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여
창고 밖으로 나가니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아기 늑대가 보였다.
‘저기는 먼지가 많을 텐데.’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기가 없는 동안 있을 생각인가?’
그렇게 아기 늑대를 보던 강현은 한기에 몸을 떨었다.
한가하게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밑을 보니 토리가 오톨도톨 떨고 있었다.
강현은 서둘러서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다.
난로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자 열기가 올라왔다.
그제야 꼬물꼬물 기어 나오는 토리.
그리고 어느새 지붕 위에서 내려온 아기 늑대가 난로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강현은 그런 아기 늑대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마땅한 호칭이 없는 것이었다.
잠깐 있을 거지만, 대충 부를 순 없었다.
‘설기도 백설기에서 따온 거니깐.’
생각나는 이름이 하나뿐이었다.
“설탕 어때?”
백설탕. 설기와 형제이니 잘 어울렸다.
아기 늑대가 슬쩍, 강현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마음에 든 건가?’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강현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설기와 다르게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설탕아. 이제 집으로 갈 건데, 거기는 사람이 많아. 괜찮겠어?”
강현의 물음에 설탕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설기처럼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쉬었으니 갈까?”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다.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현의 패딩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 * *
마을로 돌아온 강현.
택시에서 얌전히 앉아있던 설탕은 내리자마자 건물 위로 뛰어 올라갔다.
강현은 멀어지는 택시를 보며 쓴웃음을 보았다.
‘못 봤으니 다행이네.’
봤다면 시끄러워졌을 거다.
강현은 건물 위에 앉은 설탕을 보며 팔짱을 꼈다.
식사 때문이었다.
‘…형제이니 입맛도 비슷하려나?’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고기가 무난하겠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내려와서 주방 불을 켰다.
‘오븐은 예열에 시간이 걸리니깐.’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먼저 냄비에 물을 받아서 올렸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큼지막한 안심 두 덩이를 꺼냈다.
겉면에 소금으로 간을 해 주고 팬에 기름을 둘러 준다.
금세 열이 올라오는 팬.
적당한 온도가 되었을 때, 고기를 넣어 준다.
굽는 게 아니라 튀긴다는 느낌으로.
겉면이 충분히 익혀지면 고기를 건져 낸다.
그리고 팬에 남은 기름을 버리고 버터를 넣었다.
녹기 시작한 버터.
거기에 고기를 올리자 치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올라왔다.
버터와 고기가 만나면서 먹음직스러운 향이 매장 곳곳으로 퍼져 갔다.
이어서 강현은 팬에 통마늘과 로즈메리도 넣었다.
고기에 기름을 끼얹으면서 충분히 익혀 준다.
마지막으로 레스팅.
휴식이란 뜻으로 육즙을 모아 주는 것이었다.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놀 수는 없었다.
강현은 고기를 구웠던 팬에 채소를 올렸다.
아스파라거스와 마늘, 양송이버섯.
스테이크에 곁들여서 먹을 것들을 굽는 것이었다.
그렇게 채소가 구워지자 미리 올려놨던 냄비에 면을 삶았다.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버터와 고기 향으로 가득했던 주방에 상큼한 토마토의 향이 뒤섞였다.
고작 하루.
하루 만에 팬을 잡는 것이었지만, 그립기까지 했다.
자연스레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 * *
요리가 끝나고 돌아보자 어느새 다가온 설탕을 볼 수 있었다.
강현은 소리 없이 뒤로 다가온 설탕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흔들리는 꼬리.
귀가 쫑긋거리고 있었다.
이런 건 설기와 다를 게 없었다.
귀여운 모습. 하지만 강현은 엄한 표정으로 설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방에는 들어오면 안 돼.”
갸웃.
“밖에 홀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가져다줄게.”
강현의 말에 주방과 홀을 번갈아 보는 설탕.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홀로 나갔다. 그리고 폴짝, 뛰어서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에 웃음을 흘린 강현이 접시를 가지고 홀로 나갔다.
