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너 괜찮아?
치이익.
그릴 위에 두툼한 삼겹살을 올린다.
기름이 타는 소리와 함께 향이 퍼져 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현은 아이스박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어머.”
“허어.”
강현이 꺼낸 걸 본 란돌프와 에밀리야가 탄성을 뱉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삼겹살이 아니라 이쪽이었다.
팔뚝만 한 송어.
이미 손질이 끝난 것이었다.
강현은 두 마리를 올려놓고 소금을 뿌렸다.
강현이 가져온 송어는 네 마리였다.
윤섭과 두 소녀의 몫.
가져가라고 했지만 다들 괜찮다고 놔두고 간 것이었다.
‘하긴, 숙소에서 생활하면 먹기 힘들겠지.’
가져가 봤자 짐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었다.
‘사실 송어는 회로 먹는 게 제일이지만.’
이미 한 번 얼렸다가 녹인 상태라 그 맛을 내긴 어려웠다.
강현은 삼겹살과 송어가 익는 사이에 냄비 두 개를 올렸다.
한쪽에는 기름을 부었고, 다른 한쪽에는 미리 가져온 육수를 넣은 후 큼지막하게 썬 양파와 파, 무를 넣었다.
송어 한 마리를 큼지막하게 썰어 줬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얇게 썰었다.
튀김용이었다.
밀가루를 골고루 바르고 달걀 물을 입히자 때마침 기름 온도가 올라왔다.
강현은 파슬리 가루와 섞인 빵가루를 입혀서 기름에 던졌다.
치이이이익.
기름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기분 좋은 소리.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릴을 한 번씩 확인하면서 송어를 튀겼다.
썰었을 때 양이 얼마 안 되어 보였지만, 이렇게 튀기고 나니깐 제법 수북해졌다.
그렇게 튀김이 끝나자 그릴 위에 놓인 삼겹살과 구이도 다 익었다.
강현은 삼겹살과 구이를 옮겨놓고 화로 위로 끓고 있는 냄비를 올렸다.
이제 메인 차례였다.
펄펄 끓는 냄비.
흐물흐물해진 양파와 파, 무를 건져낸다.
이어서 먹기 좋게 썬 양파와 주키니, 무, 거기다 버섯을 넣어 주고 미리 준비해 온 양념을 풀었다.
양념은 한 번에 넣지 않는 게 좋았다.
강현은 삼 분의 일 정도를 남겨 놨다.
‘계량을 했다지만, 상황에 따라서 다르니.’
중간중간에 간을 보면서 조금씩 추가하는 게 나았다.
금세 붉게 변하는 육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육수가 다시 한번 끓기 시작했다.
이때 아까 썰어 놨던 송어를 냄비에 넣어 줬다.
그러자 냄비에서 올라오는 향이 바뀌었다.
“끼잉.”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설기의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다가온 것이었다.
옆에는 모나가 침을 뚝뚝 흘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둘뿐만이 아니었다.
란돌프와 에밀리야, 노아 역시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미리 올려놓은 튀김과 구이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먼저 먹어도 될 텐데.’
강현은 쓴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냄비를 보았다.
송어가 어느 정도 익자 간을 한 번 보고, 그 위에 두부를 가지런히 올렸다.
이어서 송송 썬 파와 쑥갓, 청양고추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줬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미리 준비해 둔 스토브 위로 옮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토리가 다가왔다.
강현이 스토브를 켜자 토리가 손을 내밀었다.
치익.
불이 붙는 스토브.
토리가 꺄르르 웃으며 박수 쳤다.
매번 하는 일이었지만,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직 애기라서 그런가.’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울 때였다.
강현은 토리를 들어서 그릇 옆으로 옮겼다.
졸지에 불 앞에서 쫓겨난 토리가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강현이 손가락으로 간지럽히자 배를 까고 뒹굴었다.
난로와 다르게 스토브 옆에 놔두는 건 위험했다.
‘온도가 계속 올라갈 테니.’
터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토리를 놔두고 고개를 들던 강현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다섯 쌍의 눈동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먹을까요?”
강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란돌프와 노아는 구이를, 에밀리야는 튀김을 집었다.
서로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나와 설기는….
“….”
구이와 튀김을 덜어준 그릇에 머리를 박고 있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피식 웃은 강현은 튀김을 집어서 간장을 찍었다.
사각.
바삭한 튀김이 부서지면서 부드러운 살이 혀에 닿았다.
쫄깃쫄깃한 식감.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이번에는 송어구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갈색으로 익은 껍질이 벗겨지면서 안에 있는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 입.
짭조름한 껍질과 살이 입안에서 뒤섞였다.
‘안까지 간이 잘 들었네.’
칼집을 넣긴 했으나 워낙 커서 걱정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이건 정말….”
“맛있네요.”
에밀리야의 말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입을 다물고 열심히 포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힘껏 좁아진 그의 미간이 심정을 알게 해 줬다.
“지난번에도 최고였지만, 이것도 대단하군. 자네는 언제나 나를 놀랍게 해.”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노아와 에밀리야의 머리도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만큼 맛있단 소리였다.
과분한 칭찬에 강현이 멋쩍게 웃었다.
일행들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 가던 도중 일행들의 시선이 자꾸 어디로 향한다는 걸 깨달았다.
힐끔, 힐끔.
