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99화 (99/227)

#99화 손님이 있었나?

운동을 늘리는 건 어렵지만, 차는 배울 수 있었다.

‘전부터 흥미가 있기도 했고.’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물론, 지구의 다도와는 다를 거다. 하지만 배워서 손해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에 만날 때를 기대할게요.”

환하게 웃는 에밀리야.

에밀리야는 알고 있을까? 그녀의 귀가 파닥파닥 움직이고 있다는 걸?

강현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았다.

저리 기뻐하니 강현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예, 부탁드려요.”

“맡겨만 주세요!”

강현의 인사에 싱긋 웃은 그녀는 날아가듯 몸을 날렸다.

그렇게 에밀리야가 떠난 후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잘한 거겠지?”

“컹!”

힘차게 짖는 설기를 본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현은 노아를 만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노아가 강현을 찾아왔다.

“다행히 아직 있었군.”

평소와 다르게 숨이 거칠었다. 급히 온 것이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놀란 강현의 물음에 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예정이지.”

강현이 의아해하자 노아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야기는 나눠 봤나?”

“아, 예. 한 달 뒤 날짜를 말하면 맞출 수 있다고 했어요.”

“한 달이라…. 충분하겠군.”

무언가를 생각하던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현을 돌아보았다.

“한 달 뒤, 오늘에 보지.”

노아의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이렇게 쉽게 정해도 되는 건가?

그러나 강현이 묻기도 전에 노아가 몸을 돌렸다.

“그럼, 그때까지 훈련 잘하도록.”

“자, 잠깐만요!”

강현은 떠나가려는 노아를 급히 붙잡았다.

할 말은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이야기했다.

“그날 에밀리야 씨가 참관해도 될까요?”

“음?”

노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현, 그대의 생각은 아니겠고 란돌프인가?”

강현이 끄덕이자 노아가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족장님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역시나 강현의 예상대로였다.

“할 말은 그걸로 끝인가?”

노아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빠 보이니 더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노아는 강현과 한 번 눈을 마주친 후에 수풀로 사라졌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역시 그것 때문인가?”

반란. 이건 강현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한숨을 내쉰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가 보였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컹!”

강현의 말에 설기가 대꾸했다.

앞으로 한 달 뒤.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 * *

지구로 돌아와서 매장을 연 강현은 레시피 개발에 한창이었다.

바로 대표의 부탁 때문이었다.

결국, 일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맡길 잘했네.’

카메라 앞에서 요리하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요리는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고객층도 달랐다.

코스 요리를 짜는 일도 없었다.

필요한 재료들 역시 서울에서 한 번에 보내 준다.

서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재료들까지.

덕분에 색다른 자극이 되었다.

거기다 제법 큰 돈도 들어온다. 돈이라면 지금도 충분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몰랐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

이제는 홀몸도 아니었다.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설기와 토리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귀여운 몸짓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던 도중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벌써 이렇게 지난 건가?”

시간을 확인한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곧 매장을 열 시간이었다.

서둘러 요리하던 걸 정리했다.

강현이 만든 요리는 당연하게도 설기에게 돌아갔다.

“컹!”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설기.

대표 덕분에 설기만 포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매장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방울이 울렸다.

딸랑딸랑.

그와 함께 멋들어진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들어왔다.

코트와 모자.

정기훈 작가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노인의 몸은 정기훈 작가보다 작고 단단해 보였다.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노인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매장을 둘러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런 매장을 할 줄이야. 놀랍군.”

익숙한 목소리에 강현은 눈이 커졌다.

바로 노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황대길 선생님?”

강현의 말에 노인이 모자를 벗었다.

한식의 대가. 얼마 전 방송에서도 심사위원을 맡았던 황대길이었다.

“여긴 어떻게….”

강현은 놀란 눈으로 황대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대길은 차분한 눈길로 입을 열었다.

“자네의 요리가 변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억지 좀 부렸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네.”

그리 말한 황대길이 고개를 숙였다. 강현은 황급히 황대길을 일으켜 세웠다.

“아뇨, 괜찮습니다.”

강현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윤하 피디나 전 매장의 대표가 알려 줬을 거다.

‘황대길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겠지.’

게다가 황대길의 성향도 한몫했다. 강현에게 해코지할 성격은 아니었다.

“윤하 피디에겐 내가 말하지 말라고 일러 뒀네. 그러니 너무 탓하진 말게.”

역시나 김윤하 피디였다.

숨겨도 되는데 굳이 이야기하는 것도 황대길다웠다.

대쪽 같은 노인.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상관없습니다.”

예전과 달랐다. 이제는 상관없었다.

만일 강현이 정말로 싫었다면 김윤하 피디가 택배를 보내왔을 때 말해 뒀을 거다.

자리에 앉은 황대길이 메뉴판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남은 건 포장도 되나?”

“예. 그럼요.”

강현의 대답에 황대길의 표정이 한층 편해졌다.

“그렇다면 마르게리타와 토마토 파스타, 크림 리소토를 부탁하네.”

여러 가지를 먹고 싶은데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잠깐만, 혹시….”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향하려던 강현을 황대길이 붙잡았다.

강현은 황대길이 무슨 말을 꺼낼 줄 알고 있었다.

“평소 나가는 대로 내올게요.”