음식이 나왔음에도 멀뚱멀뚱 쳐다보는 설탕.
강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강현은 아까보다 거세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먼저 먹어도 돼.”
그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킁킁, 하고 스테이크의 냄새를 맡는 설탕.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
털이 바짝 섰다. 강현을 올려다보는 설탕.
귀가 파르르 떨려 왔다.
다시 봤다는 눈빛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설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강현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리고 한입.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육즙이 퍼져 나갔다.
‘익기도, 맛도 적당하네.’
이미 눈과 코로 확인했으나 직접 먹어 보는 것만 못했다.
그렇게 맛을 음미하던 강현의 눈에 토리가 들어왔다.
어느새 접시 옆으로 다가온 토리.
강현은 접시에 있는 아스파라거스 하나를 토리에게 건넸다.
그러자 야금야금 먹기 시작하는 토리.
금세 볼이 빵빵해졌다.
그런 토리를 지켜보던 강현은 문뜩,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설탕이 강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입맛에 맞지 않나?’
아니었다. 아까의 반응은 진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현의 시선이 설탕의 뒤로 향했다.
흔들리는 꼬리.
저건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설탕이 보고 있는 건 다른 것이었다.
설탕의 시선이 강현이 앉은 의자에 향했다가 자신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에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어.”
테이블 위에 있던 설탕이 슬그머니 의자 위로 내려왔다.
‘나를 따라 하는 건가.’
강현은 놀란 눈으로 설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직 새끼인 설탕에게 테이블은 너무 높았다.
당연히 의자에 앉아서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의자에 앉은 설탕이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테이블을 노려봤다.
그 모습에 강현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일어나서 뒷문으로 다가가는 강현.
‘여기 어디에…. 있다.’
강현은 곧 원하던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사각의 상자.
아직 표장조차 뜯지 않은 것이었다.
‘좀 더 나중에 쓸 줄 알았는데.’
하은이를 보고 떠올라서 산 것이었다.
아기 의자.
마을에 아기는 하은이 뿐이지만, 다른 마을에서 찾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쓸 일이 없어서 구석에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포장을 뜯고 테이블에 설치하자 설탕이 사뿐사뿐 건너왔다.
강현은 아기 의자에 붙어 있는 미니 테이블에 접시를 올려 줬다.
맞춤으로 제작한 것처럼 크기가 딱 맞았다.
“마음에 들어?”
강현의 물음에 설탕은 강현과 테이블을 뚱한 표정으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하는 설탕.
그 모습을 본 강현도 자리로 돌아왔다.
아스파라거스를 다 먹었는지 파스타 면과 씨름을 하는 토리.
빵빵해진 볼이 토마토소스로 엉망이었다.
강현은 그런 토리의 볼을 손가락으로 닦아 준 후 식사를 재개했다.
* * *
성향은 다르지만 설기의 형제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금세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비운 설탕.
그렇게 식사를 마친 설탕이 벌떡 일어나더니 매장 밖으로 걸어갔다.
“설탕아, 어디가?”
당황한 강현이 불렀지만, 대꾸조차 안 하고 나가는 설탕.
강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리고 설탕이 돌아온 건 강현이 정리를 막 끝냈을 때쯤이었다.
도도한 걸음으로 걸어온 설탕은 입에 문 걸 내려놓았다.
‘…비둘기?’
겉모습은 비둘기가 맞다.
하지만 강현으로서는 처음 보는 크기였다.
설기에게 단련된 덕분인가. 강현은 비둘기에서 시선을 뗐다.
‘식사량이 부족했나?’
설기가 먹던 걸 떠올리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얘는 요리 못해. 다른 걸 해 줄게.”
강현의 말에 설탕이 고개를 저었다.
이걸 먹겠다는 건가?
아니, 조금 달랐다.
