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탕을 만들어 볼까요?
썩은 계란 냄새.
바로 유황 냄새였다.
‘요정과 수인이 싫어할 만하네.’
강현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니 후각이 예민한 둘은 말할 것도 없을 거다.
강현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로멘과 에밀리야가 다급히 강현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일행들은 곧 김이 올라오는 곳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있었고, 김은 바위가 갈라진 틈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심하긴 하네.’
그러나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현이 바위를 바라보고 있자 로멘이 입꼬리를 올렸다.
“강현, 자네는 저것의 정체를 아는 모양이군.”
로멘의 말에 에밀리야가 놀란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강현은 둘의 시선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예상이지만요.”
강현은 품에 있는 토리를 손바닥에 올렸다. 그리고 눈을 맞췄다.
동그란 눈이 강현을 향했다.
“확인해 줄래?”
끄덕.
강현의 부탁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손바닥에서 뛰어내렸다.
놀란 강현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토리는 마치 물속에 다이빙하는 것처럼 땅속으로 쏙, 사라졌다.
강현은 뻗었던 손을 거두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로멘과 에밀리야는 그런 강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로멘은 궁금한 게 많은지 입을 오물거렸으나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땅속으로 사라졌던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이었다.
“어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있어?”
토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두 손을 크게 벌렸다.
엄청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양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혹시 뜨겁니?”
토리가 눈을 껌뻑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불에 들어가서 몸을 지지는 토리였다.
뜨거움이란 감각을 알 리가 없었다.
“아니야. 고생했어.”
강현이 토리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자 간지러운지 토리가 자지러졌다.
통통한 배를 몇 번이나 두드려 준 후에나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두 쌍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안에 있는 게 뭔가?”
참다 지쳤는지 로멘이 강현을 닦달했다.
강현은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온천수인 것 같아요.”
“온천수?”
눈을 껌뻑이던 로멘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 있어. 과연.”
수염을 쓸어내리는 로멘. 그러나 에밀리야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이었다.
강현은 그런 에밀리야를 위해서 온천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러나 설명을 들은 후에도 에밀리야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의아해했다.
“그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기분이 좋아지나요?”
순간적으로 유황 온천의 효능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지구와 같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에밀리야의 질문에 강현이 말문이 막히자 옆에 있던 로멘이 나섰다.
“요정들도 물에 몸을 담그지 않나?”
“씻기 위해서 호수나 강에 들어가긴 해요.”
그러나 담근다는 표현과 맞지 않았다. 에밀리야는 어리둥절한 둘을 보며 말을 보탰다.
“평소에는 바람으로도 충분해요.”
굳이 물로 씻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 에밀리야의 말에 강현과 로멘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에 로멘의 입이 열렸다.
“…그것참. 부럽군.”
진심이었다. 바람으로 씻어서 더럽다?
아니었다.
에밀리야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에게서 냄새가 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꽃이나 나무에서 날 법한 향을 풍겼다.
머릿결도 늘 찰랑거렸다.
요정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머리를 길러서 관리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처음부터 관리할 필요가 없기에 저렇게 기르는 것이었다.
‘…그건 부럽네.’
강현조차 무심코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쉰 로멘이 입을 열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풀린다네.”
“아, 모닥불을 쬘 때처럼 말이죠?”
에밀리야의 말에 로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비슷하네.”
같진 않지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로멘의 말에 에밀리야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롭네요.”
그런 둘을 보며 강현이 입을 뗐다.
“그래도 안전한지 확인해야 해요.”
강현도 이쪽으로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온천이 나온다고 해서 모두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오히려 유황 성분이 많으면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검사를 맡기겠는데.’
이곳은 이세계였다.
그런 강현의 걱정을 들은 로멘과 에밀리야가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맞네. 마법으로 확인하면 간단한 일을….”
“요정에게 해로운 것이었다면 정령들이 이미 이야기해 줬을 거예요.”
둘의 대꾸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곧 감탄을 토했다.
‘그래, 여긴 이세계지.’
한국처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더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토리야, 길 좀 만들어 줄래?”
강현의 말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셋은 숨을 삼키고 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을 깨달았다.
“끼이잉.”
설기가 토리가 들어간 땅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조금씩 흔들리는 땅.
고고고고고고.
땅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심상치 않은 느낌에 로멘이 입을 열었다.
“…으음, 좀 떨어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강현과 에밀리야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뒷걸음쳤다.
그러나 셋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상황이 변했다.
드르르르르륵.
공사장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에밀리야가 로멘의 뒷덜미를 낚아챘고 설기가 강현의 옷깃을 물었다.
그와 함께 앞에 있던 땅이 폭발했다.
폭발이란 말은 비유가 아니었다.
땅이 떠진 것이었다.
그리고 부서진 땅 조각들이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에밀리야가 손을 들었다. 그러나 한 손만으로 그것들을 쳐 내긴 어려웠다.
그때, 로멘이 황급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순간, 새하얀 막이 생기면서 날아오는 땅 조각들을 튕겨 냈다.
그리고 일행들은 볼 수 있었다.
