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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17화 (117/227)

#117화 더 줄까?

대장간에서 투구와 식칼을 사고 나온 강현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덤으로 그릇과 국자까지 챙겨 줬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그렇게 대장간을 나온 강현은 투구를 들어 올렸다.

먼지 때문에 더러워 보이긴 했지만, 녹이 슨 부분은 없었다.

닦으면 깨끗해질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잡이까지 있잖아.’

턱끈까지.

가죽이라서 화상을 입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냄비로서 모든 게 완벽했다.

단점이라면 생각보다 조금 크다는 건데.

‘설기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적당하지.’

강현은 투구를 두드렸다.

뭉툭한 소리가 울렸다.

“좋아. 떠나기 전에 이 녀석을 닦아야지.”

지금 이대로 요리했다가는 내일 해를 못 볼 수도 있었다.

투구를 바라보는 강현의 눈동자가 빛났다.

‘닦을 맛이 나겠어.’

이 정도는 강현도 오랜만이었다.

의욕이 불타올랐다.

* * *

강현이 마을을 나온 건 세 시간이 지난 뒤였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현.

깨끗하게 닦인 투구는 새것처럼 보였다.

투구가 흔들릴 때마다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주방 기구를 닦는 건 강현의 취미 생활이나 다름이 없었다.

먼지투성이였던 투구가 점점 깨끗해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보람찼다.

덕분에 강현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마을을 나온 강현은 턱끈 부분을 배낭 끝에 걸었다.

걸을 때마다 투구가 덜렁거렸다.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배낭 안에 넣기에는 부피를 너무 많이 차지했다.

배낭을 몇 번 흔들어본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그때, 작은 그림자 하나가 투구 위로 쏙 들어갔다.

“어?”

빼꼼 고개를 내미는 토리.

곧 투구 안에 드러누웠다. 투구 안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피식 웃은 강현은 설기와 함께 마을을 나섰다.

마을을 나오자마자 숲의 향과 함께 따스한 햇볕이 강현을 반겼다.

강현은 걸으면서 지도를 열어 봤다.

“앞은 두 갈래 길이네.”

가까운 마을로 가려면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야 했다.

고개를 저은 강현이 다른 마을을 확인했다.

왼쪽에 있는 마을보다 두 배는 먼 거리.

하지만 강현은 결심을 굳혔다.

이대로 주변만 맴돌 수는 없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려면 그만큼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설기야, 오늘은 서두….”

강현은 허전한 옆자리를 보고 눈을 껌뻑였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냄새를 맡는 설기가 보였다.

냄새를 맡다 보니 벌써 저곳까지 간 것이었다.

“…개도 아니고.”

지금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실소를 흘린 강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 *

달그락. 달그락.

강현의 걸음이 빨라지자 덩달아 투구의 움직임도 격렬해졌다.

문뜩 이상함을 깨달은 강현이 걸음을 멈췄다.

흘끗, 옆을 확인한 강현은 아차 싶었다.

투구 안에 토리가 누워 있었다.

쉬고 있는 게 아니었다.

투구가 흔들리면서 안에 있던 토리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겠지.

아마 만화였다면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을 거다.

토리를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자 조금 진정되었는지 흙을 파고 들어갔다.

역시나 흙이 안정되는 것이었다.

“컹! 컹!”

그때, 설기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느낌.

고개를 들자 멀리서 뛰어오는 설기가 보였다.

“뭐, 뭐야.”

순식간에 강현의 곁까지 도달한 설기.

강현은 곧 이상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당혹스러워 보이는 눈동자. 그리고 코에는 집게가 하나 걸려 있었다.

집게를 가진 벌레였다.

‘땅에 코를 박고 다니더니.’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컹! 컹!”

그런 강현을 향해 설기가 짖었다. 빨리 어떻게 해 달라는 뜻이었다.

혓바닥으로 벌레를 툭툭 쳤지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알겠으니깐 움직이지 말아 봐.”