설탕은 앞발로 비둘기를 밀더니 그대로 매장을 나가 버렸다.
그제야 강현은 설탕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나 주는 건가.”
식사의 보답.
매장 밖으로 나가자 건물 위에 올라가 있는 설탕이 보였다.
고양이처럼 앞발을 핥고 있는 설탕.
그 모습에 왠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 착한 아이구나.”
강현의 말을 들었는지 설탕이 뚱한 표정을 던지더니 곧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렇게 설탕에게서 시선을 뗀 강현은 바닥에 놓인 비둘기를 보았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걸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선물 받은 걸 바로 버릴 수 없었다.
‘…나중에 기회를 보다가 토리보고 묻어 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비둘기를 챙긴 강현은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다시 시작된 일상.
매장 문을 열자마자 이장과 함께 어르신 삼인방이 찾아왔다.
“어우, 날이 더 추워졌어.”
오자마자 불평하는 이장을 본 강현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다 같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식당에 밥 먹으러 오지 뭐 하러 오나.”
퉁명스러운 말투.
하지만 이장 나름대로 반가워하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뒤에 있던 정기훈 작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추워서 집에만 있었더니, 내가 산책이나 하자고 불렀네.”
그제야 강현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담담한 이정환이나 황대길과 달리 이장의 입이 삐쭉 나와 있었다.
억지로 끌려간 게 분명했다.
“어휴, 얼어 죽겠는데 산책은 무슨. 기운도 좋아.”
“안에서 술만 마시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옆에 있던 이정환이 웃으며 이장을 달랬다.
“누가 술만 마신다는 거여.”
“으음, 아닌가?”
무뚝뚝한 황대길까지 돌아보며 묻자 이장이 입을 다물었다.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곤란해하는 이장을 구해 준 건 강현이었다.
“그래도 잘 오셨어요. 술도 혼자 마시는 것보다는 같이 마시는 게 낫죠.”
안 그래도 요즘 날이 추워지면서 손님이 줄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평창의 겨울은 서울의 겨울과 달랐다.
강현도 칼바람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강현이 자리를 안내하자 이장이 못 이긴 척, 헛기침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설기 고 녀석은 어딨어?”
“무슨 소리인가? 설기라면 저 위에 있지 않은가?”
정기훈 작가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선반 위로 향했다.
선반 위에 올라가 있던 설탕이 심드렁한 눈빛을 던지고는 고개를 돌렸다.
설기의 집에서 쉬라고 했더니 쳐다도 보지 않고 선반 위로 올라간 설탕이었다.
‘덕분에 대청소했지.’
설탕이 올라갈 때마다 떨어지는 먼지 때문에 청소할 수밖에 없었다.
선반 위는 평소 손이 닿지 않는 곳이기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기분이 별로인 것 같네.”
음식을 해주면서 설기와 친해진 황대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장이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여. 쟈는 설기가 아니잖어.”
“음?”
이장의 말에 다시 설탕을 바라보던 삼인방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장을 바라보았다.
“자네 혹시….”
“치매 아녀!”
셋의 눈빛에 발끈한 이장이 외쳤다.
하지만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누구도 믿지 않는 눈치.
그때, 강현이 나섰다.
“이장님 말씀이 맞으세요. 저 아이는 설기 형제예요.”
“응?”
놀란 눈으로 강현을 돌아보는 셋.
입을 열려는 정기훈 작가를 이정환이 붙잡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는 이정환.
그러자 정기훈 작가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강현이 이장을 감싸 준다고 생각하는 것.
그 모습에 이장이 더욱 발끈했다.
강현은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입을 열었다.
“진짜입니다. 이장님을 감싸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강현의 말에도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황대길이 나섰다.
“설기야, 간식 줄까?”
설탕을 보며 말을 건네는 황대길.
설탕은 슬쩍 황대길을 보다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맞구먼. 설기가 아니야.”
설기라면 간식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그제야 납득하는 삼인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