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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26화 (126/227)

126화 모든 일이 그리 쉽게만 흘러가지 않긴 하지

여인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곧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게 말해 줄 생각은 없다는 거지?”

강현으로서는 사실을 말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용무는 이제 끝이지? 가면 돼.”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강현이 미처 말을 걸기도 전에 방을 나갔다.

“…성미도 급한 아가씨군.”

옆에 있던 오헨하우어가 아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마법사라고 하면 이 세상을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내심 그녀와의 대화를 기대하고 있던 것이었다.

강현은 쓴웃음을 흘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면서 병사들과 만났지만, 일행을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꼼짝없이 하룻밤은 머물러야겠네.’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오헨하우어를 돌아보았다.

“일단 숙소부터 찾죠.”

오헨하우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전에도 묵었기에 숙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여관에 도착하자 오헨하우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런.”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오헨하우어.

그러나 강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여긴 제가 내죠.”

오헨하우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오헨하우어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강현의 말에 오헨하우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빚은 나중에 로벤투스에서 갚겠네.”

강현은 오헨하우어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다.

마치 후일을 기약하는 것처럼 들렸다.

강현의 시선에 오헨하우어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신분패가 없으니 어쩔 수 없네. 왕도와 연락이 닿으면 이곳 영주에게 임시 신분패를 발급해 달라고 할 생각이라네. 그리고 여비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오헨하우어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신분패도 없이 움직일 순 없었다.

로벤투스에서라면 강현이 부탁해 볼 순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아쉬워하지 말게나. 곧 다니 만날 것이야.”

오헨하우어가 강현의 등에 손을 올렸다.

주름진 손.

고작 하루 사이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졌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내려가서 식사하지. 내가 자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네.”

“…아.”

뒤늦게 흘러나오는 탄성.

방금까지 올라왔던 아쉬운 감정이 사라졌다.

“끼잉.”

옆에 있던 설기가 앞발로 귀를 막았다.

강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오헨하우어의 뒤를 따랐다.

* * *

다음날 강현은 연관에 나와서 기지개를 켰다.

설기도 강현을 따라서 몸을 길게 늘렸다.

그러고 있자 오헨하우어가 방에서 나왔다.

“일어나셨어요?”

“벌써 일어난 건가? 부지런하군.”

강현의 인사에 오헨하우어가 웃으며 대꾸했다.

“어제는 미안하군.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야.”

“아뇨, 괜찮습니다.”

강현의 걱정과 달리 식사 자리는 길지 않았다.

오헨하우어가 술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점점 말이 적어지더니 어느새 테이블 위에 머리를 데고 자고 있었다.

덕분에 강현은 조용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헨하우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못 한 이야기를 마저 하지.”

“예.”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문까지는 배웅해 주겠네.”

그렇게 강현은 오헨하우어와 함께 검문소로 향했다.

검문소의 분위기는 어제보다 심각해 보였다.

무장한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본 오헨하우어가 짧게 혀를 찼다.

“도둑들이 잡히지 않은 모양이군.”

오헨하우어의 말에 강현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 사이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기사들과 어제 만난 여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사 중 하나가 일행을 발견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게 보였다.

‘오른 경이랬나?’

어제 많이 시달린 것 같았다.

오헨하우어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

강현이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오헨하우어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네.”

오헨하우어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지만 어제 도망친 도둑이 내심 걸렸던 것이었다.

‘오헨하우어 님의 지갑도 그렇고.’

그때,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오헨하우어 님, 잠시만요.”

강현은 황급히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현은 병사들 사이에 있는 여인을 향해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저, 로멘 님 따님분?”

“…아녜스다.”

여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강현을 돌아보았다.

“아니면 마법사라고 부르든가.”

한숨을 내쉬는 여인. 여인으로서도 처음 듣는 호칭일 거다. 여인의 말을 들은 강현이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마법사라는 호칭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아녜스의 시선에 강현이 입을 열었다.

“도둑들 잡는 걸 도와드리려고요.”

강현의 말에 아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마저도 힐끗 강현을 보았다.

미덥지 않은 눈빛.

그리고 아녜스는 미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일반인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전문 추격꾼들조차 헤매고 있어.”

추격꾼이란 직업도 있구나. 듣고 보니 병사들 사이에 사냥꾼처럼 입은 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강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요. 제가 찾는 게 아니라….”

“컹!”

옆에 있던 설기가 짖었다.

그리고 위엄있게 턱을 세웠다. 주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자기에게 맡기라고 늠름하게 쳐다보는 설기.

그래, 설기의 후각이라면 그들을 찾는데 어렵지 않을 거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마음은 고마운데, 이번에는 네가 나설 필욘 없어.”

“끼잉?”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놔두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굳이 설기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 빠르고 효과적인 도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품에서 나온 걸 본 아녜스는 머리를 짚었다.

