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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1화 (161/227)

161화 우리가 남이야?

따닥따닥.

다 탄 장작이 무너지면서 불똥이 올라왔다.

하늘하늘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불똥들의 모습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보니 배가 볼록해진 설기가 드러누운 게 보였다.

‘…많이 먹긴 했지.’

그동안 못 먹은 걸 만회라도 하려는 듯 엄청나게 먹었다.

덕분에 지금은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강현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장비와 재료를 챙겨왔다.

물론, 설탕에게 보자기를 맬 수 없어서 평소보다 조촐했지만, 설기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일주일 동안 야생에서 먹었을 테니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 들어간 게 신기할 정도야.’

옆에는 설기가 먹은 요리들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강현은 짧게 혀를 찼다.

‘…반갑긴 한데.’

갑자기 설탕이 떠오르는 강현이었다. 괜히 얄미워진 강현은 불멍하고 있던 토리를 들어다가 설기 배 위에 올렸다.

고개를 갸웃하는 토리.

그러나 설기는 배가 불편했는지 작은 발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설기의 짧은 발로는 산처럼 튀어나온 배를 넘을 수 없었다.

“낑.”

결국 포기했는지 발들이 얌전해졌다.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는 설기. 그러나 토리는 볼록 튀어나온 배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리 잡아 버렸다.

설기가 숨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토리.

그 모습을 보니 좀 기분이 풀렸다.

강현은 고개를 돌려 다시 장작을 바라보았다.

잘 타고 있는 장작.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제 돌아온 것 같네.’

불을 바라보는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온 뒤에도 설기의 기분은 진정되지 않았다.

할아버지 댁뿐만 아니라 산 이리 저리를 돌아다니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잘 있었는지 확인하는 느낌.

고작 일주일 사이에 바뀌어 봤자 얼마나 바뀌었겠는가.

‘…아니, 애당초 저쪽이 집이잖아.’

하지만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설기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리도 좋을까.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강현은 산속을 뛰어다니는 설기를 향해 소리쳤다.

“설기야! 그만 집에 가야지!”

집은 당연히 강현네 집이었다.

강현의 말을 들은 설기의 귀가 쫑긋 솟았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반짝이는 눈.

곧 설기가 후다닥 달려왔다.

전과 달리 강현의 앞에서 멈춰 서는 설기.

꼬리가 바닥을 내려칠 때마다 흙먼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서 가자고 닦달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실소를 흘리고는 설기를 들어 올렸다.

헥헥.

혀를 빼고 웃는 설기.

주머니에 있던 토리가 나와서 강현의 어깨로 올라갔다.

이제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 생각했던 강현의 생각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깨졌다.

* * *

딸랑딸랑!

매장 문을 열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건 이장이었다.

이장은 설기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돌아왔어?”

“컹!”

반가움에 밝게 짖는 설기.

그러나 강현 때와는 달려들거나 하지 않았다.

“잘 왔어. 집이 최고지.”

물론 집은 그쪽이다. 이장이 곧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럼 설탕인 간 거여?”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냥 보내면 어찌 혀! 송별회도 못 했는데.”

무슨 송별회를 한단 말인가.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보나 마나 어른들의 술자리일 뿐이었다.

‘설탕이 성격상 싫어하겠지.’

이장은 진짜로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강현은 그런 이장을 다독였다.

“다음에 또 올 거예요. 그래도 여기가 싫지 않은 모양이더라고요.”

이건 강현의 예상일 뿐이었지만, 또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강현의 말에 이장의 눈이 커졌다.

“그렇지? 암, 여기만큼 살기 좋은 곳이 어딨다고.”

“그보다 무슨 일이세요?”

다급하게 들어오던 걸 보니 용무가 있던 게 분명했다.

강현의 말에 이장의 표정이 변했다.

잊고 있던 걸 떠올린 것이었다.

“이럴 때가 아녀. 그… 크리트마슨가. 그리수마튼가. 알지?”

“…예?”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크리스마스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였다.

“알지?”

“아,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긴 안다.

모를 수가 없다.

강현의 대답에 이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곧 비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려. 우리도 그걸 해야겠어.”

“…크리스마스를요?”

“그래도 그짝이 도시 살다 왔으니 잘 알 거 아녀? 사람은 얼마든지 가져가 써도 되니 좀 부탁혀.”

강현의 손을 꼭 붙잡는 이장.

이장의 박력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역시 그짝이라면 해 줄 줄 알았어. 고마워.”

환하게 웃은 이장이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왔던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강현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이장이 떠난 자리를 보았다.

“…응?”

그리고 뒤늦게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 * *

크리스마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에서는 전 세계인의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자체는 강현의 의지와 상관없이 열리는 것이었다.

열고 싶다고 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싶다는 건가?”

하지만 갑자기 왜?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에는 관심이 없던 이장이 아니었던가.

그런 강현의 의문은 점심이 지나고 해결되었다.

“노론리 마을에 교회가 생겼더라고요.”

“교회요?”

수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노론리 마을이 제법 규모가 크다지만, 교회가 들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곧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론리 마을이 그 정도인데 다른 마을은 어떻겠는가.

노론리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까지 생각해서 지은 것이었다.

‘그러면 읍내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니깐 낫겠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있는 종교라고 해 봤자 절 몇 개가 전부였다.

심지어 그조차도 대부분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신자도 모을 겸 이번 크리스마스 행사를 크게 연다는 모양이에요. 다른 큰 교회에서도 지원이 오고.”

거기까지 들은 강현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강현의 물음에 수진과 민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 그쪽 이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초대장을 주시고 가셨어요.”

노론리 이장이라고 하면 강현네 이장과 오랜 악연이었다.