강현의 대답에 황대길이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음, 부탁하네.”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강현은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강현은 황대길이 굳이 김윤하의 입을 막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평소의 매장과 요리를 보시고 싶은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굳이 입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신경 쓰일 거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지만.’

이제 강현에게 황대길은 존경하는 선배일 뿐, 어려운 이는 아니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강현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방으로 돌아간 강현이 요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황대길은 그런 강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변했군.’

요리뿐만이 아니었다. 표정 역시 부드러워졌다.

전에는 늘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강현에게서 시선을 뗀 황대길이 매장을 돌아보았다.

황대길은 강현이 전에 일하던 매장도 가봤다.

그리고 요리도 먹어 봤다.

그때의 요리를 생각하면 이 매장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리 요리하는 강현을 보면 이 매장과 잘 어울렸다.

매장을 둘러보던 황대길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음.”

그리고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와 눈이 마주쳤다.

매장 안에 동물이 있는 것 자체가 예전의 강현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황대길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당혹스러워했다.

어린아이나 애완동물은 황대길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면에서 강현과 닮았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강현의 요리는 젊을 때의 황대길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더 신경 쓰인 것이었다.

결국, 황대길이 설기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오, 옳지.”

그렇게 황대길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설기가 휙, 머리를 피했다.

그리고는 도도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음.”

머쓱해진 황대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거둬들였다.

그때, 강현이 요리를 들고 나왔다.

강현은 아까와 달리 어색하게 앉아있는 황대길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급히 고개를 젓는 황대길. 역시 무슨 일이 있었다.

강현은 의아해했지만, 모른 척 접시를 내려놨다.

“뽀모도로 파스타와 버섯 크림 리소토입니다. 피자도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인 황대길이 스푼을 들어 올렸다.

먼저 크림 리소토.

크림 리소토를 입에 넣은 황대길이 눈을 감았다.

‘부드럽군.’

크림의 고소함과 버섯의 맛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이번에는 파스타였다.

파스타를 먹은 황대길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도, 세련됨도 없었다.

하지만 먹는 이가 즐거워지는 맛이었다.

‘…성장이 아니라 탈피했군. 완전히 다른 요리사가 되었어.’

마음이 따뜻한 요리.

실력과 기술을 뽐내는 게 아니라 먹는 이를 생각하는 요리였다.

황대길의 시선이 피자를 꺼내고 있는 강현에게 향했다.

피자를 자른 강현이 접시에 옮겨서 나왔다.

황대길은 강현이 오자마자 입을 뗐다.

“자네, 이유가 뭔가?”

“예?”

뜬금없는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황대길도 자신이 너무 급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이리 변한 이유 말이야.”

“아.”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와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서 그런 것 같아요.”

강현의 시선이 설기를 향했다가 떨어졌다.

“흠.”

그러자 팔짱을 끼는 황대길. 진지한 표정에 강현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강현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황대길이 입을 열었다.

“최근 내 요리가 이대로 괜찮은지 고민 중일세.”

강현의 눈이 커졌다. 황대길은 한식의 대가였다.

단순히 매스컴에서 띄워 주는 게 아니라 요리 업계에서도 그리 평가되고 있었다.

그런 이의 요리가 괜찮은 건 당연했다.

강현의 표정에 황대길은 고개를 저었다.

“시대는 변하고 있어. 옛것만 고집해서는 발전이 없지.”

그렇다고 옛것을 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강현은 황대길의 말을 듣고 에밀리야와 란돌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발전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결국, 셋이 이야기하는 것은 같았다.

황대길이 입을 열려는 찰나 다시 매장 문이 열렸다.

“내 자네가…. 음, 손님이 있었군.”

안으로 들어온 건 두 명의 노인이었다.

둘 다 강현이 잘 아는 이였다.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이었다.

둘은 황대길을 알아보았다.

“오, 황대길 님이 아니신가?”

“정기훈 작가님? 게다가 이정환 피아니스트까지. 어떻게 이곳에….”

둘이 알아본 것처럼 황대길도 둘을 알아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시골에서 둘을 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와 이 친구는 이곳에 머물고 있소.”

놀란 황대길을 뒤로하고 강현이 물었다.

“이정환 선생님은 나중에 오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내가 일이 남아서 한 학기를 더 끝내고 와야 한다고 들었다.

이정환과 달리 오랫동안 교편을 잡아서 정리할 게 많았다.

그러자 이정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 먼저 왔네. 일도 정리했으니 집에 혼자만 있긴 적적해서. 그 환영회란 건 아내가 왔을 때 해 달라고 부탁했지.”

그제야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님 성격상 이번에도 하고 나중에도 또 하시겠지만.’

둘은 한쪽에 자리해서 앉았다.

“우린 늘 먹던 걸로 부탁하네. 하던 이야기 끝내고 천천히 준비해 줘도 되네. 어차피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니.”

이정환이 그리 말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자네와 달리 아직 현역이야.”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대길이 입을 열었다.

“저, 괜찮으시면 같이 드시는 게 어떻소?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이 시켜서. 불편하면 거절해도 되오.”

황대길의 권유에 놀란 둘이 눈을 마주쳤다.

“그럼 거절하진 않겠소이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둘이 황대길이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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