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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15화 (115/227)

#115화 제법 모험가다워졌어

란돌프가 돌아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 받게.”

“이건….”

란돌프가 가져온 건 검과 검을 고정할 수 있는 허리띠였다.

강현은 놀란 눈으로 검을 받았다.

“이걸 주는 건 좀 더 나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리 준비하길 잘했군.”

웃음을 흘린 란돌프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보여도 새것이라네. 검집과 손잡이만 낡은 가죽으로 바꿨어. 한번 뽑아 보게.”

란돌프의 말대로 검을 뽑자 시퍼렇게 날이 선 검날이 나왔다.

검을 살피는 강현의 귓가로 란돌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집이 너무 깨끗해도 실력이 없어 보이지.”

그만큼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한 번도 안 쓴 녀석이라, 길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도 재미 아니겠는가.”

“…감사합니다.”

강현은 목이 메워왔다. 이런 걸 받을 줄은 몰랐다.

쓸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은 금액은 아닐 거다.

강현의 인사에 란돌프가 머쓱한지 코를 쓸었다.

“다녀오면 이 녀석을 관리하는 법을 알려 주겠네. 그럼 차 보게나.”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허리띠를 찼다.

그러자 란돌프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이런 모습이 어색한지 애꿎은 허리띠만 만지작거렸고, 설기와 토리는 신기한지 강현의 주변을 돌았다.

“네가 봐도 괜찮지?”

“컹!”

란돌프의 물음에 설기가 짖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호오, 제법 모험가다워졌어.”

란돌프가 아니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강현과 란돌프가 고개를 돌렸다.

“로멘 님.”

문이 제대로 안 닫혀 있었는지, 열린 문 사이로 로멘이 걸어왔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모험가야.”

로멘이 미소 짓자 란돌프도 따라 웃었다.

강현만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보아하니 내가 가장 늦은 것 같군.”

로멘은 그리 말하면서 무언가를 건넸다.

은색의 둥근 물체.

강현은 의아해하면서 물건을 받았다.

란돌프는 물건의 정체를 아는지 놀란 눈으로 로멘을 바라보았다.

“나침반이라네. 하지만 그냥 나침반은 아니야.”

딸깍, 나침반을 열자 바늘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망가졌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무거나 생각해 보게.”

로멘의 말에 의아해하면서 강현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침반이 움직였다.

“무슨….”

나침반은 설기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현의 주변을 도는 설기를 따라서 천천히 바늘이 바뀌고 있었다.

놀란 강현을 본 로멘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마법의 나침반이라네. 소유자가 원하는 걸 가리키지.”

그런 것도 있는 건가.

“물론, 보물 같은 추상적인 건 안 되네. 정확히 물건이나 장소를 떠올려야 해. 이거라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겠지.”

로멘이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것이야. 돌아와서 돌려주게.”

“예.”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보자 이세계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로멘 님께서 너무 대단한 걸 주셔서 제가 없어 보이는군요.”

란돌프가 넌스레를 떨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두 분 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다.

진심이 담긴 인사에 둘이 미소 지었다.

“아, 맞아. 하나가 더 있었군.”

나침반이 끝이 아니란 말인가.

강현의 시선에 로멘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나침반은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것이라네. 선물은 따로 있지.”

그리고 문 뒤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작은 보따리.

“자네의 텐트를 보고 군용으로 쓰던 텐트를 개조해봤네.”

“로멘 님, 또 언제 그런걸….”

란돌프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로멘을 바라보았다.

“곧 말해 줄 생각이었네.”

“…보통은 말하고 가져가야 합니다.”

군용 텐트는 전략 물자였다. 그걸 멋대로 가져간 것이었다.

란돌프의 시선에 로멘이 헛기침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란돌프가 한숨을 내쉬고는 강현을 보았다.

“과정이야 어쨌든 잘 되었군. 모험하다 보면 야영할 때가 많지. 자네의 텐트는 너무 눈에 띄어. 그래서 안 가져온 거 아닌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의 말대로였다. 강현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이들은 또 없겠지.’

란돌프와 로멘뿐만 아니었다. 노아나 카샨까지.

만일 다른 이들을 먼저 만났다면 이렇게까지 정이 들진 않았을 거다.

“자, 나머지는 밖에서 이야기하지. 첫날부터 이 녀석을 쓰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로멘이 텐트를 가리키며 웃었다.

고개를 끄덕인 일행들은 접객실을 나섰다.

그렇게 내성을 나서는 일행들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강현 님 맞으십니까?”

하인의 복장을 한 사내가 강현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영주님께서 소야까지 마차로 모셔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인의 말에 일행들은 눈을 껌뻑였다.

소야는 이다음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강현 역시 당혹스러워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저도 명령을 받은 것이라.”

하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이 어쩔 줄 몰라 하자 란돌프가 나섰다.

“영주님의 뜻은 알겠지만,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네.”

“예?”

하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하인을 보며 란돌프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낫겠지. 마차는 어디에 있는가?”

“내성 밖에다 세웠습니다.”

“가 보지.”

앞장서서 걸어가는 란돌프.

그를 뒤따르는 하얀 털 뭉치를 본 강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 * *

“휘이잉!”

