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만은 둥둥 떠다니는 꽃잎을 바라보다가 다른 쪽 꽃잎도 떼어 냈다.
그러는 사이 모나는 물 위로 올라와서 설기를 잡았다.
코에 끼고 있던 꽃잎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헤엄치고 있던 설기의 발이 분주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설기가 튜브라도 된 듯 매달리는 모나.
설기는 그런 모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맘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괜찮아요?”
에밀리야의 물음에 하만은 코를 찡긋거렸다.
“내, 냄새가 나긴 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씩씩한 대답에 일행들이 미소를 지었다.
온천이 괜찮냐는 물음이었지만,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물이 어색한지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이쪽으로 와서 기대게.”
“아, 옙!”
로멘의 권유에 하만이 벽으로 다가갔다. 벽에 기대고 나서야 긴장이 풀어졌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온천을 바라보았다.
로멘이 그런 하만을 향해 물었다.
“괜찮은가?”
“아…. 예!”
아까와 같은 질문. 그러나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군.”
로멘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셋은 몸을 담근 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별과 달이 일행들을 비추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군.”
로멘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요정의 영역이란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렇게 밤하늘을 바라보던 에밀리야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탄성을 뱉었다.
“잠시만요.”
일어나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숲에서 쉬고 있던 소나가 날아왔다.
날갯짓하던 소나가 팔에 앉자 에밀리야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알겠지? 부탁해.”
고개를 끄덕인 소나가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일행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에밀리야와 소나를 보았다.
그러나 에밀리야는 웃을 뿐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일행들도 굳이 묻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나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밤하늘을 유유히 날아오는 소나의 발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강현에게도 익숙한 형태였다.
‘바구니?’
소나는 에밀리야에게 바구니를 건네고 다시 날아올랐다.
나무줄기와 풀로 엮어서 만든 바구니.
바구니 안에는 열매와 함께 과일주가 담겨 있었다.
에밀리야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바구니를 흔들었다.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에밀리야의 말에 로멘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웃음을 터트린 에밀리야는 나무로 만든 잔을 일행들에게 건넸다.
달콤한 과일주가 잔에 차올랐다.
강현은 받은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잔이라면 뒤에 땅에 올려놓으면 된다. 그러나 열매를 나눠 먹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에밀리야가 과일주를 뺀 바구니를 그대로 물 위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쓰러지지 않고 둥둥 떠다녔다.
일행들이 눈을 크게 뜨자 에밀리야가 살포시 웃었다.
“호수에서 차를 마실 때 쓰려고 만든 거예요. 마땅한 기회가 없어서 쓰질 못했는데.”
에밀리야가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저었다.
“멋지네요.”
“예! 멋져요.”
“낭만적이군.”
강현과 하만, 로멘이 차례대로 말을 이었다.
그때, 강현의 가슴 쪽이 간질거렸다.
토리가 고개를 내밀고 바구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물을 싫어하는 토리답게 강현의 주머니에서 쉬고 있었다.
강현은 웃음을 흘리고는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에밀리야를 바라보자 에밀리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야에게 허락받은 강현은 토리를 들어서 바구니 위에 올려놨다.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는 토리.
갸우뚱.
토리가 움직일 때마다 바구니가 흔들렸다.
하만과 로멘은 토리를 볼 순 없지만, 상황을 짐작했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움찔.
몸을 떨던 토리는 금세 익숙해졌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유까지 보여 줬다.
마치 모형 배에 올라간 햄스터처럼 보였다.
‘다르진 않나?’
마음에 들었는지 드러눕는 토리. 그리고는 옆에 놓인 열매를 입으로 가져갔다.
사실 배를 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위에 있는 열매를 노렸던 거 아닐까?
잠깐 그러한 생각이 떠올린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일행들은 토리에게서 시선을 떼고 술잔을 홀짝였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일행들.
하만과 에밀리야가 이야기를 나누고 로멘이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모습이었다.
수인과 요정, 인간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수다를 떨다니.
강현은 이야기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취기가 빨리 올라오는 듯했다.
그 때문에 토리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
바구니에서 쉬고 있는 토리.
그런 토리를 향해 다가가는 그림자 하나.
아니, 그림자 하나와 그 뒤에 딸린 짐 덩어리.
물속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레 나아갔다.
수면 위로 꼬리 두 개가 살랑거렸다.
토리가 이상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두 그림자가 바구니에 도착한 뒤였다.
거대한 앞발이 바구니를 두드렸다.
출렁.
“…!”
기우는 바구니.
화들짝 놀란 토리가 몸을 일으켰으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그때, 뒤로 기울여졌던 바구니가 다시 앞으로 쏠렸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토리.
그와 함께 뜨거운 온천물이 바구니 위로 올라왔다.
토리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시 날아오는 앞발.
