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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53화 (153/227)

153화 그것이 요정이라네

마지막으로 올라온 이가 축복을 내리자 대장로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축복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자격을 증명하겠소이다.”

대장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둘이 앞으로 나왔다.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시작된 춤사위.

“…과연, 요정의 춤인가!”

옆에 있던 로멘이 감탄사를 뱉었다.

빙판에 미끄러지듯 땅 위를 옮겨가고 있었다.

샤르르. 샤르르.

그리고 그때마다 장신구들이 흔들려서 아름다운 음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요정의 춤.

말 그대로의 표현이었지만, 무언가 의미가 담긴 듯했다.

강현이 쳐다보자 로멘이 입을 열었다.

“요정의 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볼 수 없다고 하지.”

모든 춤이 그렇지 않나?

잠깐 그리 생각했으나, 마을에서 이장님과 사람들이 춤을 추던 걸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인간들의 춤과는 달라요. 지금 보는 건 무예이자 예식 중 하나예요.”

“무예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미소 지었다.

“고대부터 내려온 거예요. 지금은 무예보다는 예식으로 더 쓰여요.”

요정들이 고대라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요정들은 모두 저 춤을 출 수 있다는 거네.’

그것도 대단했다. 강현에겐 춤이란 먼 이야기였다.

“예뻐요!”

하만 역시 언제 졸았냐는 듯이 감탄을 내뱉었다.

설기와 모나도 둘의 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둘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토리도 나와서 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은 일행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춤을 바라보았다.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

마치 깃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까와 다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춤 속에 섞인 의미를 읽기에는 부족했다.

고개를 저은 강현이 과일주를 홀짝였다.

그래, 무면 어떻고, 춤이면 어떤가.

강현은 마음 편히 즐기기로 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에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땅 위를 바쁘게 오가던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와 함께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그중에는 일행들도 섞여 있었다.

찬사를 받기 마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는 활쏘기였다.

먼저 나온 이는 남자 요정이었다.

화려한 깃이 달린 화살.

제대로 날아갈지 의문이 들 정도로 깃이 컸다.

요정 하나가 나뭇가지 위에 열매를 걸어 놨다.

그러자 활을 든 요정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열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후에나 활을 들어왔다.

그리고 활의 시위를 놓자 빠른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열매를 꿰뚫었다.

팟!

산산조각이 나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열매를 본 일행들이 감탄을 토했다.

그러나 의외로 요정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어서 나오는 아우라.

그녀 역시 앞에 요정이 썼던 만큼 커다란 화살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행동은 전과 달랐다.

열매는 같았으나 요정이 멈춰 선 곳을 그대로 지나쳐 갔다.

그리고 한참 뒤로 물러난 후에나 멈춰 섰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요정 하나가 천을 가져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자 에밀리야가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전사의 자격을 도전해서 그래요.”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빛은 진지했다.

강현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다른 요정도 마찬가지네.’

아까와 달랐다. 요정 몇몇이 심사라도 하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우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시위를 거는 아우라.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럼, 저 아이는 일반인 수준이란 거잖아.’

먼저 심사를 통과했던 요정.

즉, 다른 요정들도 그 정도의 활은 쏠 줄 안다는 뜻이었다.

‘그게 더 놀랍네.’

그러는 사이 아우라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쏴아아.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콰직.

열매를 맞췄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기예.

천을 벗고 목표를 확인하는 아우라의 눈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다른 요정들 역시 진심으로 그녀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 증명은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에 나온 건 두 명의 요정이었다.

각각 하얀 깃을 메고 있는 요정.

일행들이 그들을 의아하게 바라보자 에밀리야가 설명해 줬다.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깃을 뺏어 오는 거예요.”

에밀리야의 말에 일행들이 다시 한번 요정들을 보았다.

누가 누구를 맡았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쪽은 다른 요정들처럼 평범한 옷에 깃만 메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은 활과 검까지 찬 상태.

전쟁에 나가는 전사처럼 보였다.

둘은 각각 맡은 요정들을 바라보다가 숲으로 달려갔다.

금세 숲속으로 사라지는 둘.

이어서 대장로가 눈짓하자 아우라와 요정들이 둘을 쫓으러 숲속으로 향했다.

숨바꼭질. 혹은 술래잡기.

숲 전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술래잡기였다.

그렇게 주인공이 사라지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다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요정들.

장로들 역시 흩어져서 요정들과 섞이기 시작했다.

“방금 둘은 전사 아닌가?”

요정들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던 로멘이 입을 열었다.

그러한 로멘의 말에 에밀리야가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하지만 둘도 전력을 다하진 않을 거예요.”

“…수준을 맞춰 준단 이야기군.”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멘도 숲에서 시선을 뗐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갓 성년이 된 요정들이 예전부터 전사로 활동하던 이들을 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행사는 끝났어요. 결과는 내일 나올 테니 여러분들은 편히 즐겨 주시면 돼요.”

에밀리야의 말에 하만과 로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강현은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없었다.