운동회 때도 봤기에 얼마나 사이가 나쁜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몇 분이 놀러 가신다고 하니.”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이 길길이 날뛸 만했다.

설탕 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들 무료한 상황에서 그러한 이벤트가 있으니 호기심이 생길만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장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근심이 가득한 강현의 얼굴을 본 수진이 살포시 웃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이장님은 굳이 크리스마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잔치를 열고 싶으신 걸 거예요.”

수진의 말에 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설탕의 송별회가 스쳐 지나갔다.

아쉬워하던 이장의 모습도.

‘…단순히 설탕을 못 봐서만은 아니었네.’

왜 몰랐을까.

즉, 명분이 필요하단 뜻이었다.

“…그래도 좋네요. 크리스마스.”

수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강현의 시선이 향하자 수진이 얼굴을 붉혔다.

“어릴 적에는 트리를 장식하기도 했거든요. 물론 이이는 해 본 적이 없다더군요.”

수진의 시선에 민호가 뒷덜미를 긁적였다.

민호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런 걸 챙길 것 같진 않았다.

곧 수진의 시선이 잠든 하은이에게 향했다.

“저도 이 아이에게는 그런 추억을 남겨 주고 싶네요.”

수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호가 굳은 표정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 씨, 합시다. 아니, 부탁드립니다.”

하은이.

자식에게는 좋은 추억들을 남겨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었다.

민호의 눈빛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죠.”

그래, 어렵게 생각할 필욘 없었다.

“교회 행사가 크리스마스 당일이라고 했죠?”

“예.”

그렇다고 교회 행사를 방해할 순 없었다.

그리고 이장도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닐 거다.

“그럼 저희는 이브에 열죠. 크리스마스 파티.”

강현의 말에 수진과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벌써 설레네요. 설기야, 그렇지?”

수진의 물음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 민호가 강현을 향해 물었다.

“강현 씨, 뭐부터 할까요?”

민호의 물음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서울에서도 크리스마스 행사를 많이 치렀다.

하지만 전부 매장에서의 일이었다.

“…일단 도와줄 사람부터 구하죠.”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면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강현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크리스마스 파티라. 재밌는 걸 계획하는군.”

이야기를 들은 정기훈 작가가 미소 지었다.

“여러분들은 크리스마스 때 뭘 하셨어요?”

“나야 주로 공연했네. 공연이 없는 날도 따로 뭘 해 본 적은 없군. 그냥 가족과 보냈네.”

이정환이 말했다. 크리스마스 연주회.

클래식 쪽은 대부분 비슷할 거다.

“나도 크리스마스 때는 일했네.”

옆에 있던 황대길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는 외식업의 대목이었다.

강현과 마찬가지로 매장에서 보냈을 거다.

일행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남은 이에게 향했다.

“…나도 딱히 놀러 나간 적은 없군.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에는 몇 번인가 간 적이 있지만.”

정기훈 작가의 성격상 시끄러운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방에 틀어박혀서 그림을 그린 게 전부였다.

정기훈 작가의 말이 끝나자 일행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파티다운 파티를 즐겨 본 적이 없다는 소리였다.

“에이, 무슨 걱정입니까.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가족이나 친한 이들과 보내는 것이지. 아, 동생이 캠핑 좋아하잖아. 친한 사람들 불러서 캠핑처럼 바비큐나 해 먹으면 그게 크리스마스죠.”

갑작스러운 소리에 일행들이 눈을 껌뻑였다.

태연스럽게 매장에 앉아 있는 이는 강현도 잘 아는 이였다.

“만기 형님? 언제부터 계셨던 거예요?”

장만기가 강현을 보며 손에 든 소주병을 흔들었다.

“아까부터. 술 생각이 나서 놀러 왔는데, 다들 심각해 보이길래 듣고 있었지.”

장만기가 의자를 끌고 와서 일행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르신은 미술 하셨잖아요? 그럼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게 마을 꾸미고, 그쪽 어르신께서는 동생이랑 같이 바비큐 준비하고, 그리고….”

장만기의 시선이 이정환에게 닿았다.

“어르신 피아노 솜씨가 기가 막히더군요. 잘 들었습니다.”

“고, 고맙네.”

이정환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리사이틀에도 다녀온 게 분명했다.

“피아노 어르신이 캠프파이어 할 때, 딱 멋지게 캐럴 한 곡 치면 되겠네. 크, 생각만 해도 좋네.”

장만기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장만기가 셋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을을 꾸미는 건 달랐다.

하물며 이정환의 피아노를 캠프파이어 배경음으로 쓰다니.

강현은 조심스레 삼인방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불쾌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던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그렇죠?!”

강현과 수진, 민호가 놀라서 이정환을 돌아봤지만, 이정환은 담담히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연말이라 얼굴 좀 보자고 닦달했는데, 이곳으로 부르면 되겠군. 온 김에 밥값 좀 시키고.”

“오, 좋은 생각이네. 나도 몇 놈 불러야겠어. 올라가기 귀찮았는데 잘 됐어.”

이정환의 말에 정기훈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밥도 제대로 준비해야지. 손님을 홀대할 순 없으니.”

황대길이었다.

‘…어째, 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

강현과 수진, 민호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러는 사이 장만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전 마을 사람들 모아서 손님이 머물 빈집 좀 청소하겠습니다. 부족하면 마당에 텐트라도 치면 되니깐.”

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장만기.

강현은 그런 장만기를 보며 중요한 걸 떠올렸다.

“…형님이 왜?”

우리 마을 행사 아닌가.

강현의 물음이 장만기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우리가 남이야? 동생, 나 섭섭해.”

“아, 아뇨.”

당황한 강현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장만기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이런 재미난 일에 나를 빼놓을 순 없지.”

그리고 웃음을 터트리는 장만기.

진짜 이유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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