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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03화 (103/227)

#103화 언제부터 왔어요?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강현에게는 생소한 곡.

그러나 장만기는 운전하면서 트로트를 따라불렀다.

그렇게 도착한 곽도현의 집.

부모님과 함께 있던 곽도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촌들?”

낯선 이의 방문에 경계하던 곽도현의 부모님은 곽도현이 아는 척을 하자 경계를 풀었다.

“늦은 밤 죄송합니다. 도현이한테 전해 드릴 게 있어서요.”

장만기네에 도착했을 때는 초저녁이었지만, 이제는 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들어오세요.”

부모님의 안내에 강현과 장만기가 안으로 들어갔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집안.

안쪽에서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어쩐 일로….”

곽도현의 아버지의 물음에 강현은 서류를 건넸다.

“전에 도현이가 진로로 고민하는 것 같아서 제 쪽에서 조금 알아봤습니다.”

그리 말한 강현이 부모님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묻지도 않고 멋대로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우리야말로 감사하죠.”

부모님 두 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슬쩍 곽도현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아직도 강현과 곽도현이 무슨 사이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전에 말했던 요리사 삼촌.”

“아.”

곽도현이 작게 속삭이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리가 정리되자 강현이 입을 열었다.

“익산에 있는 고등학교야. 음악 쪽으로 명문이긴 한데, 최근에 학생 수가 줄면서 체육 쪽으로도 특기생을 뽑는다고 했어.”

“익산….”

강현의 말에 곽도현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러자 부모님도 말없이 둘을 지켜봤다.

“네 대회 성적이면, 지원이 가능하대. 부족한 내신은 시험으로 대체해 줄 수 있다고 했어. 기숙사도 제공해 주지만, 어느 정도 성적 이상 내야 해. 기숙사를 이용하려면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도 해야 한다는 소리지.”

그 말에 곽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기숙사비를 내고 다니거나 따로 숙소를 잡아야 했다.

“미리 말하지만, 육상 쪽으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좋은 학교라고 하더라고. 군청에서 지원받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육상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뽑진 않을 거다.

곽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은 네 몫이야.”

“…할게요. 하고 싶어요.”

“도현아.”

곽도현의 말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익산이면 전라북도야. 너무 멀지 않아?”

전라북도. 지명만 들었지, 실제로 가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놔두라는 소리였다.

강현은 그들을 보다가 입을 뗐다.

“물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없던 일이 돼. 시험은 두 달 정도 여유가 있어.”

“시험이라면….”

“국영수. 이 세 가지를 본다고 했어.”

강현의 말에 곽도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묻지 않아도 곽도현의 성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늘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그만큼 다른 부분도 노력해야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나중에 이번처럼 다치기라도 하면, 그땐 어찌할 거냐?”

“여보….”

옆에서 어머니가 말렸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 아이도 어른이야. 제 앞날은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지.”

아버지의 말에 곽도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그러자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직 어린 탓인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육상만 해서는 살기 힘들었다.

“예. 할 수 있어요.”

곽도현의 눈빛을 본 부모님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공부라면 이 삼촌이 도와주마. 이래 봬도 왕년에 먹물 좀 먹었어.”

장만기의 외침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저 ‘왕년에’는 대체 언제일까.

그러나 곽도현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았다.

“진짜요?”

“아, 응. 그럼!”

눈을 빛내는 곽도현을 보며 장만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당황했던 거 같은데.’

강현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두 분, 식사는 하셨어요? 모처럼이니 드시고 가세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순 없죠. 잘 담근 인삼주가 있으니 한 잔씩들 하고 가세요.”

“인삼주요? 오, 그러면 감사히….”

인삼주란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던 장만기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차를 가져왔네요. 아쉽지만 다음에 한잔하시죠, 형님.”

차뿐만 아니라 아내도 기다리고 있었다.

장만기의 호칭에 놀란 아버지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요.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음에 한잔합시다.”

그렇게 둘은 곽도현의 집을 나왔다.

“인삼주….”

장만기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빨리 가서 한잔해야지.”

장만기가 서둘러서 차에 올랐고, 강현도 웃으며 조수석에 올랐다.

* * *

산들도 이제는 완연한 가을빛으로 물들었고, 길길 마다 은행 열매 냄새가 올라왔다.

매장에 있던 강현은 익숙한 손님을 맞이했다.

“동생, 나 왔어!”

밝게 인사하는 장만기 뒤로 곽도현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강현은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도현이는 공부 잘돼 가?”

강현의 물음에 곽도현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곽도현을 대신해서 장만기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왔어.”

강현이 의아해하자 장만기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요즘 애들이 배우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너무 다르더라고. 하하핫!”

웃음을 터트리는 장만기. 대신 곽도현이 멋쩍어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현은 다른 부분으로 놀랐다.

‘…진짜 가르치려고 했구나.’

대단하다면 대단했다. 뱉었으니 책임을 지려는 것이었다.

“그래도 동생은 젊으니까 좀 알겠지?”

그제야 둘이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부는 특기가 아니긴 했는데.’

기껏해야 중학교 문제 아닌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막히는 게 뭔데?”

강현의 물음에 둘의 표정이 환해졌다.

장만기가 곽도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서 가져와.”

“잠깐만요.”

매장을 나간 곽도현이 잠시 후 무언가를 들고 왔다.

교과서와 문제집들.

강현은 그 양을 보고는 슬쩍 장만기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장만기.

