다 보니 이빨이 빠진 것도 몰랐던 것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토리를 꺼냈다.

슬쩍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하고 작게 속삭였다.

“토리야, 미안한데 부탁해도 될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얼어있는 땅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 토리가 나타난 건 금방이었다.

금세 들어갔던 구멍 옆으로 새로운 구멍이 생겨났다.

고개를 빼꼼 내민 토리가 물고 있는 건 설기의 이빨이었다.

설기도 제 것이란 걸 알아봤는지 반갑게 짖었다.

“컹! 컹!”

흔들리는 꼬리.

강현은 그런 설기의 콧등을 두드렸다.

“잘 챙겨.”

카샨의 말대로라면 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아도 기념으로 챙겨서 나쁠 게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하지만 금세 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강현은 토리에게서 이빨을 받았다.

그러자 다시 호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는 토리.

추운 겨울에는 땅속도 내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바닥을 쓸기 시작한 강현의 곁으로 이장이 다가왔다.

“그나저나, 곧 구정인데 그짝은 어떻게 할 거여?”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벌써 그렇구나.’

생각지도 못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작년 추석에는 가족들이 여행 가느라 올라가지 않았다.

설 때는 강현이 올라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는 강현에게 절망만이 가득하던 시기였다.

‘진짜 일 년도 안 되었구나.’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몇 년이나 지난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시기는 짧았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려?”

강현의 말에 이장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일이 있나요?”

강현이 의아해하자 이장이 손을 내저었다.

“마을에서도 잔치를 열어서. 가족들이 안 올라오는 사람들끼리 노는 것이지.”

“아.”

강현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짝도 안 올라가면 같이 보내자고.”

이미 마을 사람들은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혼자 지내지 말라는 배려였다.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혹시나 못 올라가면 부탁드려요.”

“그려.”

이장이 손을 흔들고는 휘적휘적 걸어갔다.

* * *

[올라온다고? 네가 웬일이야?]

놀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소에 올 거면 여기 있고.”

산소는 할아버지 댁 뒤에 있었다.

[됐어. 저번에 가 보니 정리 잘 되어 있던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왔다 갔어요?”

[근처 지나가다가 들렀지. 아버님 집도 청소 잘했더라.]

“왔으면 말씀을 하시지.”

평창까지 왔다가 말도 없이 다시 올라간 건가?

그러자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친구들끼리 태백산 놀러 가다가 들린 거야. 뭣 하러 그러니.]

어머니의 말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어머니다웠다.

[아무튼 올 거면 일찍 와.]

“예?”

[설 당일에는 친구네랑 부부 동반으로 설악산에 오르기로 했어. 거기서 일박 보내고 올 거니깐 설날에는 집에 없을 거야.]

“언제부터 등산이 취미셨어요?”

[이제는 나이 먹으니 운동을 해야겠더라고.]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운동에 취미를 가지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나도 당일에 내려와야겠네.’

제사만 지내고 놀러 간다는데 혼자 있기도 애매했다.

전날 가서 얼굴만 비추면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강현의 눈에 달력이 비췄다.

“…설날에는 아직 얼음이 녹지 않겠지?”

한창 추운 시기였다.

강현의 눈이 설기에게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그런 설기를 본 강현이 미소 지었다.

* * *

백패킹.

정말 오랜만에 장비를 챙겼다.

사실 이세계에서는 더 이상 백패킹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설기만 해도 짐차나 다름이 없지.’

예전에 쓰던 장비들을 꺼내니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텐트와 매트 그리고 침낭.

장비를 늘어놓고 필요한 것만 챙겼다.

그러자 설기가 무언가를 물고 왔다.

“컹! 컹!”

주방 장비. 필수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못 가져가.”

상황상 제대로 된 요리는 할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강현은 피식 웃고는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작은 스토브만 챙겼다.

이제 설날이 삼 일이나 남았다.

강현은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캠핑을 할 생각이었다.

이 시기에만 가능한 캠핑.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지.’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 때문에 저절로 입김이 올라왔다.

한파.

떨고 있는 토리와 달리 강현의 표정은 밝았다.

‘날이 괜찮네.’

혹여나 날이 풀렸다면 일정을 달리 해야 했다.

“갈까?”

“컹!”

강현은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홍천.

* * *

뽀드득, 뽀드득.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이 생겨났다.

옆에는 설기가 해맑게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낯선 향이 신기한 것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오르고 있자 저 멀리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강현과 마찬가지로 등산화에 배낭을 짊어진 이들.

눈이 마주치자 강현도 고개를 숙였다.

이제 목적지가 가까워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설기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떠났다.

겉모습만 보면 새끼 강아지.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강현은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는 볼을 긁적였다.

‘준비가 부족했네.’

모두 하나같이 아이젠과 스틱을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얼음 위에서 슬라이딩하는 설기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지금 강현의 반응 속도라면 큰 위험은 아니었다.

그렇게 산길을 지나치니 어느 순간 시야가 넓어졌다.

나무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넓은 빙판.

