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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40화 (140/227)

140화 우린 한잔할까요?

시간이 지나자 눈줄기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강현은 꺼져가는 장작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은 눈 때문에 기분이 좋았으나 슬슬 걱정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쌓인 눈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강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차가운 공기와 달리 햇볕은 따뜻했다.

아직 해가 떠 있으니 금세 녹을 거다.

“그래도 마냥 기다릴 순 없지.”

강현은 배낭을 둘러멨다.

그러자 설기와 토리가 강현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은 토리를 주머니에 넣고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눈이 녹더라도 언덕이 높아서 차가 들어오기 힘들 거다.

“좀 걸을까?”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 * *

내릴 때와 달리, 녹기 시작한 눈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질퍽질퍽.

걸을 때마다 달라붙었다.

옆에 있는 설기는 장화를 신은 것처럼 발이 갈색으로 물들었다.

물이 고인 곳이 보이자 뛰어가는 설기.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새하얀 털에 얼룩이 늘어 갔다.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대로 택시 태울 순 없겠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배낭 안에 물티슈와 수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웅덩이 너머로 향했다.

너머에 보이는 큰길. 양쪽 옆으로 쌓인 눈들이 보였다.

이미 눈 치우는 차가 지나간 것이었다.

‘여기면 충분하겠어.’

강현은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소요 시간은 약 십 분.

생각보다 금방 왔다.

“…그럼 서둘러야겠네.”

강현의 시선에 물에서 장난치고 있던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해맑은 설기를 보며 강현이 미소 지었다.

* * *

택시의 문이 열리자마자 설기가 뛰쳐나갔다. 그리고 원망의 눈초리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축 처진 귀와 꼬리.

장화 역시 전보다 색이 옅어졌다.

물티슈로 여기저기를 닦았지만,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수건에 돌돌 말려서 강현의 무릎 위에 갇혀 있어야 했다.

계산하고 나온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잖아. 차를 더럽히면 안 돼.”

“끼잉.”

강현의 말에 설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알지만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매장을 보았다.

환하게 켜진 매장 불.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있나 보네.’

그때, 설기의 귀가 쫑긋 솟았다.

킁킁, 냄새를 맡는 설기. 이어서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이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강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설기가 사람이 반가워서 반응하진 않았을 거다.

강현을 돌아보는 설기.

원래라면 씻는 게 먼저겠지만.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매장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이들.

“어, 오셨어요?”

한정우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강현은 한정우의 인사에 눈을 껌뻑였다.

안의 광경이 강현의 예상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 예. 근데 뭐 하시는 거죠?”

책망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정우도 그걸 알기에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강현은 한정우를 넘어서 홀 중앙에 놓인 물건을 보았다.

“아니, 왜 난방도 있는데 난로를….”

“…겨울에는 난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낡은 난로. 작은 것도 아니었다.

테이블을 양쪽으로 밀어 넣고 난로 앞에 쪼르르 앉아 있었다.

누가 그랬을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강현의 시선이 앉아 있는 이들 중 하나에게 향했다.

“가, 가스비 아껴야지. 이, 이게 제일이여!”

이장의 수염에는 고구마와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난로 위에 포일로 감싸진 것들의 정체였다.

설기가 쪼르르 이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설기의 눈빛에 이장은 어쩌지도 못하고 강현의 눈치만 보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놀란 토끼처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이들.

상후와 미영이, 그리고 곽도현이었다.

실소를 흘린 강현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븐도 있는데.”

“…느낌이 안 산다고.”

강현의 혼잣말에 한정우가 대답했다.

결국, 감성이란 소리였다.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이장의 곁에 앉았다.

따뜻한 공기와 달리 바닥이 찼다.

정말로 난방도 켜지 않은 것이었다.

“먹어도 되죠?”

강현의 물음에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 같이 먹으려고 한 거여.”

강현은 가장 위에 놓인 포일을 짚었다. 식히려고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포일을 벗기자 잘 익은 고구마가 나왔다.

강현은 고구마 반쪽을 잘라서 설기에게 건네자, 설기는 한입에 삼켜 버렸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무는 강현.

따뜻한 온기와 함께 단맛이 입안으로 퍼져 갔다.

입꼬리를 올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익었네요.”

강현의 말에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보나 마나 이장의 억지에 끌려온 게 분명했다.

일어났던 한정우도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장이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맞지? 괜찮다고. 강현이 그리 쩨쩨한 인물이 아니여.”

당연한 말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한정우는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저은 강현은 입을 열었다.

“난로를 피우는 건 좋은데. 난방도 같이하세요. 바닥이 너무 차네요.”

“그, 그래?”

헛기침한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짝이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지.”

이장은 사양하지 않았다.

또 하겠다는 소리였다.

역시 가스비를 아끼기 위해서 난로를 켠 게 아니었다.

난로를 켜기 위해서 난방을 끈 것.

“그리고 난로는 작은 걸로 제가 준비할게요.”

“…그건.”

이장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너무 커요.”

학교에나 쓸 법한 커다란 난로. 매장 크기에 맞지 않았다.