강현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디부터….”

말을 꺼내려던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문제집에 적힌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처음부터구나!’

강현은 시험까지 얼마나 남았나 기억을 더듬었다. 빠듯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강현이 의자를 끌어다가 앉자 장만기와 곽도현도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의 분투.

그 끝에 강현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 가르치는데는 재능이 없구나.’

요리 때와는 달랐다. 문제를 풀 줄은 알아도 답이 어째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현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곽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혼자서 하는 것보단 나았다.

다시 문제를 푸는 곽도현.

그때, 매장 문이 열렸다.

“오늘도 손님이 있네?”

“매장인데 손님이 있는 게 당연하지.”

이장과 정기훈 작가, 이정환이었다. 강현은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걸 알아챘다.

“황대길 선생님은요?”

“서울에 일이 있다고 올라갔네.”

이정환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한 이정환과 달리 황대길은 아직 활동 중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집 알아보는 걸 보니 그 양반도 이사 올 거 같어. 그보다, 뭐 하는 거여?”

이장이 테이블 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사라니.’

방금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미 셋의 관심은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아, 공부 좀 도와주고 있었어요.”

“얘가 도현이구먼.”

강현의 말에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이들에게 사정을 들은 것이었다. 다른 둘도 새로운 눈빛으로 곽도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몰리는 시선에 곽도현이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열심히 하고 있군. 공부는 잘되나?”

아까 강현이 물었던 질문이었다. 머뭇거리는 곽도현을 대신해서 강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강현의 이야기가 끝나자 셋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쉽지 않겠지.”

“좋아. 나도 한 손 보태겠네.”

정기훈 작가가 코트를 벗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정환이 입을 열었다.

“시험에 미술은 포함 안 되었네.”

“…그렇군.”

슬그머니 코트를 다시 입는 정기훈 작가.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혀. 우리 마을에도 공부 잘했던 사람이 있잖어.”

이장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옮겨갔다.

“민호 말이여. 걔가 어릴 때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어.”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 * *

“공부 말입니까?”

“그려. 자네가 학교에서 일 등이었잖어.”

“…그렇긴 하죠.”

일행들의 이야기를 들은 민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워낙 학생 수가 적었던 거라….”

지금보다는 많긴 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민호의 말에 곽도현의 얼굴에 실망이 떠올랐다.

그런 곽도현을 본 민호가 탄성을 뱉었다.

“중학생이라고?”

“예.”

“그럼 제 아내가 나을 겁니다. 아내가 저보다 똑똑해요.”

일행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일행들은 민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아내여서 칭찬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내가 대학생 때 중고생을 가르치는 일도 했었습니다.”

과외, 혹은 학원 아르바이트.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좋아. 갑세!”

“지, 지금 말입니까?”

이장이 민호의 팔을 이끌었다. 당혹스러워하던 민호는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갑작스럽게 끌려온 건 강현도 마찬가지였다.

눈빛을 주고받은 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민호네 집에 향하자 빨래를 널던 수진이 반갑게 맞이했다.

“다들 모여서 어쩐 일이세요?”

마루에 누워 있는 아기 곁에는 설기가 있었다.

‘대체 언제 간 거지?’

매장을 나올 때 같이 나와서 중간에 사라졌다.

산책이라도 하고 올 줄 알았는데, 이런 데 있을 줄은 몰랐다.

강현과 눈을 마주치자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옆에는 토리가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제집처럼 편안한 자태.

둘의 모습을 보니 한두 번 온 게 아니었다.

그 사이 민호에게 사정을 들은 수진이 눈을 껌뻑였다.

“대학생 때 잠깐 가르치긴 했죠.”

수진의 말에 일행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진은 바로 허락하지 않고 곽도현을 돌아보았다.

“도현이라고 했지? 혹시 교과서 좀 볼 수 있을까?”

“아, 예.”

곽도현이 교과서를 건넸다. 그러자 수진은 진지한 눈빛으로 교과서를 살폈다.

다른 이들과 반응부터 달랐다.

교과서를 차례대로 확인하는 수진.

모두가 숨을 죽이고 수진을 기다렸다.

곧 수진이 마지막 교과서를 덮었다.

“예, 이거라면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그런가?”

일행들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수진이 다시 곽도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가 집을 떠날 수 없어서 여기에서만 해야 해요. 그리고 저도 일이 있어서 공부만 봐줄 순 없어요.”

수진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당연했다. 그러자 곽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요. 그리고 저도 어린 동생이 있어서 아기 잘 봐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곽도현. 수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장만기가 입을 열었다.

“좋아. 오고 가는 건 이 삼촌이 책임지마.”

“빨래만 개고 시작할까?”

“예! 저도 도울게요!”

곽도현이 손을 거뒀다.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둘을 방해하지 않게 몸을 돌렸다.

강현도 그들을 따라가려다가 멈춰서 아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설기는 언제부터 와 있었요?”

강현의 물음에 수진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아까 왔어요. 요즘 한 번씩 놀러 오더라고요.”

“아,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모르고 있었다. 강현의 사과에 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운걸요. 하은이도 설기가 있을 때는 안 울어요. 덕분에 편하게 집안일을 볼 수 있어요.”

수진의 말을 듣고 난 후에나 강현은 안심할 수 있었다.

강현은 힐끗, 설기를 보다가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리 말하니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밥때가 되면 알아서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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