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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89화 (89/227)

#89화 마을의 자랑을 위하여!

조반테의 시선이 강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확실히 이 근방의 옷 양식은 아니야. 아니, 왕도에서도 본 적이 없어.”

이 근방의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역시나 영주답게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강현이 멈칫하자 조반테가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정체를 캐물을 생각은 없어. 란돌프의 친구. 그것만으로 자네의 신원은 확인된 걸세. 무엇보다….”

조반테가 강현의 곁에 있는 설기를 바라보았다.

“하얀 늑대는 우리 가문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거든.”

깍지를 껴서 무릎 위에 올린 조반테가 강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수인족에게 향신료를 전해 주고 싶다고?”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반테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세. 지금이야 우리 로벤투스 가문이 별 볼 일 없는 변방의 가문으로 치부되지만, 과거에는 왕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가문이었네. 이유를 알겠는가?”

“…교역권, 때문입니까?”

강현의 대답에 조반테의 미소가 짙어졌다.

“맞네.”

고개를 끄덕인 조반테가 천천히 숲을 돌아보았다.

“로벤투스는 대대로 이 숲을 지키는 일을 했지. 덕분에 수인과 요정들과의 교역도 독점할 수 있었다네. 나로서는 그들과 교역한다면 환영할 일이라네. 그렇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조반테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그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걸세. 이권이 생기면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야. 아무리 작은 이권이라도 마찬가지지.”

조반테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강현의 목걸이.

“수인들이 인정하는 건 강현, 자네야. 우리 인간이 아니지. 조사하면 다른 이들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걸세.”

교류의 중심이 되는 이가 누구인지.

심각한 분위기에 강현이 마른침을 삼키자 조반테가 웃음을 터트렸다.

딱딱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가벼워졌다.

“물론, 영주인 나로서는 가문의 이익을 위해 자네를 지킬 걸세.”

그는 이 교류를 지지하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겠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강현도 이 일이 단순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막혀있던 교역로가 뚫리는 것이었다.

향신료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거다. 한 번 거래하기 시작하면 서로 필요한 것을 점점 나누게 될 것이다.

강현이 생각에 잠기자 조반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일 뿐.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네. 하지만 나로서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지.”

“영지민들이 있으니깐요.”

“맞네.”

강현의 대꾸에 조반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이 아니었다. 조반테는 이 영지를 이끄는 지도자였다.

조반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심이 서면 성으로 찾아오게나. 설령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네. 로벤투스의 성은 자네를 환영할 거야.”

조반테가 일어나자 다른 기사들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몸을 돌리려던 조반테는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자네의 요리 실력이 그리 대단하다고 들었네. 다음에는 한번 먹어 봤으면 좋겠군.”

강현에게 웃음을 날린 조반테가 몸을 돌렸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조반테. 그 뒤로 기사들이 뒤따랐다.

그리고 란돌프는 강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나중에 이야기하지.’

란돌프의 시선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영주 일행들이 떠나갔다.

그들이 안 보이게 되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끼잉.”

강현이 고민하고 있자 설기가 다가왔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고민해도 해결되는 건 없었다.

“…카샨을 만나야겠네.”

인간들의 뜻은 이미 알았다. 그녀가 어찌 생각하는지가 중요했다.

원한다면 이어 주면 되는 거고, 한쪽이 거부한다면 거기서 멈추면 되었다.

강현은 어디까지나 주선자일 뿐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소개팅도 아니고.”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설기가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음, 설기야.”

강현의 부름에 설기가 돌아보았다.

해맑은 얼굴. 미소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이 가도 괜찮겠어?”

“끼잉?”

이미 너무 늦은 질문일 수도 있었다. 강현의 물음에 설기의 움직임이 멈췄다.

“끼잉, 낑.”

설기의 두 눈이 떨려 왔다.

앓는 소리를 내는 설기. 헤어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황한 강현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야. 헤어지자는 말이 아니야. 여기에 가족들이 있잖아. 가족과 같이 지내지 않아도 돼?”

강현의 설명에 그제야 설기도 안심했다.

잠시 고민하더니 짖는 설기.

“컹!”

“괜찮다고?”

“컹! 컹!”

꼬리를 흔드는 설기의 모습에 강현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집에 가자.”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 설기는 강현에게 있어서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강현은 설기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 * *

부르르, 부르르.

강현이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울음을 토했다.

‘뭐지?’

놀란 강현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화면에 올라오는 수많은 알림.

진동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추석 인사라도 보내온 걸까?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혹스러워하던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송이 나갔구나.’

지인들이 방송을 보고 연락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좀 과한데?”

멈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강현은 핸드폰을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관심은 한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잠잠해질 거다.

하지만 강현은 방송의 위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고 짐을 풀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나여. 잠깐 내려올 수 있어?”

익숙한 목소리. 이장이었다.

강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설기와 함께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밑에서 강현을 기다리는 건 촌장만이 아니었다.

“아이쿠, 이제 왔네.”

“어딜 다녀왔어.”

평소보다 반기는 마을 어르신들. 그러나 이장의 표정은 불평이 가득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예?”

뭘 그런단 말인가? 강현이 의아해하자 이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티비에 나온다면 나온다고 말을 혔어야지! 김 씨네가 보고 방송으로 알려 주지 않았다면 몰랐잖어!”

