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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14화 (114/227)

#114화 잠시만 기다리게

영주가 사는 성이라고 해서 생각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벽돌로 만들어진 성.

일하는 이들의 옷차림 역시 깔끔했지만, 튀지 않았다. 어찌 보면 투박하게까지 보였다.

그리고 벽면에는 동물로 만든 장식들이 늘어져 있었다.

헌팅 트로피라고 부르는 것.

늑대의 머리를 발견한 강현이 아차 싶어서 설기를 돌아보았다.

설기가 봤을 때는 불쾌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가 신경 쓰지 못했군.”

앞서가고 있던 란돌프도 깨달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정작 설기는 강현과 란돌프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둘이 왜 놀랐는지 모르는 표정.

강현은 너무 인간의 사고로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설기도 지난번에 사냥감을 자랑하기도 했지.’

죽은 곰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의기양양하게 곰 위에 올라가 있던 설기를 떠올렸다.

이곳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강현은 옆이 신경 쓰여서 돌아보니 꼼지락거리면서 늑대 머리 위로 올라가는 토리를 볼 수 있었다.

‘또 언제 저기까지.’

고개를 돌려보니 벽 쪽에 구멍이 뚫린 게 보였다.

강현이 숨을 삼켰다.

원래부터 뚫려있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이 황급히 토리를 잡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벽돌도 뚫는구나.’

강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방심할 수 없었다.

멈춰 섰던 란돌프가 몸을 돌렸다.

“음, 돌아서 가야겠네.”

설기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마음이 걸렸다.

강현도 란돌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왔던 길을 돌아가던 중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구멍이 뚫린 벽돌이 신경 쓰였던 것이었다.

당연히 란돌프도 그런 강현의 기색을 알아챘다.

“왜 그런가?”

“아뇨, 토리가 저쪽에….”

강현의 설명을 들은 란돌프는 웃음을 터트렸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내가 집사장에게 말해 놓겠네.”

“…죄송합니다.”

강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란돌프가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괜찮다네. 그런 걸로 문제가 생길 것 같았으면 내가 훈련 중에 부순 벽들이 더 문제일 거야.”

“….”

그건 정말로 문제 아닌가.

강현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강현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이 성보다는 자네 집을 걱정해야 하지 않겠나?”

“…!”

맞았다. 지금 남의 집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강현의 시선이 주머니로 향했다.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토리.

‘…시멘트라 괜찮겠지.’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자마자 확인해 봐야겠다.

강현은 벽에 관한 생각을 접었다.

“저, 영주님께서는 저를 왜 찾는 거죠?”

걱정스러운 강현의 물음에 란돌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가면 알 걸세. 거창한 자리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하지 않으면 미리 알려 줘도 되지 않나.

하지만 란돌프가 저리 말한다는 건 이유가 있을 거다.

그렇게 란돌프를 따라서 들어간 곳은 작은 응접실이었다.

둘이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서 조반테가 하인들과 함께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인원에 강현이 놀랐으나, 하인들은 강현과 란돌프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고 나갔다.

“식사가 아직이지? 편히 들게나.”

“예….”

고개를 끄덕이려던 강현은 이상한 걸 깨달았다.

음식은 강현과 란돌프의 앞에만 놓여있을 뿐, 조반테의 앞에는 과일과 구운 빵 한 조각만 놓여있었다.

빵 역시 식사를 위한 게 아니었다.

다과상.

강현의 시선에 조반테가 미소 지었다.

“난 이걸로 충분하다네. 원래 아침을 잘 안 먹어.”

“저녁을 많이 드셔서 그렇습니다. 안 좋은 습관입니다.”

란돌프의 말에 조반테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아내와 자식들에게 충분히 듣고 있으니, 자네까지 그러지 말게나.”

“충분히 들어도 고치지 않으면 마찬가지죠.”

란돌프가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그러자 조반테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녁을 많이 먹는 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야 그만큼 움직이지 않습니까.”

란돌프가 씩, 웃었다.

“끙. 내가 그래도 주군인데, 한 마디도 안 져.”

조반테가 고개를 저었다. 옳은 소리만 하니 말로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대신 강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 사정을 알았으니 편히 들게.”

강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식사는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빵과 수프, 소시지와 풀.

그리고 우유와 비슷한 하얀 음료가 하나.

강현이 음료를 보고 있으니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양젖이라네. 처음에는 낯설 수도 있는데, 익숙해지면 나름 괜찮아.”

산양유.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산양유 자체에서도 양의 누린내가 섞여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지구에서도 산양유를 마셔 본 적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입 삼켰다.

따뜻한 산양유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일반 우유보다 걸쭉한 느낌. 냄새와 달리 담백했다.

이번에는 수프를 떠먹어 봤다.

“음.”

고개를 끄덕이는 강현.

나쁘지 않았다. 강현의 입맛보다는 조금 밍밍하긴 하지만, 그만큼 강현이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소시지를 잘라서 입으로 가져갔다.

소시지도 육즙이 제대로 배어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강현이 다시 소시지를 자르려는 순간 턱, 하고 앞발이 올라왔다.

설기였다.

“미안.”

강현은 사과하고 소시지를 설기에게 양보했다.

그러자 한입에 삼키는 설기.

설기의 꼬리가 살짝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졌네.’

