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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41화 (141/227)

141화 살살해, 살살

아이들이 육포를 뜯어 먹는 동안 막걸리잔이 오갔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오가다 보니 미영이 아버지가 찾아왔다.

미영이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미영이 아버지는 미영이뿐만 아니라 상후와 곽도현도 데리고 갔다.

“괘, 괜찮아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바쁘신데 뭘 오시라고 해. 타고 가.”

거듭된 권유에 곽도현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민호도 일어났다.

“애기가 있어서….”

멋쩍게 말하는 민호를 보며 강현과 한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얼른 들어가세요.”

“예.”

민호마저 떠나자 떠들썩했던 매장이 조용해졌다.

강현은 한정우를 돌아보았다.

아까 이야기할 때 보니 전보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이렇게 둘이 마시는 건 처음이네.’

한정우가 왔을 때, 마을에서 잔치를 열었다.

그때를 제외하고 술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일은 할 만해요?”

“예?”

강현의 물음에 한정우가 화들짝 놀랐다. 아까보다 경직된 모습.

‘둘이 있는 게 어색한가?’

하지만 낯에 주방에서 일할 때는 담담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과 사적인 자리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강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일하는 건 할 만해요?”

“아, 예.”

한정우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일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게다가 다들 좋은 분들이라….”

한정우의 대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그건 누구보다 강현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예. 다행이죠.”

한정우는 막걸리잔을 어루만졌다.

강현은 그런 한정우에게서 시선을 뗐다.

둘 다 헤어질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정우는 강현과 황대길의 기대치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너무도 훌륭하게.

한정우는 물끄러미 막걸리잔을 바라보았다.

겨우 삼 주.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다들 나아가고 있는데, 자신만 도태되는 느낌.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온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러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한정우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한정우의 사과. 전에도 받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전보다 무거웠다. 쫓기는 듯한 사과가 아니라, 진심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강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습니다.”

강현의 대답에 한정우는 쑥스러운지 막걸리잔을 홀짝였다.

강현은 그런 한정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하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마을 분들도 좋아할 겁니다.”

“예. 그리고 다른 요리들도 배워야 하니까요.”

강현의 말에 한정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당장 판매할 메뉴들은 거의 다 익혔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강현과 황대길은 또 다른 요리를 만들어 낼 거다.

“매장도 봐야 하니 살살 부탁드립니다.”

한정우의 엄살에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뒤에서 쿵, 소리가 났다.

“히익!”

한정우의 비명.

고개를 돌리자 벽에 붙여 놨던 장식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전에 상후와 미영이가 학교에서 만든 것이었다.

옆을 보자 토리와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 아니었다.

‘바람이 불 리도 없고…. 접착력이 약해졌나?’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 벽에 장식했다.

그렇게 몸을 돌리자 한정우의 표정이 굳은 게 보였다.

‘아, 이런 거에 약하시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었다.

강현도 처음 매장에 왔을 때,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던가.

“괜찮아요.”

강현이 건네는 말에 한정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띄게 안도하는 모습에 오히려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컹!”

설기의 꼬리도 흔들렸다.

딸랑딸랑.

매장 문을 열자 찬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는 게 보였다.

밤하늘에 떨어지는 눈.

“눈이 또 오네요.”

“예.”

이번에는 설기도 매장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하지 않았다.

그때, 한정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도 눈이 더 내리기 전에 가 보겠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발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그칠 눈은 아니었다.

“정리는 내일 제가 와서 하겠습니다. 쉬세요.”

“예.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아침에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같이 해도 되었다.

강현의 대꾸에 고개를 끄덕인 한정우가 매장 밖으로 걸어갔다.

“그럼, 우리도…. 응?”

말을 이어가던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기와 토리의 시선이 뒤쪽을 향해 있기 때문이었다.

방금 장식이 떨어진 자리.

“으르르.”

“설기야?”

이를 드러내던 설기가 강현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해맑게 웃는 설기.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벌레라도 있던 걸까? 설기가 보던 곳을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피식 웃은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도 올라가자.”

그리고는 토리를 들어서 어깨 위에 올렸다.

매장 문을 닫고 이 층으로 올라가는 강현.

그런 강현의 뒤를 따라오던 설기가 걸음을 멈췄다.

매장의 문을 뚫어지고 바라보는 설기.

곧 설기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쫓듯.

그렇게 매장에서 떨어진 설기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한정우가 떠난 방향이었다.

“설기야, 빨리 와서 씻어.”

“컹!”

위쪽에서 들리는 강현의 목소리에 설기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후다닥 이 층으로 올라갔다.

* * *

아침이 되자 강현은 추위에 몸을 움츠렸다.

“으음.”

이불을 끌어다 덮었지만, 추위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휘이익.

바람이 이불을 흔들었다.

“…바람?”

이불을 덮고 있던 강현의 눈이 떠졌다.

고개를 돌리자 열린 창문과 흔들리는 커튼이 보였다.

‘어젯밤에 열고 잤나?’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만큼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옆을 보니 꼼지락거리는 토리가 보였다.

