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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19화 (119/227)

#119화 얼마 전까지는요.

아나가 냄비처럼 생긴 것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냄비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찜기?’

냄비 위에 세 개의 단이 있었다.

겉은 철로 만들었으나 안에는 얇은 천만 있어서 수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재료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지지대의 모습도 보였다.

제법 잘 만들어진 찜기.

역시나 이 근처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안에 넣는 재료 역시 강현이 알던 것도 있지만, 처음 보는 것도 있었다.

‘어떤 요리일까.’

기대되기 시작했다.

강현이 요리하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하던 설기도 처음 보는 식기들의 모습에 기대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덩달아 토리도 신기한 눈빛으로 아나를 관찰했다.

그렇게 찜기 설치가 끝나자 아나는 식자재를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냄비에 넣고 한 번에 끓였다.

‘상인이라서 그런가, 향신료 다루는 게 익숙하네.’

아나가 붉은 가루를 냄비에 넣자 마슈가 탄성을 뱉었다.

“아나야.”

짧은 부름에 아나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아차 싶었는지 강현을 힐끗 보았다.

강현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매운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강현이 말하자 아나가 그것 보라면서 마슈를 쳐다보았다.

한숨을 내쉬는 마슈.

아나가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마슈는 아나가 미덥지 않은지 끓고 있는 냄비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국자로 살짝 떠먹어 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는 마슈.

아나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아나가 냄비를 확인하더니 무언가를 더 넣었다.

한숨을 내쉬는 마슈.

아나는 그런 마슈와 강현을 힐끗거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스럽게 요리했다.

‘사이좋은 남매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나의 요리가 끝났다.

찜기의 가장 위는 큰 잎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에는 감자와 비슷한 작물과 작은 포도알처럼 생긴 식물. 세 번째에는 작게 자른 고기가 깔려 있었다.

고기는 두 가지 종류로 보였다.

강현도 익은 것만 보아서는 어떤 고기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지구의 것도 아니니.’

그리고 밑을 열었을 때,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물만 넣은 게 아니구나.’

가장 아래에 물과 함께 채소들이 들어 있었다.

수증기로 고기가 익는 동안 위에 재료들의 육수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아나는 살짝 간을 한 후 육수를 떠서 나눠 주었다.

국물 대용이었다.

국물을 받은 강현을 한입 떠먹어 보았다.

‘밍밍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국물을 떠먹은 강현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한 접시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의아해하던 아나는 곧 설기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국자 크게 떠서 건넸다.

강현에게 줄 때보다 건더기가 많은 건 착각일까.

그렇게 국물을 받은 강현과 설기는 아나를 보았다.

아직 음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아나가 입을 열려는 찰나 마슈가 나섰다.

“이건 이렇게 잎을 찢어서 안에 재료를 넣으면 됩니다.”

마슈가 시범을 보이듯 커다란 잎을 찢었다.

아나가 그런 마슈를 째려봤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안에 고기와 작물을 넣더니 작은 냄비에 든 액체를 숟가락을 떠 넣었다.

넘칠 정도로 듬뿍.

붉은빛의 걸쭉한 액체.

사실 강현이 신경 쓰는 건 그것이었다.

다른 것은 특별한 게 없었다.

그렇게 안의 재료를 넣은 마슈가 잎을 돌돌 말았다.

‘쌈을 싸 먹는구나.’

그렇게 만 것을 강현에게 건넸다. 강현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었다.

“음.”

차분하게 안의 맛을 음미했다.

‘카레, 아니 마라 소스의 느낌도 나.’

카레와 마라. 둘이 섞인 듯했다. 게다가 작은 포도처럼 생긴 건 옥수수와 비슷한 맛이 났다.

생소한 맛이긴 하지만, 고기와 섞여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곧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기대감과 걱정.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맛있네요.”

강현의 대답에 둘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나 강현의 말에 둘보다 기뻐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설기였다.

“컹! 컹!”

“알았어. 잠시만.”

강현은 잎을 하나 뜯어서 똑같이 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슈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늑대가 먹기에는 맵지 않겠습니까?”

그의 걱정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설기도 저만큼 매운 걸 잘 먹어요.”

마슈는 조금 미심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쌈이 완성되자 설기의 꼬리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빨리. 빨리.

눈빛으로 강현을 닦달하고 있었다.

강현이 쌈을 건네자마자 덥석, 물었다.

그리고 흔들리던 꼬리가 멈췄다.

“…끼잉?”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다시 조금씩 흔들리는 꼬리.

그러나 가볍게 흔들리는 정도였다.

설기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맛있다고 했는데?

그런 눈빛.

피식 웃은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강현이 만든 것을 제외하면 여행을 나선 후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요리였다.

단순히 굽거나 삶는 것을 벗어나 문화를 나타낼 수 있는 요리.

‘이걸 원해서 여행을 나온 거지.’

강현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런 강현을 보던 설기가 다시 음식을 먹었다.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맛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근래에 먹었던 실험적인 요리들보다 나았다.

순식간에 쌈 하나를 먹어 치운 설기가 다시 강현을 돌아보았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표정.

강현이 다시 손을 뻗으려는 찰나, 아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 내가 만들겠다.”

아나의 박력에 강현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나가 쌈을 싸기 시작했다.

설기의 시선도 아나에게 향했다.

“컹! 컹!”

“오, 이걸 더 넣어 달라는 것이냐?”

“컹!”

“먹을 줄 아는구나!”

아나가 고기를 듬뿍 올렸다.

어째서인지 대화가 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은 옆에 있는 국물을 떠먹었다.