강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일찍 왔음에도 이미 텐트를 치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아까 본 이들은 어젯밤 왔다가 내려가는 이들이었다.

빙박.

얼음 위의 캠핑이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안동이지만.’

이곳 홍천 배바위도 제법 유명했다.

낯선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설기.

송어 축제 때 빙판을 보긴 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

송어 축제 때는 사람들이 빽빽했다.

후다닥, 달려 나가는 설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컹! 컹!”

뒤늦게 대답이 돌아왔지만,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향을 틀던 설기의 몸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놀라기는커녕, 더 기쁜 듯이 돌아다녔다.

설기에게서 시선을 뗀 강현은 눈으로 뒤덮인 빙판을 내려다보았다.

‘제대로 얼었네.’

발로 바닥을 두드리자 둔탁한 느낌이 올라왔다.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었다.

강현은 중심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 중앙에 놓은 배바위.

빙판이 눈으로 뒤덮인 덕분인가.

강 위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눈 사이로 보이는 빙판이, 이곳이 땅 위가 아니란 걸 알려 주었다.

‘여기가 좋겠어.’

적당한 자리를 찾은 강현은 배낭을 내려놨다.

그리고 휴대용 삽을 꺼내서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텐트에 물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눈을 치우자 두꺼운 얼음이 보였다.

밑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안심되었다.

‘너무 투명하면 더 이상했겠지.’

강현은 얼음 위에 텐트를 쳤다.

팩은 나사팩.

이름처럼 나사 모양으로 된 것이었다.

일반 팩은 얼음 위에 박기도 힘들뿐더러, 박더라도 쉽게 빠져나왔다.

강현의 허리까지 오는 작은 텐트.

그러나 안은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

텐트를 펼치고 짐을 정리하고 있자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달달 떨고 있는 토리. 잔뜩 토라진 얼굴이었다.

물 위의 얼음.

토리가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강현은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기다려 봐.”

그리고는 배낭에서 네모난 팩을 꺼냈다.

핫팩.

백패킹에서는 핫팩이 난로나 다름이 없었다.

앞뒤로 몇 번 흔들자 금세 열이 올라왔다.

핫팩을 매트 위에 내려놓자 토리가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리고는 바로 올라가지 않고 이리저리 살폈다.

열은 나는데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괜찮으니까 올라가 봐.”

강현의 권유에 조심스레 핫팩 위로 올라가는 토리.

곧 토리의 표정이 풀어졌다.

배까지 핫팩에 붙이고 쉬는 토리.

그 모습에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현은 토리의 등을 토닥여준 뒤 배낭에서 작은 담요를 꺼내서 덮어 줬다.

손바닥만 한 작은 담요.

토리 전용이었다.

이걸로 토리도 안심할 수 있을 거다.

‘핫팩은 넉넉하게 가져왔으니.’

백패킹의 필수품.

그렇게 짐 정리를 끝낸 강현은 스토브를 꺼내서 냄비를 올렸다.

“슬슬 불러야겠네.”

밥 먹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굳이 강현이 부를 필요도 없었다.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하얀 털 뭉치가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강현의 텐트를 지나쳤다.

빙그르르 도는 설기.

텐트 앞에 멈추려고 했지만, 얼음 때문에 밀려 나간 것이었다.

그렇게 얼음 위에 멈추자 다시 달려오는 설기.

하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서질 못했다.

“…천천히 와.”

저 속도라면 제대로 설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설기는 미끄러지는 게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나 텐트 앞에 섰다.

헥헥.

쫑긋 올라간 귀와 흔들리는 꼬리가 설기의 심정을 알게 해 주었다.

“다 놀았어?”

“컹!”

설기가 해맑게 짖었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텐트 안으로 들어오려는 설기를 강현이 제지했다.

“눈 먼저 털고.”

“끼이잉.”

안쓰러운 눈빛으로 강현을 쳐다보는 설기.

그러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텐트가 젖지 않기 위해서 눈까지 퍼냈는데, 저 꼴로 들어오면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몸을 흔들어 눈을 털어내는 설기.

강현은 수건으로 남은 물기마저 닦아 낸 후에 설기를 텐트 안으로 넣었다.

텐트 안은 아득했다.

자리에 앉아야지만 허리를 다 펼 수 있는 높이.

강현은 눈을 반짝이고 있는 설기를 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뭐 먹을 거야?

기대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강현이 배낭에서 꺼낸 건 컵라면이었다.

“끼잉.”

울상을 짓는 설기.

소시지를 꺼내긴 했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잖아.”

애당초 백패킹이란 이런 것이었다.

많은 짐을 챙길 수 없었다. 설기의 몫으로 컵라면을 세 개나 챙긴 것도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얼음 위라서 화기를 사용할 때도 주의해야 했다.

시위하듯 꼬리를 내려치는 설기.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강현이 질린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제 강현 역시 설기에게 익숙했다.

“먹기 싫으면 말고.”

어디서 반찬 투정인가.

슬쩍 꺼내놓은 컵라면 다시 집어넣었다.

“컹!”

그러자 다급하게 짖는 설기. 얼마나 놀랐는지 두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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