매번 테이블을 밀고 다시 세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현의 시선이 난로 위로 향했다.

난로에서 창문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관.

저걸 설치하는 것도 일이었다.

강현의 말에 이장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굳이 사지 않아도 돼. 마을 회관에 안 쓰는 것들 많어.”

이장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작은 난로도 있는데 굳이 이만한 난로를 가져온 것이었다.

강현은 다시 난로를 보았다.

‘요즘 세상에 연탄이라니.’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도 아궁이에 불을 피우지 않았던가.

그때와 비교하면 연탄은 신문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현도 연탄을 쓸 생각은 없었다.

‘위험하고 오래 걸리니.’

등유 난로가 나았다.

‘다음에 읍내에 나가 봐야겠네.’

어차피 화로도 새로 사야 했다. 그때, 할아버지 댁에 놓을 난로와 함께 보면 될 거다.

할아버지 댁에 놓을 것까지 마을에 손을 빌릴 순 없었다.

강현은 웃고 떠들고 있는 일행들을 보았다.

어느새 저렇게 친해진 걸까.

강현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한정우가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마을에 적응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처음 모습과 달리 보기 좋았다.

그러한 강현의 말에 한정우가 멋쩍게 웃었다.

“다 마을 분들 덕분이죠.”

한정우가 겸연쩍게 말했다. 그러자 이장이 옳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뿐만 아니었다.

“아저씨는 괜찮아요. 어제도 미영이랑 와서 놀아 줬어요!”

상후가 씩씩하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이.

“…놀아 줬다니.”

한정우가 충격받은 얼굴로 둘을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정우가 놀아 줬다는 뜻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한정우를 걱정해서 왔다는 소리였다.

“아이쿠. 배려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다 컸어.”

이장의 칭찬에 상후가 배시시 웃었다.

“저, 저도 같이 왔어요.”

“그래, 미영이도 착하다.”

이장이 미영이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고구마의 그을림이 묻었지만, 이장도 미영이도 개의치 않아 했다.

곧 실소를 흘린 한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어때, 라는 심정이었다.

확실히 전보다 표정이 가벼워졌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슴팍이 간질거렸다. 고개를 숙이자 주머니 사이로 기어 나오려는 토리를 볼 수 있었다.

난로의 열기에 이끌려 나온 것이었다.

강현은 피식 웃은 후 토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먹고 있던 고구마 한 점을 뜯어서 건넸다.

얌.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 토리.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한정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한정우를 보며 아차, 싶었다.

‘부주의했어.’

본 게 분명했다.

방금까지 이세계에 있던 탓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강현의 예상과 달리 한정우는 모른 척 아이들과 이야기를 이어 갔다.

‘…못 본 건가?’

분명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못 봤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때, 설기의 귀가 쫑긋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매장 문이 열렸다.

딸랑딸랑.

“이장님, 일단 챙기긴 했는데. 육포랑 막걸리는 이 정도면 될까요?”

“민호 씨?”

민호는 강현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매장으로 가져오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강현 씨도 있었군요.”

민호의 말에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이 슬쩍 이장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이장이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단순히 고구마만 먹고자 난로를 꺼냈던 게 아니었다.

민호까지 옆에 앉자 난로 주변이 꽉 찼다.

이장은 희희낙락하면서 민호가 가져온 육포를 난로 위에 올렸다.

그런 이장을 보던 민호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강현의 물음에 민호가 쓴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강현 씨가 있는 줄 알았으면 알리지 말 걸 그랬네요.”

“예?”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하지만 곧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덜컥.

딸랑딸랑.

거칠게 열리는 문. 그와 함께 노인이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익어 가는 육포를 보며 웃고 있던 이장의 얼굴도 굳었다.

들어온 이는 박 할머니였다.

박 할머니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매장 안을 훑어본 후 이장에게 걸어갔다.

“정말, 이 인간이…!”

“자, 잠깐 강현이 괜찮다고 했어.”

“괜찮긴 뭐가 괜찮아. 보니 짐도 제대로 못 풀었네.”

짧은 순간 매장 옆에 놓인 강현의 배낭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현과 설기에의 몸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사정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또 억지로 밀어붙였겠지!”

그리 말하고는 이장의 귀를 붙잡았다.

“아, 아악! 아직 한 모금도….”

이장이 애처롭게 막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 모금은 무슨. 기다려. 내가 소금물 원 없이 마시게 해 줄 테니.”

딸랑딸랑.

문이 다시 닫혔다.

일행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그야말로 폭풍이라도 왔다 간 것 같았다.

침묵을 깬 건 미영이었다.

“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미영이. 그러자 상후도 따라 일어났다.

“아,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배꼽 인사를 하는 둘.

“어? 아, 안녕히 가세요?”

황급히 곽도현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당연히 인사를 받을 사람은 이미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는 아이들을 보자 어른들이 실소를 흘렸다.

곧 셋의 시선이 마주쳤다.

“…음, 우린 한잔할까요?”

강현이 이장이 남기고 간 막걸리를 흔들었다.

마침 안주도 먹기 좋게 구워졌다.

그러자 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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