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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87화 (87/227)

#87화 신의 후예

‘설기의 부모님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혀를 빼고 웃고 있는 설기.

설기는 아직 어렸다. 부모가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신호를 보냈던 곳이 여기였나?’

처음 지구에 다녀오고 어디론가 하울링을 했다. 그때도 멀리서 하울링이 들려왔다.

다시 생각하니 이곳에서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에밀리야가 기다리고 있던 것도 단순히 인사나 나누려는 게 아니었다.

에밀리야가 저리 말할 정도면 범상치 않은 존재들일 거다.

‘하긴, 설기의 부모님이니깐….’

신의 후예들.

강현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토리를 바라보던 에밀리야가 입을 열었다.

“강현 씨, 혹시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예?”

강현이 의아해하자 에밀리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의 성장 속도가 이상해서 말이에요. 제게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음, 그건 아닌데….”

말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 거다.

잠시 고민하던 강현은 에밀리야가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강현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에밀리야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에밀리야가 토리를 바라보았다.

“뭔가 잘못되었나요?”

강현의 질문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반대예요. 이 아이가 강현 씨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요.”

“예?”

강현이 의아해하자 에밀리야가 미소를 지었다.

“정령이 계약자를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렇지만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계약했다고 바로 친해지는 게 아니었다.

에밀리야는 토리의 볼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혔다.

기분 좋은 듯이 웃는 토리.

“계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정령 스스로 나서는 일은 드물죠. 하물며 이토록 어린 정령이라면 더더욱. 강현 씨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빨리 성장한 것 같아요.”

에밀리야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토리에게 향했다.

에밀리야의 손바닥에서 구르는 토리. 에밀리야의 말을 들으니 새삼 기특하게 느껴졌다.

에밀리야가 토리를 바닥에 내려놓자 후다닥, 강현에게 달려왔다.

강현은 그런 토리의 머리를 두드려 줬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설기가 강현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래, 너도 기특해.”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갸르릉, 하고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하는 설기.

그런 셋을 보며 웃고 있던 에밀리야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전 가 봐야겠네요.”

“아,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강현의 말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너무 오래 있었어요. 다음에 기회에 같이 해요.”

그녀의 웃음에 강현은 더 권하지 않았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그리 말한 그녀는 산 밑으로 몸을 던졌다.

“…!”

놀란 강현이 급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앞은 경사가 급해서 절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자 소나의 다리에 매달려서 떠나는 에밀리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노을 너머로 사라지는 에밀리야.

뒤늦게 강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정말 평범한 게 없네.”

몸을 돌리던 강현은 옆에서 눈을 빛내는 설기를 볼 수 있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토리를 바라보는 설기.

토리가 고개를 갸웃하자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토리는 날지 못해.”

당연히 에밀리야처럼 할 수는 없었다.

강현의 대꾸에 설기의 귀가 처졌다.

“그러길래 소나한테 잘해 주지 그랬어.”

그랬다면 부탁할 수도 있었다.

“끼잉.”

설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강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그저 같이 놀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 놀이 방법이 문제지.’

강현은 피식 웃고는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우리도 준비하자. 저녁 먹어야지.”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녁이란 말에 설기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강현은 배낭에서 텐트를 꺼냈다.

* * *

치익, 치이익.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불꽃이 넘실거리며 춤을 췄다.

강현은 익은 고기 한 점을 잘라 내서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한 겉면을 씹자 부드러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설기는 이미 한 덩어리를 통째로 가져가서 먹고 있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강현이 몸을 떨었다.

‘높이 올라오니 춥네….’

밤이 되자 더 쌀쌀해졌다. 옷을 더 챙겨 왔어야 하는 걸까?

그때, 토리가 꼼지락거리더니 강현의 품으로 들어왔다.

끙, 하고 힘을 주자 붉은 털이 반짝였다.

강현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곧 서서히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에 미소 지었다.

“고마워.”

토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휴대용 핫팩이나 다름이 없네.’

피식 웃은 강현은 구워진 고기를 꺼내서 설기에게 건네 주웠다.

“끼잉?”

강현은 안 먹냐는 물음. 평소보다 적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난 충분해.”

강현의 대답에도 쉽사리 입을 가져가지 못했다. 강현이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한 후에나 먹기 시작했다.

그런 설기를 보던 강현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밤인데도 별과 달이 밝은 덕분에 산의 형태가 어렴풋이 보였다.

‘설기의 부모님이라….’

뭔가 선물이라도 가져와야 하는 게 아닌가?

늑대도 그런 문화가 있던가?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대와 걱정이 뒤섞였다.

강현은 남은 맥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 * *

다음 날 아침.

텐트에서 나온 강현을 맞이한 건 자욱한 안개였다.