하지만 앞발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
그림자의 주인.
설기가 눈을 깜빡였다. 바구니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두리번거리던 설기는 곧 바구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구니를 들고 있는 강현도.
바구니를 건져 낸 강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설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쩍 물장구를 쳐서 몸을 돌리는 설기.
하지만 그걸 용납할 강현이 아니었다.
강현이 설기의 뒷덜미를 잡고 올렸다.
뒤에 있던 짐까지 같이 올라왔지만, 애써 외면했다.
허공에 들어 올려진 설기가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이마에 딱밤을 선물했다.
“끼이잉.”
이마에 손을 올리는 설기.
그러나 손이 짧아서 닿지 않았다.
“토리 괴롭히지 말랬지.”
강현의 말에 설기가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괴롭히는 게 아니라 놀아 주는 거다.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숨을 고르고 있는 토리가 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털이 바짝 서 있었다.
강현은 땡그란 눈의 토리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토리는 아직도 아기야. 잘 챙겨 줘.”
강현의 말에 설기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기도 아기지만.’
그런 강현의 눈에 모나가 보였다.
설기의 뒷발을 물고 있는 모나. 설기는 아프지 않은지 담담해 보였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걸까.
강현의 쓴소리에 가라앉은 설기의 꼬리와 달리 모나의 꼬리는 열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이 설기를 다시 물 위에 올려놨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발을 움직이는 설기.
강현은 서서히 멀어지는 설기를 보고는 바구니를 내려놨다.
바구니 위에 있던 토리가 강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토리를 들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오자 일행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강현을 맞이하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시죠?”
“아뇨.”
“아니라네. 강현, 자네는 좋은 부모가 되겠어. 아니, 이미 부모인가?”
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로멘.
에밀리야와 하만도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 * *
온천을 충분히 즐긴 일행들이 나오자 에밀리야가 소나를 불렀다.
“부탁해.”
고개를 끄덕이는 소나.
그리고 곧 일행들을 향해 날갯짓했다.
그와 함께 커다란 바람이 일행들을 향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린 강현은 몸을 휘감는 온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따뜻해.”
하만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는 털.
강현이 입고 있던 옷도 말라 있었다.
강현은 놀란 눈으로 소나를 돌아보았다.
“소나, 대단하구나.”
강현의 칭찬에 소나가 멋지게 날개를 펼쳤다.
“이제 돌아갈까요?”
에밀리야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요정의 마을이었다.
그렇게 요정의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행들.
아침이 되자 함성이 일행들을 맞이했다.
어리둥절한 일행들이 밖에 나오자 에밀리야가 다가왔다.
“벌써 왔나 보네요. 예정보다 빠른데요?”
에밀리야의 말에 일행들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 중앙으로 가자 어제의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년을 볼 수 있었다.
나뭇가지와 흙으로 엉망이 된 소년.
어제 에밀리야의 설명을 들었기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몸은 엉망이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깃발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요정들은 그런 소년을 축복해 주고 있었다.
그런 와중, 뒤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나타난 것이었다.
아우라. 그녀의 몰골은 소년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이리저리 찢어진 옷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었고,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웠다.
들고 있던 활도 부러져서 덜렁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맹수처럼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한 손에 꽉 쥐고 있는 깃발 역시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전리품.
요정들은 그녀를 위해 길을 열어 줬다.
그리고 먼저 온 소년 역시 뒤로 물러났다.
자신보다 그녀가 이 자리에 어울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까와 같은 환호성은 없었다.
요정들은 그저 묵묵히 박수를 쳤다.
그렇게 새로운 전사의 등장을 환영해 줬다.
멍하니 아우라를 바라보고 있던 강현은 옆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고개를 돌아보자 하만이 뚫어져라 아우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털이 바짝 선 상태.
아우라에게 반응한 것이었다.
‘역시 하만도 수인이구나.’
강현은 당연한 사실을 깨달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때, 숲속에서 걸어오는 한 사내가 있었다.
아우라의 시험을 담당했던 요정.
아우라와 달리 멀쩡한 모습이었다.
“…너무 과한 것 아닌가.”
로멘이 아우라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말했다. 그러나 에밀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대충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옆에 있던 하만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해하는 로멘을 향해 에밀리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험이라고 해도 저 정도 상처를 입는 건 드물어요.”
“그만큼 실력이 없다는 건가?”
“반대예요.”
에밀리야가 아니라 하만이 대답했다. 그러한 하만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린 로멘이 곧 탄성을 뱉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로멘.
그러나 강현은 셋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강현을 위해 로멘이 입을 열었다.
“대충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아니란 뜻이지. 내 말이 맞는가?”
로멘의 말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강현은 아우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우라와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강현을 노려보는 아우라.
강현이 눈을 껌뻑이자 아우라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나?’
강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성인식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