굳어있는 강현을 본 에밀리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 씨. 어디 불편하세요?”

“…아뇨.”

강현은 고개를 젓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보았다.

강현을 따라서 시선을 내린 일행들이 눈을 껌뻑였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깨달을 때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엇….”

“아.”

“어머.”

설기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만이 무언가를 예상했는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만의 예상이 맞았다.

술래잡기.

그런 것에 설기가 빠질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얀 깃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자, 잠깐만 이곳에 있어 주세요.”

에밀리야가 평소답지 않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와 함께 소나가 숲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온 에밀리야.

그녀의 손에는 하얀 털 뭉치가 들려 있었다.

대롱대롱.

그 모습을 본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에밀리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딱 봐도 이번 술래잡기가 성인식의 핵심이었다.

자칫하면 그걸 망칠 뻔했다.

그러자 에밀리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평소의 에밀리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강현은 당황하던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강현은 바닥에 내려온 설기를 보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표정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에 꿀밤을 넣었다.

“끼이잉.”

설기가 눈을 글썽였다. 하지만 연기라는 걸 잘 알았다.

설기가 고작 강현의 꿀밤에 아파할 리가 없었다.

“뭘 잘했다고 그래. 가면 당분간 고기 없을 줄 알아.”

설기가 놀란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오늘내일 과일이나 열매만 먹어야 하는 설기였다.

“컹! 컹!”

무언가 열심히 피력하는 설기. 작은 앞발과 꼬리가 분주해졌다.

그러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내일까지 얌전히 있으면 하루로 끝내 줄게.”

강현의 말에 설기의 꼬리가 멈췄다.

힐끗 숲을 바라보는 설기.

술래잡기인가, 밥인가.

그 모습에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포기하지 않았네.’

기회를 봐서 다시 쫓아갈 생각이었던 게 분명했다.

“끼이잉.”

한참을 고민하던 설기가 강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둘을 본 에밀리야가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강현이 돌아보자 에밀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두 분이 사이가 좋아 보여서요.”

고개를 돌리자 로멘과 하만 역시 포근한 미소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귀여운 손주를 보는 할머니처럼.

강현은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에밀리야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식사가 끝나셨으면 마을을 안내해 드릴까요?”

일행들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술자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요정들은 마치 귀족의 파티장처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로멘이라면 모를까, 강현과 하만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에밀리야가 제안한 것이었다.

서로를 보던 일행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곳에 오면서도 마을은 한번 둘러봤다.

에밀리야가 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에밀리야가 먼저 데려간 곳은 일행들을 안내했던 요정의 정원이었다.

정원을 본 일행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감탄을 토했다.

“와아.”

“이것 참….”

“화사하죠?”

에밀리야가 일행들을 감상을 정리해 줬다.

정원이라기보다 화원에 가까웠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이어진 화원. 게다가 중앙에 연못까지 놓여 있었다.

정말로 화사한 정원.

무뚝뚝한 사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일행들의 시선이 뒤로 향하자 사내가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행들이 마을을 구경하겠다고 하자 따라온 것이었다.

“여기의 꽃들은 차로도 쓸 수 있어서 차를 마시기 좋아요.”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야가 그런 사내를 보며 살포시 웃었다.

“요정의 성향은 그 요정의 정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죠.”

헛기침하는 사내.

사내가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순찰자님, 전….”

“예. 이제부턴 저 혼자로도 괜찮아요.”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자리를 떠났다.

아직 임무가 남은 모양이었다.

정말로 자신의 정원을 보여 주기 위해서 따라온 것이었다.

“그럼 이제 제 정원을 보러 갈까요?”

일행들은 에밀리야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에밀리야의 정원은 마을에서도 외곽에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커다란 고목.

에밀리아의 집은 고목의 나뭇가지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로 꽃과 나무들이 보였다.

전에 보았던 정원이 화사한 느낌이라면, 에밀리야의 정원은 차분해 보였다.

꽃과 나무, 풀들이 주화를 이루고 있었다.

“강현 씨.”

정원을 구경하고 있던 강현은 에밀리야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에밀리야는 작은 나무 앞에 서 있었다.

강현은 한눈에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설마.”

“예. 강현 씨가 주신 커피예요.”

강현의 무릎까지 올라온 작은 나무들.

강현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열매를 드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자랐을까.

강현은 의문에 답한 건 에밀리야가 아니었다.

“그것이 요정이라네.”

로멘이었다. 그걸로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로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그 뒤로 일행들은 에밀리야의 정원에서 차를 마셨다.

마을의 중앙에서 마실 때와 달리 마음이 편했다.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밀리야의 정원은 강현이 있던 숲과 느낌이 비슷했다.

이곳이 요정의 마을이 아니라 숲에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착각할 만큼.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던 강현의 시선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연기?’

노을이 져 가는 하늘.

그 너머에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너무 희미해서 착각이라고 생각할 정도.

그러나 착각이 아니었다.

설마 불이라도 난 걸까.

강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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