안개에 둘러싸인 산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산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

‘올라갈 수 있을까?’

이런 날씨에 산행은 위험했다. 그렇게 강현이 걱정하고 있자 설기가 다가왔다.

“컹!”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기대감인가. 기분 좋아 보이는 설기를 보며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설기가 있으니깐.’

산속에서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잘 부탁해.”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자 설기가 몸을 비틀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엉덩이를 툭, 툭 두드려 주고는 텐트를 정리했다.

강현의 걱정과 달리 오후가 되자 안개가 서서히 옅어졌다.

땀을 닦아 낸 강현이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긴 높구나.’

아득한 높이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설기가 없었다면 진작에 포기하고 내려갔을 거다.

시선을 돌린 강현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정말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나비?”

파란 나비. 날갯짓할 때마다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나비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이 알던 나비들과는 달랐다.

날개 너머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강현은 곧 나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령이야.”

수십이 넘는 정령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보석처럼 보였다.

‘아니, 별 무리인가?’

설기가 나비를 쫓아서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경사가 이리도 가파른데 묘기를 부리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위험해 보여서 설기를 말릴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설기 부모님의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설기의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었다.

강현은 배낭에 기대어서 앉았다.

입에서 하얀 김이 올라왔다. 산의 높이도 높이였지만, 정령 나비가 한몫했다.

나비들이 날갯짓할 때마다 차가운 한기가 불어왔다.

빼꼼.

강현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토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허공을 헤엄치는 정령 나비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강현의 품으로 들어갔다.

설기와 달리 토리는 정령 나비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소나한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

물고기도 마찬가지였다.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아니면 흥미가 없었다.

강현은 토리의 머리를 두드리고는 설기를 돌아보았다.

“설기야.”

강현의 부름에 정령 나비를 쫓던 설기가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쪼르르 강현의 곁으로 달려왔다.

“컹!”

이리저리 흔들리는 꼬리. 동그란 눈도 생기가 넘쳤다.

‘잘 놀았나 보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웃음을 흘린 강현은 몸을 일으켰다.

이제 다시 올라갈 시간이었다.

* * *

목검을 의지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염없기 걷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목검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그러자 산 아래의 경관이 한눈에 보였다.

“…와.”

강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바다가 있었다.

구름의 바다. 산 중턱에 걸친 구름이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운해.

구름의 바다였다.

“안개가 아니었어.”

구름이 많이 꼈을 뿐이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산들의 모습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다른 세상에 온 느낌.

‘다른 세상이긴 하지만.’

강현이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자 설기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컹! 컹!”

“잠깐만, 같이….”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기의 모습이 사라졌다.

강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설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네.’

위도, 아래도 구름이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걷고 있자 멀리서 설기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컹! 컹!”

“알겠어. 갈게.”

강현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

강현이 숨을 삼켰다.

너머에서 무언가를 봤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그림자.

그곳에는 작은 산이 있었다.

산이라고 착각할 만큼 거대한 크기.

순백의 털.

하늘처럼 푸른 눈동자가 강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의 후예.’

강현은 어째서 하얀 늑대가 신의 후예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생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두렵고, 또 아름다웠다.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고고한 존재.

“컹!”

굳어 버린 강현을 깨운 건 설기였다.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늑대 아래에 설기의 모습이 보였다.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설기.

그리고는 거대한 늑대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러자 강현을 바라보고 있던 늑대가 몸을 일으키더니 어디론가 걸어갔다.

“컹! 컹!”

쪼르르 달려온 설기가 강현을 재촉했다. 어서 가자는 소리였다.

강현은 뒤늦게 한기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너무 놀란 탓에 추위도 잊고 있던 것이었다.

강현은 팔을 문질렀다.

‘저게 설기 아빠인가?’

아니면 엄마.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만큼 신비로운 존재였다.

강현은 설기를 따라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늑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늑대는 혼자가 아니었다.

먼저 봤던 늑대만큼이나 거대한 늑대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어?”

두 마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늑대들 사이에 꼬물거리는 털 뭉치들.

곧 털 뭉치 하나가 강현을 향해 쏘아졌다.

정확히는 강현 곁에 있는 설기를 향해.

설기도 달려나갔다.

데구루루.

땅을 구르는 설기. 나머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설기의 형제들이구나!’

모두 네 마리. 설기와 똑 닮았다.

모두가 설기처럼 활발한 성격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강현이 고개를 들었다.

설기의 부모님.

눈동자에서 높은 지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건가?’

강현이 입을 열려는 찰나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는 강현.

놀란 설기가 달려왔다.

“끼잉, 낑.”

괜찮아.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몸이 불덩어리 같았다.

설기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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