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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42화 (142/227)

142화 이제 식사할까요?

조금만 걸었는데 숨이 올라왔다.

‘몸살인가.’

한정우는 몸을 떨었다. 그런 한정우의 눈에 상후가 보였다.

“받아라!”

눈을 뭉쳐서 설기에게 던지는 상후.

거기까지라면 그냥 괴롭히는 것이었지만, 설기도 반격했다.

잽싸게 눈을 피한 후 뒷발로 눈을 뿌렸다.

“앗, 차가워. 에잇.”

눈에 맞은 상후가 뒤로 도망쳐서 눈을 뭉쳤다.

상후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정겨운 광경.

그러던 둘도 한정우를 발견하고 멈췄다.

“아저씨?”

“….”

저 아저씨란 호칭은 바뀔 생각이 없나 보다.

한정우가 한숨을 내쉬며 둘에게 걸어갔다.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 끼워 줄 수 있어?”

“그럼요! 아….”

기뻐하며 반기던 상후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괜찮으세요?”

한정우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정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해.”

아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편을 어떻게 할까? 상후랑 설기랑 한 팀 할래?”

한정우의 말에 상후가 눈을 껌뻑였다. 그러다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랑 설기랑 같은 편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한정우가 걱정돼서 한 말이었다. 한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른 체면이 있는데 둘이서 상후를 상대할 순 없었다.

설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팀이 정해졌고 셋은 거리를 벌렸다.

한정우는 바닥에 쭈그려 앉으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눈싸움이라. 오랜만이네.’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차가운 감촉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한정우는 가볍게 눈을 눌렀다. 너무 강하게 뭉쳤다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눈을 뭉치고 고개를 들자 상후와 설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한정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퍽.

한정우는 날아온 눈 뭉치를 맞고 눈을 크게 떴다.

제법 묵직했다.

‘잘 던지네.’

이번에는 한정우의 차례.

그러나 상후는 잽싸게 피했다.

“히힛.”

장난스럽게 웃는 상후. 그 모습에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지.’

놀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다시 눈을 뭉친다. 그러는 사이 눈 덩어리가 날아왔다.

한정우는 눈을 피하고 바로 던졌다.

“앗!”

피하지 못하고 맞는 상후.

너무 강하게 던졌나, 걱정이 되었지만 환하게 웃는 상후를 보니 기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눈 뭉치를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 한정우는 무언가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설기.’

상후 옆에 있던 설기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한정우의 근처까지 온 설기를 볼 수 있었다.

눈 탓에 움직임을 놓친 것이었다.

몸을 돌려 뒷발을 들어 올리는 한정우.

‘피할 수 없겠네.’

그러나 저렇게 눈을 뿌려서 얼마나 뿌리겠는가.

한정우는 얼굴에 눈이 들어가지 않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설기의 행동이 그보다 빨랐다.

퍼억!

“…어?”

뭉친 눈도 아니라, 그냥 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세웠다.

누가 뺨을 때린 것처럼 얼얼했다.

고개를 들자 다시 설기가 뒷발을 들었다.

“자, 잠깐…!”

퍼억!

또 한 번의 충격에 한정우의 몸이 넘어갔다.

“괘, 괜찮으세요?!”

놀란 상후가 달려왔다.

머리를 흔든 한정우는 손을 들어 올려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무슨 눈이….’

눈덩이도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의기양양한 표정의 설기가 보였다.

한숨을 내쉰 한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이상한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깨가 가벼워?’

아까까지만 해도 무겁던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놀란 눈으로 설기를 돌아봤으나 이미 설기는 흥미를 잃었는지 돌아가고 있었다.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기가 무언가를 한 것 같았다.

‘역시 강현 씨의 강아지네. 강아지조차 평범하지 않아.’

설기를 봤을 때마다 꺼림칙하던 건, 설기의 특별함을 알아봤던 것일 수도 있었다.

‘강현 씨가 이쪽으로 보낸 이유가 있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소름이 올라왔다.

“…그만할까요?”

걱정스러운 상후의 물음에 한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싸움은 이제부터지.”

이 정도로 멈출 것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다.

이제 몸도 가벼워졌다. 거리낌이 없었다.

한정우의 단호한 말에 상후는 걱정 어린 시선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어찌하겠는가.

한정우가 상후보다 한참 어른이었다.

다시 시작된 눈싸움.

한정우의 움직임이 전보다 좋아졌다.

그것도 잠시.

“설기야. 아, 안 돼!”

“…응?”

갑작스러운 상후의 외침에 한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 쪽을 향해 달려오는 새하얀 눈 뭉치.

지금까지와 달리 유난히 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눈의 정체는 설기였다.

달려오던 설기가 뛰어올랐다.

몸통 박치기.

“그거, 반칙이잖…!”

그걸 끝으로 한정우의 기억이 끊겼다.

* * *

“삼초온! 요리사 삼초온!”

눈을 치우는 일이 끝나갈 때쯤,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멀리 상후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어허, 뛰지 마! 다쳐!”

