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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43화 (143/227)

143화 한정우를 위해서

다음 날 아침.

어제 먹은 보양식 덕분인가, 일찍 눈이 떠졌다.

그리고 한정우에게 매장을 맡긴 뒤 설기, 토리와 함께 민호의 차에 올랐다.

창문 너머로 멀어져 가는 마을을 보며 꼬리를 흔드는 설기.

‘의외야.’

설기의 성격이라면 답답해할 줄 알았는데, 그러는 기색이 없었다.

몇 번이나 타본 덕분인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토리가 지루한지 강현의 주머니 속으로 기어 올라왔다.

그런 토리를 보던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안 해 주셔도 되는데.”

“한가해서 괜찮습니다. 덕분에 바람도 쐬는 거죠.”

민호가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었는지 제법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강현도 고개를 끄덕이고 창문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그런 강현의 손바닥을 할짝거리는 설기.

강현이 간지러움에 설기의 콧잔등을 쓸었다.

돌부리에 걸렸는지 덜컹거리는 트럭.

자연스레 강현의 시선이 창문 너머로 향했다.

그 많던 눈들이 녹아서 보이지 않았다.

간혹 산봉우리가 높은 산들만이 모자를 쓴 것처럼 하얗게 변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경관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읍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는 읍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저기 있네요.”

읍내 외곽에 멈춘 차.

그 앞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완수 철물, 난로.

안에는 컨테이너 건물이 보였다.

“마트보다 이쪽이 저렴합니다.”

민호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눈에 봐도 물건들이 많았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던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저긴.”

철물점 옆에 보이는 건물.

자그마한 건물에 캠프라고 적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천막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아니었다.

캠핑 매장이었다.

민호도 놀란 눈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저런 게 생겼군요.”

전에는 없었던 모양.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마트에 있던 캠핑 코너보다는 나았다.

“따로 마트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네요.”

강현의 말에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곧 건물에서 시선을 뗐다.

지금은 난로가 먼저였다.

옆에 있는 설기를 보자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얌전히 있어야 해?”

“컹!”

강현의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그 모습에 오히려 불안해졌다.

‘너무 순순히 허락하는데?’

강현이 설기를 보았다. 그러자 설기가 순진한 눈망울을 껌뻑거렸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하겠지.’

강현은 주머니에서 토리를 꺼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토리.

“같이 있어 줘.”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혼자 있으면 심심할 거다.

강현은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컨테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에 들어가자 중년 사내가 둘을 맞이했다. 난로들이 늘어져 있었다. 새 제품뿐만 아니라 중고도 많았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어요?”

“아뇨. 좀 둘러봐도 될까요?”

강현의 물음에 중년 사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과 민호는 천천히 매장 내부를 살폈다.

그러던 강현의 걸음을 멈췄다.

창문 너머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곧 실소를 흘리는 강현.

‘나도 너무 예민해졌어.’

고개를 저은 강현이 다시 난로를 살폈다.

* * *

차 안에 둘만 남은 설기가 물끄러미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답답할까 봐 살짝 열어 놓은 창문.

그걸 본 토리가 설기의 털을 잡아당겼다.

안 된다고 말리는 듯한 모습.

설기가 그런 토리를 보더니 폴짝 뛰어올랐다.

작은 틈새로 머리를 넣는 설기. 공중에서 앙증맞은 다리가 허우적거리더니 창문 너머로 넘어갔다.

홀로 남게 된 토리는 그런 창문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시트 위에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 너머에서 하얀 털 뭉치가 달려오는 게 보았다.

그대로 뛰어올라서.

쿵.

차가 들썩였다.

동시에 설기의 몸도 시트 위로 떨어졌다.

누워있던 토리가 일어나서 설기와 창문을 번갈아 보았다.

창문에서 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갔을 때와 모양이 조금 틀어져 있었다.

토리가 설기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강현에게 이르겠다는 뜻.

그런 토리를 향해 설기는 입에 문 걸 내려놓았다.

반쪽짜리 당근 하나.

토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물이었다.

“….”

“….”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당근을 끌어안는 토리. 토리의 엉덩이도 다시 시트 위로 내려왔다.