하늘 높게 솟아오른 물줄기.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늘로 치솟는 작고 붉은 그림자 하나.
일행들은 하늘을 나는 토리를 볼 수 있었다.
놀라서 동그랗게 떠진 눈과 마주쳤다.
“토, 토리야!”
강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강현보다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다.
소나가 날아오더니 토리를 낚아챈 것이었다.
그걸 본 강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줄기가 잠잠해지자 소나가 내려왔다.
강현은 토리를 건네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토리.
아직도 눈이 동그랗게 떠진 상태였다.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강현은 그런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쫄딱 젖은 에밀리야와 로멘과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의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네.’
이미 온천수를 듬뿍 맞았다.
이상이 생길 것 같았으면 진작에 생겼을 거다.
주변을 돌아본 에밀리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냄새가 더 심해졌네요.”
“고여 있던 게 나와서 그럴 걸세. 시간이 지나면 전보다 나아질 거야.”
로멘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의 의견도 같았다. 그러던 강현은 곧 고개를 갸웃했다.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강현.
에밀리야가 웃으며 입을 뗐다.
“설기라면 저쪽에 있어요.”
에밀리야를 따라서 고개를 돌리자, 올라오는 물줄기에 몸을 비비는 설기가 있었다.
그리고는 생각과 다른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강현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토리처럼 날고 싶은 거네.’
그러나 설기의 몸이 토리와 같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물줄기도 줄은 상태.
몇 번 해 보더니 포기하고 물구덩이에 몸을 담갔다.
새하얀 털이 금세 갈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을 본 일행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제 어쩌죠?”
강현은 손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탕을 만들어 볼까요?”
강현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땅(탕)/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에밀리야와 토리가 땅을 파면, 로멘이 마법으로 땅을 굳혔다.
소나와 강현은 퍼 낸 흙을 옮겼다.
흙탕물이었던 물도 어느 순간부터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제법 그럴싸해졌군.”
지팡이를 내려놓은 로멘이 땀을 훔쳤다.
일행들은 완성된 탕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열 명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크기였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에 새하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괜찮으세요?”
“예, 이제는 적응이 된 것 같아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두르고 있던 천도 벗은 상태.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어지러워했으나, 이제는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강현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하얀 털 뭉치가 탕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높게 솟아오르는 물줄기.
온천에 몸을 담근 설기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걸 본 일행들의 입가가 부드러워졌다.
“우리도 들어가 볼까요?”
강현의 말에 로멘과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미 다 젖은 상태라 개의치 않았다.
“에구구.”
탕에 몸을 담그자 로멘의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현 역시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온도도 적당하네.’
저도 모르게 강현의 표정이 풀어졌다.
탕을 만드느라 움직인 탓에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강현이 에밀리야를 돌아보았다.
아리송한 표정의 에밀리야.
“어떠세요?”
“…두 분이 말한 게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요.”
그리 말한 에밀리야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좋네요.”
싱긋 웃는 에밀리야. 그리고는 곧 숲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하만 씨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에밀리야의 말에 로멘과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냄새도 많이 날아갔으니 한 번 불러….”
“컹! 컹!”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헤엄치던 설기가 숲을 보고 짖었다.
누군가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곧 숲 너머에서 그림자가 나타났다.
“여, 여러분. 괜찮으세요?!”
하만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평소에 듣던 목소리와 조금 달랐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하만을 보며 일행들이 숨을 삼켰다.
“어머.”
에밀리야가 건네준 꽃잎을 돌돌 말아서 코에 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온 모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습. 일행들은 억지로 웃음을 삼켰다.
하만은 일행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곧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쉬고 있는데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서….”
일행들이 위험한 줄 알고 달려온 것이었다.
“마침 잘 왔어요. 하만 씨도 들어오세요.”
“예?”
일행들의 권유에 하만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쉽사리 들어오지 못했다.
‘…맞네. 수인은 물을 무서워했지.’
강현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불편하면 안 들어오셔도….”
“아뇨! 해 보겠습니다!”
진지한 눈빛으로 온천을 노려보는 하만. 마른침을 삼키더니 앞발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한 발, 한 발.
곧 앞발이 물에 닿았다.
일행들 역시 숨을 삼키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게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강현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윽고, 발목까지 물에 잠겼다.
그 순간.
“우갸!”
옆에 있던 모나가 물 위로 뛰어들었다.
목표는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는 설기.
“자, 잠깐!”
하만이 다급하게 불러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
날아오른 모나는 설기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풍덩!
당연히 모나와 연결되어 있던 하만도 균형을 잃고 물에 빠졌다.
또다시 풍덩!
“하만 씨!”
“하만 씨.”
놀란 일행들이 하만에게 다가갔다.
그때, 물에 빠졌던 하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푸하!”
숨을 내뱉는 하만. 고개를 든 하만.
하만이 눈을 찡그렸다.
“…히잉, 냄새.”
울상을 짓는 하만.
코에 꽂았던 꽃잎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일행들은 한쪽만 남은 꽃잎을 보며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