“맞아, 섭섭해.”

이장에 말에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맞장구를 쳤다.

그제야 사람들이 몰려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볼을 긁적였다.

“알릴 만한 일은 아니라서요.”

“아니긴! 경사 아니여, 경사!”

이장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을 본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그보다 방송이라니?’

설마 마을 방송을 말하는 건가? 그런 걸 사적으로 써도 되는 건가?

의문이 떠올랐다.

“그보다, 또 캄프인지 캠퍼인지 간 거여?”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독특해. 여기 널린 게 산이고 강인데.”

그리 중얼거린 이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방송도 못 봤겠네?”

“예. 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볼 마음도 없었다.

그러자 이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안 되지.”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뒤에 있던 한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김 씨네 아들이 녹화하길 잘했네.”

“맞아. 역시 젊어서 그런지 똑똑혀.”

사람들이 말하는 김 씨네 아들은 사십이 넘은 중년인이었다.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녹화라니.

생소한 단어였다.

“회관에서 다시 보자고. 저기 박 씨랑 정 씨는 주전부리 좀 챙겨 오고. 아니다. 다들 저녁 아직일 테니 고기나 굽자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

멍하니 있던 강현의 귀에 이장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뭐 혀. 어서 회관으로 가.”

“아, 예.”

얼떨결에 걸음을 옮기던 강현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요. 회관에서 보다니요?”

뭘 본다는 걸까?

사실 알고 있었다. 받아들이기 힘들 뿐.

이장은 새삼스레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짝 나온 방송이지.”

이장의 대꾸에 강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무슨 수치 플레이란 말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회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그들을 뒤따랐다.

* * *

“인기인이 왔군.”

“…계셨네요?”

“이런 재밌는 일을 놓칠 순 없지.”

회관에 도착하자 정기훈 작가가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강현을 맞이했다.

강현은 정기훈 작가의 웃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민호와 수진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는 괜찮나요?”

“이제 막 잠들어서 아버님께서 봐주신다고 했어요.”

수진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보다 방송에 출연하신 거면 말씀해 주시지. 그날 방송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옆에 있던 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말한 방송은 마을 방송이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괜히 시끄러워질까 봐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강현의 대꾸에 슬쩍 마을 사람들을 본 민호와 수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그때, 김 씨 아저씨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옆에 있던 정기훈 작가가 눈을 껌뻑였다.

“…저거 혹시 비디오인가?”

정기훈 작가가 비디오를 몰라서 그리 말한 게 아니었다. 오랜만이기에 놀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강현도 마찬가지였다.

‘녹화라고 하더니.’

설마 비디오에 녹화할 줄은 몰랐다.

어느새 마을 회관이 꽉 차 있었다. 올 사람들은 다 온 것이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본 강현이 한숨을 내쉬자 수진이 웃었다.

“다들 강현 씨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예. 알고 있어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주 자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물론, 손주의 기분은 유쾌하지 않을 거다.

곧 텔레비전을 켜고 비디오를 집어넣었다.

“쉿, 조용! 나온다!”

이장의 외침에 웅성거리던 회관이 조용해졌다.

옛날에 나왔던 예능 방송이 잠깐 나오더니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 비친 건 강현의 모습이었다.

“잘생겼구먼.”

“암, 잘생겼지.”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도 잘해, 농사도 잘해. 저만한 총각이 없어.”

낯간지러운 소리에 강현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요리 대회가 시작되면서 조금은 진정되었다.

녹화된 방송을 보면서 강현은 사람들이 시끄러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편집이 많이 됐네.’

다른 대결 때와는 달랐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김종석의 분량이 줄었다.

강현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심지어 중간중간마다 과거 강현이 했던 인터뷰까지 나왔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죠. 전 제 요리를 할 뿐입니다.]

모르는 이가 보면 강현의 특집인 줄 알 거다.

그만큼 노골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터뷰가 나갈 때마다 강현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했다.

‘내가 저런 말을 했다고?’

믿기지 않았다.

반대로 마을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이야! 말 잘하네.”

점점 고개가 숙어지는 강현을 보며 민호와 수진이 쓴웃음을 흘렸다.

둘은 강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대결이 끝난 후에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다음 대결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장이 텔레비전을 껐다.

‘…뒤가 궁금하긴 한데.’

그렇다고 저 비디오를 빌릴 용기는 없었다.

“자, 뭣들 혀? 우리 마을의 자랑을 축하해야지!”

이장의 말에 사람들이 웃으며 식사 준비했다. 이미 방송을 보면서 반주를 걸친 이들도 보였다.

마을 회관 앞에 금세 음식들이 올라왔다.

강현도 도우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말렸다.

“주인공은 가만있는 거여!”

“맞아요.”

이장과 수진까지 만류하자 강현도 더 나설 수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술자리.

“우리 마을의 자랑을 위하여!”

“위하여!”

사람들의 축하 인사에 어색하던 강현도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강현의 일을 자신들의 일처럼 축하해 주고 있었다.

사실 조금 걱정하긴 했었다.

강현이 유명한 셰프란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까.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술잔을 드는 강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여러모로 뜻깊은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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