그러자 설기도 시트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 문이 열렸다.

“얌전히 있었…. 응? 당근?”

돌아온 강현은 토리가 먹고 있는 당근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당근은 어디서 난 거야?”

강현의 물음에 설기와 토리는 순진한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창문 너머로 줬나 보네요.”

난로를 싣고 차에 오른 민호가 입을 열었다. 지나가다 설기를 보고 준 모양이다.

강현은 애써 고개를 끄덕이고 차 문을 닫았다.

차가 출발했다.

거리를 보면 굳이 차를 옮길 필요는 없었지만, 짐이 많아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옆 건물로 차를 옮기던 민호가 뭔가를 보고 미소 지었다.

“여기는 설기도 데리고 갈 수 있겠네요.”

민호의 말에 강현이 시선을 돌리자 울타리 안에서 놀고 있는 대형견 두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늠름한 모습.

둘의 집이 아니라 손님들의 개를 맡길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안에 쉴 수 있는 정자도 보였다.

손님용.

그러나 강현의 표정은 석연치 못했다.

그런 강현의 기색을 알아챈 민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너무 커서 설기가 무서워할까요?”

“그런 건 아닌데….”

오히려 반대였다.

볼을 긁적이던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사고 치면 안 된다?”

“컹!”

씩씩하게 짖는 설기.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창문에 손을 뻗었다.

같이 나갈 거면 굳이 열어 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끼릭끼릭.

창문이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민호가 입을 뗐다.

“창문이 또 말썽이네요. 오래돼서 그런 거니 그냥 놔두세요.”

“아, 예.”

민호의 말에 강현은 대답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까지는 멀쩡했는데?

자세히 보니 창문에 상처 자국도 보였다.

마치 발톱으로 긁은 듯한 상처.

‘혹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설기와 토리는 서로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겠지.’

고개를 저은 강현이 설기를 들어서 바닥에 내렸다.

바닥에 내려온 설기는 미처 말하기도 전에 도도한 걸음으로 울타리에 향했다.

토리는 설기와 같이 가지 않고 강현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마침 매장 밖을 살피던 주인아주머니가 그걸 보더니 웃음을 흘렸다.

“어머나. 어린데 씩씩하네.”

“울타리에 놔둬도 될까요?”

목책에 적혀 있긴 했지만, 주인의 허락을 맡는 건 당연했다.

“그럼요. 저희 애들도 덩치만 컸지, 순둥순둥해요.”

설기가 울타리 틈새로 들어가자 놀고 있던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봤죠? 얘들아, 동생 잘 챙겨 줘.”

환하게 웃는 주인아주머니. 그러나 강현은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둘이 굳은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괜히 데려왔나.’

둘에게 미안해졌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크네요.”

뒤따라온 민호의 감탄.

“그렇죠? 제법 공을 들였어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년인이 계산대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부부끼리 장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구경하시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강현은 고개를 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까지 대부분 인터넷으로 샀기 때문에 이런 매장이 낯설었다.

물론, 마트의 캠핑 코너도 몇 번 가 보긴 했지만, 비교할 것은 아니었다.

주머니에 있던 토리가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더니 곧 흥미를 잃고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그건 민호도 비슷했다.

신기한 눈으로 매장을 살피던 민호도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전 밖에서 쉬고 있겠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보세요.”

그렇게 민호마저 떠나고 강현 홀로 남게 되었다.

‘…정말 많네.’

편리해 보이는 장비도 잔뜩 있었다. 걸을 때마다 장바구니가 무거워졌다.

그러던 강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건….”

난로 코너.

그러나 아까 보았던 난로들과는 달랐다.

캠핑용 화목 난로.

사실상 필요 없는 장비였다.

이세계는 난로를 피울 정도로 춥지 않다.

침낭만으로도 충분한 날씨.

‘…기껏해야 산 위에서나 쓰겠지.’

설기가 태어난 산.

그곳 정도가 아니면 쓸 일이 없었다.

하물며 화목 난로는 작은 제품이라고 해도 부피가 클 뿐만 아니라 설치도 번거로웠다.