강현이 일어나면서 이불이 올라가자 추위에 괴로워하는 모습.

강현이 이불을 덮어 주자 움직임이 멈췄다.

새근새근 자는 토리.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

“컹, 컹.”

“…그렇게 된 거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새하얀 눈에 뒤덮인 마을.

그리고 마을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한 마리의 늑대.

강현은 슬쩍 아래를 내려보았다.

선명하게 찍힌 설기의 발자국.

이 층에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나갔으면 좀 닫지.”

강현은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때, 멀리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는 게 보였다.

설기 때문에 잠에서 깬 게 아니었다.

그들의 손에는 삽과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아….”

그걸 보니 애써 잊고 있었던 군대 생활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강현의 시선이 쌓여 있는 눈으로 향했다.

시골에서의 눈은 그다지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눈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는 가장 두툼한 패딩을 꺼내서 걸쳤다.

시끄러운 소리에 토리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 * *

강현이 밑으로 내려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눈 치우는 데 한창이었다.

“어, 왔어?”

이장이 강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장의 콧등이 붉었다.

“어제는 괜찮으셨어요?”

“어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시치미를 떼는 이장을 보며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장님.”

강현의 은근한 목소리에 이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삽이랑 빗자루를 빌려 달라는 거지? 안 그래도 가져왔어.”

이장이 매장 옆을 턱짓했다. 그러자 낡은 빗자루와 눈삽이 보였다.

조리 도구는 많지만, 눈 치우는 도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겨울 동안 거기다 놔두고 써.”

“감사합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삽을 들어 올렸다.

익숙한 움직임에 이장이 눈을 크게 떴다.

“이야. 어디서 눈 좀 치워 봤나?”

“군대에서요.”

“아.”

강현의 대답에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 그 하나로 모든 대답이 되었다.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이장.

“내가 가르쳐 줄 게 없겠구먼.”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볼게요.”

강현의 말에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라고 해 봤자 고작 이 년이었다. 매년 눈을 치운 이장에게 비할 것은 아니었다.

그때, 설기와 함께 상후가 다가왔다.

설기는 이미 눈 위에서 한 번 굴렀는지 털과 눈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였다.

“삼촌, 삼촌. 설기랑 눈싸움해도 돼요?”

“눈싸움?”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싸움이 되려나?’

설기가 아무리 영리하다지만, 눈을 뭉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기를 돌아보자 턱을 세웠다.

자신 있다는 표정이었다.

‘상관없나.’

볼을 긁적이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 고마워요!”

환하게 웃는 상후.

옆에 있던 이장이 말을 건넸다.

“언덕은 미끄러워서 위험하니깐 저 위에 밭에서 혀.”

“예! 이장님!”

희희낙락하면 뛰어가는 상후. 강현은 그 뒤를 쫓으려는 설기를 붙잡았다.

“설기야. 살살해, 살살.”

어떤 식으로 할지 모르겠지만, 주의는 줘야 했다.

“컹! 컹!”

늠름하게 짖은 설기가 통통거리며 상후의 뒤를 쫓았다.

‘불안한데….’

강현은 설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상후에게 생각이 미쳤다.

‘…눈싸움할 상대도 없구나.’

마을에 아이가 없었다. 민호와 수진의 딸인 하은이가 있긴 하지만, 눈싸움을 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상후도 중학생일 거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눈을 치우고 나서 같이 놀아 줘야겠네.’

어차피 한정우도 있으니 급할 게 없었다.

“응?”

거기까지 생각한 강현이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정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직 자는 건가?’

평소 부지런하던 한정우를 떠올리면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정우가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평소와 모습이 달랐다.

한정우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어제 눈을 맞아서 감기라도 걸린 걸까?

“아이쿠, 얼굴이 왜 그려?”

“…어제 잠을 못 자서요.”

한정우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서도 피곤함이 묻어났다. 그리고는 어깨를 주물렀다.

아침부터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괜찮으세요?”

강현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묻자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빗자루는 저걸 쓰면 되나요?”

그러나 괜찮아 보이는 상태가 아니었다.

“눈은 무슨. 오늘은 그만 쉬어.”

“예. 쉬세요.”

이장에 이어서 강현이 말을 보탰다.

“그래도….”

머뭇거리는 한정우를 보며 이장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몸으로 어슬렁거리면 방해여, 방해. 정 돕고 싶으면 저기 밭에서 상후랑 놀아 줘. 설기랑 눈싸움하러 갔으니.”

한정우는 차마 그것마저 거절하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은 매장도 쉬세요.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한정우가 휘적휘적 마을을 걸어갔다.

강현은 그런 한정우를 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 저쪽이 눈 청소보다 더 힘든 거 아니야?’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설기나 상후나 눈치는 있었다.

알아서 잘해 줄 거다.

“에휴. 겉만 멀쩡하지, 저리 허약해서 어찌혀.”

옆에서 이장이 혀를 찼다.

쓴웃음을 흘린 강현은 다시 삽을 들어 올렸다.

곧 강현은 셋에 대해서는 잊고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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