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94화 (94/227)

#94화 하나, 둘

공 굴리기에 이어서 장애물 달리기, 단체 줄넘기까지 차례대로 진행되었다.

워낙 아이들 수가 적기 때문에 금방금방 진행되었다.

이어서 주머니를 던져서 박 터트리기가 끝나자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전 행사가 끝났습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한 시까지 식사하시고 오후부터는 학부모님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아이들은 방송이 끝나지도 전에 각자의 부모님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상후 역시 일행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할머니를 껴안고는 강현에게 다가왔다.

“삼촌! 저 봤어요?”

“그래. 잘 뛰던데?”

강현의 말에 상후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운동장 한쪽을 가리켰다.

“미영이랑 저쪽에서 먹기로 했어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쩍 다른 이들을 보았다.

여기 앉아 있는 대부분이 마을 사람들이었다. 상후를 보러왔을 터.

강현만 자리를 빠질 순 없었다.

그러자 이장이 강현의 어깨를 쳤다.

“다녀와! 우린 여기가 편혀.”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반대로 이쪽을 신경 쓰지 않고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강현은 볼을 긁적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상후네 할머니와 함께 학교 잔디로 향했다.

거기에는 미영이네 부모가 미리 와 있었다.

“할머님, 선생님.”

“두 분 어서 오세요.”

돗자리 위에 앉아 있던 미영이의 아버지와 응언이 반갑게 반겼다.

강현은 인사를 받으며 돗자리 위에 앉았다.

잔디에는 많은 이들이 일행들처럼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응언의 옆에도 도시락통이 놓여 있었다.

‘조금 싸 오라고 했는데.’

크기를 보면 적은 양이 아니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었다.

그나마 상후네 할머니가 보자기에 싸 온 도시락은 양이 적었다.

‘설기가 있으니 괜찮겠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설기 몫까지 생각해서 넉넉하게 싸 왔다.

게다가 남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 되었다.

상후네 할머니가 먼저 통을 열었다.

안에는 전과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주먹밥은 특이하게도 나물이 섞여 있었다.

“싸 온 게 없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맛있어 보입니다!”

할머니가 머쓱해하자, 응언이 고개를 저었다.

“맞아요.”

강현과 미영이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응언이 자신이 가져온 도시락을 꺼냈다.

“전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고향 음식으로 준비했습니다.”

겹치지 않게 나름대로 신경 쓴 것이었다.

반미와 짜조. 그리고 샐러드와 비슷한 요리와 수육처럼 보이는 요리도 있었다.

“이건?”

“고이센이란 겁니다. 간식으로 먹을 때도 있고 밥이나 국수에 비벼서 먹기도 합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근이랑 고수, 그리고 연꽃 줄기인가?’

위에는 으깬 땅콩이 뿌려져 있었다. 옆에 있는 수육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곧 일행들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상후와 미영이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강현의 도시락통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도시락을 풀었다. 가장 위에 나온 건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었다.

과일을 치우자 김밥과 캘리포니아 롤이 나왔다.

‘도시락의 정석은 김밥이지.’

응언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놀라긴 아직 일렀다.

다음 칸을 꺼내자 상후와 미영이의 눈이 커졌다.

“우와!”

돈가스와 식빵으로 만든 피자.

그 아래는 치킨이 들어 있었다. 튀긴 게 아니라 오븐에 구운 치킨.

마지막으로 바비큐립.

양념한 돼지 등갈비를 구운 것이었다.

강현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도시락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미영이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얘가 많이 먹어서 괜찮을 겁니다.”

“컹!”

강현이 머리를 쓰다듬자 설기가 힘차게 짖었다.

미영이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을이 달라서 설기가 얼마나 먹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아직 새끼인 설기가 먹어 봤자 얼마나 먹겠는가. 하지만 요리를 배우면서 설기의 먹성을 봤던 응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영이 아버지의 반응에 강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남으면 다른 분들 나눠 드리면 돼요.”

“아니, 그래도….”

미영이 아버지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옆을 돌아보았다.

음식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전에 운동회를 하느라 배가 고플 거다.

미영이 아버지는 헛기침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먹읍시다.”

미영이 아버지의 말이 끝났음에도 아이들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상후네 할머니였다.

“어휴, 잘 먹겠네.”

상후네 할머니가 주먹밥 하나를 들어 올리자 미영이네 부모님과 강현도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렇게 어른들이 먹자 아이들도 움직였다.

“잘 먹겠습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음식이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와!”

“맛있어….”

아이들의 감탄에 어른들이 미소 지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어머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으응.”

등갈비를 먹은 응언이 감탄하더니 등갈비 하나를 잘라서 상후네 할머니에게 건넸다.

상후네 할머니는 머뭇거리다가 등갈비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맛있구먼.”

고개를 끄덕이는 상후 할머니. 미영이네 아버지도 강현이 만든 치킨에 손을 뻗었다.

역시나 강현이 만든 요리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강현은 자신이 만든 것보다는 상후 할머니와 응언이 만든 음식에 관심이 있었다.

주먹밥을 베어 문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백하네.’

나물까지 들어 있어서 나물밥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살짝 올라오는 누룽지의 맛까지.

한국의 향이 물씬 풍겼다. 이어서 응언이 만든 고이센에 젓가락을 뻗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음식을 즐기는 동안 미영이 아버지의 젓가락이 멈췄다.

놀란 눈으로 설기를 돌아보는 미영이 아버지.

이미 두 그릇을 비운 설기가 강현을 향해 그릇을 밀었기 때문이었다.

