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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88화 (88/227)

#88화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할짝, 할짝.

볼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감촉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강현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설기와 토리였다.

“끼잉.”

“괜찮아.”

강현은 애써 웃으며 설기와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몸을 일으켰다.

푸르른 하늘과 함께 익숙한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어제 머물렀던 장소였다.

강현의 시선이 산꼭대기로 향했다.

구름에 가려진 정상.

꿈이라도 꿨던 걸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강현은 구름 너머를 알고 있었다.

구름 위의 세상.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광경.

정령 나비들과 거대한 늑대.

‘그래, 분명 만났어.’

그럼 어떻게 된 걸까? 강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쓰러졌구나.”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애당초 얇은 겉옷 하나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꼴사납네.”

강현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몸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위에서의 일이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야.’

뭔가 일이 있던 건가?

“그보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네가 옮겨 준 거야?”

여기까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설기가 옮겼다기에는 너무나 멀쩡했다.

‘어디 하나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지.’

평소 설기가 짐을 어떻게 옮기는지 알고 있었다.

강현의 예상대로 설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누가…. 아니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설기의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다면 하나뿐이었다.

설기의 부모 중 하나.

머리를 긁적인 강현이 하늘을 확인했다.

슬슬 하늘빛이 변하고 있었다. 다시 오르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쉽네.”

좀 더 보고 싶었다. 너무 짧은 만남.

그때, 설기가 강현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끼잉.”

“그래, 이번이 끝이 아니니깐.”

강현은 피식 웃고는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여기 또 머물러야겠네. 설기야, 사냥 좀 부탁해.”

“컹!”

씩씩하게 짖는 설기.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낭을 열었다.

* * *

신 열매를 넣고 끓인 물이 식으면 고기를 넣는다.

삼십 분 정도.

이것만으로 잡내가 가라지고 고기 내에 은은한 향이 올라온다.

꺼낸 고기를 팬 위에 올렸다.

치이이익.

사방으로 튀는 기름.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뚜껑을 닫아 주자 소리가 작아졌다.

‘너무 고기만 먹으니 좀 질리네.’

그래서 어제와 다르게 먹어 볼 생각이었다.

물론 강현의 생각일 뿐, 설기는 질려 하는 기색이 없었다.

강현은 고기가 익는 동안 미리 챙겨 놓은 야채들을 얇게 썰었다.

그리고 살짝 간을 한 후 잘 버무려 줬다.

조금 새콤하게.

동남아풍 느낌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익은 고기를 썰어서 썬 채소 위에 올렸다.

고기 한 점을 채소와 같이 싸서 입에 넣어 봤다.

‘나쁘지 않네.’

고기의 느끼한 맛을 날려 주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음식을 접시에 덜어줬다.

하지만 강현과 달리 설기는 앞에 놓인 접시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채소 때문이었다.

“괜찮아. 먹어 봐.”

강현의 말에 미심쩍은 눈빛으로 접시를 보던 설기가 한 입 베어 물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괜찮지?”

강현의 대꾸에 설기가 다시 한입 물었다.

설기의 꼬리가 느리게 움직였다.

‘입맛에 맞지는 않나 보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란 소리였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배낭에서 맥주를 꺼냈다.

서서히 붉은 빛으로 변해 가는 하늘.

노을 밑으로 숲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수인들의 마을인가?’

고개를 돌리자 인간들의 마을도 보였다.

그 외에도 강현이 머물렀던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보니 나도 많이 돌아다녔네.’

숲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곳곳에 추억이 쌓이고 있었다.

이제는 낯선 감정보다 반가움이 떠올랐다.

그렇게 추억에 빠져 있던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춥지 않기 때문이었다.

산 위에서 추위를 경험했기 때문인가? 어제만 해도 쌀쌀했는데 오늘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렇게 맥주를 홀짝이고 있자 옆에서 설기가 툭, 툭 앞발로 쳤다.

고개를 돌리니 그릇이 비어 있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먹성이 주는 건 아니었다.

강현은 웃으며 남은 음식을 덜어 줬다.

옆에서는 설기가 흘린 채소를 토리가 갉아 먹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돌려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맥주를 홀짝였다.

* * *

아침 일찍 일어난 강현은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산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나무와 흙의 냄새.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몸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 강현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상태가 좋아.’

전날 쓰러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저녁때보다도 상황이 좋았다.

“…좋은 일인가?”

강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와 다르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산의 꼭대기의 모습도 선명하게 보였다.

산에서 시선을 뗀 강현이 불을 피웠다.

그리고 냄비를 올려서 물을 끓였다.

데워진 물을 한 모금 마시자 몸이 따뜻해졌다.

꼼지락, 꼼지락.

땅에서 기어 나온 토리가 강현과 불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웃음을 흘린 강현이 토리를 들어서 불 앞에 내려놨다.

뜨거운 불길에 토리의 표정이 풀어졌다.

입을 벌리고 불을 바라보는 토리.