“…나도 멍청했군. 답을 보고도 알지 못했어.”

바로 로멘의 나침반이었다.

이거라면 보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강현은 아녜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라면 빚이 될 만한가요?”

강현의 물음에 아녜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빨리 배우는군. 만일 나이가 어렸다면 마법을 배워 보라고 권유했을 거야. 아버지가 좋아할 만해.”

그리 말한 아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영주는 재물을 밝히지만, 보상에 쩨쩨하진 않아. 너와 로벤투스의 마법사에게 빚이 생기는 거지.”

아녜스의 말에 강현은 숨을 삼켰다.

자신이 모시는 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마법사는 기사와 다르다네. 충성을 맹세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계약으로 묶인 사이라네.”

“아, 오헨하우어 님.”

강현은 뒤에서 들려온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을 뒤따라왔는지 오헨하우어가 서 있었다.

오헨하우어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아녜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었다.

다들 익숙해 보였다.

곧 강현에게서 나침반을 건네받은 아녜스가 팔짱을 꼈다.

“보석을 직접 본 이는 영주와 영부인, 집사장 정도야. 셋을 끌고 다닐 순 없으니….”

아녜스의 시선이 기사와 병사들에게 향했다.

“어제 그 녀석 본 사람?”

그녀의 말에 기사와 병사 몇몇이 손을 들었다.

“정확하게 그 녀석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해. 어중간하게 떠올리면 딴 녀석을 가리킬 수 있어.”

그러자 올라왔던 손들이 내려갔다.

눈살을 찌푸리는 아녜스.

“그 사람이라면 제가 봤어요.”

강현이었다. 아녜스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비록 두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쳤다. 다른 이와 착각할 리는 없었다.

아녜스는 나침반을 강현에게 돌려줬다.

“그럼 그쪽이 써야겠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녜스가 입을 뗐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

“바로 가능해요.”

강현은 나침반을 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제 만났던 이를 떠올렸다. 그러자 나침반이 움직였다.

“오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탄성.

이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침반이 한쪽을 가리키자 기사 하나가 입을 뗐다.

“지금 말을 끌고 오겠습니다.”

말이란 말에 강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아녜스가 돌아봤다.

“말을 못 타면 기사 뒤에 타서 가면 돼.”

“아뇨. 그건 아닌데….”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해맑은 표정에 쓴웃음을 흘렸다.

* * *

말들이 일제히 카브리를 빠져나왔다.

말 위에 있는 강현은 슬쩍 숲 너머를 보았다.

‘잘 따라오겠지?’

어쩐지 하얀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설기에게 따로 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설기를 어르고 달래느라 시간이 제법 들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한시가 급한데 설기와 노닥거리는 걸로 보였을 거다.

그러나 강현이 설기를 말들에게 데려가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너무 신나서 달려 나오지만 않으면 되는데.’

지난번처럼.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강현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강현 님!”

앞에서 부름에 강현은 품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그래도 한 번 타 봤다고 이제는 익숙해 보였다.

“이쪽입니다.”

강현이 말에 뒤따라오던 이들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렸다.

‘…묘한 느낌이네.’

자신의 신호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자신이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을 세웠다.

“방향이 자주 틀어지는 걸 보니 근처인 것 같아요.”

기사는 바로 강현의 말뜻을 알아챘다.

“전원 하마. 여기부터 도보로 움직인다.”

자칫하면 도둑 일당들이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이들.

그런 강현의 곁에 한 사람이 다가왔다. 강현은 그 사람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따라오신 거예요?”

오헨하우어. 그러나 오헨하우어는 입을 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표정도 안 좋았다.

“뒤에서 따라오면서 떠들다가 혀를 깨물었어.”

아녜스였다.

“잘리지 않은 게 다행이지. 당분간 말을 못 할 거야.”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지나갔다.

침울해하는 오헨하우어. 말은 마차와 달랐다. 당연히 움직임이 더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때, 정찰을 보냈던 이가 돌아왔다.

영주가 고용한 추격꾼 중 하나였다.

추격꾼과 이야기를 나눈 기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큽니다. 병사를 붙여 드릴 테니 세 분은 이곳에 남아 주십시오.”

세 분이라고 하면 아녜스와 강현, 그리고 오헨하우어였다.

아녜스는 처음부터 낄 생각이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현과 오헨하우어는 외부인이었다.

곧 셋과 병사 둘을 남기고 남은 이들이 숲 너머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숲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강현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너머를 응시했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아녜스가 그런 강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도적이라고 해 봤자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거야. 제대로 훈련받은 병사들을 이기진 못해. 하물며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지.”

옆에 있던 오헨하우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도 그녀의 말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 아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리 쉽게만 흘러가지 않긴 하지.”

방금 말했던 걸 정정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병사들이 무기를 고쳐 들었다.

그와 함께 수풀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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