영주의 요리사라면 실력자일 거다. 앞으로 이런 요리를 맛보기 힘들다는 뜻도 되었다.

‘아니야.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도 있지.’

다양한 음식을 접해 봐야 했다.

하지만 소시지 하나로는 설기의 배를 채울 수 없었다.

입맛을 다시는 설기를 본 조반테가 입을 뗐다.

“내가 실례했군. 손님이 더 있는 걸 깜빡했어.”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을 들어서 흔들었다.

딸랑딸랑.

맑은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하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서 소시지와 빵을 넉넉히 가져오게나.”

하인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곧 설기를 발견한 하인이 고개를 숙였다.

“대접에 물도 담아 올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군.”

그렇게 하인이 다시 밖으로 나가자 강현이 인사를 건넸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조반테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

“별일 아니네. 전에도 말했지만, 하얀 늑대는 우리 가문하고도 인연이 있어.”

조반테의 배려 덕분에 강현은 편히 식사할 수 있었다.

설기도 자기 게 온다는 것을 안 탓인가, 강현을 닦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안으로 들어온 건 아까 왔던 하인이 아니었다.

“…자네.”

안으로 들어온 이를 본 조반테가 한숨을 내쉬었다.

육중한 덩치의 사내.

덩치만이라면 란돌프와 비슷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내에겐 근육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굵직한 팔과 달리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키 역시 란돌프보다 작았다. 강현과 비슷한 정도.

조반테와 달리 란돌프는 흥미롭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사내와 강현을 번갈아 보는 란돌프의 모습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바쁜 자네가 직접 무슨 일인가.”

“중요한 손님이 오셨다고 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방해된다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조반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팔짱을 꼈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사내는 강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아, 예.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던가. 사내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렇, 군요. 좋은 시간 되십시오.”

애써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가져온 쟁반을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무언가 실수라도 한 건가.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그런 강현을 향해 조반테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성의 요리장인 토마스야.”

조반테는 차를 홀짝이며 란돌프를 보았다.

“단장과 로멘 님께서 하도 자네 자랑을 해서 궁금했을 걸세.”

“아….”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그제야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두 분 때문이구나.’

란돌프와 로멘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땠는지 짐작이 갔다.

강현의 시선이 향하자 란돌프가 헛기침했다.

“넘어야 할 벽이 없다면, 삶이 무료해지죠. 덕분에 저 친구도 실력이 늘지 않았습니까?”

란돌프가 접시 위에 놓인 소시지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졸지에 소시지를 하나 빼앗긴 설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다른 소시지로 눈길을 돌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란돌프의 말대로 최근 토마스는 의욕이 넘쳤다.

이번 요리도 신경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조반테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 식사는 마친 것 같으니 할 일을 해야지.”

설기만 열심히 먹고 있을 뿐, 강현과 란돌프의 포크는 멈춘 지 오래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조반테가 옆에 놓인 보따리를 가져왔다.

“받게나.”

“이건.”

강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보따리를 건네받았다.

“열어 보게.”

조반테의 말에 보따리를 연 강현.

안에는 옷이 담겨 있었다.

“나도 젊을 때는 모험을 좋아했지. 그때 내가 입던 옷과 가방이라네. 새것이 아니긴 하지만, 이 근처에선 구할 수 없는 것들이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길 잘했군.”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반테.

옷을 만져보자 질기고 부드러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죽 신발도 같이 들어 있었다.

전에 란돌프가 빌려준 것과는 달랐다. 조반테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건 자네가 이 영지 출신이라는 신분증이고, 이건 내 보증서라네. 신분증은 경문을 통과할 때 쓰면 되고, 보증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보여 주게나.”

조반테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둥근 패 하나와 가죽으로 적힌 서신.

강현은 놀란 눈으로 조반테를 바라보았다.

“이걸 제가 받아도….”

그러자 조반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 영지의 중요한 존재네.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지.”

옆에 있는 란돌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감사관이란 직책을 받았으니, 내 사람 아닌가?”

웃음을 터트린 조반테. 이어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강현을 보았다.

“난 자네를 친구라고 생각했네. 자네는 아니었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조반테의 말에 낯간지러워진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곧 조반테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일 때문에, 먼저 일어나겠네. 마음 같아서는 성 밖까지 같이 배웅해 주고 싶지만….”

“이해합니다.”

이미 도움은 충분했다.

방을 나서려던 조반테의 걸음이 멈췄다.

“…다녀오면 자네의 음식, 기대해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조반테도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나도 먹어 보게 되는군. 그럼 편히 있다가 가게나.”

아무래도 둘이 놀린 건 토마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조반테가 방을 나갔다.

강현은 멋쩍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란돌프가 옷을 눈짓했다.

“한 번 입어보는 게 어떤가?”

“여기서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성 밖으로 나가려면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나?”

맞는 소리였다.

“불편하면 내가 나갔다가 오지.”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대련하면서 못 볼 꼴도 다 본 사이였다.

그렇게 강현이 옷을 갈아입자 란돌프가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이 마을 사람 같군. 하지만 뭔가 부족해.”

“예?”

“잠시만 기다리게.”

란돌프는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졸지에 남겨지게 된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소시지를 먹고 있던 설기는 갑작스러운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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