입 안에 있던 매운맛이 사라졌다.

‘이래서 간을 약하게 한 거구나.’

이해되었다.

강현과 마찬가지로 설기와 아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마슈가 입을 열었다.

“강현 님이라고 하셨죠?”

“강현으로 충분합니다.”

“강현 씨라고 부르겠습니다. 강현 씨도 편하게 불러 주세요.”

마슈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슈가 말을 이었다.

“강현 씨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십니까?”

여행의 목적.

둘의 목적은 이미 들었다.

강현은 마슈의 질문에 볼을 긁적였다. 사실 언젠가 이런 질문이 올 줄은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도 준비한 상태.

그러나 마슈와 아나를 보고 있으니 만들어진 이유를 대고 싶진 않았다.

“먹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다양한 음식들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강현의 대답에 마슈의 눈이 커졌다.

설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아나도 이쪽을 힐끗거렸다.

“식도락. 그것도 낭만적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마슈.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돌아다닐 건 아닙니다. 일을 쉬고 있는 동안 잠깐 다녀오는 것이라.”

강현이 쑥스러운 기색으로 말을 보탰다.

“일을 쉬는 동안이라면, 언제까지….”

“다음 마을인 카브리 영지까지 갔다가 돌아갈 생각입니다.”

타국에서 온 둘과 비교하면 적은 거리였다.

고작 일주일의 여행.

“여기가 거의 마지막이겠군요. 그럼 로벤투스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잘하면 가는 길도 동행할 수 있겠군요.”

강현은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동행도 나쁘지 않지만, 새로 구한 말까지 잃어버릴 거다.

강현이 대답을 피한다는 걸 알아챈 마슈가 말을 돌렸다.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다행히 이번에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네요.”

강현의 대답에 마슈가 싱긋 웃었다.

그것이 마슈와 아나를 뜻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마슈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탄성을 뱉었다.

“여유가 되신다면 카브리 영지 북동쪽에 있는 숲에 들렸다가 돌아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아나는 무언가를 아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곳에 숲의 현자가 살고 있습니다.”

숲의 현자?

“마법사 같은 겁니까?”

강현의 질문에 마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비한 힘을 쓰는 것 같긴 하지만, 마법을 다룬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슈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직접 본 것인지, 아닌지 아리송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현의 기색을 읽은 마슈가 입을 열었다.

“대가만 준다면 어떤 문제의 답도 알려 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기꾼이다.”

“저흰, 질문도 하기 전에 쫓겨나서 확인할 길이 없었죠.”

말하면서 아나를 힐끗거렸다.

아나는 그런 마슈의 시선의 흥,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제야 강현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처 질문을 하기 전에 숲의 현자란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모험가들이나 상인들에게는 제법 잘 알려진 이야기라, 식견이나 경험이 풍부할 겁니다. 이국의 음식에 대해서도 잘 알 수도 있습니다.”

마슈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슈의 말대로 카브리에서 멀지 않다면, 한번 갔다가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현자라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런 이가 식견이 높아 봤자 얼마나 높겠는가. 게다가 오만하기까지 하다.”

아나였다. 아나가 팔짱을 꼈다.

“늙은이 같은 말투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아나의 중얼거림에 마슈가 쓴웃음을 흘렸다.

꼭 누군가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강현과 마슈의 시선을 느낀 아나의 눈썹이 휘었다.

“…왜 그리 보느냐.”

“아니.”

“아무것도.”

강현과 마슈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곧 강현과 눈이 마주친 마슈는 웃음을 터트렸다.

강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슈와 아나를 보았다.

‘나쁜 이 같진 않아.’

그렇다면 작은 도움을 줘도 나쁘지 않았다.

강현은 마차를 들 때, 안에 보였던 것을 떠올렸다.

상자가 깨지면서 안에 내용물이 드러난 것이었다.

“이종족과 거래하러 간다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걸 가져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보통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중요한 물건일수록 더더욱.

강현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마슈가 입을 열었다.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입니다.”

“마슈!”

아나가 마슈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마슈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나를 돌아보았다.

“강현 씨는 로벤투스에서 오셨어. 우리보다 이종족에 대해서 잘 알 거야. 게다가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기에 아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슈의 이야기를 들은 강현은 역시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은 숲에서 지내면서 보았던 에밀리야와 노아를 떠올렸다.

아니, 수인족의 족장인 카샨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음, 요정들이나 수인들이나 그런 금붙이를 좋아할 것 같진 않아요.”

“…!”

“…!”

강현의 말에 둘의 눈이 커졌다.

특히나 아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현을 보았다.

“…금을 싫어하는 이가 있다고?”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현이 생각하기에도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를 떠올리면 쉬웠다.

나에게 좋은 게, 상대에게도 좋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예. 요정들은 황금이나 보석보다 식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거래하려면 식물의 종자나 차 종류를 찾아보는 게 나을 거예요. 그리고 수인들은….”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인이 좋아하는 게 무엇이 있었나.

사냥?

하지만 수인들은 도구를 쓰지 않는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던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술. 술이라면 그들도 좋아할 거예요. 아니면 근처에서 구할 수 없는 짐승의 가죽도 관심을 보일 겁니다.”

어느새 둘은 진지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이 하는 이야기가 헛소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종족 간의 거래는 영주님께서 관리하고 있어서, 영주님의 허가를 받는 게 우선이에요.”

“…잠깐만, 이종족의 거래는 이미 끝난 게 아닙니까?”

“예, 얼마 전까지는요.”

하지만 이젠 달랐다.

강현의 대답에 둘의 표정이 굳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너무 대책 없이 왔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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