강현은 일행들이 뭘 보는지 알아챘다.
중앙에 놓인 냄비.
아까부터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 시작했다.
‘슬슬 되었겠네.’
강현이 젓가락을 멈추자 일행들의 눈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쓴웃음을 흘린 강현이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새하얀 김이 올라왔다.
순간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붉은빛의 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게 들리는 보글보글 끓는 소리.
“오.”
강현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송어 매운탕.
오늘의 메인 요리였다.
강현은 마지막으로 간을 보기 위해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매운탕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눈을 감고 잠시 음미했다.
얼큰함과 시원함.
한국인이 아니면 잘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얼마 뒤, 강현이 눈을 뜨자 모두가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은 일행들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미소 지었다.
“되었네요. 드셔도 됩니다.”
그리 말한 강현이 그릇에다 덜어줬다.
마지막 그릇이 놓일 때까지 일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도 안 쉬는 거 아니야?’
먼저 먹어도 될 텐데.
흔들림조차 없었다.
곧 마지막 그릇이 놓이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
“크음!”
매운지 코끝을 찡그리는 노아.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란돌프. 심지어 에밀리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것이 감동 때문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차 싶은 강현이 입을 뗐다.
“너, 너무 매웠나요?”
청양고추와 고춧가루 때문이었다.
강현의 물음에 셋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끈하고 좋군!”
란돌프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그릇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강렬하긴 하지만 괜찮다.”
이건 노아였다.
에밀리야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자극이 컸지만 맛있어요!”
환하게 웃는 에밀리야. 그러나 눈가가 붉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훌쩍이면서 다시 한번 국물을 떠먹었기 때문이었다.
“…중독적인 맛이군.”
옆에 보고 있던 노아가 입을 열었다.
맵지만 끌리는 맛.
일행들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숟가락을 드는 일행들을 보던 강현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쓴웃음을 삼켰다.
설기와 모나.
입가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매운탕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둘의 시선에 강현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깜빡했어.’
설기는 상관없지만, 모나가 문제였다.
모나는 매운 걸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안 주면 삐지겠지?’
삐지는 게 아니라 밥상을 엎을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강현은 그릇 두 개에 매운탕을 펐다.
하나는 가득.
다른 하나는 반 정도만.
당연히 반만 뜬 건 모나의 것이었다.
그릇이 내려오자 모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릇을 노려봤다.
“바압!”
설기의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번갈아 보더니 손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왜 이리 적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강현은 서둘러서 모나를 다독였다.
“매워서 못 먹을 수도 있어. 먹고 부족하면 더 줄게.”
강현의 말에 모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준다면 불만이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많이 남았으니.’
일행 모두가 두세 번은 더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첩첩첩첩.
이미 머리를 박고 먹기 시작한 설기.
붉게 물들기 시작한 털을 외면하고 모나를 보았다.
모나는 매운탕에 입을 가져갔다.
“…!”
머리부터 털끝까지 정전기라도 오르는 듯이 털이 솟았다.
‘…저게 되는구나.’
만화에서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훌쩍.
코끝이 붉게 변한 모나가 고개를 들었다.
글썽이는 눈.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역시 힘들겠네.’
한 입 먹고 저러면 견디기 힘들 거다.
그러나 강현의 생각과 달리 모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설기를 한 번 보더니 혓바닥으로 코에 묻은 양념을 핥았다.
당연히 콧물까지 같이 입으로 들어갔다.
‘으.’
그 모습에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다시 그릇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들이켜는 모나.
“어?”
텅.
바닥에 놓인 그릇이 파르르 떨려 왔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
코를 한 번 훌쩍인 모나가 손등으로 콧물을 훔쳤다.
그리고 강현을 향해 빈 그릇을 내밀었다.
“너, 너 괜찮아?”
끄덕끄덕.
촉촉하게 젖은 눈과 주르륵 흘러내리는 콧물 빼고는 멀쩡해 보였다.
‘아니, 그게 안 괜찮은 건가?’
강현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전처럼 격한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적응된 거구나.’
이번처럼 대놓고 매운 음식은 아니어도 매운 간이 들어간 음식은 많이 먹었다.
그러다 보니 매운 것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힐끗 일행들을 향했다.
거리낌 없이 매운탕을 먹는 이들.
‘맞네.’
예전이었다면 일행도 먹기 힘들었을 거다.
모나가 코를 훌쩍이는 것도, 매운 걸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매운 양념이 코에 닿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운탕을 떴다.
이번에는 듬뿍.
그러자 모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다시 매운탕을 향해 달려드는 모나. 그러나 강현이 그런 모나를 붙잡았다.
“밥?”
왜 자신을 잡냐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모나.
바로 반격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강현을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강현은 휴지로 모나의 코를 닦았다.
콧물이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또 음식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아까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콧물을 다 닦고 놓아주자 다시 매운탕을 먹기 시작했다.
‘…의미는 없는 것 같지만.’
먹으면서 중간중간 훌쩍이는 모나를 보며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강현 역시 자리로 돌아와서 식사를 이어 갔다.
때때로 입맛을 다시는 란돌프.
역시나 술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강현은 그 이유를 잘 알았다.
이제 운동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주 뒤.
그때를 위해서 참는 것이었다.
‘나도 제대로 준비해야지.’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벌써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