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시간이 좀 걸려요.
무려 두 장.
그것도 일반적인 입장권이 아니었다.
‘텐트 낚시?’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송어 낚시는 잘 알고 있었다. 얼음에 구멍을 내고 낚시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텐트 낚시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텐트 안에서 낚시하라는 건가?’
아니면 쉴 수 있는 자리일 수도 있었다.
평창에 송어가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축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잘 몰랐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갈게.”
입장권을 건넨 이장은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강현이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도 일어나서 배꼽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뒤를 돈 채로 손을 흔드는 이장.
곧 문이 닫히고 이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강현은 이장이 건넨 입장권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송어 축제는 1월이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지금은 주말에 있을 앤의 식사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매장 구석에 걸린 달력.
주말이면 이제 해가 바뀐다.
이제 12월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 * *
한 해의 마지막은 강현의 예상과 달리 조용히 지나갔다.
여느 날과 다름이 없는 일상.
‘하긴, 당연한가.’
불과 며칠 전에 크리스마스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 정리가 이제 막 끝난 참이었다.
쉬는 날도 필요했다.
하지만 신년 첫날은 조금 달랐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마을 군데군데 들렸다.
상후나 미영이가 아니었다.
‘가족을 보러 왔구나.’
마을을 뛰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더니.’
강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강현의 시선이 옆에 있는 설기를 향했다.
뿌루퉁한 표정의 설기.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마을을 뛰다 보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설기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후랑 미영이는 괜찮지만.’
둘은 설기를 귀찮게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나는 예외였다.
‘모나는 친구라기보다 남매에 가깝지.’
귀찮아하면서도 챙겨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유는 그뿐만이 아닐 수 있었다.
늑대들은 영역에 민감하다. 설기도 어리지만 어엿한 늑대였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기분이 풀렸는지 꼬리가 살랑거렸다.
* * *
매장으로 돌아와 오픈을 준비한다.
1월 1일은 빨간 날이었다.
공휴일.
그러나 강현에게는 다를 게 없었다.
‘주에 하루씩 쉬는데 이런 날까지 쉴 순 없지.’
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억지로 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강현이 매장을 열었다.
그리고 열자마자 첫 손님이 찾아왔다.
“삼촌!”
반갑게 손을 흔드는 상후.
강현은 웃으며 상후를 맞이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미영이는?”
“미영이는 산소 다녀온다고 했어요!”
상후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어디 안 가?
그런 물음은 던지지 않았다.
상후의 상황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병원, 아버지는 해외에 있다.
할머니랑 둘.
어딜 갈 상황이 아니었다.
빨리 온 이유도 짐작이 갔다.
마을 사람들의 친척들이 찾아오니 마음이 뒤숭숭해졌을 거다.
‘부모님이 생각났겠지.’
강현은 모른 척 입을 열었다.
“떡국은 먹었어?”
“아뇨?”
상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강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잠깐 기다려. 금방 해 줄게.”
강현은 어리둥절한 상후를 놔두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홀에 있던 설기가 짖었다.
“컹! 컹!”
쫑긋 솟아오른 귀. 흔들리는 꼬리.
강현은 그런 설기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넌 아침에 먹었잖아.”
“끼잉.”
바로 불쌍한 표정을 짓는 설기.
불과 얼마 전까지 살을 뺀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하지만 지금의 설기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기다려 봐.”
“컹!”
설기가 밝게 짖었다.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 * *
강현은 떡을 꺼내서 물에 불렸다.
떡은 넉넉히.
그리고 대파를 썰고 달걀을 꺼내서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했다.
지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고명.
한식의 기본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고명이 완성되면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아 준다.
중간에 다진 마늘과 간장, 후추를 살짝 넣어 준다.
고기에 간이 밸 정도로.
고소한 냄새가 솔솔솔 올라왔다.
그리고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물을 부어 준다.
뿌옇게 변하는 물.
물이 끓기 시작하면 올라오는 거품을 걷어 낸다.
단순 작업.
그러나 국물이 점점 맑아지는 게 보였다.
요리는 정성이었다.
그렇게 충분히 끓여 준 후 불린 떡을 넣어 줬다.
그리고 까나리 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해 준다.
불린 떡은 금방 익는다.
그렇다고 해서 완성이 아니었다.
익기만 하면 떡과 국물이 따로 논다.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줘야 했다.
그래야 떡에도 간이 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현이 원하는 농도로 변했다.
국자로 대접에 옮겨 담고 미리 썰어 놨던 파와 지단을 가지런히 놓아 준다.
그리고 김과 깨까지 올리면 떡국이 완성되었다.
강현은 완성된 떡국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면 팔아도 손색이 없네.’
떡국의 완성도를 떠나서 그릇에 담기니 그럴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양식 그릇이 아니었다.
지금 강현의 주방에는 한식에 쓰이는 각종 양념과 그릇들이 준비된 상태였다.
황대길 덕분이었다.
올 때마다 장비를 하나씩 들고 오다 보니 어느새 가득 찼다.