강현은 벌레를 손으로 잡았다.

“…!”

그러나 벌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단히 물린 것이었다. 강현이 손에 힘을 더 줬다.

결국, 떨어져나온 벌레.

떨어지자마자 바로 도망쳤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벌레를 보며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끼이잉.”

울상을 짓는 설기.

곰도 때려잡는 설기였지만, 작은 벌레 하나는 어찌 못하나 보다.

강현은 시무룩해진 설기와 땅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토리를 보았다.

“음.”

볼을 긁적인 강현이 입을 열었다.

“밥이나 먹자.”

더 갈 상황은 아니었다.

강현의 말에 설기와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모닥불 옆에 큰 나뭇가지 세 개를 겹쳐 세웠다.

강현은 그 위에 투구를 걸어 보았다.

‘모양은 그럴듯한데.’

살짝 투구를 쳐 보았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나뭇가지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너무 약해.”

좀 더 무게가 있는 지지대나 고정할 수 있는 끈이 필요했다.

눈살을 찌푸리던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잠깐, 혹시….’

황급히 배낭을 여는 강현.

강현이 꺼낸 것은 텐트였다. 정확히는 텐트의 폴대.

폴대를 조립해서 땅에 박았다.

중심을 눌러 봤다. 흔들리긴 했지만, 나뭇가지보다 훨씬 단단했다.

“됐다.”

환하게 웃은 강현은 투구를 폴대에 걸었다.

첫 개시였다.

불이 달궈지자 마을에서 사 온 고기를 냄비에 올렸다.

치익.

고기 익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올라왔다.

“좋네.”

생각대로였다.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고기 위에 조미료를 살짝 뿌려준다.

카레와 비슷한 향이 올라왔다. 오늘 재료는 대부분 마을에서 산 것이었다.

투구를 닦느라 시간을 너무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물을 부어 줬다.

이제는 물이 끓을 때까지 놔두면 되었다.

그리고는 배낭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작은 주머니. 고작해야 강현의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

그걸 그릇 위에 부었다.

주머니 안에 들은 건 밀가루였다.

밀가루 위에 기름과 물을 두르고 치대기 시작했다.

‘그릇에 하기에는 좀 작네.’

그나마 밀가루의 양이 적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진작에 넘쳐흘렀을 거다.

물론, 강현의 섬세한 손길도 한몫했다.

어느새 밀가루들이 걸쭉하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냄비의 물도 끓어올랐다.

강현은 오면서 채집한 버섯과 열매, 채소를 냄비 위에 넣었다.

끓어오르던 물이 잠잠해졌다.

다시 조금씩 끓어오르는 물.

보글보글.

그제야 강현은 반죽을 들어 올렸다.

적당한 크기로 뜯어내서 냄비에 넣었다.

바로 수제비였다.

반죽이 들어가면서 향도 조금씩 바꿔 갔다.

덩달아 분주해지는 설기의 꼬리.

‘여기에 매운 열매의 가루를 살짝.’

가루를 뿌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었다.

고개를 들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설기가 있었다.

강현이 떠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웃음을 흘린 강현이 입을 뗐다.

“잠시만. 간만 보고.”

강현의 말에 올라왔던 설기의 머리가 내려갔다.

하지만 다시 조금씩 올라오는 머리.

강현은 서둘러 국자로 국물을 떴다.

“…음?”

고개를 갸웃하는 강현.

다시 한 입을 먹어 봤다.

착각이 아니었다. 강현의 시선이 수제비로 향했다.

안에 들어간 재료를 살피는 강현.

역시 실수는 없었다.

“…생각한 맛이 아닌데.”

볼을 긁적이는 강현.

다시 한 입 떠먹으려는 순간 앞에서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꼈다.

“…”

“…미안.”

그릇에다 수제비를 한가득 떠서 설기에게 건넸다.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설기.

꼬리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은 작은 접시에도 수제비를 담았다.

단 두 덩어리.

불 앞에 있던 토리가 다가오더니 국물을 홀짝거렸다.