마차에 묶여 있는 말들이 투레질했다. 놀란 하인이 말들을 다독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일행들은 뒤로 물러난 후에나 진정했다.

놀란 말들을 달랜 하인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이건 대체….”

“이 녀석 때문이지. 하얀 늑대라네. 자네도 이곳 출신이니 들어는 봤겠지?”

하품하는 설기를 본 하인의 눈이 커졌다.

“영주님께 지금 본대로 이야기하면 영주님도 이해할 걸세.”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인이 떠나가자 란돌프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 자네도 알겠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 중에 말이나 마차는 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오로지 도보로만 이동해야 했다.

‘…설기보고 뒤따라오라고 하면 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마차를 타고 싶진 않았다.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느긋하게 가도 상관없다.

성 밖까지 나온 일행들의 걸음이 멈췄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었다.

“여행 도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카브리 영지의 마법사를 찾아가게. 가서 나침반을 보여 주면 도와줄 거야.”

강현이 쳐다보자 로멘이 멋쩍게 말했다.

“거기 마법사가 내 딸이야.”

“아.”

탄성을 뱉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하게나.”

“즐기고 오게.”

둘의 배웅을 받은 강현이 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란돌프와 로멘은 떠나는 강현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성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성에서 멀어진 강현이 제 모습을 살폈다.

란돌프나 로멘이 말했던 것처럼 누가 봐도 이세계의 주민처럼 보였다.

‘꼭 게임 같네.’

영주에게 옷과 돈을 받고 기사단장에게 무기를, 마법사에게는 나침반을.

옛날에 했던 게임의 도입부처럼 느껴졌다.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그걸 떠올리자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 앞은 게임처럼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게임과 달리 현실이었다. 하지만 두렵진 않았다.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짧은 다리로 도도하게 걷고 있는 설기. 그리고 설기의 머리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토리.

그렇다. 강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발을 내딛는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길이라고 해도 강현의 사는 시골과는 달랐다.

오히려 산길에 가까웠다.

길 자체는 평지긴 하나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중간마다 보이는 이정표가 아니면 진작에 길을 잃었을 거다.

“어두우면 길 찾는 것도 힘들겠네.”

“컹! 컹!”

강현의 말에 설기가 짖었다.

자신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뜻 같았다.

피식 웃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기가 있다면 밤길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늑대는 야행성이지.’

당연히 설기도 야행성이다.

밤마다 잠을 잘 자서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여기로 가면 소야란 마을이 나온다고 했던가?’

걸어가면 저녁때는 도착한다고 했다.

강현은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덕분에 저녁이 되기 전에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컹! 컹!”

마을을 발견하자 설기가 짖으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강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에서 가져온 육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얼마 먹지도 않았으니 허기가 질 거다.

직접 사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강현과 함께라서 그런 건가?

‘어쩌면 맛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

일반 늑대라면 다르겠지만, 설기의 입맛에는 생고기보다는 육포가 나을 수도 있었다.

“컹!”

“알았어. 가자.”

설기의 닦달에 강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강현도 설기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게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던 진실.

마을에 들러서 식사를 주문한 강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성에서 먹던 게 맛있는 거였구나.’

그제야 토마스의 반응이 이해 갔다.

‘그러고 보니 란돌프 씨의 부인분도 요리를 잘하는 거라고 했지?’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향신료를 쓰긴 하지만, 양이 적었다. 기껏해야 누린내를 감추는 정도였다.

슬쩍, 강현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했다.

웃고 떠들고 있는 이들.

이들에게 있어서 이게 평범한 식사였다. 이는 당연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태어난 마을을 벗어나는 일이 적었다.

당연히 자신들이 먹던 것만 계속 먹을 뿐이었다.

저들에겐 이게 맛있는 식사일 거다.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향신료를 다루는 게 서툴렀다.

향신료가 비싸기 때문도 있었다.

“끼잉.”

설기가 우울한 눈빛으로 접시를 바라보았다. 토리도 발톱으로 찍어 먹어 보더니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래도 전에 갔던 주점보단 낫잖아?”

란돌프의 단골 주점.

그리고 단골 주점조차 수인족이 먹던 것보다 나았다.

강현의 말에 설기의 귀가 더욱 처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히 쓸 수 있는 도구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컹! 컹!”

강현의 혼잣말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가져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애써 여행을 온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배웅까지 받았는데 다시 가는 건….’

강현도 내키지 않았다.

“내일 마을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보자.”

여비는 조반테가 챙겨 줬다. 정확히 말하면 강현이 일한 몫을 성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알아서 챙겨 가라고 했다.

강현의 말에 설기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온 수프를 홀짝였다.

그렇게 낯선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강현은 아침부터 마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 그런 도구를 팔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향신료만 몇 개 사서 마을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해 봐야지.’

적어도 구이 정도라면 가능했다.

강현도 다시 육포를 먹는 건 내키지 않았다.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강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 익숙해진 탓에 이세계 여행을 얕보고 있었다.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다들 모험이라고 말했구나.’

이들에게 여행은 사치였다.

이세계 문화를 느끼는 건 마을에서만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점심은 구이야. 잡을 수 있지?”

“컹!”

설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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