일식과 중식에 쓰이는 것도 있지만, 한식에 비교할 순 없었다.
덕분에 지금 당장 한식집으로 업종을 변경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강현은 완성된 떡국을 쟁반에 받쳐서 홀로 나갔다.
“자.”
하나는 테이블 위에.
다른 하나는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자 둘의 눈이 반짝거렸다.
“잘 먹겠습니다!”
“컹!”
활기찬 인사와 함께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상후.
한입 입으로 가져가더니 눈을 크게 떴다.
“삼촌, 맛있어요!”
그런 상후의 반응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맛이 없었다면 설기가 또 먹는다고 하지 않았겠지.
아침에도 커다란 대접으로 세 그릇을 비운 설기였다.
강현은 얼굴을 대접에 박고 있는 설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상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뜨거우니깐 천천히 먹어.”
“예!”
“…컹!”
대접에 머리를 박고 있던 설기도 함께 짖었다. 덕분에 국물이 바닥에 튀었다.
‘아니, 너 말고.’
펄펄 끓는 물을 삼켜도 멀쩡한 설기였다.
강현은 바닥에 튄 국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물이 저 정도로 튈 정도니, 대접 안에 들어가 있는 설기의 머리가 어떨지 예상이 되었다.
강현은 설기가 흘린 국물에 관심을 보이는 토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강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토리.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먹으면 안 돼.’
강현이 작게 속삭이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리도 뭐 먹을래?’
하나 만들어 줄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먹은 게 아직 소화가 안 된 것이었다.
국물에 다가갔던 건 정말로 호기심 때문이었다.
피식 웃은 강현이 토리를 어깨에 올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방을 정리하다 보니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잘 먹었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돌리자 상후가 먹은 걸 정리해서 주방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볼을 긁적인 강현이 접시를 받았다. 상후가 먹은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설기가 먹은 그릇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흘린 국물도 닦여 있었다.
물론, 설기의 얼굴은 국물로 엉망이었다.
상후가 설기와 친해졌다지만 얼굴까지 허락한 건 아니었다.
설기는 혓바닥으로 얼굴에 묻은 국물을 닦아 내려 하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굴 정도는 스스로 씻어야지.’
하지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스스로 하려는 게 기특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아니군. 먹으려는 거네.’
털을 정리하는 게 아니었다.
몸까지 배배 꼬며 얼굴에 묻은 국물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대접 안에 있는 거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외면한 채 상후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아니에요! 삼촌, 저 숙제하고 있어도 되죠?”
“그래.”
“아싸! 고마워요. 삼촌!”
강현의 허락에 상후가 환하게 웃으며 구석 자리로 갔다.
이제 지정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 * *
쓱쓱.
조용한 매장 안에 상후의 팬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털을 핥으려던 설기는 강현의 손에 의해서 씻겨 나간 후 시무룩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길게 하품하는 설기.
평화로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러던 설기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쫑긋 올라오는 귀.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딸랑딸랑.
문이 열리면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머, 진짜로 식당이네.”
“작년에도 있었나?”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건 젊은 부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온 건 부부만이 아니었다.
“여기 싫다고! 나 치킨 먹고 싶다고!”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 부부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뒤따라온 건 상후나 미영이 또래로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할머니가 여기에 치킨도 판다고 했잖아.”
“이런 곳 말고!”
“어머,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여성이 강현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성이 입을 열었다.
“종민아. 너 자꾸 떼쓰면 전에 말한 장난감 안 사 준다?”
엄한 목소리에 사내아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밀었다.
뒤로 쓰러지는 의자.
쿵!
의자를 넘어트릴 생각까지는 없었는지, 움찔 몸을 떤 사내아이가 남성의 눈치를 봤다.
“종민이. 너….”
“나, 나 아냐! 바람 때문이야.”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이미 문이 닫혔다. 바람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남성이 의자를 세우고는 강현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식업을 하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저 아이들이 성숙한 거지.’
상후와 미영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일찍 철이 들었다.
그와 달리 사내아이는 잘못한 건 아는지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저게 보통이었다.
강현의 대꾸에도 남성은 다시 한번 사과한 후에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이곳에 치킨을 판다고 하셨는데.”
“예. 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요.”
기름 온도를 올리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러자 부부의 표정이 환해졌다.
“괜찮습니다. 기다릴게요.”
파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이런 곳에서 치킨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 준비해 드릴게요.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아, 괜찮….”
대답하려던 여인이 멈칫했다.
사내아이가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종민이 뭐 필요해?”
“…콜라.”
종민이의 말에 남성이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콜라도 하나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홀을 확인했다.
앉아서 숙제하던 상후가 새로운 손님들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애써 관심 없는 척하지만, 강현의 눈에는 보였다.
그리고 설기는.
‘…이제 은신술까지 쓰는 건가.’
집에서 나와서 화분 사이에 숨어 있는 설기를 보고 실소를 흘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 정도.
눈에 띄면 피곤해진다는 걸 알아챈 것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은 주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