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82화 (182/227)

182화 일등은 요정이다

그때, 앤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두꺼운 도끼를 들어 올리는 전사들.

‘확실히 저렇게 보니 다르네.’

돌을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나란히 서니 차이가 났다.

불끈불끈 올라오는 근육들.

그런 수인이나 인간과 다르게 요정은 도끼를 들었음에도 우아해 보였다.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다.

“기회는 세 번. 세 번 중 가장 많이 파인 걸 제출하면 된다.”

란돌프의 말에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단장답게 이런 일에 익숙해 보였다.

강현은 그런 란돌프를 보다가 노아와 에밀리야에게 시선을 옮겼다.

란돌프와 마찬가지로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참가할 줄 알았는데.’

역시 사회적 직위를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시합이 시작되었다.

먼저 나선 건 수인이었다.

콰드득.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와 함께 부푼 근육.

곧 도끼가 땅에 박힌 마철을 때렸다.

쾅!

흔들리는 마철. 동시에 수인의 눈이 번뜩였다.

‘바로 가는 건가?’

쾅! 콰강!

두 번의 도끼질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거침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수인. 그리고 도끼를 내려놓았다.

마철에는 선명한 도끼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박수 소리가 울렸다.

“…대단하군요.”

뒤에서 마슈의 감탄이 들려왔다.

대단한 건가?

마철을 처음 보는 강현으로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서 앞으로 나선 이는 요정이었다.

요정은 도끼를 들고 짧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쿵!

마철이 흔들렸다.

수인보다 작은 소리.

손목이 아픈지 눈살을 찌푸린 요정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쿵!

그리고 또 한 번.

쿵!

요정이 놓인 마철에도 도끼 자국이 났다.

그러나 수인의 것과 비교하면 작은 상처였다.

한숨을 내쉰 요정이 들어가고 이번에는 인간의 기사가 나왔다.

인간은 도끼를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더니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흡!”

숨을 들이마심과 동시에 도끼가 움직였다.

둥!

마철이 진동했다. 요정보다도 작은 소리.

마철을 벤 인간이 도끼를 갈무리했다.

“음.”

“호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소리는 수인과 요정보다 작았지만, 마철에 난 상처는 둘보다 컸다.

아니, 상처가 아니라 벤 자국이었다.

“더 안 할 건가?”

“예, 단장님. 이게 제 최선입니다.”

다시 해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인간의 기사는 담담히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수인과 요정의 전사가 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는 둘의 시선에 어깨가 올라갔다.

‘마지막 대사까지 완벽했어.’

그런 기사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해보지도 않고 최선이라….”

“…단장님?”

불안해진 기사가 란돌프를 돌아보았다.

턱을 긁적이던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끈기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말과 달리 표정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기사의 경험상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불안감이 올라왔다.

지금이라도 다시 해 보겠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경기는 끝났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니 동료들이 기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동료들의 눈빛은 승리를 축하해 주는 눈빛이 아니었다.

“…잘했네. 그리고 힘내게.”

친한 기사의 말에 기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승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의 우승이었다.

그렇게 셋이 들어가자,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다음 경기는, 달리기를 할 테니 선수들은 준비하도록.”

란돌프가 멈칫한 이유.

이미 한 사람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현도 잘 아는 이였다.

아우라.

그녀는 차분한 시선으로 공터 중앙에 서 있었다.

그리고 요정들은 고요한 눈빛으로 그런 아우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원이 아니었다. 당연히 승리할 거란 믿음이었다.

그런 아우라를 바라보고 있던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가슴 쪽이 간지럽기 때문이었다.

빼꼼 고개를 내미는 토리.

킁, 킁, 킁.

허공에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나오고 싶어?”

끄덕끄덕.

토리가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건 드물었다.

강현은 주머니에서 토리를 꺼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스테판 남매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닥으로 내려온 토리는 앤을 향해 기어갔다.

토리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설기도 앤을 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에 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이 신경 쓰이는 건가?”

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강현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정령목 가지.

“그거,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전에 에밀리야에게 물었을 때는 귀중한 물건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앤이 나뭇가지를 꺼내자 요정들이 이쪽을 힐끗거렸다.

요정이 아니라 요정과 계약 맺은 정령들이 반응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어린 정령들은 나뭇가지 쪽으로 홀린 듯 다가오고 있었다.

“쉽게 얻을 수 없지. 삼 년에 하나라도 얻으면 잘한 거야.”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귀하다고는 들었지만, 삼 년에 하나 구하기 힘들 줄은 몰랐다.

강현의 시선에 앤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리 보지 않아도 돼. 어차피 쓸 일도 없으니. 네게 건네준 가지도 이십여 년 만에 꺾은 거야.”

그럼 앤이 들고 있는 가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강현의 의문을 알아챘는지 앤이 나뭇가지를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이 녀석은 그보다 오래된 거지.”

땅바닥에 놓인 나뭇가지를 향해 모여드는 정령들.

강현은 전에 건네줬던 나뭇가지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었지만,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뒤에 있던 스테판 남매는 정령이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있다는 건 눈치챘다.

설기는 정령들이 다가오자 코로 찔렀다.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움찔하지만 피하지 않는 정령들.

‘다들 어린 정령이라서 설기도 조심하나 보네.’

소나 때와는 달랐다.

곧 토리와 설기와 함께 장난을 치기 시작한 정령들.