강현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졸린 눈의 설기가 기어 나왔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

강현은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았다. 설기 역시 강현의 곁에 앉아서 숲을 보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숲을 바라보던 강현의 입이 열렸다.

“이제 내려갈까?”

점심때까지 느긋하게 있어도 되지만….

‘충분해.’

휴식은 충분히 즐겼다.

강현의 물음에 설기와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힘들었다.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이었다. 배낭까지 메고 있어서 중심 잡기가 힘들었다.

‘중간에 있던 게 다행이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보다 더 가팔랐다.

오르는 것만 생각했지, 내려가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강현과 달리 설기는 평지라도 된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던 도중, 설기의 걸음이 멈췄다.

“설기야?”

뒤따라오던 강현 역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설기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

숲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등산객?’

그럴 리가 없었다. 여긴 지구가 아니었다. 누가 이런 곳까지 등산을 하겠는가. 그러면 사냥이라도 나온 건가?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위험한 이들이야?”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망설이던 강현은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먼저 접근했다가 쓸데없는 오해를 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수인들은 안면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서 쉬고 있자 선두에서 올라오는 이의 얼굴이 보였다.

중년의 사내.

사내 역시 강현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이어서 뒤따라오는 이들의 모습도 드러났다.

갑옷을 입은 이들. 기사들이었다. 모두 넷. 그리고 그중 하나는 강현이 잘 알고 있는 이였다.

란돌프.

강현과 란돌프의 시선이 마주쳤다.

‘인사를 해야 하나?’

그러나 강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있던 이가 말을 건넸다.

“이런 곳에 사람이라니. 자네가 바로 강현이겠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는 중년 사내.

다른 이들과 달리 몸이 가늘었다.

강현은 중년 사내의 말에 란돌프를 바라보았다. 우연일 리가 없었다.

이들은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강현의 시선에 란돌프가 살짝 고개를 주억였다.

강현의 예상이 맞는다는 뜻이었다.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강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년 사내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음, 처음 뵙겠습니다. 영주님. 이강현입니다.”

이렇게 인사하는 게 맞나?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무릎을 꿇던데….

슬쩍, 중년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불쾌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 눈썰미도 제법이야.”

기꺼운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중년 사내.

강현은 그런 중년 사내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란돌프는 기사단장이었다. 란돌프뿐만 아니라 저만한 기사들이 호위할만한 누구겠는가.

못 알아보면 오히려 눈치가 없는 것이었다.

“맞네. 내가 바로 로벤투스의 영주. 조반테 도르만 로벤투스라네.”

인간들의 영주.

조반테가 강현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진작 만나고 싶었어. 벌써 떠나는 길인가?”

“예.”

“서둘러오길 잘했군.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조반테의 말에 뒤에 있던 란돌프가 나섰다.

“근처에 쉴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좋군. 자네도 괜찮지?”

조반테의 질문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가 먼저 길을 나섰고 조반테와 기사들이 뒤따랐다.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란돌프에게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만날 줄은 몰랐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설기.

강현은 설기를 힐끗거리고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산속에 있는 작은 공터.

공간이 적긴 했지만,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다.

공터에 도착한 조반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나이는 못 당하겠어.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는 가뿐했을 텐데.”

“나이가 아니라 운동 부족입니다.”

“그런가?”

란돌프의 대꾸에 조반테가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기사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현도 안도할 수 있었다.

‘유쾌하신 분이네.’

중세의 귀족. 강현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란돌프가 걱정하지 말라던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깐 성에서 기다리시지.”

란돌프의 말에 조반테가 고개를 저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가 아니지. 게다가 이런 기회에 성 밖으로 나오니 좋지 않은가?”

강현은 조반테와 란돌프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 시대의 신분 관계를 오해했던 걸까? 둘의 대화는 주종 간의 대화로 보기에는 너무나 가벼웠다.

그런 강현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조반테가 웃음을 흘렸다.

“놀랄 것 없네. 이 친구와 나는 왕도에서 같이 수학하던 지우일세.”

“아….”

그렇다면 이해가 되었다. 주종을 맺기 전부터 친구였다는 소리였다.

“내가 이 친구를 영지로 데려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 친구가 보기보다 깐깐해서 말이야.”

깐깐하다고? 저 란돌프가?

믿기지 않았다. 강현의 시선에 란돌프는 슬그머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반테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금은 부드러워진 걸세. 과거에는…. 음!”

부르르 과장되게 몸을 떠는 조반테. 그 모습에 란돌프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자네가 궁금했다네. 부드러워졌다고 해도 저 친구가 타인을 칭찬하는 일은 드물어. 그런 저 친구가 누군가를 계속 칭찬하니 질투가 나더군.”

“허험.”

란돌프가 듣기 민망했는지 헛기침했다.

그러자 조반테 역시 손을 흔들었다.

“알겠네. 그만하지. 자, 그럼 인사는 끝난 것 같으니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보세.”

조반테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것만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금까지 장난스러운 사내는 사라지고 한 영지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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