화목 난로를 쓰고자 그 높은 산까지 들고 올라갈 수도 없었다.

백패킹에 어울리지 않는 장비.

‘그래, 필요 없는 장비야.’

강현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계산하고 나오는 강현의 손에는 화목 난로가 들려 있었다.

* * *

“결국 샀네.”

한숨을 내쉰 강현이 매장 밖으로 나오자 홀로 넓은 울타리를 뛰놀고 있는 설기가 보였다.

“컹! 컹!”

강현이 나오자 반갑게 맞이하는 설기.

앉아 있던 민호도 손을 흔들었다.

강현은 원래 있던 개들이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을 수 있었다.

둘 다 울타리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휴, 저런 애들이 아닌데. 친구랑 좀 놀아 주지.”

뒤에서 배웅해 주기 위해 따라온 주인아주머니가 속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둘의 기분이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뜩 둘의 밥그릇에 눈이 갔다.

간식이라도 줬던 걸까.

먹다 남은 당근이 보였다.

‘개에게 당근이 좋나?’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 민호가 다가와서 강현의 짐을 받았다.

“잠깐 사이에 많이도 사셨네요.”

“사다 보니깐.”

강현도 자신이 과했다는 걸 알기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장 보는 게 그런 법이죠.”

민호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짐을 트럭에 실은 둘은 다시 마을로 향했다.

* * *

마을에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뒤로 화목 난로는 꺼낼 일이 없었다.

한가롭게 저녁 준비하던, 한정우가 입을 열었다.

“내일도 눈이 온다네요.”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한 한정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전에 아픈 이후로 눈이 지긋지긋해진 한정우였다.

그런 한정우의 이야기를 들은 강현이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정우 씨. 다음 주에 올라가신다고 했죠?”

“예.”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한정우가 내려온 지 한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캠핑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셨죠?”

“예, 해 본 적이 없어서….”

의아해하던 한정우의 눈이 반짝였다.

“오, 주말에 데려가 주시는 겁니까?”

“주말은 아니고요.”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말은 뺄 수 없었다.

‘…또 안 가면 정말로 삐지겠지.’

모나.

전에도 단단히 삐지지 않았던가. 당분간은 잘 챙겨 줘야 했다.

“내일 가죠.”

“예? 그럼 매장은….”

“하루 더 닫으면 됩니다. 눈이 오면 손님도 없을 거예요.”

“하긴.”

강현의 말에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정우도 마을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곧 한정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눈 오는 날 캠핑이라니 낭만 있네요.”

“대신 더 힘들어요.”

필요한 장비도 더 많았다. 설치도 힘들지만, 정리도 만만치 않았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잊은 걸까. 한정우의 대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근데, 캠핑은 어디로 갑니까?”

한정우의 물음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눈도 오니 위험할 수도 있었다.

“마을 뒷산에서 하죠.”

“오, 좋네요.”

한정우가 활짝 웃었다.

그때, 주방에 동글동글한 그림자 둘이 올라왔다.

“삼촌, 삼촌. 어디 가요?”

상후와 미영이였다. 이야기하다 보니 둘이 있다는 것도 깜빡한 것이었다.

“캠핑하려고.”

한정우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캠핑?”

“나 알아요. 텐트 치고 노는 거죠?”

낯선 단어에 미영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상후가 손을 번쩍 들고 이야기했다.

“텐트….”

“우와, 좋겠다.”

상후의 말에 미영이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그런 둘을 보며 입을 열었다.

“둘도 내일 갈래?”

“진짜요?!”

“그래, 부모님이 허락하면.”

“아싸! 잠시만요! 허락받고 올게요!”

바로 매장을 뛰쳐나가는 상후.

“오빠, 같이 가.”

미영이가 다급하게 상후의 뒤를 쫓았다.

“오늘 끝나면 장을 봐야겠네요.”

한정우도 잔뜩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설렘과 기대.

그런 한정우를 본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 전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래, 난로를 쓰기 위해서 매장을 쉬는 게 아니야.’

한정우를 위해서였다. 강현은 그리 되새김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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