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잡았다아아!
쑥 뽑혀오는 송어.
강현은 구멍 사이로 희끗희끗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착각이 아니지.’
차라리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잡아 올린 송어 역시 죽은 것처럼 얌전했다.
그것도 잠시.
“엄마야!”
다시 힘차게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기절시켰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웠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강현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못 잡아서 실망할까 봐 도와주나?’
하지만 곧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강현의 낚싯대와는 달리 다른 일행들의 낚싯대는 조용했다.
낚시를 도와주는 거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반응이 있을 거다.
하지만 셋은 낚싯대를 잡은 채 강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강현은 설기가 왜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못 잡으면 밥 못 먹는다고 생각한 건가.’
가장 유력한 이유였다.
강현이 슬쩍 낚싯대를 집어넣었다.
1, 2, 3.
속으로 삼을 세기도 전에 바로 입질이 왔다.
이번에도 팔뚝만 한 송어가 올라왔다.
“우, 우와!”
“대, 대단해요.”
한두 번은 놀랍지만, 이제 세 번쯤 되면 의심스러웠다.
아이들은 감탄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특히나 윤섭은 눈은 떨리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왜?”
그렇게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젠장! 나도 하나 낚고 만다!”
윤섭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낚싯대를 노려봤다.
‘더 잡으면 안 되겠네.’
강현은 슬쩍 구멍 아래를 봤다. 그러다가 푸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나 설기였다.
송어를 묽고 해맑게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낚싯바늘이 내려오지 않자 고개를 내민 것이었다.
더 필요 없어?
그리 묻고 있었다.
강현은 힐끗 일행들을 보았다. 일행들은 다시 낚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강현은 슬쩍 아이들을 턱짓했다.
그러자 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퐁.
물속으로 잠수하는 설기.
그리고 잠시 후.
“어? 어어! 셰, 셰프님!”
“나, 나도 뭔가 물었어!”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오랫동안 같이 한 윤섭이 있는데 왜 자신을 부르지?
강현은 잠깐 이상했지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살살 말아 올리면 돼. 급하게 당기면 도망칠 수도 있어.”
‘도망칠 일은 없지만.’
이미 기절했을 거다.
“예.”
하지만 둘은 긴장해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
곧 구멍 사이로 송어의 머리가 보였다.
“자, 잡았어!”
“아직이야. 도망칠지도 몰라!”
둘은 호들갑을 떨면서 송어를 꺼냈다. 곧 송어 두 마리가 얼음 위에 올라왔다.
그걸 본 소현이 기쁜 환호성을 질렀다.
“꺅!”
“맞다. 사진, 사진 찍어야지.”
급히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둘.
강현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구멍 아래 있는 설기와 눈이 마주쳤다.
잘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강현.
설기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유히 헤엄쳐서 사라졌다.
그렇게 설기가 떠난 걸 확인한 강현은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첫 낚시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떠들고 있는 아이들.
그 사이로 이질적인 공기를 내뿜고 있는 이가 있었다.
“….”
낚싯대와 눈싸움을 하는 윤섭.
아이들이 낚는 걸 본 뒤로 그의 눈에 우울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낚싯대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조용했다.
강현은 쓴웃음을 삼켰다.
윤섭이 얄미워서 빼놓은 게 아니었다.
윤섭이라면 아이들과 다르게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라니까. 강아지가 지나갔어!”
“뭔 개소리야.”
“아니, 내가 눈이 마주쳤다니깐?”
“헛소리 그만해. 강아지가 얼음 밑에 왜 들어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보니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던 사내아이가 송어와 같이 사진 찍는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쟤네 유니즈 아니야?”
“유니즈가 왜 여기서 송어를 잡아?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할래?”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친구의 말에 사내아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진짠데….”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보이는 거겠지. 그러게 게임 좀 적당히 해. 어제 또 밤 샜지?”
친구의 말에 사내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짜 헛것을 본 건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떠나가는 둘을 보며 강현은 짧게 침음성을 삼켰다.
“…그래, 못 들은 걸로 하자.”
그렇게 강현은 진실로부터 눈을 돌렸다.
* * *
얼마 안 있어서 설기가 돌아왔다.
아이들은 털이 얼어있는 설기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눈밭에라도 구른 거야?”
“감기 걸리면 어떡해.”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정작, 설기는 태연스럽게 몸을 흔들어서 얼음을 털어 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목도리를 풀어서 설기의 몸을 닦아 줬다.
“어디 갈 때는 말하고 가.”
“컹!”
강현의 말에 설기가 힘차게 짖었다.
그런 설기의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대답은 잘하지, 대답은.”
그러나 믿을 수 없었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윤섭을 보았다.
아직도 낚싯대와 눈싸움을 하는 윤섭.
“슬슬 가자. 내가 한 마리 줄게.”
어차피 한 사람당 두 마리까지였다.
강현에게 세 마리가 있으니 다 가져가지도 못했다.
“아니, 아직….”
꼬르륵.
갑작스러운 소리에 윤섭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배에서 소리가 난 소녀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단 소리였다.
그러자 윤섭의 손이 힘이 빠졌다.