“예에!”

근처에 있던 어르신의 외침에 상후의 속도가 줄었다.

강현은 빗자루를 내려놓고 상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설기가 아저씨를….”

강현의 눈이 커졌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짐작되었다.

“가자.”

강현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눈 위에 누워 있는 한정우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황급히 다가가서 코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숨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대체 뭔 일이래?”

고개를 돌리자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강현이 다급하게 올라가는 걸 보고는 따라온 것이었다.

강현은 이번 일의 원흉을 찾았다.

설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쓰러진 한정우 옆에 당당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저건 잘못을 반성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칭찬을 바라는 표정.

“설기.”

차가운 강현의 목소리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이게 아닌데,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컹! 컹!”

다급하게 앞발을 움직이는 설기.

강현은 어렴풋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있었는데, 쫓아냈다는 건가?’

뭐가 있단 말인가.

벌레라도 쫓은 게 분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했다.

강현은 쓰러진 한정우를 보았다. 눈 위가 포근했는지, 이제는 코까지 골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었다.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오늘 점심은 채소야.”

“…!”

강현의 말에 설기의 눈이 떨려왔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도 멈췄다.

“끼잉.”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강현을 올려다보았지만 강현은 단호했다.

그러자 설기는 원망의 눈초리로 한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 추운데 잘 자네.”

“으음. 아, 안 돼….”

잠꼬대까지 하는 한정우를 보며 마을 사람들이 실소를 흘렸다.

* * *

다음날 매장에 나온 한정우는 멋쩍게 웃었다.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한정우가 자는 모습을 봤다.

그것도 눈 위에서.

한숨을 내쉰 한정우는 강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설기 때문에 죄송해요.”

강현의 사과에 한정우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덕분에 편히 잤어요.”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해 가지는 않지만, 한정우가 좋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한정우의 얼굴이 밝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표정만 밝은 게 아니었다.

푹 잤는지 윤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설기가 뭔가 한 건가?’

강현은 힐끗 설기를 보았다. 쿠션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설기.

꼬리만 집 밖으로 삐져나왔을 뿐이었다.

어제 점심 일 때문에 단단히 삐진 것이었다.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어차피 오늘 기분을 풀어 주려고 맛있는 걸 해 줄 생각이었다.

‘어제의 일도 있었으니.’

강현은 한정우를 보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쉬엄쉬엄하세요.”

“괜찮습니다.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몸이 가벼워요. 이렇게 개운한 적은 오랜만입니다.”

한정우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저리 말하는데, 말릴 필요는 없었다.

곧 한정우가 홀 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난로 치우셨네요? 도와드려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어제 마을 분들이 도와주셔서 쉽게 치웠어요.”

강현의 말에 한정우가 웃었다. 이제 마을 분위기에 적응한 한정우였다.

강현은 무언가 떠올렸다.

“아, 그래서 말인데, 내일 점심때 매장 좀 봐주실 수 있나요?”

“난로 사러 가시는군요. 전 상관없어요.”

이장과의 대화를 떠올린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는 게 아니라, 솔직히 기뻤다.

강현이 매장을 맡길 정도로 한정우를 신뢰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반나절이지만.’

강현의 성격을 아는 한정우이기에 이게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오픈하기 전에 식사나 할까요? 안 그래도 몸보신이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강현이 꺼내는 음식 재료를 본 한정우의 눈이 커졌다.

털이 벗겨진 새.

한정우는 닭이 아니란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오리군요.”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뿐만이 아니라 인삼과 대추, 황기와 같은 약재도 있었다.

“어제 마을 분께 부탁해서 사 온 거예요.”

한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재료만 봐도 어떤 음식인지 연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방 오리 백숙.

이렇게 추운 날 먹기 딱 좋았다.

“그럼 기다리고 계시면….”

“아뇨. 저도 돕겠습니다. 어제 계속 누워 있었더니 몸이 간지러워서.”

한정우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커다란 솥을 꺼내서 약재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솔솔 올라오는 향.

그와 함께 집 밖으로 튀어나온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역시나 밥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 * *

오리가 익어 갈 때, 매장 문이 열렸다.

딸랑딸랑.

“강현, 있나?”

이장이었다. 매장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

강현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홀로 나가자 이장이 입을 열었다.

“그, 그냥 심심해서 와 봤어.”

그러나 이장의 시선은 주방으로 향해 있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자세까지.

화장실이 급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강현은 이장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재료 부탁한 걸 들으셨나 보네.’

강현은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마침 식사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시겠어요?”

“그, 그래? 이것 참 공교롭구먼. 그짝이 그리 말하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예. 어차피 넉넉하게 만들어서 괜찮아요.”

강현의 말에 이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때마침 안에 있던 한정우가 커다란 솥을 들고나왔다.

그와 함께 퍼져 가는 고소한 향.

설기마저 집에서 나와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어제의 일은 잊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식사할까요?”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동시에 한정우와 이장도 웃음을 흘렸다.

즐거운 식사.

그와 함께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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