강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령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아우라와 눈이 마주쳤다.

아우라는 보란 듯이 턱을 세웠다.

마치 선전포고라도 하듯.

‘…왜 내 쪽에 하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둘도 준비가 끝났다.

“시험은 간단하다. 인간 마을의 입구, 요정 마을의 입구, 수인 마을의 입구에는 깃발과 함께 사람들이 서 있을 거다. 그들에게 인장을 받고 먼저 돌아오는 이가 이긴다.”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을 두 번이나 건너는 장거리 코스.

란돌프가 그런 셋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호각과 함께 출발하지.”

호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삐―

호각을 불자 마자 셋이 동시에 움직였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다른 둘도 빨랐지만, 아우라는 전혀 달랐다.

정말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정령 세 마리가 그 뒤를 따랐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전에는 천천히 걸었던 거구나.’

셋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갑자기 기지개를 켜는 설기.

“야, 잠….”

“컹!”

강현이 미처 붙잡기도 전에 힘차게 짖더니 뛰어가는 설기.

아우라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맙소사.”

강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른 이들은 설기가 따라간 걸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오직 강현만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설기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망치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미 설기는 사라진 뒤였다.

‘…미리 주의도 줬으니.’

강현은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그때, 공터에 있던 란돌프가 강현에게 다가왔다.

“수고하셨어요.”

“수고는. 입만 여는 것인데 뭘.”

란돌프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젓고는 앤과 스테판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강현은 그런 란돌프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 온 게 아니란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경기 순서를 바꾸는 게 어떻겠나?”

“순서요?”

“너무 과열되었어.”

란돌프는 슬쩍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와 달리 직접 볼 수 없으니 응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점점 진지해졌다.

지금 우승은 인간, 수인이 각각 가져갔다.

이번에 요정이 이긴다면 이후 경기가 더욱 치열해질 거다.

한 번 쉬어 갈 필요성이 있었다.

“알겠어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가 강현에게 직접 물어보러 온 이유는 간단했다.

바뀌는 순서에 강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부탁하네.”

란돌프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리고 떠나갔다.

그렇게 란돌프가 떠나가자 강현이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전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여기서 쉬고 계세요.”

“음? 뭐 하시게요?”

“간단한 요리요.”

강현은 그리 말하고 임시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도착해서 재료를 꺼내고 있으니 누군가가 다가왔다.

“저희도 도울게요.”

하만과 제니퍼였다.

“앗, 감사합니다.”

강현은 사양하지 않았다. 이번 경기는 스피드가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하만 씨는 이것 좀 구워 주시겠어요?”

식빵.

그리고 제니퍼에겐 과일을 건넸다.

다음 경기는 바로 많이 먹기 대회였다.

* * *

팬에 베이컨과 달걀을 구웠다.

점점 완성된 재료들이 쌓여 가기 시작했다.

빵과 베이컨, 달걀의 냄새가 퍼져가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주방을 힐끗거렸다.

베이컨을 다 굽고 스토브를 끈 강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실소를 흘렸다.

모나.

“이건 안 돼.”

강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모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침이 바닥에 뚝, 떨어진다.

홀린 듯 베이컨을 향해 손을 뻗는 모나.

설기가 없으니 제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강현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이를 찾았다.

“응?”

“….”

“아, 맛만 본 거야. 맛만.”

“…족장님.”

강현의 말에 카샨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카샨의 입에는 빵 부스러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하만이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서, 선생님 죄, 죄송해요!”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족장님이 달라는데 거부할 수가 없겠지.’

한숨을 내쉰 강현이 입을 열었다.

“경기가 끝나면 나눠 드릴 테니 그때, 드세요.”

“알았어. 알았어.”

카샨이 다가와서 모나를 들어 올렸다.

“바압! 밥!”

바둥거리는 모나.

하지만 카샨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 멀어지자 강현이 안도할 수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왔다!”

‘벌써?’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각 마을을 직접 가본 강현으로서는 믿기지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하늘을 나는 정령의 모습이 보였다.

선수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정령을 붙인 것이었다.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건 강현이 잘 아는 정령이었다.

소나.

에밀리야와 계약한 정령.

그리고 소나가 따라간 선수는….

요정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본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예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우라였다.

곧 수풀이 흔들리고 아우라가….

“응?”

아우라 대신 하얀 털 뭉치가 튀어나왔다.

설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친 숨을 내쉬는 아우라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설기를 확인하더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음….”

란돌프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설기와 아우라를 번갈아 보았다.

“…확인을 위해서 인장을….”

“컹! 컹!”

란돌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기가 짖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는 설기.

설기에 몸통에는 알록달록한 문장이 찍혀 있었다.

바로 각 종족의 인장이었다.

‘…저건 또 언제 받아온 거야.’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음.”

다시 침음성을 내뱉는 란돌프.

그런 란돌프를 구원해 주기 위해서 강현이 나섰다.

강현은 꼬리를 흔들고 있는 설기를 들어 올렸다.

“넌 실격이야. 선수로 등록도 안 했잖아.”

“끼잉?”

등록, 그게 뭔데?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설기.

강현은 그런 설기의 콧등을 때리고는 데려왔다.

그렇게 설기가 떠나가자 아우라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는 설기와 같은 세 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허, 험. 일등은 요정이다.”

“…감사합니다.”

말과 달리 아우라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녀는 떠나가는 강현을 노려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