“허, 대체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심지어 등갈비의 뼈까지 다 씹어 먹고 있었다.

음식을 덜어 주던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강현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식사가 이어졌다.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은 건 미영이였다.

“…배불러요.”

이어서 상후도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남은 음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항복.”

그러한 둘을 보며 어른들이 미소 지었다.

설기는 여전히 먹는 중이었다. 상후가 일행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철민한테 갔다 와도 돼요?”

“저, 저도요.”

미영이가 작게 말을 이었다.

“다녀와. 한 시 전에는 돌아오고.”

“예!”

“네!”

둘이 밝게 대답하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철민이. 전에도 들었던 이름이었다.

뛰어가는 아이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노란 체육복을 입은 아이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사내아이는 부모님께 무언가 이야기하더니 상후와 미영이에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옆에서 누군가가 툭, 툭 쳤다.

고개를 돌리자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가 있었다.

강현은 실소를 흘리고는 설기의 그릇에 음식을 올려 줬다.

“…정말로 다 먹겠군.”

미영이 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어른들도 배가 찼는지 하나둘 젓가락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현은 힐끗 설기를 보았다.

설기 옆에 토리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배가 볼록했다.

‘잘 먹었나 보네.’

챙겨 주지 못해서 걱정했는데 알아서 잘 먹고 다닌 모양이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강현은 미영이네 가족과 헤어져서 천막으로 돌아왔다.

“왔어?”

다른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던 이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장의 옆에 앉았다.

그때 다시 방송이 나왔다.

[오후 첫 번째 순서는 이인삼각입니다. 참가하시는 학부모님께서는 단상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인삼각.

강현의 시선이 상후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후가 천막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할머니랑 뛰지는 않겠고.’

상후네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 계신다.

천막 앞까지 달려온 상후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런 상후를 보며 일어나는 이가 있었다.

“그려. 내 실력을 보여 줘야겠구먼.”

이장이었다. 강현은 놀란 눈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코가 붉게 변한 이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상후의 눈에도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상후가 생각하던 사람은 이장이 아니었나 보다.

“상후야, 걱정하지 마라. 이 할아비가 젊었을 적에….”

그러한 이장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짝!

갑자기 튀어나온 손에 등짝을 맞은 이장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짓이여!”

“이 영감이 진짜 치매가 났나.”

익숙한 목소리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오셨어요?”

고개를 돌리자 박 씨 할머니가 서 있었다. 이장을 향해 눈을 흘기던 박 씨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온 이는 박 씨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박 씨 할머니 뒤에 있던 민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박 씨 할머니는 상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치매 걸린 노인네 말은 무시해라. 누구랑 뛰고 싶어?”

“아….”

고개를 끄덕인 상후가 조심스럽게 강현을 보았다.

“나?”

강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예. 안 될까요?”

“괜찮긴 한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될 건 없었다. 단지 의외여서 놀랐을 뿐이었다.

“알았어. 가자.”

강현은 상후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향했다.

단상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미영이과 같이 있던 미영이 아버지가 눈인사를 건넸다.

그뿐 아니라 강현의 매장에 와 본 적이 있는 사람들 역시 인사를 건넸다.

“자, 부모님들 팀별로 서 주세요.”

선생님 한 분이 일행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선두에 선 아버지 중 하나의 얼굴이 붉었다. 이미 술에 취한 것이었다.

‘괜찮을까?’

방금까지 술을 마시다 온 게 분명했다.

강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달려가다가 자빠지는 아버지.

곧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놀란 선생님이 달려가기도 전에 먼저 온 이가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오자마자 아버지의 등짝을 때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휴, 내가 못 살아.”

아이를 다독인 여인이 쓰러진 남편을 일으켜 세웠다.

주변의 반응을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선생님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금세 강현과 상후의 차례까지 다가왔다.

상후의 상대는 철민이라고 했던 아이였다.

철민이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자 강현 역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상후와 철민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 바라보던 상후가 고개를 돌렸다.

“삼촌, 우리 이겨요.”

“아, 응.”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친구 아니었던가?

옆을 보자 철민이 역시 아버지께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적게 먹길 잘했네.’

아니면 뛰기 힘들었을 거다. 곧 강현과 상후의 차례가 되었고, 호각 소리와 함께 뛰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서로 구령을 뱉으며 발을 옮긴다.

엉망이었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부터 맞기 시작했다. 상후의 움직임에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럴 때 수련이 도움이 되네.’

평소 한 수련 덕분이었다.

“달려라! 상후 파이팅!”

“지면 가만히 안 둘 거여!”

멀리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응원받은 상후의 발이 빨라졌다. 힐끗 강현이 옆을 돌아보았다.

철민이가 조금 앞서가고 있었다.

‘적당히 어울리려고 했는데.’

응원 때문인가. 아니면 열정적인 스승들의 호승심이 옮겨 온 걸까.

강현의 입이 열렸다.

“상후가 더 빨리 달릴 수 있지?”

달리는 와중에도 강현의 호흡은 흔들림이 없었다. 놀란 상후가 강현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구령이 빨라졌다.

타다닥.

“하나, 둘, 하나, 둘.”

어느샌가 철민이를 앞서기 시작한 둘.

조금씩 조금씩 거리가 벌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골에 도착했다.

이겼다. 천막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잘했어!”

“내 이길 줄 알았다니깐!”

강현은 숨을 몰아쉬는 상후와 눈이 마주쳤다.

환하게 웃는 상후.

강현 역시 같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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