휴가이긴 해도 매니저란 본분이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 가자. 가기 전에 한 곳만 더 들리고.”
전장터로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하게 말하는 윤섭.
그런 윤섭을 보며 일행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 * *
“정말 하실 거예요?”
“감기 걸릴 텐데….”
두 소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윤섭을 보았다.
하지만 윤섭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내라면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그런 윤섭의 말에 두 소녀도 더 말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신청이 끝났기에 말릴 수도 없었다.
“자, 다음 분들 들어오세요!”
“…그럼 이기고 돌아오마.”
사회자의 말에 윤섭이 굳은 얼굴로 발을 옮겼다.
이런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반팔과 반바지.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물에 들어갔다.
수영장처럼 생긴 곳.
물에 들어간 사람들이 몸을 떨었다.
얼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온도를 높이긴 했으나 차가운 건 마찬가지였다.
곧 사회자의 신호와 함께 수영장 위로 송어들이 쏟아졌다.
맨손 잡기.
사람들은 송어를 잡기 위해서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윤섭도 그중 하나였다.
몇 번이나 자빠지고 다시 일어났다.
“게 섰거라!”
그러한 윤섭의 외침을 들은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까부터 사극처럼 말하지?”
강현의 물음에 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들도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저런 걸까? 낚시의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렇게 윤섭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 가슴 쪽이 간지러워졌다.
토리가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슬쩍 고개를 내리니 슬그머니 발을 내미는 설기가 보였다.
“안 돼.”
“…!”
움찔, 설기의 몸이 떨려 왔다.
그리고 내밀었던 발을 다시 내려놓고는 강현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얌전히 구경하고 있다고 어필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들어 올렸다.
보나 마나 저 속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정말 방심할 수 없다니깐.’
강현은 설기의 코를 두드렸다.
“끼잉.”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어.”
이제는 안 속는다. 강현의 말에 설기의 몸에 힘이 빠졌다.
얌전히 품에 안기는 설기.
토리가 시무룩한 설기의 배를 두드렸다.
위로라도 해 주는 건가?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설기가 저기에 끼면 반칙이나 다름이 없었다.
설기의 움직임을 피할 송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속에서도 쉽게 잡았으니.’
저렇게 물이 얕으면 더욱 잡기 쉬울 거다.
“어?”
“셰프님!”
옆에서 부르는 소리에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송어를 번쩍 드는 윤섭을 볼 수 있었다.
“잡았다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의 울분을 토해 내듯 포효하는 윤섭.
정말로 적장의 목이라도 벤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서 거리를 벌릴 정도였다.
‘정말 대단한 양반이라니까.’
실소를 흘린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 * *
송어를 잡은 일행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는 잡은 송어를 바로 요리해 줬다.
각각 한 마리씩은 남기고 네 마리만 부탁했다.
송어회와 송어구이, 그리고 송어탕수육까지.
송어 요리가 차례대로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일행들은 쉽사리 손을 뻗지 못했다.
“괘, 괜찮으세요?”
“그래, 괜차에취!”
흘러나온 콧물을 쓱 닦는 윤섭.
역시나 송어를 잡은 뒤로 몸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감기는 확정이네.’
강현은 짧게 혀를 찼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푸에취, 킁. 먹어.”
윤섭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소녀들은 여전히 눈치를 봤다. 결국 강현이 나섰다.
“형 말대로 자업자득이니깐 신경 안 써도 돼. 편하게 먹어.”
“예!”
“네.”
훌쩍.
“…난 거기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는데.”
코를 훔친 윤섭이 강현을 노려봤으나 강현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윤섭은 한 마리로 만족하지 못하고 물 위를 누비고 다녔다.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왔지.’
그 결과가 지금의 상태였다.
강현이 말했던 것처럼 자업자득이었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곧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맛있어요!”
둘의 모습에 강현 역시 젓가락을 들었다.
송어회.
쫄깃쫄깃한 식감이 입안 가득 퍼져갔다.
‘…역시 바로 잡은 거라 다르네.’
회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구이나 매운탕과 같은 다른 요리들은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슬쩍 옆을 보니 설기의 꼬리가 얌전했다.
‘어쩔 수 없긴 하지.’
축제. 이만한 인원이 몰리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를 유지하는 것도 대단했다.
강현은 초장에 송어회를 푹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송어를 먹던 소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먹고 저 위에 놀러갔다와도 돼요?”
“위에?”
“에취! 놀이기구 쪽 말이지?”
윤섭은 알고 있는지 말을 하더니 코를 팽 풀었다.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소녀들이 입을 열었다.
“눈썰매랑 범퍼카도 있어요!”
그걸 언제 본 거지.
강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모처럼 왔는데 제대로 놀고 가야지. 에취!”
“…형은 쉬는 게 낫지 않아?”
이미 환자였다. 더 놀다가는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섭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쓰러지더라도 얼음 위에서 쓰러지겠다!”
“오오!”
벌떡 일어나서 외치는 윤섭의 모습에 소녀들이 박수쳤다.
아니, 소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컹! 컹!”
“…넌 왜 좋아하는데.”
아이들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흔드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