그렇게 둘에게 나눠 준 후에나 강현은 자신의 그릇을 채웠다.

그리고는 모호한 표정으로 수제비를 떠먹었다.

설기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왜 토마토 맛이 나는 거지?’

강현이 생각한 건 동양풍이었다. 몇 번 떠먹으니 원인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열매의 신맛 때문이네.’

안에 넣은 조미료와 섞이면서 토마토와 비슷한 맛을 낸 것이었다.

이 가정이 가장 타당했다.

“사우어크라우트 같은 건가.”

정식 이름은 자우어크라우트. 독일식 양배추 절임이었다.

강현은 해 본 적이 없지만, 해외에서 김치를 구하기 힘든 유학생들이 사우어크라우트로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

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은 가능했다.

강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래서 요리가 재밌는 것이었다.

알고 있는 맛끼리 섞인다고 해서, 꼭 예상하던 맛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의외의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다.

강현의 살던 시대에는 사우어크라우트와 같은 요리법들이 알려져 있었다.

덕분에 정보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세계 각국의 수많은 식자재를 얻는 방법도 쉬워졌고, 사람들의 소통도 원활했다.

그러나 여긴 아니었다.

강현은 새하얗게 쌓인 눈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네.”

수제비를 떠먹은 강현이 미소 지었다.

* * *

토마토 맛 수제비는 강현의 창작 욕구를 자극했다.

덕분에 힘들어진 건 설기였다.

“…끼잉.”

수프를 한 번 핥은 설기가 앞발로 그릇을 밀었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먹지 않겠다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이틀 동안 강현은 실험적인 요리를 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냈던 건 손에 꼽았다.

설기의 모습에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봐도 너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토리가 설기가 민 수프를 떠먹어 보더니 몸을 떨었다.

그리고 털썩, 쓰러졌다.

“…그렇게 맛이 없나.”

강현은 수프를 떠먹었다.

강렬한 떫은맛.

이 역시 강현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데.”

떫은맛 뒤에 숨어 있는 감칠맛이 매력적이었다.

마치 가시덩굴 속에서 보석을 찾는 느낌.

확실히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맛있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미안해. 오늘 저녁은 제대로 만들어 줄게.”

“끼잉?”

그제야 고개를 돌리는 설기.

진짜야?

그리 묻는 듯했다. 실소를 흘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기의 꼬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할짝할짝 수프를 먹는 설기.

역시나 이 요리 때문만이 아니고, 그동안에 쌓인 것 때문에 시위를 한 것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사실 몇 가지 더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이대로 진행했다가는 정말로 삐질지 몰랐다.

‘그래도 대충 느낌은 알았으니.’

여기까지로 만족해야만 했다. 덕분에 이 근방에 있는 식자재와 향신료에 익숙해졌다.

그릇을 비운 설기.

“더 줄까?”

강현이 국자를 들었지만, 설기가 고개를 저었다.

더 먹을 정도의 음식은 아니란 소리였다.

강현은 자신의 그릇에만 옮겨 담았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강현은 냄비를 정리했다. 그리고 얇은 천을 깐 후에 나뭇잎을 올렸다.

그러자 토리가 냄비 위로 쏙 들어갔다.

토리가 지내기 안락하게 꾸민 것이었다.

덕분에 요리할 때마다 새롭게 닦아 줘야 했지만, 큰 노동력이 드는 건 아니었다.

냄비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토리.

토리가 준비가 끝나자 설기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강현은 걸음을 옮기면서 지도를 펼쳤다.

‘내일이면 마을에 도착하겠네.’

이세계에 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수도를 고치는 건 이주.

돌아가는 걸 생각하면 마지막 마을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단 가서 생각하자.’

그때, 앞서가고 있던 설기의 귀가 쫑긋 솟았다.

“컹! 컹!”

앞을 향해 짖는 설기.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히이이잉!”

“지, 진정해.”

앞에서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당혹스러워하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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